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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마 6:1-4
성경본문내용 (1)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2)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3)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4)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강설날짜 2006-06-04

2006년 6월 4일 설교


세 가지 종교적 의(1)-올바른 구제


말씀:마태복음 6:1-4
요절:마태복음 6:3,4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예수님은 5:20절에서 제자들에게 “너희들의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의보다 더 낫지 아니하면 결단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여섯 가지 대조법을 통해서 제자들의 의가 어떠해야 하는 가를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런 후 예수님께서는 계속해서 당시 경건의 가장 중요한 세 가지 덕목인 구제와 기도와 금식을 통해서 제자들이 어떻게 의를 행해야 하는 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6:1-18). 여섯 가지 대조법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수평적 관계’에서 기대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보다 더 나은 의의 예들을 말했다면, 세 가지 종교적인 의는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수직적 관계’에서 기대되는 더 나은 의의 예를 말하고 있습니다. 구제와 기도, 금식은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의 종교적 삶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했던 실천 사항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우선 이 세 가지 종교적 행위들을 제자들이 행해야 할 의의 중요한 요소로 받아들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이러한 종교적 의를 행할 때 경계해야 할 위선의 위험을 지적하십니다. 앞의 여섯 가지 대조법에서는 제자들의 더 나은 의를 바리새인들의 율법주의적인 의와 대조시켰는데, 세 가지 종교적 의에서는 제자들의 더 나은 의를 바리새인들의 위선적 의와 대조시키고 있습니다. 세 가지 종교적 의를 통해 우리가 주님께서 원하시는 더 나은 의를 행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주님께서 원하시는 더 나은 의를 덧입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복된 자들이 되길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6:1절에서 먼저 제자들에게 세 가지 종교적 의를 행하는 대원칙을 제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시하신 세 가지 종교적 의를 행하는 대원칙이 무엇입니까?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우리는 이 말씀에서 제자들이 의를 행하는 대원칙은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서 의를 행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그들 앞에서 의를 행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의를 행하는 것은 외식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외식적인 의를 행하는 자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상’은 구원받아 놓고 덤으로 더 받는 보상 개념의 상급을 말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상은 구원받은 그 자체를 말합니다. 곧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의를 행할 때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서 아무리 열심히 구제를 하고, 기도를 하고, 금식을 한다고 해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1절 말씀은 제자들이 의를 행하는 대원칙입니다. 예수님은 먼저 의를 행하는 삶의 원리를 제시하신 후 구제와 기도와 금식을 예로 들어 이 삶의 원리에 대한 적용문제를 실제적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오늘은 세 가지 중에서 올바른 구제에 대해서 배우고 은혜 받고자 합니다.

2-4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서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궁핍한 자를 구제하는 것은 구약 시대 이래로 1세기 유대교의 종교적 삶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이 문제는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도 구제가 경건생활에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 교회에서는 초창기부터 궁핍한 형제나 불우한 이웃에게 많은 구제에 힘을 쓰고 있습니다. 오늘날은 무료급식이나 소년소녀 가장 돕기, 기아에 허덕이는 사람들을 위한 나눔 운동 등등 개인이나 교회 차원에서 참으로 많은 구제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밥 퍼 목사가 유명합니다. 한국 교회의 이러한 구제에 힘쓰는 것은 참으로 아름답고 바람직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구제를 어떻게 하라고 하십니까? 어떻게 하는 것이 올바른 구제며,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하십니까? 주님께서는 구제를 풍성히 베풀되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할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명령의 중요성을 두 가지 과장법을 통해 잘 드러내 보여주고 있습니다. 2절 말씀에 보면 “구제를 행할 때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서 나팔을 불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3절에 보면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나팔을 부는 것’은 사람들에게 과시하여 드러내 보이는 것을 과장해서 표현한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은 자기가 구제에 이렇게 힘쓰고 있다는 것, 곧 자신의 경건을 자랑하기 위해 회당과 사거리 길에 서서 나팔을 불며 하였다고 합니다. 이들이 나팔을 불며 구제하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를 나타내고자 함이 아닙니다. 사람들에게 자신의 경건을 자랑하고, 자신의 영광을 얻고자 하는 악한 의도가 숨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런 자를 가리켜 외식하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외식하는 자’라는 말의 원래 의미는 ‘연극인’이라는 말입니다. 연극인은 주어진 각본에 따라 연기를 하는 사람입니다. 연기하는 사람들은 각본에 나와 있는 대로 표정을 짓고 흉내를 내고 말을 하고 행동을 할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각본에 따라 연기하는 연극인과 실제 사람은 다릅니다. 곧 연기는 본래 그 사람의 실제가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는 가끔 배우들의 연기를 보고 그 사람의 실제 케릭터를 착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배우는 악역을 너무 잘하여서 원래 그 사람의 케릭터가 그런 것으로 생각하여 미워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지까지나 연기에 불과합니다. 이처럼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나팔을 불면서 구제하는 것은 외식하는 것으로 연기에 불과합니다. 이것은 위선입니다. 이렇게 위선을 행하는 자들은 이미 사람들로부터 인정과 칭찬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께 받을 상이 없습니다. 이런 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제자들은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외식적인 구제를 행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서는 두 번째 과장법을 통해서 제자들이 어떻게 구제를 행해야 하는지, 올바른 구제가 어떠한 것인지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3절에 보면 주님은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구제의 은밀성을 강조하는 과장법입니다. 오른손이 하는 것을 어떻게 왼손이 모를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이 과장법을 통해서 구제의 은밀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구제행위를 통해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자 하는 흥행행위의 가능성을 철저히 배제하셨습니다. 또한 주님은 이 과장법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자기를 과시하고, 자신의 경건을 자랑하고자 하는 가능성조차도 철저히 배제하셨습니다. 주님은 이 과장법을 통해서 제자들은 구제를 은밀하게 행해야 함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구제의 은밀성은 구제의 동기와 목적을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제자들의 구제 곧 자선은 다른 사람의 필요에 대한 반응으로서 이루어지는 자비의 행동이 되어야 합니다. 곧 하나님의 사랑의 실천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구제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인정을 받고자 한다거나, 자기 자신의 종교적 욕구 충족을 위한 수단으로 행해져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구제를 행할 때 이처럼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를 정도로 은밀하게 행해야 합니다. 그럴 때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께서 갚아주십니다.

