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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사도행전 18:24-19:7

2005년 3월 13일 설교
                                            요한의 세례, 예수의 세례
말씀:사도행전 18:24-19:7
요절:사도행전 19:2      “가로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가로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우리는 오늘부터 바울의 에베소 사역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에베소 교회는 교회사에서 볼 때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교회입니다. 에베소서를 읽어보면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하나님의 교회의 궁극적인 사명에 관한 가장 심오한 교리를 담아 편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요한계시록에 보면 주님께서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보낸 편지 중에 첫 번째 편지가 보내어진 교회가 바로 에베소 교회입니다. 에베소는 우상숭배로 악명이 높은 도시였습니다. 그곳에는 아데미, 즉 다이아나의 신전이 있었습니다. 당시 에베소는 귀신숭배, 마술, 마법에 크게 물들어 있었습니다. 이런 곳에서 바울은 두 해 동안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였습니다. 그렇게 했을 때 아시아에 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 다 주의 말씀을 듣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주님은 바울을 통해 많은 희한한 능력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마술사가 마술책을 다 불 태우고, 우상 숭배자가 회개하고 주님을 좇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주님께서는 바울과 함께 하시고 에베소에서 놀라운 승리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우리는 이 에베소 가운데서 이루신 주님의 놀라운 승리의 역사에 대해서 3주간에 걸처서 하나 하나 살펴 보는 가운데 우리에게 주시는 주님의 놀라운 은혜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로 바울이 에베소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안수함으로 성령이 임하는 사건입니다. 본문에는 두 기사가 얽혀서 나옵니다. 첫 번째 기사는 바울이 첫 번째 에베소 방문과 두 번째 에베소 방문 사이에 있었던 일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요한의 세례밖에 모르는 아볼로를 도와주는 사건이고(18:24-28), 두 번째 사건은 바울이 두 번째 에베소를 방문하여 에베소 성도들에게 예수의 이름으로 안수함으로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는 사건입니다(19:1-7). 오늘 우리는 아볼로가 말한 요한의 세례와 바울이 말한 예수의 세례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를 믿는 신자들 중에는 두 종류의 신자들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한 종류는 요한의 세례만 아는 사람이고, 또 한 종류는 예수의 세례를 아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어느 곳에 속하는 사람일까요? 오늘 우리가 이 두 세례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가운데 아볼로와 에베소의 제자들에게 임한 은혜가 우리들 가운데도 충만히 임하길 바랍니다.  

   바울은 에베소를 두 번 방문했습니다. 첫 번째 방문은 18:18-23절에 기록된 대로 고린도 개척역사를 마친 후 였고, 두 번째 방문은 2차 전도 여행을 마친 후 일년쯤 뒤에 3차 전도여행 때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개척역사를 마친 후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와 함께 에베소에 왔습니다. 바울은 많은 사람들이 에베소에 더 머물기를 간청했지만 하나님의 뜻이면 다시 돌아오겠다고 한 후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남겨둔 채 그곳을 떠났습니다. 바울이 떠난 후 알렉산드리아 출신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왔습니다. 18:24절에 보면 아볼로는 “학문이 많고 성경에 능한 자라”고 했습니다. 아볼로는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나 많은 공부를 하였습니다. 당시 알렉산드리아는 헬라의 학문과 문화의 중심지였습니다. 아볼로는 학식이 풍부하고 성경을 깊이 이해하고 그것을 잘 가르칠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한 자였습니다. 그는 달변가요, 열정이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볼로는 다른 사람에게는 없는 어떤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었습니다. 25절에 보면 그는 “일찍 주의 도”를 배웠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주의 도를 배웠다’는 말이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 지는 잘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고 한 것을 볼 때 세례 요한이 메시아, 곧 예수에 관해 예언하고 가르친 그것을 의미함을 알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3장에 보면 세례 요한의 사역에 대한 기사가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가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하였으니 저는 선지자 이사야로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고 했습니다(마 3:1-3). 여기서 말하는 ‘주의 길’이 바로 아볼로가 일찍 배웠다고 한 ‘주의 도’와 동일한 것입니다. 아볼로는 세례 요한의 제자였습니다. 그는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회개하고 메시아의 도래를 갈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십자가와 부활의 의미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습니다. 또한 예수의 세례에 대해서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가 요한으로부터 예수에 관한 도를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그의 세례를 몰랐다는 것은 아마 십자가와 부활과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을 경험하지 못한채 메시아의 도래를 갈망하며 일찍 전도의 길에 나섰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하여튼 그는 에베소에 이르러 회당에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담대히 가르쳤습니다(25-26). 그러나 그는 세례 요한의 세례만 알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볼로의 설교를 듣던 무리들 중에 그보다 더 예수에 관하여 많이 알고 있는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여자요, 한 사람은 남자였습니다. 그들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였습니다. 이들은 바울의 좋은 동역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바울이 에베소를 떠나면서 그곳에 남겨 두었던 사람들로서 일년 동안 그곳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체험을 통하여 예수를 깊이 알고 있던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 믿을 때에 주어지는 예수의 세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성령을 인격적으로 깊이 경험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성령의 사역을 통해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아볼로의 가르침을 듣고 무엇인가 부족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볼로가 세례 요한의 세례만 알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성령 세례를 알지 못함을 간파하였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아볼로를 데려다가 그에게 더 자세히 주의 도에 대해서 가르쳐 주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고 그의 이름으로 성령을 받도록 도와 주었습니다. 아볼로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가르침을 받은 후 에베소를 떠나 고린도로 가게 되었습니다. 고린도에서의 아볼로의 사역에 관해서는 거의 기록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27-28절에 보면 “저가 가매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니 이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거하여 공중 앞에서 유력하게 유대인의 말을 이김일러라”고 했습니다. 또한 고린도전서 3:6절에 보면 바울은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다”고 했습니다. 이 말들을 종합해 볼 때 아볼로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도움을 받은 후 주님의 성령 세례를 경험하고 완전히 새롭게 태어나게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그는 고린도 교회에 가서 귀하게 쓰임 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아볼로의 위대함을 배울 수 있습니다. 아볼로는 자신의 부족함을 깨달았을 때 자신의 가르침을 받던 사람들에게도 겸손히 배웠다는 것입니다.

