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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사도행전 14:19-28

2004년 12월 5일 설교

                                                     안디옥으로의 귀환

말씀:사도행전 14:19-28
요절:사도행전 14:22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하여 이 믿음에 거하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오늘 본문은 바울과 바나바가 제1차 전도여행을 마무리하고 안디옥으로 귀환하는 사건입니다. 바울 일행은 1차 전도 여행을 마치고 안디옥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타우루스 산맥을 지나 다소로 가서 실루기아에서 배를 타고오는 쉽고 빠른 길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제까지 전도했던 도시들을 다시 되돌아서 돌아왔습니다. 이들이 쉬운 길로 해서 바로 안디옥으로 돌아오지 않고 자기들을 핍박하고 돌로쳐 죽이고자 했던 곳으로 다시 둘러서 귀환하고자 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가 오늘 안디옥으로 귀환하는 바울 일행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진리를 배우고 은혜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잘 알 듯이 바울 일행의 제1차 전도여행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가서 복음을 전파하는 도시마다 유대인들이 핍박을 하였습니다. 그 핍박의 절정은 루스드라에서 일어났습니다. 이고니온에서 유대인들의 핍박을 피하여 루스드라에 온 바울 일행은 거기서도 힘을 다해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비시디아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유대인들이 거기까지 좇아와서 핍박을 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무리들을 선동하여 바울을 돌로치게 하였습니다. 성난 무리들은 스데반을 돌로쳐 죽인 자들과 같이 바울에게 달려들어 돌로쳤습니다. 이때 당한 돌세례는 바울의 인생에 엄청난 충격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고린도후서 11:24-25에 보면, 바울이 후에 그의 고난을 회상할 때 이 때 당한 핍박을 다시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이 말씀을 볼 때 돌로 침을 당한 사건이 바울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가져다 주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이 때 돌에 맞아 거의 죽게 되었습니다. 돌로 친 자들은 바울이 죽은 줄로 생각하고 성 밖에다 버렸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났습니다. 20절에 보면, 제자들이 둘러썼을 때 일어났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일어났다’는 말은 ‘일으켰다’(아나스타스)라는 말로 부활의 능력을 말하는 단어입니다. 이것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부활의 권능으로 돌에 맞아 죽은 자와 같은 바울을 소생시켰음을 말해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부활의 권능으로 바울을 다시 살리셨습니다. 우리 주님의 부활의 권능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극적으로 살아난 바울은 루스드라 성에 다시 들어갔다가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그곳을 떠나 더베로 갔습니다. 바울 일행은 더베에서도 열심으로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더베에서의 복음 전파는 비교적 평화로운 가운데 진행된 것 같습니다. 더베에서는 핍박을 받았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아마 핍박하던 유대인들이 바울 일행이 어디로 갔는지 몰랐던 것 같습니다. 바울 일행은 더베에서 복음을 전하여 많은 제자들을 세웠습니다. 더베에서 성공적으로 복음 전파역사를 섬긴 후 바울 일행은 그곳에서 더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제1차 전도 여행을 끝내고 다시 안디옥으로 돌아가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더베에서 타우르스 산맥을 지나 쉬운 길로 돌아오지 않고, 그들이 핍박과 죽음의 고통을 당하며 복음을 전한 모든 도시들을 심방한 후에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바울 일행이 왜 쉬운 길을 택하지 않고 자기를 죽이고자 하는 자들이 있는 위험천만한 길을 택했을까요? 첫째는,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하여 믿음에 거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22a절에 보면,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하여 이 믿음에 거하라 권하고”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2천년이 지난 일이기 때문에 남의 일처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상상력을 동원하여 한 번 생각해 봅시다. 