나팔을 불면서 구제하는 행위는 예수님 당시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도 얼마든지 나팔을 불면서 외식적으로 구제를 할 수 있습니다. 언론에 대서특필하여 자신의 교회나 단체를 자랑하고 선전하기 위해서 구제를 행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자기 자신 개인의 이름을 내고 자랑하기 위해서 구제를 행할 때도 있습니다. 아모스 4:4-5절에 보면 아모스 선지자는 당시 사람들의 위선적인 행위를 풍자적으로 예리하게 책망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너희는 벧엘에 가서 범죄하며 길갈에 가서 죄를 더하며 아침마다 너희 희생을, 삼 일 마다 너희 십일조를 드리며, 누룩 넣은 것을 불살라 수은제로 드리며, 낙헌제를 소리 내어 광포 하려무나 이스라엘 자손들아 이것이 너희의 기뻐하는 바니라.” 여기서 ‘소리 내어 광포 하려무나’ 이 말에서 그들의 외식을 잘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소리 내어 자랑하며 행하였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아모스 선지자의 이 책망의 음성에 귀를 기울려야 합니다. 우리도 얼마든지 자기를 자랑하고 사람들에게 인정과 칭찬을 받기 위해서 나팔을 불면서 구제를 행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구제 행위를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고 자신과 하나님께 인정을 받으려는 수단으로 사용되어져서는 안 됩니다. 이런 구제는 외식이요, 위선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런 외식적인 구제를 아무리 열심히, 그리고 많이 행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 상을 얻지 못합니다. 곧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여기서 말씀하는 것은 구제 행위를 공개적으로 하느냐, 비밀리에 하느냐하는 방법론을 말하고자 하심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여기서 말씀하시는 본질적인 문제는 구제 행위의 궁극적인 동기가 무엇인가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비밀리에 행해진 구제라 할지라도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을 위한 행동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은 어떤 면에서 구제를 은밀하게 행할 수 없는 시대입니다. 예를 들어서, 어려움 가운데 있는 지체를 돕기 위해서 물질로 구제를 행하고자 할 때 통장으로 돈을 송금합니다. 또한 유학 가는 후배나 선배를 위해 후원금을 보낼 때도 통장으로 보냅니다. 그러면 그 통장에 누가 얼마를 보냈다는 것이 다 들어나게 됩니다. 이처럼 오늘날은 원치 않게 나팔을 불면서 하게 됩니다. 오른 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것은 불가능한 시대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구제를 행할 때 ‘나팔을 불지 말라’,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하는 말씀은 단순히 방법적인 문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구제행위의 궁극적인 동기가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제를 행할 때 구제의 동기를 잘 살펴야 합니다. 우리는 구제를 행할 때 사람들에게 자신의 경건을 자랑하거나 자신과 하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기 위한 수단으로 구제를 행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자비를 실천하고, 하나님의 통치를 나타내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비를 실천하고, 하나님의 통치를 나타내기 위해서 구제를 행할 때 나팔을 불지 않습니다. 은밀하게 행하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나타내고, 하나님의 자비를 실천하기 위해서 은밀하게 구제를 행할 때 은밀히 보시는 하나님께서 갚아 주십니다. 이런 자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올바른 의를 행하는 자들입니다. 이런 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올바른 구제를 행함으로 주님께서 원하시는 더 나은 의를 덧입어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복된 자들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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