   19:1절에 보면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 바울이 다시 에베소에 도착했습니다. 바울은 그곳에서 어떤 제자들을 만났는데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아볼로를 만났을 때 느겼던 것처럼 좀 이상한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바울이 구체적으로 어떤 이상한 점을 느꼈는지에 대해서는 기록이 없기 때문에 잘 알 수는 없습니다. 바울이 봤을 때 그들은 성령을 받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신실하고 정직했지만 열정과 뜨거움이 부족했습니다. 기쁨과 자유가 부족했습니다. 바울은 이런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바울의 질문에 대한 그들의 대답이 무엇이었습니까?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고 했습니다(2). 우리는 여기서 바울의 질문과 그들의 대답의 의미를 잘 이해해야 합니다. 먼저,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라는 질문을 우리는 “너희가 믿은 후에 성령을 받았느냐?”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어느 시점에 믿음을 가졌고, 그 후에 성령을 받는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이렇게 생각하면 바울의 질문을 완전히 오해하게 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어느 한 시점에 믿음을 가졌고, 그 후에 성령을 받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믿은 후에 받는 성령을 두 번째 축복(성령 충만)으로 생각하고 그것을 사모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바울의 질문에 사용된 두 가지 동사는 ‘믿었다’와 ‘받았다’입니다. 그런데 이 두 동사의 시제가 동일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질문을 “너희가 믿을(believed)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recived)?”로 이해해야 합니다.

   또한 바울의 질문에 대한 그들의 대답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고 한 말도 곡해서는 안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을 ‘성령이 있다는 말도 못들어봤다, 금시초문이다’는 말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요한이 이미 자신의 사역을 이야기하면서 이미 성령 세례에 대해서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3:11절에 보면 요한은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불과 성령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볼 때 요한은 분명히 성령이 올 것을 예고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했노라”는 말을 ‘우리가 성령에 대해서 들어보지도 못했다’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위대한 예언자 요한이 성령을 약속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우리는 성령이 주어졌는지에 대하여, 그가 오셨는지에 대하여 알지 못한다’는 의미로 이해해야 합니다. 바울은 이런 그들에게 다시 질문했습니다.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이에 대해 그들이 대답했습니다. “요한의 세례로라”(3).