바울 일행이 전도한 도시들은 유대인들이 핍박을 하였습니다. 이고니온에서는 바울을 잡아 죽이고자 작정한 자들이 있었습니다. 루스드라에서는 돌로 침을 당하여서 거의 죽었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났습니다. 바울의 몸에는 루스드라에서 돌아 맞았던 흔적들이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곳들을 다시 돌아서 귀환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행동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바울의 깊은 뜻이 있었습니다. 바울이 그들 지역으로 다시 되돌아간 것은 그 곳의 성도들을 만나 마음을 강하게 하고 믿음 위에 굳게 서 있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영접한 소수의 무리들이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 믿음을 지키기 위해 투쟁하고 있음을 잘 알았습니다. 그들은 이방의 풍습과 유대인들의 핍박으로 인해 마음이 많이 약해져 있었음을 잘 알았습니다. 바울은 이런 그들의 마음을 굳게해야 할 필요성을 느겼습니다. 특히 바울이 위험을 무릅쓰고 그들에게 돌아간 것은 그가 선포했던 진리의 중요성을 의식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이 처음에 이 도시들을 방문했을 때 그는 두 가지 사실을 크게 강조하며 전도했습니다. 하나는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이고, 또 다른 하나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함을 얻을 수 있다는 진리였습니다. 그들 중에는 바울의 이 증거를 받아들여 구원을 얻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바울이 전한 진리를 완전히 깨닫고 그 위에 굳게 서지는 못했습니다. 특히 생명의 도에 대해 그토록 적대적인 분위기 속에서 그 믿음을 끝까지 간직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영접한 소수의 무리들이 그 어려운 상황 속에서 믿음 위에 굳게 서 있도록 권면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그들을 만나기 위해 돌아간 것입니다. 적은 무리들이 적대적인 분위기 속에서 믿음을 잃지 않고 굳게 서 있기 위해서는 진리에 대해 계속적인 가르침이 필요했습니다. 바울은 소수의 복음을 영접한 신자들에게 진리를 깊게 온전히 가르치고자 하는 열망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고 그들에게 돌아간 것입니다. 수년 후에 감옥에서 쓴 그의 옥중 서신들을 보면, 그들이 진리를 온전히 깊이 깨닫게 되는 것이 그의 간절한 소망이라고 거듭 밝혔습니다. 온전한 지식은 믿음을 더욱 강화합니다. 온전한 지식은 소망을 더욱 불타게 합니다. 온전한 지식은 사랑을 더욱 깊게 만듭니다. 바울이 처음 이 도시들을 방문했을 때는 진리의 핵심들을 선포함으로써 그들로 믿게 하는데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재차 그 도시들을 방문한 것은 진리가 그들 삶 속에 더욱 깊이 뿌리박혀서 온전한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바울이 루스드라에 돌아가서 믿음의 형제들 앞에 섰을 때, 그곳의 성도들은 바울의 얼굴에 있는 돌에 맞은 흔적, 곧 주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을 봤을 때, 얼마나 위로가 되었겠습니까? 얼마나 큰 용기를 얻었겠습니까? 그들은 바울을 통해 큰 위로와 힘을 얻게 되었을 것입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끝까지 싸워야겠다는 용기를 얻게 되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바울이 가르쳐주는 온전한 진리의 말씀인해 그들은 더욱 확고히 믿음 가운데 설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바울은 가깝고 빠른 길을 마다하고 멀고 험한 길을 돌아서 귀환하고자 한 것은 바로 이처럼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도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있는 형제들과 사랑의 교제를 나누고 진리의 말씀을 통해 그들의 마음을 굳게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바울은 이일을 위해 생명의 위험을 무릅섰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바울의 상한 목자의 심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참으로 바울은 진정한 목자였습니다. 저는 서경록, 김애경 집사들을 통해 바울의 이 목자의 심정을 배우고 은혜를 받습니다. 이분들은 창원에 있는 어려운 양떼들과 성도들을 돕고 섬기기 위해 믿음으로 이사를 하였습니다. 무엇보다 김애경 집사가 친구의 미혹을 받아 이상한 곳으로 가고자하는 한 형제를 생각하며 안타까워 우시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찡하였습니다. 정말 양떼들을 사랑하는 목자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분들의 목자의 심정과 기도를 받으시고 연약한 형제를 미혹에서 구원해 내시고 믿음 위에 굳게 세워 주실 것을 믿습니다.

