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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슥 3:1-10
강설날짜 2019-06-23

2019년 스가랴서 공부

스가랴가 본 네 번째 환상(1)

말씀:스가랴 3:1-10

 

오늘 말씀은 스가랴가 본 네 번째 환상입니다. 본 환상은 우리가 이제까지 살펴본 세 가지 환상들과 비교해 볼 때 여러 가지 면에서 차이점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본 환상은 서문 형식인 ‘내가 보니’(1:8, 18; 2:1)라는 표현으로 시작하지 않고 해석 천사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또한 난해한 상징이나 인물들이 보이지 않고 스가랴 선지자의 질문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의 세 환상과 구조적인 연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앞의 세 환상들이 시온의 회복을 강조한다면 넷째 환상과 다섯째 환상은 새 시대의 시온 공동체의 지도자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1-5절 말씀과 6-10절 말씀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전자는 대제사장 여호수아에 대한 고소 사건이 벌어지는 천상회의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후자는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그의 동료들에게 전달되는 하나님의 메시지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본 환상에서는 이스라엘 공동체의 대리자로서 하나님 앞에 선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더럽혀진 옷 때문에 사단의 고소를 당하지만 여호와께서는 사단의 고소를 일축하며 여호수아에게 새로운 예복을 입혀주십니다. 또한 여호와께서는 여호수아와 그의 동료들에게 회복될 성전에서 행해야 할 새로운 임무를 부여 해 주십니다. 흥미롭게도 본 환상은 제사장의 직무와 성전의 회복이 ‘순’(jm'x, 쩨마흐)으로 상징되는 다윗과 같은 메시아의 도래와 새 시대의 평화와 번영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여호와의 사자 앞에 섰고 사단은 그의 우편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을 스가랴 선지자가 보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스가랴 선지자에게 이런 천상회의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하늘에서 회의가 열리는 장면은 욥기(1-2장)에서도 나오고, 열왕기서(왕상 22장)와 이사야(6장), 예레미야서(23장)에서도 나옵니다. 욥기 1-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욥의 신앙을 자랑하자 사단이 참소하기를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그의 소유를 빼앗아 보면 달라질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욥은 모든 소유를 잃었지만 하나님 경외함에 변함이 없었습니다. 사단이 실패하자 그의 몸을 치라고 합니다. 그러나 다 실패하고 맙니다. 욥의 하나님 경외함은 어떤 상황에서도 변함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오늘 본문을 살펴보기 전에 이러한 사단이 무엇으로 대적하는지 먼저 살펴보고자 합니다. 성경에서 사단이 최초로 등장하는 장면은 에덴동산에서 하와에게 선악과를 따 먹으라고 유혹하는 장면입니다. 선악과를 따 먹으면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처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이간질 시키는 것입니다. 결국 인간이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같이 된 것이 아니라 그들의 눈이 밝아져서 자신들의 벌거벗음을 알게 됩니다. 사랑의 하나님이 두려움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두렵고 부끄러워 무화과나무 아래에 숨었습니다. 나뭇잎으로 자신을 가렸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찾아와 주시고 그들에게 가죽 옷을 지어 입혀 주셨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이 원수가 되게 하셨고, 뱀의 후손이 여자의 후손의 발꿈치를 상하게 하면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시리라는 영적 전쟁의 개시를 말씀해 주셨습니다(창 3:15). 이 말씀대로 끊임없이 사단의 역사는 여인의 후손들을 여호와와 그 기름 부음을 받은 자에게서 끊어내려고 발악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단의 이름이 여러 모양으로 나타나는데 참소하는 자, 파괴자, 대적자, 속이는 자, 악한 자, 원수, 거짓의 아비, 이 세상의 임금, 이 세상의 신, 시험하는 자, 공중 권세 잡은 자 등의 이름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1절에서도 보면 사단이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대적합니다. 무엇으로 대적합니까?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옷이 더럽다는 것입니다. 3절에 보면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섰다고 했습니다.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옷이 더럽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야 더 말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그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왔지만 우리가 학개서에서 봤듯이 하나님의 성전 재건보다 자기들의 집을 짓는 일에 더 빨랐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무관심과 게으름과 세상 욕심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이 더러운 옷을 입은 모습인 것입니다.

 

오늘날 저와 여러분들의 옷은 어떻습니까? 여기서 말하는 옷은 세탁소에 맡기는 의복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입니다. 곧 우리의 마음이 어떠냐는 것입니다. 마음이 더러우면 그 사람의 모든 것이 다 더러운 것입니다. 우리 속에 무엇이 들어와 있습니까? 우리 속에 쌓여있는 것이 겉으로 나와서 그 사람을 더럽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평소에 점잖고 깨끗해 보이고 신앙이 좋아 보이는 사람도 어떤 환경에 처하게 되면 그 사람의 본색이 다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죄에 대하여 사단이 고발하고 참소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8-10절을 보면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간 고난을 받은 너희를 친히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시리라. 권력이 세세무궁토록 그에게 있을찌어다. 아멘”이라고 했습니다. 마귀가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 것은 이미 사단이 하늘에서 번개처럼 땅에 떨어졌기에 일어나는 일입니다(눅 10:18).