   바울은 에베소 제자들의 대답을 들은 후 그들에게 요한의 세례를 베풀며 제자들을 가르쳤습니다. 바울은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고 가르친 요한의 가르침을 상기 시켰습니다(4). 바울은 이 요한의 가르침을 기초로 해서 요한의 세례는 예비적인 것에 불과함을 깨우쳤습니다. 곧 요한의 물 세례는 회개의 세례로서 예수님을 영접하기 위한 준비에 불과함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리고 요한의 가르침 곧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고 한 그 가르침대로 요한에게 머물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아가야 함을 가르쳤습니다. 또한 바울은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오순절 성령 강림에 대해서 가르쳤습니다. 바울의 가르침을 받은 에베소의 제자들은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5). 그들은 예수님을 자신들의 그리스도로 영접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자신의 주요, 왕으로 영접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고 그 분의 다스림을 받았습니다. 바울은 이런 그들에게 안수를 행했습니다. 그 때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성령이 임하자 그들에게 부족했던 모든 것이 해소 되었습니다. 그들은 방언을 하고 예언을 하였습니다. 그들의 심령에 기쁨과 감사가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열정과 뜨거움으로 가득차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삶은 찬양과 헌신의 역사로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오직 주와 복음을 위해 헌신하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를 믿고 그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 순간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인들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에베소 제자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성령을 받은 것을 소위 말하는 두 번째 축복(성령충만)으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그들이 성령의 세례를 받고 성령을 받은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첫 번째 축복이었습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두 종류의 신자들이 있음을 배우게 됩니다. 곧 요한의 세례만 아는 자와 예수의 세례를 아는 자입니다. 나는 어디에 속한 자입니까? 오늘날 많은 교인들 중에 예수의 세례를 알지 못하고 요한의 세례에 머문 신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요한의 세례만 아는 자들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물론 이들은 아볼로와 에베소의 제자들처럼 예수를 잘 압니다. 열심히 예수의 도를 배웁니다.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전도하는 일에 힘쓸 수 있습니다. 그들의 삶은 신실하고 정직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예수의 세례를 곧 성령세례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심령에는 감격과 뜨거움이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신령한 은혜를 누리지 못합니다. 주님을 향한 온전한 헌신이 없습니다. 이런 신자들은 요한의 세례에 머문 신자로서 예수의 세례를 알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우리는 요한의 세례에 머물지 말고 예수의 세례로 나아가야 합니다. 성령 세례를 받고 심령에 감격과 뜨거움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신령한 은혜를 누려야 합니다. 세상이 알지 못하는 기쁨과 생명을 누려야 합니다. 주님을 향한 감사와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에베소의 제자들처럼 예수의 세례를 받고 보다 더 풍성한 생명 속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요? 에베소 제자들은 바울의 가르침을 받고 순종하였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나의 그리스도로 믿고 고백했습니다. 그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 때 바울이 안수했을 때 성령이 임하였습니다. 우리도 말씀 공부를 통해 예수의 도에 관한 충만한 지식을 가져야 합니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의 그리스도가 되심을 믿고 고백해야 합니다. 이 예수님이 나의 주요, 왕으로 영접하고 그 분의 다스림을 받아야 합니다. 그 때 우리 마음 가운데 성령이 임하고 내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가 됩니다. 그 때 성령의 다스림을 받게 됩니다. 성령의 다스림을 받을 때 심령에 감사와 감격이 충만하게 됩니다. 뜨거운 열정과 헌신으로 가득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분명히 알아야 할 진리가 있습니다. 성령 세례와 성령 충만함의 차이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령 충만함을 제2의 축복으로 잘 못 오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자들은 성령 충만함을 받기 위해서 새로운 성령을 구합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고 고백한 자들은 이미 성령 세례를 받은 자들입니다. 이미 그 속에 성령이 내주해 계십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답답하고 갈급하고 뭔가 뜨거움과 감격이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는 이 때 내가 성령 세례를 받았는가 회의합니다. 다시 성령 충만함을 받기 위해서 성령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고 고백한 자들은 이미 성령이 우리 속에 내주 해 있기 때문에 다시 성령을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내 속에 내주해 계시는 성령이 나의 심령과 생각과 삶을 주관하도록 내 속에 있는 죄를 회개하고 나의 생각과 나의 계획과 욕심을 회개하는 생활에 힘써야 합니다. 말씀 공부에 힘씀으로 주님을 아는 지식이 충만해져야 합니다. 나를 죽이고 주님의 다스림을 받기 위해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그리할 때 성령이 우리의 심령과 생각과 삶을 다스려 주십니다. 그 때 주님이 주시는 신령의 충만함을 누리게 됩니다. 우리가 에베소의 제자들처럼 성경공부에 힘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나의 그리스도로 믿으며, 그 분의 다스림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예수의 세례 곧 성령 세례를 받고 참 그리스도인으로 풍성한 생명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더 나아가 바울처럼 예수의 세례를 알지 못하는 자들을 예수께로 인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의 세례를 경험하지 못한 자들은 결코 다른 사람을 예수께로 인도할 수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도달한 경지까지만 다른 사람을 이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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