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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막 10:32-45
성경본문내용 (32)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 서서 가시는데 저희가 놀라고 좇는 자들은 두려워하더라 이에 다시 열 두 제자를 데리시고 자기의 당할 일을 일러 가라사대(33)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기우매 저희가 죽이기로 결안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겠고(34)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니 저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니라(35)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의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36)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37)여짜오되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38)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39)저희가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40)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예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41)열 제자가 듣고 야고보와 요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42)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소위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43)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44)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45)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강설날짜 2016-06-26

2016년 마가복음 공부


세 번째 죽음과 부활을 가르치신 예수님


말씀:마가복음 10:32-45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세 번째 자신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에 대해서 가르치시는 사건입니다. 첫 번째 가르침은 가이사랴 빌립보 근처에서 베드로의 신앙 고백을 들으신 후였고(8:31), 두 번째는 갈릴리에서였습니다(9:30). 그리고 오늘 본문이 세 번째인데 예수님께서는 요단강 건너 유대 지경에서의 사역을 마치시고 예루살렘으로 향해 가시는 길에서였습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이 사건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계시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 32절을 보면 예수님과 제자들이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시는데 예수님께서 제자들 앞에 서서 가셨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어찌나 심각하고 결연하였던지 제자들이 놀라고 좇는 자들이 두려워하였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다시 열 두 제자들을 데리시고 자기의 당하실 일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33-34절을 보면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기우매. 저희가 죽이기로 결안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겠고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니. 저는 삼일 만에 살아나리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능욕’과 ‘침 뱉음’과 ‘채찍질’과 ‘죽임’은 모두 이사야서에 나오는 종의 고난을 생각나게 합니다. 이사야 50:6절을 보면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수욕과 침 뱉음을 피하려고 내 얼굴을 가리우지 아니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또 이사야 53:5절을 보면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고 했습니다. 이사야 53:8-9절을 보면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그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고 했습니다. 이사야 53:12절을 보면 “이러므로 내가 그로 존귀한 자와 함께 분깃을 얻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러한 고난을 당하시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고난 받는 종으로서의 메시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정체성은 우리가 이미 여러번 살펴 본대로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실 때에 하늘에서 들려온 음성을 통해서 계시되었습니다(참조. 막 1:11). 마가복음 1:11절에 보면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이사야 42:1절을 연상시키면서 고난 받는 종임을 알려 줍니다. 이 종의 고난과 죽음은 이사야 53장에서 자세히 묘사되고 있습니다(참조. 사 53:4-6). 예수님의 고난은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말씀과 관련되므로 우리는 이사야 53장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의 고난의 목적도 알 수 있습니다. 이사야 53:5-6절을 보면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은 우리의 허물과 죄악 때문에 우리 대신 당하신 고난입니다. 예수님의 고난은 형벌을 받아 마땅한 우리를 대신하여 당하신 고난입니다. 이사야 53:8절을 보면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예수님의 예언은 고난과 죽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삼일 만에 살아나신다고 합니다. 34b절을 보면 “…저는 삼일 만에 살아나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끝났다면 곧 다시 살아나지 아니하셨다면 과연 예수님께서 메시아라고 믿게 되었을까요? 예수님을 이사야 선지지가 예언한 고난 받는 종으로 믿는 사람이 간혹 생겨날 수 있었겠지만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로 믿는 사람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자라는 신명기 21:23절 말씀 때문에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기는 커녕 여호와의 종으로도 믿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무에 달려 고난을 당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메시아로 믿게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오직 예수님께서 자신이 예언하신 대로 죽은 자 가운데서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입니다. 십자가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정죄한 사건이라면, 부활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의롭다고 선언하신 사건입니다. 부활이 있기에 예수님께서는 메시아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죽음은 우리의 죄를 사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왜 의로우신 예수님께서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입니까? 이것은 자기 자신의 죄 때문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죄 때문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에게 왔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은 우리의 죄를 대신 당하신 고난이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죄 사함과 관련이 됩니다. 이 나라는 예수님의 고난을 통해서 왔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이 나라에 들어가려면 가족이나 토지 등 모든 것을 상대화해야 합니다. 이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귀중한 것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를 위해서 십자가 고난을 향하여 가십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마땅히 함께 십자가 고난을 향해 가야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면서도 종종 다른 것을 기대하고 추구합니다. 제자들도 그러하였습니다. 35-37절을 보면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의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여짜오되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께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하여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여기서 ‘주의 영광 중에’라는 말은 야고보와 요한의 입장에서는 예수님을 통해서 이스라엘이 회복되는 때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군사적인 메시아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생각한 예수님을 통해서 도래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이스라엘이 정치적으로 회복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못 박히려 가시는 예수님을 따르면서도 그들은 좌우편 자리 곧 권력을 기대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잘못된 메시아관에 의해서 잘못된 제자의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왜곡된 제자도는 오늘날에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복 받고 성공한다는 번영신학과 기복신앙이 한국교회를 사로잡고 있습니다. 이런 번영신학과 기복신앙이 제자도를 완전히 왜곡시키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제자도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자기 부인을 하며 예수님을 따라 죽으러 가는 길임에도 불구하고 물질적인 복을 받기 위해, 세상에서 성공하기 위해, 마음의 평안을 얻기 위해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많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고난을 당하셨으니 우리는 고난 당할 필요가 없고 오직 주님이 주시는 은혜만 누리면 된다는 생각이 전염병처럼 퍼져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의 내용인 하나님의 나라는 십자가를 통해서 왔습니다. 따라서 복음의 핵심은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믿는 자는 자기 십자가를 거부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죽기 위해서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부활은 십자가 이후에 있습니다. 세상에서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는 고난을 피할 수 없습니다. 번영의 복음과 기복신앙은 거짓 복음이며, 잘못된 제자도입니다.