 

요한계시록 12:7-12절을 보면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으로 더불어 싸울쌔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저희의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 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 쫓기니라.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가로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이루었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또 여러 형제가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 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 있을찐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못된 줄을 알므로 크게 분내어 너희에게 내려 갔음이라 하더라”고 했습니다. 하늘에서 전쟁이 일어나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가 쫓겨난 것입니다. 그 하는 일이 하나님 앞에서 밤낮 성도들을 참소하는 것입니다. ‘참소’(kathgorevw 카테고레오)란 남을 해치려고 죄가 있는 것처럼 윗 사람에게 고소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런 사단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어린 양의 피와 그 증거로 인하여 이긴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 거하는 자는 즐거워하지만 땅과 바다는 화가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단이 늘 참소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아직 이 땅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사단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하늘에서 밤낮 참소하다가 쫓겨나서 공중 권세 잡은 자가 되어서 지금도 이 땅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이 하는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참소하던 그 일을 지금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일은 구체적으로 오늘 본문의 내용대로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옷이 더럽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단은 항상 진리를 대적하며, 하나님의 은총을 그 백성에게서 빼앗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절을 보면 그러나 이러한 사단의 대적을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십니까?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2).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단을 책망하시는 근거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택하셨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거민이나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자신들의 행위로서 더렵혀지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택하심으로 거룩함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죄와 허물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들의 허물과 죄를 보시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것도 그들의 수가 많거나 의로워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신명기 7:7-8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은 연고가 아니라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을 인하여, 또는 너희 열조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을 인하여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나니”라고 했습니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말씀 신명기 7:11절에 보면 “그런즉 너는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할찌니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그들은 제대로 순종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이들은 어떻게 됩니까? 사단의 고소를 당하는 것입니다. 저들이 더러워졌으니 벌을 내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심판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그 언약을 무효화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부르심과 택하심에는 후회가 없으시기에 주의 사랑을 베풀고 마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8장에서는 ‘누가 감히 송사하리요!’라고 하는 것입니다. 부르시고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신데 누가 감히 그 사랑에서 끊어낼 자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롬 8:33-39). 하나님은 이 사랑을 베푸시기 위하여 말로만 하신 것이 아니라 그 말씀하신 바를 친히 이루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절에 나타나는 ‘여호와의 사자’란 구약에 나타난 그리스도로 봅니다. 그러니 그 여호와의 사자가 사단을 책망할 뿐만 아니라 더러운 옷을 입은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놀라운 조치를 취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2b절을 보면 “이는 불에 거슬린 나무가 아니냐”고 하는 것입니다. 사단의 참소대로 불에 거슬려서 더럽게 된 여호수아라는 것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한 것이며 그 이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습니다. 둘째 사망의 해는 영원히 꺼지지 아니하는 지옥 불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지옥 불에 들어가야 할 자들을 하나님의 언약과 사랑을 인하여 끄집어내셨지만 그러나 더러워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 심판의 장소인 바벨론 포로에서 그들을 끄집어 내셨지만 여전히 더러운 옷을 입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단의 참소만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셔도 더러운 옷을 입고 있는 것입니다.

 

아모스 4:11절을 보면 “내가 너희 중의 성읍 무너뜨리기를 하나님 내가 소돔과 고모라를 무너뜨림같이 하였으므로 너희가 불붙는 가운데서 빼낸 나무 조각 같이 되었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고 했습니다. 불붙는 가운데 그냥두시면 멸망이며, 심판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을 불붙는 가운데서 빼낸 나무 조각같이 되었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지금 스가랴서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것은 불붙는 가운데서 빼낸 조각과 같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음을 다해 주님의 명령대로 순종하여 살아야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주님의 일보다 자기들 집 짓는 일에 바빴던 자들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사단의 송사만이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도 더러운 옷을 입은 대제사장 여호수아입니다. 그러면 버려야 하지 않습니까?

 

