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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창 19:30-38
성경본문내용 (30)롯이 소알에 거하기를 두려워하여 두 딸과 함께 소알에서 나와 산에 올라 거하되 그 두 딸과 함께 굴에 거하였더니(31)큰 딸이 작은 딸에게 이르되 우리 아버지는 늙으셨고 이 땅에는 세상의 도리를 좇아 우리의 배필 될 사람이 없으니(32)우리가 우리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우고 동침하여 우리 아버지로 말미암아 인종을 전하자 하고(33)그 밤에 그들이 아비에게 술을 마시우고 큰 딸이 들어가서 그 아비와 동침하니라 그러나 그 아비는 그 딸의 눕고 일어나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더라(34)이튿날에 큰 딸이 작은 딸에게 이르되 어제 밤에는 내가 우리 아버지와 동침하였으니 오늘 밤에도 우리가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우고 네가 들어가 동침하고 우리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인종을 전하자 하고(35)이 밤에도 그들이 아비에게 술을 마시우고 작은 딸이 일어나 아비와 동침하니라 그러나 아비는 그 딸의 눕고 일어나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더라(36)롯의 두 딸이 아비로 말미암아 잉태하고(37)큰 딸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모압이라 하였으니 오늘날 모압 족속의 조상이요(38)작은 딸도 아들을 낳아 이름을 벤암미라 하였으니 오늘날 암몬족속의 조상이었더라
강설날짜 2008-11-23

2008년 11월 23일 설교


롯의 인생이 주는 교훈


말씀:창세기 19:30-38

우리는 두 주간에 걸쳐서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에 대해서 공부했습니다. 오늘은 롯의 인생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롯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데라의 손자입니다. 데라에게는 하란과 나홀과 아브라함 등 세 아들이 있었습니다. 롯은 이 세 아들 중에 하란의 아들입니다. 창세기 11:27-29절에 보면 하란에게는 아들 롯 뿐만 아니라 밀가와 이스가라는 두 딸이 있었습니다. 하란의 딸 밀가가 나홀의 아내가 된 것을 볼 때 하란이 나이가 많았고 데라의 맏아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여튼 하란은 갈대아 우르에서 살다가 아브라함이 거기를 떠나기 전에 본토에서 죽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롯은 작은 아버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그를 따라 갈대아 우르를 떠나 하란을 거쳐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창세기 13장에 보면 그 후 가나안 땅에 흉년이 들어서 아브라함과 함께 롯은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는 흉년이 지난 다음에 많은 노비와 가축을 이끌고 아브라함과 함께 돌아와 맨 처음 가나안 땅으로 들어와 장막을 쳤던 벧엘과 아이 사이에 장막을 쳤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그것은 소와 양이 너무 많아 함께 거할 수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목자와 롯의 목자 사이에 목초지를 두고 다투게 되었습니다. 창세기 13:8-9절에 보면 이를 본 아브라함은 롯을 불러 “우리는 골육인데 서로 다투어야 할 이유가 어디 있느냐? 온 땅이 네 앞에 있으니 그 중에 어떤 쪽이든지 택하라. 네가 좌하면 내가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내가 좌하리라”고 했습니다. 곧 아브라함은 조카 롯에게 선택할 수 있는 우선권을 양보했습니다. 이에 롯은 요단 동편의 평지 성읍을 바라보며 그 땅을 선택하여 갔습니다.

그러면 롯이 그 땅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창세기 13:10-11절을 보면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고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들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라고 했습니다. 롯이 요단들을 택하여 간 것은 그곳에 물이 많고 마치 에덴동산과 같고 애굽 땅과 같이 아름답고 비옥하였기 때문입니다.

롯의 인생에 있어서 아브라함이 선택하라고 했을 때 그것이 그에게는 좋은 기회인 동시에 그의 인생의 분기점에 서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만약 롯이 하나님의 부르심과 하나님의 축복에 대한 확고한 자세가 있었다면 아브라함이 우선 선택권을 주었을 때 마땅히 어떻게 했어야 했겠습니까? ‘아닙니다. 작은 아버지! 나는 작은 아버지께서 어디를 택하시든지 따를 것입니다. 다만 언제든지 작은 아버지의 가르침과 지도를 받으며, 하나님의 계시 가운데서 살기를 바라니 제발 살펴 주십시요’라고 해야 했습니다. 롯으로서는 지금이야 말로 정말 인생의 중대한 분기점에 서 있는 것입니다. 롯이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아브라함을 따라 갈 때 하나님의 축복에 참여하게 되며, 자기 욕심을 따라 갈 때 그 인생은 비참하게 전락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롯이 아브라함과 같이 하나님께 대한 부르심과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면 ‘이제는 내 확신을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사 그 백성을 삼으시고 은혜 베푸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작은 아버지를 선택하셔서 이미 큰 경영을 하시니. 그 거룩한 선택의 경륜 안에서 나도 벗어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라고 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롯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롯은 물이 풍부하고 비옥한 요단 동편의 들을 택하여 갔습니다. 그는 눈에 보이는 물질을 좇아갔습니다. 요단 동편 들 주위에는 이미 번성한 많은 도시들이 있었습니다. 그들 중에 대표적인 도시가 바로 소돔과 고모라였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와 주위 도시들은 아주 부유하여서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향략하고 살기에 좋은 땅이었습니다. 롯이 그곳을 선택할 때 거기는 평원이고 물이 풍성해서 목축하기에 대단히 좋은 자리였습니다.

