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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사도행전 17:1-15

2005년 2월 13일 설교
                                                  데살로니가 전도
말씀:사도행전 17:1-15
요절:사도행전 17:2-3 “바울이 자기의 규례대로 저희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야 할 것을 증명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

   사도행전 17장은 바울의 데살로니가와 베뢰아에서의 전도, 그리고 아덴에서의 설교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은 데살로니가와 베뢰아 전도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바울이 드로아에서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환상을 본 후 마케도냐의 첫 성인 빌립보 개척역사를 섬겼습니다(16:11-40). 빌립보 개척역사는 유럽에서의 복음의 시작을 의미하였고, 유럽을 전도할 수 있는 광대한 선교의 문이 열린 것을 의미했습니다. 빌립보에서 많은 고난을 당하며 복음을 전한 바울은 이제 서남서 방향으로 여행하여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를 거쳐서 빌립보에서 150km 떨어진 데살로니가에 도착했습니다. 데살로니가는 마케도냐의 수도로서 지리적으로 중요한 도시였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 세 주간 동안 성경 강해를 통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만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했습니다. 이 때 헬라인의 큰 무리와 귀부인들이 예수를 믿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핍박으로 바울은 데살로니가를 떠나 베뢰아로 가게 되었습니다. 거기서도 성경을 강해했는데 베뢰아 사람들은 데살로니가 사람들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믿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핍박 가운데서도 친히 유럽선교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을 배우고 은혜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에서 놀라운 기적과 승리의 역사를 경험하였습니다. 그들은 감옥에서도 기쁨이 충만하여 하나님을 찬미하고 경배했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큰 지진을 일으켜 감옥의 문을 여시고 죄수들을 묶고 있던 모든 쇠사슬이 풀어지는 놀라운 기적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이 기적의 역사 가운데서 하나님께서는 바울의 전도를 통해 간수와 그의 온 가족이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는 구원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16:25-34). 바울 일행은 이 놀라운 역사를 경험한 후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서 데살로니가에 이르게 되었습니다(17:1). 데살로니가 성과 항구는 칼케돈 반도의 서부 지역에 있는 테르메만 지금의 데살로니키 만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데살로니가는 주전 315년 마케도냐의 왕 카산더에 의해 건설되었습니다. 그는 그 성읍의 이름을 빌립 2세의 딸인 자기 아내 데살로니가의 이름을 따서 붙였습니다. 주전 167년 로마인들이 마케도냐를 네 구역으로 나누었을 때, 데살로니가는 두 번째 구역의 수도였으며, 주전 146년 로마인들이 마케도냐를 속주로 만들었을 때 데살로니가는 속주의 행정 중심지였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에 도착하여 먼저 회당을 찾아가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2절에 보면, 바울은 자기의 규례대로 회당에서 삼 주 간에 걸쳐서 안식일에 성경을 해석하고 강론하였습니다. 이 때 바울이 강론한 성경은 구약성경이었습니다. 아마 바울은 이사야서와 같은 선지서를 중심으로 성경을 강해하며 구약 성경에 약속된 메시아가 예수님 안에서 성취되었음을 증거했습니다. 여기서 “뜻을 풀어”라는 표현은 누가적인 표현으로 그의 강론법이 어떠했는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뜻을 풀어”라는 말은 “열어서 주장하다”라는 말로 신약성경에 두 군데 나옵니다. 그 중에 하나는 여기 본문이고, 다른 하나는 누가복음 24장입니다. 누가복음 24:32절에 보면 부활하신 예수께서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성경을 “풀어 주셨다”(열어 주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은 예수님으로 인해 낙심하여 낙향하는 두 제자에게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풀어 가르쳐 주셨습니다(눅 24:27). 이 때 성령께서 그들의 마음에 뜨겁게 역사하사 그들의 영적인 눈을 열어 주께서 부활하신 사실을 깨닫게 하셨습니다(눅 24:32). 주님께서 성경을 열어 두 제자에게 가르치심으로 그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런 동일한 일을 바울이 지금 데살로니가 회당에서 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회당에서 성경 강해를 통해 메시아가 고난을 받아 죽임을 당한 후에 부활해야 할 것을 선포하였습니다. 바울은 구약을 바탕으로 하여 유대인들 자신의 성경대로 메시아가 반드시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부활해야 할 것을 그들에게 열어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것이 그의 강론의 첫 번째 요지였습니다. 그의 강론의 전개 순서는, 그가 그리스도에 대하여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그들로 하여금 그들 자신의 성경이 그들의 메시아에 관하여 어떻게 가르치는지를 깨닫도록 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성경이 메시아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가르치는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거나 망각하고 있었습니다. 구약의 선지서를 읽을 때, 예를 들면 이사야서를 읽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종(메시아)이 승리에 이르는 길은 바로 고난의 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바울은 이런 그들에게 구약에 예언한 대로 메시아가 고난을 당했다가 죽고 말씀하신 대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부활하실 것을 그들에게 설명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처럼 구약에 예언한 대로 예수께서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였다가 삼일만에 부활하심으로 구약의 예언을 성취한 바로 그 메시아가 되심을 증거하였습니다. 바울이 어떤 성경 말씀을 가지고 그들에게 이 사실을 가르쳤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아마 선지서들을 가지고 가르쳤을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왜냐하면 선지서들에 보면 메시아가 고난을 받고 부활하실 것을 많이 예언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선지서 중에서도 특히 이사야서 말씀을 가지고 강해했을 것입니다. 이사야서 만큼 메시아에 대한 예언이 구체적으로 기록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 유대인들에게 그들이 그토록 기다리고 갈망하던 메시아가 반드시 죽고 다시 부활해야 한다는 사실을 성경에 기초해서 가르쳤습니다. 이런 구약의 메시아 관을 설명한 후 바울은 바로 이 메시아에 해당되는 분이 많은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죽었다가 삼일 만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라고 선포하였습니다. 데살로니가에서 바울의 전도 방법은 구약 성경을 올바로 이해한 사람은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도록 성경 강해를 통해 그들에게 전도하였습니다.