오늘 본문 3절에 보면 여호와의 음성을 듣는 순간에 여호수아를 보니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서있는 것입니다. 더러운 옷을 입고 있다는 것은 수동태로 되어 있습니다. 곧 입혀져 있다는 것입니다. 즉 이것은 자신의 힘으로는 벗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입은 것이라면 자신이 벗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입은 것이 아니라 입혀져 있기 때문에 스스로 벗을 수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를 스스로 이기지 못합니다. 시편 65:3절을 보면 “죄악이 나를 이기었사오니 우리의 죄과를 주께서 사하시리이다”고 했습니다. 또 시편 130:3-4절을 보면 “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 감찰하실찐대 주여 누가 서리이까. 그러나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 주를 경외케 하심이니이다”고 했습니다. 여호수아가 대제사장이라고 하여도 자신의 죄를 스스로 이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구하여 낼 수가 있습니까? 죄를 이길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유하심이 곧 용서하심이, 구속하심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있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가 죄를 이기지 못하는 모습을 이사야 59:1-8절을 보면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이는 너희 손이 피에, 너희 손가락이 죄악에 더러웠으며 너희 입술은 거짓을 말하며 너희 혀는 악독을 발함이라. 공의대로 소송하는 자도 없고 진리대로 판결하는 자도 없으며 허망한 것을 의뢰하며 거짓을 말하며 잔해를 잉태하여 죄악을 생산하며 독사의 알을 품으며 거미줄을 짜나니 그 알을 먹는 자는 죽을 것이요 그 알이 밟힌즉 터져서 독사가 나올 것이니라. 그 짠 것으로는 옷을 이룰 수 없을 것이요 그 행위로는 자기를 가리울 수 없을 것이며, 그 행위는 죄악의 행위라 그 손에는 강포한 행습이 있으며, 그 발은 행악하기에 빠르고 무죄한 피를 흘리기에 신속하며, 그 사상은 죄악의 사상이라 황폐와 파멸이 그 길에 끼쳐졌으며, 그들은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며, 그들의 행하는 곳에는 공의가 없으며, 굽은 길을 스스로 만드나니 무릇 이 길을 밟는 자는 평강을 알지 못하느니라”고 했습니다. 또 이사야 64:6-7절에도 보면 “대저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쇠패함이 잎사귀 같으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없으며 스스로 분발하여 주를 붙잡는 자가 없사오니 이는 주께서 우리에게 얼굴을 숨기시며 우리의 죄악을 인하여 우리로 소멸되게 하셨음이니이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다 부정한 자가 되고 우리의 의는 더러운 옷과 같이 되었습니다. 스스로 주님을 부르는 자도 없고, 분발하여 주를 붙잡는 자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다음의 말씀이 복음이 됩니다. 곧 이사야 61:10절을 보면 “내가 여호와로 인하여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으로 내게 입히시며 의의 겉옷으로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구원의 옷, 의의 겉옷을 입혀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 4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하시기를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고 하십니다. 자기가 더러운 옷을 벗을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주께서 벗겨주셔야 하시는 것입니다. 그 옷을 벗기시는 것은 내가 네 죄과를 제하여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 더러운 죄를 하나님께서 제거하여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죄과를 제하여 버린 것만이 아니라 아름다운 옷을 입혀주신 것입니다.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과를 제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4). 여기서 ‘아름다운 옷’이란 잔치에 나갈 옷입니다. 더 확대하면 의의 옷이며, 영광의 옷인 것입니다. 5절에 보면 스가랴 선지자가 거기에다가 정한 관을 씌워달라고 간구하기에 그것도 허락하십니다. “내가 말하되 정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소서 하매 곧 정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며 옷을 입히고 여호와의 사자는 곁에 섰더라”(5).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아름다운 옷을 입고 정한 관을 썼습니다. 완벽하게 흠도 티도 없는 깨끗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씀으로만 하신 것이 아니라 이 말씀이 그대로 성취가 되도록 하시기 위하여 여호와의 사자, 즉 구약의 그리스도가 그 곁에 서 계시는 것입니다. 5절 끝에 보면 여호와의 사자는 곁에 섰더라고 합니다. 그 곁에서 계속 서서 일하시는 것입니다. 그 일하심의 궁극적인 모습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자기 백성을 의롭게 하여 주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7:14절에 보면 흰옷을 입고 손에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찬송하며 나오는 무리들은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한 자들이라고 합니다. 또 요한계시록 16:15절에서는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고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의 벌거벗음과 부끄러움을 가려주시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스스로 벌거벗으셨고 부끄러움을 당하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9장에 보면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는데 이들은 빛나고 깨끗한 흰 세마포 옷을 입었습니다. 이 말씀 또한 수동태로 입혀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 복이 요한계시록 22:14절에 보면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는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더러운 옷을 벗기시고 아름다운 옷을 입히신 하나님께서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기 백성들에게 의의 옷을 입혀주신 것입니다. 오직 주님의 살과 피만이 우리의 의가 됩니다. 우리의 거룩함과 영광이 됩니다. 할렐루야!

 

오늘날 사단은 어떻게 성도를 대적합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는 것을 믿지 못하게 합니다. 그것으로 부족하다고 여기게 만듭니다. 우리가 이루어야 할 의가 있다고 속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입혀주신 의의 옷을 간직하고 지키고 그 옷에 자기 의라는 더러움이 묻지 않도록 빠는 자가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주님이 자기 피로 주신 옷만이 우리의 의의 옷이며, 구원의 옷이며, 아름다운 옷입니다. 이 옷을 입고서 이 옷을 주신 주님을 기다리며 사는 사람이 바로 그의 몸 된 교회요, 그의 신부인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자가 되지 않게 하시고, 모든 사단의 송사 가운데서 승리하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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