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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요한복음 13:34-35
2005년 신년 특2강
                                                   서로 사랑하라

말씀:요한복음13:34,35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라는 것을 알게하는 표지가 무엇일까요? 주일예배에 정기적으로 참석하고, 성경을 공부하고, 열심히 봉사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십자가 목걸이를 하고, 식사 때 기도하는 것일까요? 프란시스 쉐퍼는 ‘그리스도인의 표지’라는 그의 글에서 그리스도인의 표지는 바로 “서로 사랑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제자임을 알게하는 표지는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한사람 한사람을 사랑으로 부르십니다. 그 사랑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사랑하신 것같이 사랑하는 사랑입니다. 이 시간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은 어떤 사랑인가 알기 원합니다. 그리하여 그 사랑으로 우리가 서로 사랑하며,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어 가길 바랍니다.  

   13:1절에 보면 예수님은 세상을 떠나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날이 이제 하루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만일 여러분은 내일 자신이 누명을 쓰고 죽어야 한다는 것을 안다면 무엇을 할까요? 어떤 철학자처럼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으시겠습니까? 아니면 먹고 싶은 것 먹고 하고 싶은 것 하겠습니까? 아니면 슬퍼하며 울고 앉아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고통스러운 십자가를 앞에 두고도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1). 당시 제자들은 예수님의 고뇌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정치적인 생각에 사로 잡혀 누가 더 높은 자리에 앉을 것인가로 다투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예수님을 돈 몇 푼에 팔아버리는 배신자도 끼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끝까지 사랑하셨다”는 것은 어떻게 사랑하신 것을 말합니까? 무조건적으로, 한계가 없이, 상황에 관계없이, 변함없이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사랑은 상황과 조건에 따라 변합니다. 우리 자신들을 한번 돌아보십시오. 우리의 사랑이 얼마나 상황과 조건에 따라 변합니까? 우리는 누가 나를 사랑해 주면 나도 사랑합니다. 그렇게 사랑하다가도 내가 조금만 섭섭한 일을 당하고 자신에게 손해가 되면 불신하고 미워합니다. 자기 생각에 동의해 주면 사랑하고, 자기를 지지해 주지 않으면 미워합니다. 심지어 맛있는 반찬 앞에서 형제에 대한 우리의 사랑의 한계가 다 드러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랑은 한계가 없으셨습니다. 상황과 조건에 따라 변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배신자도 사랑하시는 사랑입니다. 가룟 유다가 배신할지 알면서도 끝까지 감당하시고, 사랑하셨습니다. 장차 자신이 고통당할 때 모두 버리고 떠날 제자들을 다 아시고도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바로 이 사랑으로 부름받은 사람들입니다. 이 사랑을 확신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랑에 반한 사람들입니다. 이 사랑을 가진 사람은 이 사랑이 날 살렸고, 이 사랑이 날 살게 한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는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예수님께서 저녁 잡수시던 중에 자리에서 일어나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4-10). 이사건은 제자들에게 큰 충격과 경악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발을 씻기는 것은 종들이 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을 볼 때 제자들 중에서 아무도 나서서 예수님과 제자들의 발을 씻긴 사람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제자들은 서로 누가 크냐 다투고 있었습니다. 요한은 그 형 야고보와 합심해서 수제자 베드로의 자리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새 왕국을 건설할 때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자 서로 경쟁하고 보이지 않는 암투를 벌였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하루만 지나면 제자들을 떠나 십자가의 길을 가야 합니다. 몇일 후면 하나님께로 가야 합니다. 제자들은 이 땅에 남아서 하나님의 뜻을 섬겨가야 합니다. 그런데 이들은 이런 하나님의 뜻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직 자신들의 욕심에 사로잡혀 서로 미워하고 다투고 있었습니다. 이런 제자들을 보실 때 십자가를 앞에 두신 예수님의 마음이 얼마나 답답하셨을까요? 그러나 예수님은 한마디 책망의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답답하다고 가슴을 치지도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묵묵히 냄새나는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요한의 발로 시작하여 가룟 유다의 발도 씻어 주셨습니다. 한사코 발 씻기기를 거부하는 베드로의 발까지도 씻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절대로 내 발을 씻기지 못합니다고 했을 때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상관이 없다는 말에 베드로는 다시 흥분하여 내 발 뿐만 아니라 머리까지 씻겨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베드로에게 이미 목욕한 자는 발 밖에 씻을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시고 그의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후에 당신이 행하신 일의 의미를 설명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의미가 무엇입니까? 14-15절에서 말합니다.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더러운 발을 몸소 씻기신 것은 그들에게 본을 보이시고자 하심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이시고자 한 본은 제자들이 서로 발씻기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떠나신 후 남겨질 예수님의 제자 공동체가 어떤 공동체가 되어야 하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공동체는 서로 발을 씻기는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이 말은 예수님의 제자공동체는 매주 모여서 한번씩 서로의 발을 씻어주는 의식을 행하라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여기서 발을 씻기는 것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이미 목욕을 한 상태라고 말하였습니다. 이것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영접하므로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15:3절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그들이 목욕하였다는 것은 제자들은 이미 예수님의 말씀을 영접하므로 죄씻음을 얻고, 예수님으로 인해 의롭다함을 얻었음을 말해줍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으로 한번 깨끗하게 된 예수님의 공동체, 제자들의 공동체는 성자들의 공동체가 아닙니다. 