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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마 9:18-34
성경본문내용 (18)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에 한 직원이 와서 절하고 가로되 내 딸이 방장 죽었사오나 오셔서 그 몸에 손을 얹으소서 그러면 살겠나이다 하니(19)예수께서 일어나 따라 가시매 제자들도 가더니(20)열 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 겉옷 가를 만지니(21)이는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22)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가라사대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시로 구원을 받으니라(23)예수께서 그 직원의 집에 가사 피리 부는 자들과 훤화하는 무리를 보시고(24)가라사대 물러가라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저들이 비웃더라(25)무리를 내어 보낸 후에 예수께서 들어가사 소녀의 손을 잡으시매 일어나는지라(26)그 소문이 그 온 땅에 퍼지더라(27)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가실새 두 소경이 따라 오며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더니(28)예수께서 집에 들어가시매 소경들이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대답하되 주여 그러하오이다 하니(29)이에 예수께서 저희 눈을 만지시며 가라사대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신대(30)그 눈들이 밝아진지라 예수께서 엄히 경계하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알게 하지 말라 하셨으나(31)저희가 나가서 예수의 소문을 그 온 땅에 전파하니라(32)저희가 나갈 때에 귀신 들려 벙어리 된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33)귀신이 쫓겨나고 벙어리가 말하거늘 무리가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스라엘 가운데서 이런 일을 본 때가 없다 하되(34)바리새인들은 가로되 저가 귀신의 왕을 빙자하여 귀신을 쫓아낸다 하더라
강설날짜 2006-10-01

2006년 10월 1일 설교


왕의 세 번째 기적 이야기


말씀:마태복음 9:18-34
요절:마태복음 9:30-31  “그 눈들이 밝아진지라. 예수께서 엄히 경계하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알게 하지 말라 하셨으나 저희가 나가서 예수의 소문을 그 온 땅에 전파하니라.”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세 번째 기적 이야기로 3가지 이야기 속에 4가지 기적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열두 살 먹은 한 관리의 죽은 딸을 살려 주시고, 열두 해 동안 혈루증으로 고통 받던 한 여인을 고쳐주셨습니다. 두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시고, 귀신 들려 벙어리 된 자를 고쳐 주셨습니다. 그런데 마태는 다른 복음서와는 달리 이 이야기를 아주 간단하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이나 누가복음에서는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태는 왕의 권능을 계시하기 위하여 그 사실들을 시간적으로 간략하게 기록하였습니다. 마태는 이를 통해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시며, 이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가 어떠한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이 어떤 분이시며, 그 분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 가운데도 왕 되신 예수님께 믿음으로 나아가 그의 권능을 체험하고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놀라운 은혜의 역사가 충만하길 바랍니다.  