롯은 선택의 중요한 분기점에서 요단 들을 선택하고 나갔습니다. 그것은 기기에 널려 있는 부에 자기도 참여해서 부를 누리고자 하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부요로운 성읍 속에 가서 자기도 부지런히 일하여 돈을 많이 벌겠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풍요로운 목초지가 있으니 거기 가서 목축업을 잘 해서 세상에서 번영하고 잘 살겠다는 생각입니다. 그가 그렇게 선택하여 갈 때에는 아마 작은 아버지가 있는 세겜 땅에서 그리 멀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내리시는 은혜에 대해서 자기도 십분 참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소망을 가졌을 것입니다. 작은 아버지를 통해 주시는 축복에서 결코 떠나고자 한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롯은 그렇게 요단 계곡에 머물지 않고 점점 아래로 내려가 마침내 장막을 소돔으로 옮겨서 쳤습니다. 19장에 보면 결국 나중에는 장막을 걷어치우고 소돔에 들어가 살게 되었습니다. 롯이 소돔에 들어가 살았다는 것은 시사해 주는 바가 큽니다. 롯은 아브라함을 따라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 까지 왔지만 아브라함과 같은 확고한 부르심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다만 아브라함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바라고 따라왔던 것 같습니다. 이런 롯은 결국 세상의 부요를 쫓아 소돔에 들어가 살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두 마음을 품은 전형적인 유형의 한 인물을 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후서 2:6-8절에 보면 롯을 의인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에 경건치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 무법한 자의 음란한 행실을 인하여 고통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이 의인이 저희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을 상하니라).” 우리가 지난번에 살펴본 대로 여기서 의인이라는 말은 하나님 앞에 의인이라는 말이 아니라 그 시대 사람들과 비교해서 의인이라는 말입니다. 또한 롯은 창세기 19:29절에서 말한 대로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심으로 건지심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말씀을 통해 그가 어떤 종류의 인간이었는지를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심판 때 보면 모든 것을 불에 날려 버리고 겨우 자기 몸 하나와 두 딸 밖에 건짐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의 아내도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뒤를 돌아보았다가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말년의 인생이 어떠하였습니까? 19:30-38절에 보면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 가운데서 소알로 피했던 롯은 소알에 거하기를 두려워하여 두 딸과 함께 소알에서 나와 산에 올라가 살았습니다. 그는 두 딸과 함께 동굴에서 생활했습니다. 31-32절에 보면 큰 딸이 작은 딸에게 말하기를 “우리 아버지는 늙으셨고 이 땅에는 세상의 도리를 좇아 우리의 배필 될 사람이 없으니. 우리가 우리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우고 동침하고 우리 아버지로 말미암아 인종을 전하자”고 했습니다. 이에 큰 딸과 작은 딸이 차례로 아버지께 술을 마시우고 동침하여 자식을 낳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생겨난 족속이 모압과 암몬 족속입니다. 그런데 신명기 23:3절에 보면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그들에게 속한 자는 십대 뿐 아니라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모압과 암몬 족속은 영원토록 하나님의 회에 들어오지 못하는 저주 받은 민족입니다. 참으로 롯의 인생의 말로는 비참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의 중보기도로 하나님께서 인자를 더하심으로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에서 구원을 받았지만 아들인지, 손자인지 모를 이상한 자식을 낳았습니다. 그들은 저주 받은 족속들로 하나님의 백성에 들지 못하는 자들이었습니다. 롯은 이런 자들의 조상입니다. 이것이 롯의 인생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롯이 어떤 종류의 인간이었는지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롯은 인생의 중요한 분기점, 곧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께서 경영하시는 길로 인생을 바쳐서 가겠노라고 해야 할 중요한 갈림길에서 자기의 꾀를 정당화하고 두길 보기를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복과 은혜도 받고, 또한 이 세상의 번영에도 참여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곧 그는 이 세상과 하나님을 동시에 다 취하려고 하는 두길 보기를 하는 사람의 한 전형이 된 것입니다. 롯은 두 마음을 품은 전형적인 유형의 인물이었습니다. 그런 그 인생의 결과 모든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구현해야 할 도구인 가정이 다 딴 길로 가고 말았습니다. 자기 인생도 망치고, 자기 가정도 땅 위에서 의미 없는 가정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롯의 인생을 통하여 두 마음을 품은 자들의 인생이 어떠한가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고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 살다보면 주님께서는 때때로 우리에게 중요한 분기점을 주실 때가 있습니다. 세상을 사랑하여 갈 것인가? 아니면 세상을 전연 돌아보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전부로 알고 갈 것인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곧 세상도 생각하고 하나님도 생각하는 두 길보기를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전부로 알고 살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이런 선택의 때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롯과 같이 두 길보기를 하겠습니까? 아니면 오직 하나님만을 전부로 알고 살아야 하겠습니까? 하나님만 전부로 알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되 하나님이 이 세상도 창조하시고 주관하고 계시니 세상에도 관여해야 한다고 하는 조건을 붙이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전부로 의지하고 살겠다는 정신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좌하시면 좌하고, 하나님께서 우하시면 우하고,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면 가고, 서라고 하면 서야합니다. 우리는 간곡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전부를 드려서, 전부를 하나님의 것으로만 주장하여 쓰시라는 중요한 인생의 경험과 결정이 있어야 합니다. 곧 우리가 공예배 때마다 주님이 주되심과 왕 되심을 고백하는 의미로 헌상을 올려드리는 것과 같이 그 헌상의 고백의 의미를 따라 온전히 주님을 따라 헌신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처음 예수를 믿고 나왔을 때는 아직 무엇이 무엇인지 모르고 믿는 도리의 깊이를 알지 못하는 까닭에 금방 그렇게 요구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서 믿음의 참 도리가 무엇인지 배웠을 때에는 중요한 결정의 시기가 오는 것입니다. 믿음의 참 길은 두 길보기를 하면서는 따라 갈 수 없습니다. 곧 세상도 사랑하고 하나님도 사랑하며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도 번영하고 출세하고 하나님도 믿고 의지하고 교회생활도 잘하겠다고 하면 그것이 잘 될 것 같습니까? 아닙니다. 이것은 불가능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 인생이 두 주인 곧 재물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6:24절에 보면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세상도 사랑하고 하나님도 사랑하는 그 둘을 합해서 뒤섞어 나가는 동안에는 결단코 어느 것 하나도 시원치 않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롯과 같이 세상의 것을 뒤쫓으면 나중에 어느 정도 부요로운 사람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세상적으로 무엇을 얻을 수야 있겠지만 그 대신 치루어야 할 대가가 큽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은혜가 자기와 자기 가정 위에 늘 서 있어야 하는데 그렇게 되지 않는 것입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은혜가 참으로 자신과 자신의 가정을 온전히 지배하고 주장하셔서 하나님이 경영하신 산업다운 성격이 세워져야 하는데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대신 인간이 주는바 몇 가지 재물을 쌓고 사람의 사회에서 인정하는 몇 가지 화려한 것들을 쥐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구름과 같은 것으로 얼마가지 않아 변하고 맙니다. 나중에는 대체 무엇을 가졌는지도 모르게 없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2:9절에 보면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시지만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 두어 심판 날까지 지킨다”고 하셨습니다. 경건이란 말은 하나님 앞에 전부를 드리고 하나님만을 늘 우러러보고 그분께만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영원할 것같은 이 세상이 구름과 같고 아침 이슬과 같이 허망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아는 자가 지혜로운 자입니다.

