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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사도행전 15:36-16:10

2005년 1월 23일
                                                   마게도냐 인 환상
말씀:사도행전 15:36-16:10
요절:사도행전 16:9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가로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오늘 말씀은 바울이 2차 전도 여행을 떠나 마게도냐 사람 환상을 본 후 유럽으로 가기를 힘쓰는 사건입니다. 예루살렘 공의회 후 바울과 바나바는 다시 2차 전도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을 데리고 구브로로 떠나고, 바울은 실라를 데리고 수리아로 떠났습니다. 저자 누가는 2차 전도여행을 바울을 중심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울 일행은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니며 교회들을 굳게 한 후 데베와 루스드라에 이르러 디모데를 동역자로 삼았습니다. 그들은 아시아의 여러 성을 다니며 예루살렘 공의회 때 정한 규례들을 가르쳐 지키게 하였습니다. 이에 교회가 믿음이 굳어지고 성도의 수가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이에 힘을 얻은 바울은 계속해서 아시아 선교에 힘썼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이를 허락지 아니하셨습니다. 성령께서는 그에게 마게도냐 사람 환상을 보여 주시고 유럽 선교에 힘쓰도록 인도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바울의 의지와 달리 성령께서 주권적으로 이루어가시는 세계선교 역사를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자기의 뜻을 꺾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바울의 신앙을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15:35절과 36절 사이에는 많은 시간적 공백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읽은 오늘 본문에 보면 시간적 공백이 별로 없습니다. 단순히 “수일 후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갈라디아서를 보면 이 당시 시간적 공백이 상당한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2:11-21절에 보면, 베드로는 안디옥을 방문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결정한 대로 안디옥 교회 성도들 곧 헬라인 성도들과 아무런 구별함도 없이 함께 앉아서 식사하며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예루살렘으로부터 어떤 사람들이 내려왔습니다. 그들은 유대화주의자들에게 영향을 받은 자들이었으며, 예루살렘 공의회의 결정을 듣지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이들이 오자 헬라인 신자들과 식사하고 있다가 이들과 식사하지 않았다는 듯이 시치미를 뚝떼고 일어나 가버렸습니다. 그 때문에 바나바까지 베드로의 외식에 잠깐 동조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 바울은 베드로의 외식을 심하게 책망했습니다. 이같은 갈라디아서의 기록을 볼 때 상당한 시간이 지났던 것이 분명합니다. 하여튼 이 문제가 평화롭게 잘 해결되고, 바울과 베드로는 이 일로 서로 섭섭해 하지 않았습니다. 어려운 문제가 해결되고 이제 새로운 역사를 위한 준비가 이루어졌습니다.

   이에 바울은 바나바에게 한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36). 바나바는 바울의 이 제안을 좋게 받아드렸습니다. 바울과 바나바의 2차 전도여행의 목적은 1차 전도여행 때 개척한 교회들을 돌아보며 형제들이 어떻게 신앙생활하고 있는가 보는 것이었습니다. 이들이 이 교회들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그 교회들이 앞으로 더욱 전개되어야 할 복음 전파의 중심지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가 세운 교회들이 각 자의 기능을 다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지극히 중요하고 필요한 일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2차 전도여행을 떠나려 했을 때 예기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그것은 마가라 하는 요한을 데리고 가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로 바울과 바나바 사이에 큰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마가는 1차 전도여행 중에 버가와 밤빌리아에서 위험이 닥쳤을 때 일행과 함께 일하러 가지 않고 혼자 집으로 돌아가버렸습니다. 바울은 그런 마가를 결코 데려 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반면에 바나바는 1차 전도여행 때 실패한 마가에게 다시 기회를 줘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문제로 그들은 대판 싸운 후 갈라서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누가 잘잘못을 했는지를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할 것입니다. 나중에 보면 마가는 위대한 전도자요, 선교사요, 마가복음을 쓴 위대한 말씀의 종이 되었습니다. 바울에게도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믿음의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바울이 골로새 교회에게 편지를 쓰면서 마가를 가리켜 “나의 동역자”라고 말하면서 그를 교회에 추천하였습니다. 자신의 사역의 말기에는 디모데로 하여금 그를 자기에게로 데려오라고 부탁하였습니다. 마가는 바울과 바나바의 다툼을 지켜보면서 많은 것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바울을 통해서 그는 심성이 약한 것에 도전을 받고 강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바나바의 친절과 섬김을 통해 그는 위로를 받고 새롭게 복음의 일꾼으로 설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한가지 중요한 진리를 배웁니다. 바울과 바나바도 우리와 똑같은 혈기와 감정을 가진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천사가 아니었습니다. 완벽한 사람들도 아니었습니다. 이들도 우리와 똑같은 감정과 허물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통해서 당신의 구속역사를 이루어 가셨습니다. 이들이 하나님의 역사에 귀하게 쓰임받은 것이 그들의 인격이 훌륭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저는 이들의 다툼을 보면서 많은 위로를 받습니다. 감정과 허물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구속역사에 쓰임받고 있는 것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습니다.