   18-19절에 보면 부정이 충만한 한 아버지가 나옵니다. 그가 어떤 안타까운 문제를 가지고 나아왔습니까? “내 딸이 방장 죽었사오니 오셔서 그 몸에 손을 얻으소서 그러면 살겠나이다.” 그는 죽은 딸을 살려 달라고 애원하였습니다. 다른 복음서를 참조해 보면 이 직원은 회당장 야이로였습니다. 그에게는 열두 살 먹은 딸이 있었는데 병에 걸려 금방 죽었습니다. 열두 해 동안 행복했던 이 가정에 어둠이 깃든 것입니다. 12년 동안 뛰놀던 딸의 모습이 아버지 야이로의 마음과 생활에 큰 비극으로 남게 될 운명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는 너무 슬퍼서 예수님께 나아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야이로는 자신을 위협하고 있는 슬픔을 해결해야 할 필요성 때문에 왕께 끌려 나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20-22절에 보면 이번에는 질병과 고달픈 삶으로 슬픔에 찬 한 여인이 나옵니다. 여기서도 마태는 그 여인에 대해서 자세히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여인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마태는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여인에 대해서 묘사하고 있는 말은 우리 편에서보다는 그 여인이 살았던 세월에 비추어서 고찰되어야 합니다. 혈루증은 율법에 부정한 병이었습니다. 그녀는 이 부정한 병으로 인해 종교적으로 소외당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유대의 사회 제도는 그러한 병을 앓고 있는 여인이 하나님께 예배하는 의식에 참여하는 것을 허락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그녀는 성전이나 회당에서 하나님을 경배하지 못했습니다. 그 여인은 동일한 율법에 의해 남편에게 이혼 당하였습니다. 그 여인은 부정한 병으로 인해 사회로부터 완전히 추방을 당하였던 것입니다. 이 여인은 12년 동안 병을 고치는데 재산을 다 탕진해 버렸습니다. 누가는 그녀가 아무에게도 고침을 받지 못하였다고 말하며, 마가는 아무 효험이 없고 더 중하여졌다고 했습니다. 열 두 해라는 말이 인상 깊습니다. 야이로의 어린 딸은 12세였으며, 이 여인은 열 두 해 동안 고생하고 있었습니다. 어린 딸에게는 열 두 해 동안은 햇빛이 비쳤으나, 혈루증 걸린 여인은 열 두해 동안 어둠 속에서 살았습니다. 웃음으로 가득찼던 한 소녀가 죽었습니다. 열 두 해 동안 한 여인은 죽지 못해 살고 있었습니다. 이 두 사람이 모두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27-31절에 보면 이번에는 두 소경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들은 들을 수는 있었으나 볼 수는 없었습니다. 그들은 감각은 있었으나 사물을 파악하는 것은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그 두 소경은 온갖 어려움과 싸우면서 예수께 나아왔습니다. 또 32-33절에 보면 끝으로 귀신들려 벙어리 된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귀신이 그를 벙어리로 만들었습니다. 슬픔으로 괴로워하는 아버지, 지위와 부가 있었으나 죽은 딸로 인해 인생이 그늘로 드리워진 사람 그가 예수께 왔습니다. 가치있는 모든 것, 즉 종교적인 권리와 가족의 보살핌, 사회적 직위와 재산을 다 잃어버린 여인 그가 예수께 왔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도 볼 수 없었던 두 소경, 당시 소문이 자자했던 치료자 예수님의 얼굴도, 심지어 자신의 얼굴도 볼 수 없었던 두 소경 그들도 예수께 나아왔습니다. 귀신들려 말을 하지 못했던 그 사람, 예수께 나아갈 길을 알지 못했던 귀신들린 벙어리, 자신의 의지를 행사할 수 없었던 귀신들린 벙어리도 다른 사람에 이끌려 예수께 나왔습니다. 이들은 온갖 종류의 궁핍에 처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왕은 군중 사이로 지나가시면서 불쌍한 이들을 자기에게로 이끄셨습니다. 예수께서 무엇보다도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마음이 상한 사람, 살 소망이 없는 사람, 낙심한 사람, 소외당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그들이 어떤 방법으로 예수께 나아왔습니까? 야이로는 공개적으로 예수께 나와 죽은 딸에게 손을 얹어 주시기를 요청하였습니다. “내 어린 딸이 방장 죽었사오나 오셔서 그 몸에 손을 얹으소서 그러면 살겠나이다.” 그런데 혈루증 여인은 아주 다른 방법으로 예수께 나아왔습니다. 야이로가 예수께 공개적으로 나아와 요청했던 것에 반해 이 여인은 아무도 모르게 뒤로 나아와 몰래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습니다. 두 소경은 소리 지르면서 나아왔습니다. 그들은 떠들어 대면서 시끄럽게 예수께 나아왔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27). 다른 복음서에서는 사람들이 그들이 너무 시끄럽게 하였기 때문에 조용히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그들은 더 크게 소리를 질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계속해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들은 예수가 들어선 집에까지 따라 들어갔습니다. 그들은 예수께 나가지 못하도록 막는 자들을 무릅쓰고 끝까지 예수께 나아갔습니다. 마지막으로 귀신들려 벙어리된 자는 스스로 예수께 나온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 이끌려 예수께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상에서 볼 때 그들은 필요가 다양하였을 뿐 아니라, 예수께 나아가는 접근방법 또한 다양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에게서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 모두가 예수께로 나아왔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이들이 모두 예수께 나아왔을 때 어떻게 되었습니까? 두말할 것 없이 그들의 필요가 모두 충족되었습니다. 사망이 정복되었으며, 질병이 치료되었고, 시력이 회복되었습니다. 귀신으로부터 자유함을 얻고 다시 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는 한 아버지의 아픈 마음을 싸매어 주시기 위하여 사망을 물리쳐 주셨습니다. 사회로부터 격리 당하고, 남편에게 버림받은 여인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소경의 눈도 뜨게 하셨으며, 귀신들려 벙어리 된 사람에게 귀신을 쫓아내심으로 굳어진 혀를 풀어 주셨습니다. 왕 되신 예수님의 행동은 신속하였습니다. 야이로가 와서 말하자 예수께서는 즉시 일어나 따라갔습니다. 혈루증 여인이 예수의 옷을 만졌을 때 즉시 치료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예수께서는 파리한 여인이 자신의 옷자락에 손을 대신 것을 하나님의 심장 고동보다 더 빨리, 번개 불보다 더 빨리 그 사실을 아시고 그의 능력으로 낫게 하셨습니다. 두 소경이 온 마음으로 열성을 다해 호소했을 때 예수께서는 그들의 시력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귀신들려 벙어리된 자가 사람들의 손이 이끌려 나아왔을 때 귀신을 좇아내어 주시고 혀를 풀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다양한 방법으로 그들의 필요를 즉시 해결해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야이로의 집으로 가는 모습을 한번 그려 보십시오. 우리는 그 광경을 더 상세히 알기 위해서 다른 세 복음서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야이로의 집으로 가는 예수님의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예수께서는 야이로의 딸이 죽어 누워 있는 곳으로 들어 가셔서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비웃었습니다. 그 때 예수께서는 무슨 일을 하셨습니까? 25절에 보면 우는 자들과 비웃는 무리들을 내보내셨습니다. 사람들을 내보내신 후 예수께서는 소녀의 손을 부드럽게 잡으셨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손길입니까? 예수께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달리다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을 번역하면 ‘소녀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는 뜻입니다. 예수께서는 죽음의 사슬에서 소녀를 풀어 주셨습니다. 비로소 야이로의 마음속에 봄의 훈훈함이, 여름의 생동감이 넘치게 되었습니다. 그에게는 이제 모든 것이 새롭게 보이게 되었습니다.  