자기에게 있는 것이 다 없어지기까지는 하나님을 우러러서 전적인 소망으로 삼고 살지 않는 사람들은 결국 하나님이 불쌍히 여기셔야 할 것입니다. 그로 하여금 하나님만을 우러러 보고 살게 하시려면 그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없애 버리셔야 할 것입니다. 자기에게 평안하고 안정한 생활을 주셨을 때에는 그것을 하나님 앞에 감사히 여기고 모든 것을 드려서 성심성의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그런데 오히려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기화로 자꾸 범죄하고 살아가면 마침내 그것이 좀같이 자기를 먹게 될 것입니다. 그런 후에야 비로소 하나님 앞에 통회를 하고 고백을 한다면 참으로 불쌍한 인생이라 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 속한 그리스도인들, 세상을 뒤쫓는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문화라는 것, 소위 인간적인 여러 가지 내용을 좋은 미사어구로 수식하고 변호하며 뒤따라갑니다. 그렇게 세상 것을 따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처럼 호도하면서 뒤따라가는 사람들에게 지금 여기서 큰 교훈을 하고 있습니다. 결국 롯이라는 사람의 인생의 결과를 보고 생각하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롯은 참으로 중대한 인생의 기로에서 세상의 번영과 출세라는 것, 부요하고 안락하게 사는 것을 더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세상의 재물을 더 사랑했던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한번 치시면 어찌할 수 없는 가장 취약한 인간인 것을 생각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이 한 번 빼앗으시면 ‘왜 빼앗으십니까?’하고 항의조차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절대 엄위가 거기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세상의 부요와 안락에 눈이 멀어 세상 것만 크게 보고 그 뒤를 따른 것입니다.