제자공동체는 구원받은 죄인들의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내안에 있는 육신의 소원의 충동을 받아서, 또 죄악된 습관으로 인해서 다시 죄를 짓기도 합니다. 이기심과 교만과 정욕과 시기와 질투와 불의가 사람들 사이에서 불쑥불쑥 튀어 나옵니다. 이런 우리들에게는 여전히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 나의 더러운 모습 그대로, 죄악된 모습 그대로 나가기만 하면 예수님은 우리의 발이 아무리 더럽고 냄새가 나도 사랑으로 씻어 주십니다. 예수님은 그 사랑을 받은 제자들은 서로의 발을 씻겨주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제자공동체는 서로의 죄악을 용납해주고, 감당해주고, 씻어주는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사랑이 있어야 하고, 관심이 있어야 하고, 인내가 있어야 합니다. 사실 최후의 만찬장의 제자들은 각자 자기 욕심에 사로잡혀 가룟 유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제자들을 씻기신 후에 제자들 중 하나가 예수님을 팔 것이라고 말씀하자 서로 쳐다보며 의심했습니다. 당시의 제자 공동체는 서로 무관심하고, 서로 의심하고, 서로 경쟁하고, 서로 시기하고, 서로 질투하는 공동체였습니다. 가룟 유다는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예수님을 팔고자 몰래 나갔습니다. 예수님은 남은 제자들에게 새로운 계명을 주셨습니다. 그 계명이 무엇입니까? 34절을 보십시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옛 계명은 레위기19:18절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옛 계명이나 새 계명이나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은 같습니다. 그러나 그 기준이 다릅니다. 옛 계명은 자기 몸을 사랑하듯이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인간은 자기를 사랑합니다. 그러므로 자기만큼만 이웃을 사랑해도 사실 굉장히 큰 이웃 사랑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인간의 자기중심성으로 인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새 계명에서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한 것 같이 서로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께 사랑을 받을 때에만 서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사랑의 근원은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한계가 없는 사랑입니다. 배반할 것을 알면서도 끝까지 사랑하신 사랑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사랑은 발을 씻기시는 사랑입니다. 냄새나고, 더럽고, 추한 우리가 언제든지 나가기만 하면 냄새난다 배척하지 않으시고, 사랑으로 씻어주시는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공동체는 이 사랑을 가졌을 뿐 아니라, 이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는 공동체입니다. 우리가 이 사랑으로 서로 사랑할 때, 이로서 모든 사람들이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인줄 알게 됩니다. 사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공동체가 되지 않아도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서로 뜨겁게 사랑하는 공동체가 될 때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인줄 알 것입니다. 실제로 사도행전의 초대교회는 숫자가 많은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서로 사랑하는 공동체였습니다. 그들은 뜨거운 사랑으로 모이기를 힘썼고, 뜨거운 사랑으로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었고, 함께 자신들이 가진 것을 나누었습니다. 뜨거운 사랑 때문에 자신들의 재산을 다 내어놓는 헌신도 하였고, 뜨거운 사랑 때문에 서로의 허물과 실수를 용납하고 용서해주는 공동체였습니다. 그들의 뜨거운 사랑은 세상의 냉냉함과 현격하게 대조되었습니다. 예수님의 공동체가 뜨거운 사랑을 가진 공동체가 된다는 것은 이기적으로 자기들끼리만 사랑하는 이익단체가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이 없는 세상에 사랑을 퍼주는 사랑의 저장고, 사랑의 샘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랑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와서 그 사랑을 마시고, 쉼을 얻고, 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공동체는 서로 사랑하는 공동체가 됨으로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공동체입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의 제자 공동체가 어떤 공동체가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유언과 같은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 궁극적으로 되어야 할 제자상이 무엇인지, 우리 공동체가 어떤 공동체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다른 것은 부족하더라도 서로 사랑하는 사랑의 사람들이 되어야겠습니다. 우리 공동체가 물질이 부족하고 사람이 많지 않을지라도 서로 사랑하는 사랑의 공동체가 되어야겠습니다. 사랑하기 위해서 나의 스타일과 나의 한계를 깨뜨릴 수 있어야 합니다. 서로 사랑하기 위해서 서로 용납하고, 용서하고 상대방의 허물과 실수를 감당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서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끝까지 사랑하신 예수님의 사랑을 덧입어야 합니다. 요한일서 4:10,11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은 여기 있나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사랑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독생자를 화목제물로 삼으신 하나님의 사랑을 덧입고 그 사랑의 통치를 받을 때만이 우리가 서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 한결교회가 사람이 적을지라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는 사랑으로 소문난 공동체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이 시대에도 진정한 예수님의 사랑의 공동체가 존재한다는 것을 나타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것은 우리의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끝없는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로 나아갈 때만이 가능합니다. 우리들의 더러운 죄악들을 용서하시고, 씻어주시는 예수님께 나의 더러운 발을 내어놓고 씻음 받을 때만 가능합니다. 끝까지 사랑하신 주님의 사랑을 날마다 받고 체험하고 누릴 때에만 가능합니다. 우리가 날마다 주님께 나의 더러운 발을 내어 놓고 주님의 사랑 가운데로 나아감으로 사랑의 사람들이 되길 바랍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며,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어 가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 교회가 이 세상 가운데서 교회다움을 잘 드러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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