 

좌우편 자리를 요구하는 야고보와 요한에게 예수님께서는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38-40절을 보면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 저희가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예비 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두 제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38).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께 좌우편 자리를 구하고 있지만 사실 그들은 무엇을 구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향하여 가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는 그야말로 영광을 얻으실 때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좌우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두 제자들이 예수님의 좌우편 자리를 구하고 있는 것은 예수님의 좌우편에서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을 구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무엇을 구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지적하시기 위해서 자신이 마시는 잔과 세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언급하셨습니다.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38).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당하실 고난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세례’는 물과 관련되는데, 물은 구약에서 재난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참조. 시 42:7; 사 43:2). 당시 헬라어에서 ‘세례 받다’라는 말은 재난 당하는 것을 가리킵니다(참조. 눅 12:50). ‘잔’은 때때로 고난이나 심판을 가리킵니다(참조. 사 51:17, 22; 렘 25:15; 49:12; 시 16:5; 75:8; 116편 등). 마가복음 14:36절을 보면 “가라사대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세례’나 ‘잔’은 앞으로 당할 고난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고난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 당하실 십자가 고난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함께 고난 당할 수 있느냐는 예수님의 질문에 두 제자들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39절에 보면 “저희가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회복과 그후에 얻을 좌우편 자리를 위해서 고난을 각오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그들에게 자신이 마시는 잔과 받을 세례를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대로 야고보는 가장 먼저 순교의 잔을 마셨습니다(행 12:2). 요한도 밧모섬에서 일생 동안 유배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요구한 좌우편 자리에 대해서는 약속해 주지 않으셨습니다.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예비 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고 했습니다(40).

 