롯은 소돔 사람들이 여호와 앞에 큰 죄이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아서 알았어야 했습니다. 그들에게 임할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보았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상종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롯은 그런 것에 주의하지 않습니다. 오직 눈에 보이는 풍성한 물과 부요로움과 자기가 거기서 잘살 것 같은 신기루와 같은 헛된 희망 때문에 그쪽으로 향하여 나갔습니다. 그는 세상의 부요와 영광이 영원할 것 같이 생각했습니다. 하나님보다도 눈에 보이는 세상의 재물과 풍요를 더 사랑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빼앗아 가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전연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을 가지고 점점 더 타락하는 데로 나아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가지고 타락하는 데 적극적으로 쓸 경우 그것을 그냥 방치하지 아니하십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 죄과를 물으십니다. 롯은 하나님의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불심판에서 그가 이제까지 누렸던 모든 것을 다 잃었습니다. 그렇게 소중하게 생각했던 부요와 안락, 재물과 세상영광을 다 잃었습니다. 사위들과 아내까지 다 잃었습니다. 두 딸과 자기 몸뚱이 하나 달랑 건짐을 받았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의 말년의 인생은 하나님의 회에 들지 못하는 저주받은 백성 모압과 암몬 족속의 조상으로 비참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결국 롯의 선택은 큰 잘못된 선택이었습니다. 그의 잘못된 선택으로 말미암아 그의 인생은 참으로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인생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면 롯이 그런 선택을 한 근본 이유가 무엇입니까? 롯의 마음 가운데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깨달음이 희미하였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전적으로 하나님 앞에 바쳐서 원하시는 대로 거룩한 경륜 안에서 살아야겠다는 분명한 생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자신을 전적으로 바치는 생활을 해야 하는데 그것이 없다면 그 사람으로 하여금 세상을 좇게 하는 큰 허점을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롯의 생각에는 자기가 소돔 땅을 향해 가더라도 아브라함을 멀리 떠나가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브라함이 복을 받으면 그 복이 그 지역에 다 같이 임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혹 일이 있으면 아브라함과 급히 연락을 해서 가까이 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것은 큰 착각이었습니다. 이런 생각이 롯을 하여금 세상을 좇게 만들고 그 인생이 비참하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에서 살펴봤듯이 아브라함이 복을 받기로 한 가나안 땅 한 구석에는 하나님이 멸망시킬 것들이 있었던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 가운데는 나지 않았더면 더 좋을 뻔한 가룟 유다가 섞인 것과 비슷합니다. 교회 속에라도 가라지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중에 맹렬히 진노하사 불로 태워 버릴 것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만 있으면 덮어놓고 복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어떠한 사람을 따라가고, 어떠한 생활을 하느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한 문제입니다. 세상과 짝하면서 사는 세속적인 교인이 되어 살아갈 것인가?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하고 불쌍히 여기심만 구하면서 그냥 한 길만 보고 나아가는 사람이 될 것인가? 우리는 둘 중에 하나를 결정해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에서는 자기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부자가 되고 출세를 하고 세상에서 유명한 사람이 되면 하나님이 영광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세상 명예를 좇고 돈을 좇고 지위를 좇고 영광을 좇으면서 믿는 사람으로서 그렇게 되었으니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생각이요, 마귀적인 생각입니다. 이런 것은 제사만 많이 드리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던 이스라엘 사람들의 태도와 비슷합니다. 이런 태도는 하나님 앞에 가증한 것입니다. 사무엘상 15:22-23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 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느냐?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고 했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롯의 인생을 통해서 주시는 교훈을 마음에 새기게 하시고, 세상과 짝하지 않고 하나님의 언약을 좇아 오직 믿음으로 사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의 복에 참여하는 복된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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