     둘째로, 환난을 통해 들어가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진리 때문이었습니다. 22b절에 보면, “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가깝고 쉬운 길로 귀환하지 않고 멀고 어려운 길을 돌아서 귀환한 근본 이유는 ‘하나님 나라’라는 말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하나님의 영적인 탈곡기를 거쳐야 합니다. 바울은 그의 서신 여러 곳에서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고난을 받고 환난을 당한다고 고백했습니다(살후 1:4-5; 딤후 3:12; 빌 1:29 등). 여기서 ‘환난’이라는 단어는 ‘들립시스’인데, 이 말은 알곡에서 겨를 분리시키는 고대의 탈곡기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즉 우리가 마지막으로 영원히 쉬게 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영적인 탈곡기를 거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영적인 탈곡기가 바로 환난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처럼 하나님 나라를 향해 가는 길이 환난으로 점철된 길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고난에서 끝나버리는 허무한 고난이 아닙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의 고난은 의미있는 고난이요, 우리의 환난은 영원한 생명을 약속받고 있는 환난입니다. 우리의 고생은 환희로 끝나게 약속되어 있는 고생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8). 바울은 환난 가운데 있는 성도들에게 환난의 의미를 깨우쳐주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 가운데 인내할 것을 권면하기 위해 그들을 다시 방문한 것입니다.

     우리가 환난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영적인 탈곡기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알 때 환난 가운데서도 낙심하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바라보며 인내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 믿으면 복받는다고 생각합니다. 정말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복을 받습니다. 그러나 이 땅에 살면서 많은 고난과 환난을 당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우리는 이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환난은 시대에 따라 달라지지만 그 영적인 의미는 동일합니다. 환난은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가는 영적인 탈곡기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환난 가운데서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기쁨으로 인내해야 합니다. 현재 우리 가운데는 크고 작은 환난을 당하고 있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질병의 환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물질의 환난을 당하기도 합니다. 어떤 분은 취직과 결혼과 같은 많은 인생의 환난을 당하기도 합니다. 어떤 분은 가정 문제의 환난을 당하기도 하고, 어떤 분은 핍박의 환난을 당하기도 합니다. 어떤 분은 양떼들로 인해 많은 아픔과 환난을 당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런 환난으로 인해 낙심해서는 안됩니다. 이런 환난은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영적인 탈곡기인줄 믿습니다. 우리가 당하는 환난은 생명이 약속된 환난이요, 환희로 끝날 환난입니다. 그 어떤 영광과도 비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환난입니다. 우리에게 어떤 환난이 있습니까? 우리에게 어떤 고난이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인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니 그 환난을 통해 들어갈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기쁨으로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울이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비시디아 안디옥의 신자들의 마음을 굳게한 후 작은 배를 타고 안디옥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아마 갑판 위에 서 있는 그이 모습은 험하고 긴 여행에 지친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또한 돌에 맞은 흔적이 그의 몸에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귀환의 배를 타고 바다를 가로지르던 그의 눈에서는 승리의 영광이 반짝였을 것입니다. 그의 마음에는 감사와 기쁨으로 충만하였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방 가운데서 이루신 놀라운 일을 생각할 때 아직도 흥분이 되고 가슴이 뛰었을 것입니다. 바울 일행은 사명을 완수하고 안디옥으로 돌아와 제자들 앞에서 은혜로운 선교보고를 하였습니다. 특히 그들은 하나님이 함께 행하신 일과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것을 담대히 고하였습니다(27). 바울의 그 환희와 승리의 영광이 우리의 환희와 승리가 되길 바랍니다. 바울의 그 감사와 기쁨이 우리의 감사가 되길 바랍니다. 바울의 승리의 선교보고가 우리의 선교보고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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