그러면 예수님의 좌우편 자리를 구한 야고보와 요한에 대한 다른 제자들의 반응은 어떠합니까? 41절을 보면 “열 제자가 듣고 야고보와 요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이라고 했습니다. 열 제자들이 왜 두 제자에게 분히 여겼을까요? 그들도 역시 두 제자와 똑같이 권력을 추구하였기 때문입니다. 서로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자 한 것은 야고보와 요한 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마가복음 9:34절에 보면 열두 제자들은 이미 노중에서 서로 누가 크냐며 다투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제자들도 서로 누가 크냐며 더 큰 권력을 차지하고자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42-44절을 보면 “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소위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불러 먼저 그들로 이방인의 집권자들과 다름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이방인의 집권자들은 임의로 주관하고 권세를 부리지만 제자들은 그들과 다르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고 하셨습니다(43-44). 여기서 ‘∼하는 자’ 곧 ‘크고자 하는 자’,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라고 했을 때 사용된 동사가 헬라어 원어로 보면 ‘qevlw(델로)’인데 이 단어는 35-36절에서 야고보와 요한이 ‘원한다’(qevlw, 델로)고 했을 때 사용된 동사와 같은 단어입니다. 35-36절에 의하면 더 크게 되기를 원하는 자, 으뜸이 되기를 원하는 자는 예수님의 좌우편 자리를 차지하기를 소망한 야고보와 요한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좌우편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지를 가르쳐 주시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그것을 추구하지 말아야 함을 가르쳐주셨습니다(40). 그러므로 43-44절 말씀은 야고보와 요한에게 그리고 이들 못지않게 높은 자리를 차지하기를 원하는 열 제자들에게 권력을 탐하지 말 것을 가르치시는 말씀입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43-44). 이 말씀은 더 높은 자가 되고자 할수록 더 낮은 자리에 처하게 될 것이며, 더욱 욕심을 부려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더 비참한 결과에 도달할 것이라는 경고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높은 자리에 오르고 권력을 잡고자 하는 자들은 예수님의 이 경고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욕심을 버리고 자유함을 얻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권력을 추구하는 제자들에게 으뜸이 되는 방법론을 가르치지 아니하셨습니다. 오히려 권력을 추구하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가장 낮은 자리에 처하게 될 것을 경고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좌우편으로 가까이 갈수록 참으로 더 큰 자가 되는데, 가까이 가는 방법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는 길밖에 없습니다. 45절 말씀은 이것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45).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섬김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섬기러 오셨습니다.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대속물로 주려고 오셨습니다. 이를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길을 가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좌우편으로 가까이 가서 더 큰 자가 되고자 하는 자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서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는 길 밖에 없는 것입니다.

 

45절 말씀을 원어로 보면 ‘gavr’(가르)라는 접속사로 앞 절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45절 말씀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는 이 말씀은 앞의 말씀 곧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는 말씀의 근거를 제공해 줍니다. 다시 말하면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고,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고 했는데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45절에서 예수님은 “인자의 온 것은∼”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인자’는 다니엘서 7:13절에 등장하는 ‘인자와 같은 이’와 관련이 됩니다. 다니엘서 7:13절을 보면 “내가 또 밤 이상 중에 보았는데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나아와 그 앞에 인도되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인자와 같은 이’는 하나님으로부터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받습니다. 다니엘서 7:14절을 보면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로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라. 옮기지 아니할 것이요, 그 나라는 폐하지 아니할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최고의 권력자인 인자 예수님께서 세상에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죽는 종으로서 죄인들을 섬기러 오셨습니다.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오셨습니다. 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에게 왔습니다. 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이러한 예수님께 가까이 가려면 예수님과 같이 고난 받는 종의 길을 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 길 외에 다른 길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고 오셨고, 이를 위하여 십자가를 향하여 가고 계시기 때문에 예수님께 가까이 가는 길은 십자가를 향하여 가시는 예수님을 따라가는 길 밖에 없습니다. 이 길이 참으로 크게 되는 길이요, 진정한 권력을 차지하는 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섬기는 길 대신에 권력의 길을 추구하는 자는 예수님으로부터 멀어지므로 점점 더 낮은 자리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참으로 큰 자는 예수님의 복음을 깨닫고 그 복음 앞에서 산산 조각난 가슴으로 십자가에로 부르시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따라가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참으로 큰 자는 십자가로 가까이 가는 사람입니다. 우리를 부르시는 부르심은 십자가에로의 부르심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부르심으로 부름을 받은 자입니다. 이러한 부르심을 받은 자가 가장 위대한 부르심을 받은 자입니다. 이 부르심이 없이는 어떠한 길을 가든 그 길은 위대한 길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 부르심이 있는 자는 어떠한 길을 가든 그 길이 참으로 위대한 길입니다. 권력을 추구하며, 자신의 명예에 연연 해 한다면 그것은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이 되는 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십자가에로 부르십니다. 그 보혈의 피로 받는 죄 사함을 위해 부르십니다. 죄 사함을 받고 함께 고난의 잔을 마시도록 부르십니다. 이 성찬에로의 부르심을 받는 자가 진정 예수님을 사랑하는 제자이며, 예수님께서 기뻐하는 자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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