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구브로로 떠나고, 바울은 실라를 데리고 수리아로 떠났습니다. 바울 일행은 더베와 루스드라에 이르러 거기서 디모데라 하는 제자를 만났습니다. 디모데의 모친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유대인이었고, 부친은 헬라인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을 받는 자였습니다.  디모데후서에 보면 디모데의 어머니의 이름은 유니게였고, 그의 외조모는 로이스였습니다. 디모데는 아마 유니게와 로이스의 신앙을 잘 물려받았던 것 같습니다. 바울은 이런 디모데를 동역자로 삼고 함께 전도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16:3절에 보면 바울이 그를 데리고 떠날 때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언 듯 이해하기 힘든 행동입니다. 우리는 15장에서 바울이 할례 문제 때문에 예루살렘공의회를 소집해서 많은 논쟁과 토의를 거친 후에 내려진 결론을 잘 알고 있습니다.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가한줄 알았노라”(15:28). 바울은 예수만 믿어서는 안되고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유대인들과 양보없는 싸움을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런 위대한 결론을 이끌어냈습니다. 그런데 이런 그가 솔선해서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하게 했습니다. 참으로 이것은 이상한 행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면 바울이 왜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하라고 했을까요? 바울이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한 것은 그의 구원을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유대인들을 위해서였습니다. 사람들은 디모데의 부친이 헬라인인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디모데를 꺼려하고 비판할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함으로 쓸데없는 오해나 다툼과 비난을 피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를 통해서 어떻게 하든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었습니다. 즉 그는 히브리 종교의 배경 속에서 자란 디모데를 히브리인의 의식에 복종케 함으로써 그가 유대인들에게 권면할 기회를 만들고자 한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바울의 놀라운 융통성을 배울 수 있습니다. 4-5절에 보면, 바울 일행은 여러 성을 다니며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의 정한 규례를 저희에게 주어 지키게 하였습니다. 예루살렘 사도와 장로들이 정한 규례는 15:28-29절에서 말한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가한줄 알았노니.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여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하라”고 한 것을 말합니다.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어지고 수가 날마다 더하는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바울 일행은 아시아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에 계속해서 아시아에서 사역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6절에 보면 성령께서 이를 막으셨습니다. 이 때문에 바울은 동쪽에 있는 브루기아와 갈라디아를 통과하여 서쪽에 있는 무시아를 향하다가 북쪽에 있는 비두니아로 가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이것도 허락지 아니하셨습니다(7). 성령께서는 바울이 계속해서 서진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성령께서는 사도 바울이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가는 것을 방해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바울은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가게 되었습니다(8). 드로아에 내려온 바울은 밤에 환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환상이 무엇입니까? 9절을 보십시오.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가로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10절에 보면 바울은 이 환상을 본 후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썼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부르신 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마게도냐는 유럽지방입니다. 그런데 애당초 바울은 2차 전도여행을 떠날 때 유럽으로 간다는 계획은 없었습니다. 그의 계획은 일차 전도여행 때 개척한 교회를 돌아보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더베와 루스드라에서의 큰 성공을 통해 아시아에 복음을 전하고자 힘썼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바울의 계획과는 전혀 무관하게 유럽선교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성령께서는 이미 바울이 2차 전도 여행을 떠날 때 유럽 선교 계획을 가지고 계셨던 것입니다. 10절 말씀에 보면 이런 말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바울이 이 환상을 본 후에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로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여기서 “인정함이러라”는 말은 아주 흥미있고 귀중한 말입니다. 이 말은 과정들의 궁극적인 결과를 말해주는 말입니다. 우리가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바울은 2차 전도 여행 계획을 세운 목적은 1차 전도여행을 통해 그가 세웠던 교회를 방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 처음 계획과는 달리 성령께서 그 길을 막으심으로 유럽의 관문인 드로아에까지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드로아에 내려왔을 때 그에게 메게도냐인 환상이 보여졌습니다. 이것은 새로운 부름이요, 놀라움이요, 열린 문이었습니다. 그의 눈 앞에는 전혀 계획에도 없었던 새로운 역사가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 환상을 통해서 마게도냐로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인정하고 그 뜻에 순종하고자 힘썼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정함이러라”는 말은 그 이전의 모든 사건들의 결과로서 나온 말이었습니다.    