   한편 야이로의 집으로 가는 도중에 만난 여인을 대하시는 예수님의 방법은 야이로의 딸의 경우와는 전혀 달랐습니다. 예수께서 먼저 그 여인에게 질문하셨습니다. “누가 나에게 손을 대었느냐?” 이것은 예수께서 자기 옷을 만진 자가 누구인지 알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 여인으로 하여금 훨씬 더 좋은 은혜를 덧입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누가 나에게 손을 대었느냐?”는 질문에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본 제자들은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면서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고 물으시나이까?”하고 반문했습니다. 이같은 제자들의 반응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과연 예수께서 호기심에 찬 군중들이 미는 것과 한 영혼이 고뇌에 차서 만지는 것의 차이를 모르시고서 그러한 질문을 하셨을까요? 예수를 만진 사람은 칭찬을 받아야 할 사람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고 질문하심으로써 호기심에 차 있는 군중들로부터 절실한 필요를 알고 나온 그 여인을 구분시켰습니다. 예수의 옷자락을 만진 사실이 발각되었다는 것을 깨달은 여인은 예수 앞으로 나아와 자초지종을 고하였습니다. 마태는 참으로 우리에게 아름다운 장면을 묘사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앞에 나아와 자초지종을 말하는 여인을 “딸아!”라고 부르셨습니다. “딸아!” 이 말씀은 왕 되신 예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뜻하고 있는 깊은 의미를 우리는 도저히 다 헤아릴 수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실로 하나님의 성령의 속삭임이 담긴 음악과도 같은 감미로운 음성이었습니다. “딸아!”하는 말씀 다음에 예수께서는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시 그 여인은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가련한 인간이었습니다. 그런데 “딸아!” 부르시는 예수님의 말씀은 이제 그녀가 하나님의 딸의 신분을 갖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여인은 남편에게 버림을 받은 처지였습니다. 그런데 “딸아!”라는 주님의 말씀은 이제부터는 주님께서 그녀의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신랑이 되어주겠다는 말씀입니다. 한편 그 여인은 공동체로부터 소외되었으나 “딸아!”라는 말씀은 이제부터는 그녀가 하나님 나라의 일원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씀입니다. 단 한마디 말씀으로써, 예수께서는 그 여인을 뒤덮고 있었던 인생의 먹구름을 거두어 내셨습니다. 찬란한 황금빛 햇살이 비치는 푸른 하늘을 보여 주셨습니다. 왕의 한 마디 말씀으로 인해 여인의 고통과 치료 불능의 병마는 쫓겨났습니다. 그녀는 빛 가운데 거하게 되었으며, 하나님과 교제하는 자유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그녀에게 “딸아!”라고 말씀하시기 이전에 그 여인이 대중 앞에서 자신의 믿음을 숨김없이 고백하도록 하셨습니다.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는 그 순간 이미 치유의 역사가 임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 여인에게 질문하신 것은 결과적으로 주께서는 그녀가 질병의 치유 이상의 은혜를 누리기를 원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나는 네가 나의 옷을 통하여 전달된 은혜만으로 만족하기를 원치 않는다. 와서 내 얼굴을 보아라’는 뜻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여인의 얼굴을 내려다 보셨습니다. 여인의 얼굴을 내려다보시는 예수님의 눈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그 눈빛과 영광이 얼마나 부드럽고 아름다운 것이었겠습니까?