   바울의 이같은 전도의 결과가 어떠하였습니까? 4절에 보면, 그 중에 어떤 사람 곧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쫓는 놀라운 승리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삼 주 간의 전도 결과는 너무나 고무적이었습니다.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라고 했는데 아마 이들은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들을 의미합니다. 유대교로 개종한 헬라인들이 특히 바울의 설교를 듣고 예수를 믿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또한 ‘적지 않은 귀부인’이라고 했는데 이들은 아마 고위 관원들의 부인들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이들은 빛도 소망도 없이 살다가 이 위대한 복음의 새 빛에 이끌림을 받았습니다. 여기서 ‘권함을 받았다’는 말은 바울의 논증에 의하여 확신을 갖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삼 주간의 전도를 통해 이런 놀라운 승리의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많은 믿는 자들은 바울의 일행과 함께 야손의 집에서 교제하며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이로써 데살로니가 교회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데살로니가 전, 후서를 보면 이 때의 승리의 역사가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바울 일행은 핍박으로 인해 오래 그곳에 머물지 못했지만 그 때 일어난 승리의 역사로 인해 데살로니가는 그 일대 전 지역을 복음화하는 일에 중심 교회가 되었습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1:9-10절에 보면 바울은 데살로니가의 교인들에게 “너희가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며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심을 기다린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을 기초로 해서 볼 때 데살로니가에서 이룬 승리의 역사가 이떠했는가를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에서는 승리의 역사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5절에 보면 시기심으로 가득찬 유대인들로부터 많은 핍박과 시련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유대교에 호기심을 가지고 회당에 참여하던 하나님을 경외하던 이방인들이 그리스도교로 전향하는 것을 보고 시기심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전도의 열매를 바울에게 빼앗기는 것에 대한 반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시기심에 사로잡혀 저자의 괴악한 사람들을 충동질하여 그 성에 큰 소동을 일으켰습니다. 유대인들은 바울 일행을 처단하기 위해 군중봉기를 일으킨 것입니다. 6-7절에 보면, 이들은 바울 일행을 잡기 위해 야손의 집을 습격했지만 바울을 잡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바울 일행을 섬겨 주었던 야손과 형제들을 잡아 읍장 앞에 끌고 왔습니다. 그들은 읍장 앞에서 큰 소리로 그들을 고소했습니다.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 여기도 이르매 야손이 들였도다. 이 사람들이 다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여 말하되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 하더이다.” 유대인들은 바울 일행을 종교적인 문제로 고소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정치적인 문제로 바울 일행을 고소했습니다. 가이사 외에 다른 왕 곧 예수를 왕이라 증거한다고 고소하였던 것입니다. 곧 유대인들은 바울 일행을 반역죄로 고소했습니다. 우리가 이 고소한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려면 당시 상황을 좀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로마는 황제 숭배 사상을 강요하였습니다. 유일신인 하나님을 믿는 유대인들은 황제 숭배 사상을 받아들일 수 없어서 당시 글라우디오 황제에 반역하는 데모를 많이 하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로마 제국의 속주와 성읍들의 치안을 담당했던 관리들은 그러한 소요와 바울의 ‘메시아 사상’을 정확히 구별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의 고소를 듣고 데살로니가 성의 무리와 읍장들이 소동하였습니다. 이에 데살로니가 형제들은 바울 일행을 베뢰아로 피신시켰습니다.