   우리는 바울의 마게도냐인 환상을 통해서 몇 가지 중요한 진리를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는, 복음 전도는 사역자의 의지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의지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누가는 이 사실을 바울의 경우를 가지고 우리들에게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개척한 교회를 방문하여 그들이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가 돌아보기 위해 2차 전도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들을 다시 방문하여 믿음을 굳게하는 것은 참으로 귀하고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 교회는 앞으로 계속해서 복음을 전파해야할 복음 전파의 중심지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바울은 더베와 루스드라에서의 성공을 통해 아시아에 복음 전하고자 힘썼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복음 전파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가지고 있었지만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려나가지 않았습니다. 그의 사전 계획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복음 전도를 위하여 갖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번번히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6절과 7절에 보면 성령께서 이를 막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복음 전도 사역은 사역자의 선한 의지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의지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건전한 방식과 선한 목적을 가진 복음전도라 할지라도 언제나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복음 전도를 위하여 노력하면 항상 순조롭게 열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입니다. 때때로 성령께서는 복음사역자와 전혀 다른 뜻을 가지시고 계실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는 바울이 아시아에 복음 전하는 것을 막으셨고, 비두니아로 가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신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바울이 복음을 아시아가 아니라 유럽에 전파하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를 드로아로 인도하시고 마게도냐인 환상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복음전파를 감당하는 우리들은 이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복은 전파자는 항상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순종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아무리 선한 목적과 계획을 가졌다 할지라도 그것이 성령의 뜻이 아니면 버리고 성령의 뜻에 언제든지 순종할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둘째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대한 올바른 이해입니다. 6절과 7절에 보면 바울이 아시아에 복음 전하고자 힘썼지만 “성령이 못하게 하셨다”(6), “허락지 아니하셨다”(7)고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방향을 돌려 부르기아와 갈리디아로 갔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갈라디아서를 보면 이 당시 성령께서 왜 바울의 아시아 선교를 막으셨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4:13절에 보면 “내가 처음에 육체의 약함을 인하여 너희에게 복음을 전한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볼 때 성령께서 바울이 아시아 선교를 막으신 것은 그의 연약한 육체 때문이었습니다. 곧 바울이 병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갈라디아서 말씀을 통해서 볼 때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된 것은 우발적이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성령의 인도하심에 대해서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의 인도하심이라고 해서 바울이 성령의 음성을 직접들었다고 상상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런 것은 하나님의 통치나 인도 방법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이 아시아에 복음을 전하지 못한 것은 지엽적이고 우발적인 사건 곧 바울이 병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은 드로아에서 환상을 본 후 이때까지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마게도냐 선교 곧 유럽 선교를 위한 성령의 인도하심임을 확신하게 된 것입니다. 사실 바울은 2차 전도 여행을 감당하면서 많은 당황함과 실패의식에 사로잡혔을 것입니다. 바나바와 다투고 서로 갈라지게 된 일, 원래의 계획대로 방문하고자 한 교회들을 방문하지 못하게 된 일, 육신의 질병 때문에 아시아에 복음 전파하지 못하게 된 일, 바울은 이런 일들을 생각하며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는 많은 좌절을 앉고 서쪽으로 가야만 했습니다. 그는 원치 않게 드로아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저자 누가가 바울이 이런 극심한 곤경에 빠졌다는 것을 기록하면서 성령의 인도에 대한 말씀을 삽입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성령의 인도의 방법에 대한 계시가 없는 지금 우리들에게 성령의 인도하심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습니다. 또한 성령의 인도하심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성령께서는 항상 불꽃과 같은 환상이나 인간이 들을 수 있는 분명한 음성으로만 인도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상황과 평범한 것과 역경과 실망을 통해서도 인도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성공이나 실패 가운데서도 늘 깨어 있었습니다. 늘 기도 가운데 예수님과의 교제를 통하여 성령의 인도함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늘 깨어 기도하며 주님과 교제에 힘씀으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늘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성공과 실패 가운데서 인도하시며 우리의 앞길을 만들어 가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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