   혈루증 여인을 고쳐주신 후 나오는 두 소경을 고쳐 주신 예수님의 방법은 또 다른 방법으로 나타납니다. 예수께서는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 때 소경들은 “주여 그러하오이다”고 확신 있게 대답했습니다. 바로 그 때 예수께서 손으로 그들의 눈을 만져 주셨습니다. 우리는 과연 수십 년 동안 소경으로 지내던 그들이 예수께서 손으로 그들의 눈을 만져 주심을 느끼는 순간에 밝은 빛이 그들 눈동자를 비추기 시작할 때의 감격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벙어리를 고치신 경우에는 그분의 치료방법에 대한 설명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단지 그분의 장엄함을 느낄 수 있을 뿐입니다. 절실한 필요를 느끼는 사람들은 모두 다 그 분의 능력에 호소하였습니다. 반면에 예수께서는 그 어느 경우에서나 먼저 그들의 믿음을 요구하셨습니다.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사람들의 믿음이 드러나는 곳에서는 사망과 질병과 흑암과 귀신이 정복되는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왕 되신 주님을 만나고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예수의 이적 가운데 가장 인상 깊은 점은 그분께서 놀라운 권세로써 능력을 행사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거기에는 힘들여 노력함도 없고, 오랜 세월을 끌어 신비스럽게 준비하는 모습도 없습니다. 필요를 절박하게 느끼는 사람이 믿음으로 나아오면 그 분은 단지 말씀하시거나 손으로 만져 주실 따름이었습니다. 그러면 곧 그 필요가 충족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러한 사실을 크게 떠벌이며 드러내려고 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31절에 보면 자신에 대하여 삼가 아무에게도 알게 하지 말라고 엄히 경계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께서 사람들로 하여금 깨닫기를 바랐던 바가 결코 신유의 은사를 행하는 능력 많으신 분과 같은 그런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어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어라”는 사실을 사람들이 깨닫기를 바라셨습니다. 예수님은 기적 사건을 통해서 자신이 하나님 되심을, 곧 자신이 왕 되심을 알기를 원하셨습니다. 믿음으로 나아와 왕 되신 자신을 영접하고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기를 원하셨습니다.

   33-34절에 보면 귀신이 쫓겨나고 벙어리가 말을 하는 것을 보고 많은 무리들이 기이히 여기며 이스라엘 가운데서 이런 일을 본 때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예수께서 귀신의 왕을 힘입어 이런 행한다고 비난했습니다. 우리가 왕 되신 예수님께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는 어떤 절실한 필요가 있습니까? 질병의 문제가 있습니까? 심각한 인생문제가 있습니까? 부흥에 대한 갈급함이 있습니까? 이 시간 우리도 예수님께 믿음으로 나아가 호소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그 분의 통치가 우리 가운데 임하며, 하나님 나라의 영광이 우리 가운데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야이로가 누렸던 그 영광, 혈루증 여인이 누렸던 그 감격, 두 소경이 누렸던 그 기쁨, 벙어리 된 자가 누렸던 그 축복을 우리도 소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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