   9절에 보면, 야손과 그 나머지 사람들은 읍장 앞에서 다시 바울 일행이 성에 들어와 전도하면 재산을 압류한다는 약조를 한 후 풀려났습니다. 밤에 바울 일행은 데살로니가 형제들의 보냄을 받아 베뢰아에 와서 회당에 들어갔습니다(10). 바울 일행은 거기서도 성경 강해를 통해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그런데 베뢰아 사람들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11-12절에 보면,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신사적이었습니다. 그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였습니다. 그 결과 그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였습니다. 예상치 않았던 곳에서 큰 승리의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이 베뢰아에서도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곳까지 달려와 무리를 소동하여 복음 전파를 방해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박해를 통해 더욱 큰 승리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점점더 복음이 유럽으로 유럽으로 퍼져 나가게 하였습니다.

   우리는 데살로니가와 베뢰아의 전도 사건을 통해서 먼저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 방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핍박을 통해서 더 큰 승리의 역사를 이루신다는 사실입니다. 사도행전 전체적으로 볼 때 기독교의 복음 전파 과정에서 일어나는 박해는 승리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이야기도 이 사도행전 전체 흐름 중에 한 부분에 불과합니다. 지금 바울을 중심으로 하는 이 위대한 운동은 예루살렘에서 박해가 일어나고 복음의 증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유대와 사마리아로 흩어졌을 때에 시작되었습니다. 박해는 승리를 낳았지만 승리는 또한 박해를 낳았습니다. 모든 새로운 승리에는 반드시 어떤 형태로든지 박해가 뒤따릅니다. 그러나 박해는 또한 언제나 승리를 가져다 줍니다. 이러한 순환은 끊임없이 반복됩니다. 즉 승리 뒤에는 박해가, 박해 뒤에는 다시 승리가 뒤 따릅니다. 하나님께서는 박해를 통해 더 큰 승리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박해를 통해 복음을 땅끝까지 더욱 퍼져나가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원리를 오늘날 우리의 삶에 잘 적용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위한 우리의 노력이 얼마나 열매를 맺었는가 하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박해를 받았는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희생의 대가를 치루지 않고는 복음 전파의 진보가 있을 수 없습니다. 진정한 십자가의 승리 뒤에는 항상 새로운 형태의 고통과 눈물이 따르게 마련입니다. 희생과 고통과 눈물이 없이는 열매도 없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가기 위해서도 우리 부모들의 희생이 뒤따라야 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위해 희생과 고난에 동참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희생과 고난 가운데 함께 하시고 더 큰 승리의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또한 우리는 본문을 통해 복음 전파에 있어서 성경 강해의 중요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에서의 바울의 강론 방법은 모든 시대의 설교자들과 전도자들이 본받아야 할 방법입니다. 설교자나 전도자가 해야할 일들 중에 가장 중요한 한 가지는 성경을 풀어주고, 그리스도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을 증거로 제시하며, 그리스도가 성경의 예언들을 성취했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한편, 우리는 또한 베뢰아 사람들의 성경에 대한 자세를 통해 복음을 듣는 자들의 참된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 가를 배우게 됩니다. 베뢰아 사람들은 먼저 말씀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마음이 열려 있었음을 말해 줍니다. 또한 그들은 성경을 ‘상고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성경 말씀이 과연 그러한가 아닌가를 깊이 연구하고 검토했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그들의 조심성을 말해 줍니다. 이러한 태도는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꼭 필요한 자세입니다. 우리는 말씀에 대해서 열려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마음을 닫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마음을 열 때 조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릇된 것을 함부로 믿으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베뢰아 사람들과 같이 말씀이 정말 그러한가 아닌가 깊이 상고하는 자세를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끝으로,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 복음의 위대함을 배우게 됩니다. 우리는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들이 복음을 영접하고 바울을 좇았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스는 우리가 잘 알 듯이 고대 문명의 발상지요, 아테네의 여신과 아프로디테의 여신이 유명합니다. 그들은 헬라의 종교와 철학, 부를 누리며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그들이 복음을 받아드렸습니다. 이것은 철학도, 아테네와 아프로디테의 여신도, 부도 그들에게 만족을 주지 못했던 것을 말해 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 곧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삼일만에 부활하셔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그들에게 진정한 만족과 위로와 평강을 주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이것은 복음의 영광과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놀라운 사건입니다. 복음 만이 우리 인생들에게 진정한 만족과 생명을 줍니다. 복음 만이 우리 인생들에게 진정한 자유와 위로와 평강을 줍니다. 복음의 영광과 아름다움을 찬양합니다. 복음의 승리를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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