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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마 22:1-14
성경본문내용 (1)예수께서 다시 비유로 대답하여 가라사대(2)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3)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4)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가로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5)저희가 돌아 보지도 않고 하나는 자기 밭으로, 하나는 자기 상업차로 가고(6)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능욕하고 죽이니(7)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8)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예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치 아니하니(9)사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너라 한대(10)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 오니 혼인자리에 손이 가득한지라(11)임금이 손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12)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저가 유구무언이어늘(13)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14)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강설날짜 2007-08-19

2007년 8월 19일 설교


왕의 아들의 혼인 잔치


말씀:마태복음 22:1-14
요절:마태복음 22:1-2 “예수께서 다시 비유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우리는 지난주에 두 가지 비유 곧 두 아들 비유(21:28-32)와 포도원 농부의 비유(33-41)에 대해서 공부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두 가지 비유를 통해서 이스라엘 지도자들의 죄악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시고, 그들에게 임할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선언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1:43절에 보면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는 충격적인 선언을 하셨습니다.

오늘은 동일한 주제의 세 번째 비유인 ‘왕의 아들의 혼인 잔치’ 비유입니다. 오늘 비유는 결혼 잔치를 그 소재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잔치는 하나님 나라의 구원의 축복, 곧 하나님 나라를 상징합니다(8:11; 25:1-13). 이 비유 역시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그 일차적인 대상이지만 비유 내용 전체는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7). 본 비유는 앞의 두 비유들과 마찬가지로 원래 초대받은 옛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의 거절로 인해 하나님의 버림을 받게 되는 반면, 원래 초대받지 않은 새 이스라엘 백성은 나중에 주어진 초대에 응함으로 하나님께 영접을 받아 옛 이스라엘의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재차 확인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말씀하신 후 결론적으로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 교회에 시사해 주는 바가 큽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오늘 왕의 아들의 혼인잔치 비유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청함을 받은 자에 그치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 나라의 혼인 잔치에 참여하는 택함을 받은 복된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1-2절에 보면 예수님은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해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임금에게 한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 아들이 장성하여 드디어 혼인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그 임금이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한 나라의 왕자가 결혼한다는 것은 임금뿐만 아니라, 그 나라 모든 백성들에게 큰 경사스러운 일이요, 기쁨입니다. 임금은 일 년 전에 아들의 혼인 잔치를 알리고 참석할 자들에게 초대장을 보냈습니다. 임금의 아들의 결혼 잔치에 초대를 받는 다는 것은 아무나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임금의 아들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았다는 것은 그 자체가 큰 명예요, 특권이었습니다. 임금의 아들의 혼인 잔치에 초대를 받은 자들은 당연히 결혼 잔치에 참여할 것으로 기대되는 자들이었습니다. 드디어 결혼할 날이 다 되어 모든 혼인 잔치가 준비되었습니다. 임금은 초대장을 보낸 자들에게 종들을 보내어 모든 잔치가 준비되었으니 참여해 달라고 했습니다. 이 통고를 받은 자들은 마땅히 그 잔치에 곧바로 참여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청함을 받은 자들의 반응이 어떠하였습니까? 3절에 보면 오기를 싫어하였습니다. 참으로 의외의 반응이었습니다. 청함을 받은 자들이 오기를 싫어할 것이라고는 임금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에 임금은 다른 종들을 다시 보내어 잔치에 참석할 것을 간절히 요청하였습니다. 4절에 보면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가로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라는 말에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임금은 초대한 그들을 위해 소와 살진 짐승과 온갖 맛있는 음식들로 혼인 잔치를 완벽하게 준비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라고 한 것은 임금의 혼인 잔치의 특권에 동참하도록 하는 새로운 초청의 음성이었습니다. 참으로 이것은 상상할 수 없는 임금의 은혜로운 초청의 음성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반응이 어떠하였습니까? 그들은 거듭 거절을 하였습니다. 임금이 그처럼 간절히 초청하는데도 그들이 어떻게 그렇게 거절할 수 있는 것입니까? 그들이 거절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5-6절에 보면 거절하는 자들은 두 부류로 나누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곧 무관심한 자들과 적극적으로 거역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저희가 돌아보지도 않고 하나는 자기 밭으로, 하나는 자기 상업차로 가고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능욕하고 죽이니.” 먼저, 무관심한 자들을 보겠습니다. 그들은 종들의 간절한 초청에 돌아보지도 않고 자기 밭으로, 자기 상업 차로 가버렸습니다. 여기서 주님은 ‘자기 밭으로’, ‘자기 상업 차’라고 특별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는 무관심한 자들이 거절한 이유를 분명히 밝혀 주고 있습니다. 그들이 거절한 이유는 왕의 초대보다도 자신들의 일을 더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이러한 모습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하신 말씀을 잘 반영해 주고 있습니다(6:24).

이제 적극적으로 거절하는 자들을 보겠습니다. 이들은 소극적인 자들과 달리 자신들을 초청하는 자들을 귀찮게 여기고 왕의 종들을 잡아 능욕하고 죽이는 충격적인 일을 저질렀습니다. 이것은 왕에 대한 반역입니다. 그들은 종을 박대할 뿐 아니라 때리고 내쫓고 능욕하고 죽였습니다. 이와 같은 일은 실제 임금의 혼인 잔치 초대 상황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아마도 예수님은 앞의 포도원 농부 비유에서 농부들이 종들과 아들에게 행한 모습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21:35-36).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서 실제 잔치 상황을 묘사하려 하기보다는 앞 비유와 더불어 당시 이스라엘 지도자들과 백성들의 영적인 상태를 묘사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이와 같은 역사는 예수님의 사역 이후 제자들의 사역 시대에 실제로 일어난 것을 우리는 사도행전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하여튼 임금의 혼인 잔치에 자기 일을 더 중히 여겨 오지 않는 것도 불충인데, 임금의 종들을 박대하고 때리고 죽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한 것은 임금을 임금으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임금을 임금으로 인정하고 존경하였다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면 임금은 이런 그들을 어떻게 하셨습니까? 7절에 보면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살랐습니다. 이 사실도 실제 혼인 잔치 초대 상황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서 하나님의 초대를 거절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실제로 임할 하나님의 심판을 염두에 두신 것 같습니다. 그럴 경우 ‘그들의 도시’는 예루살렘을 의미하고, 그 도시를 ‘불태워’ 버리는 것은 주후 70년 로마의 티투스 장군에 의해 예루살렘의 함락을 내다보는 예언적인 언급으로 보입니다(참조. 23:37-38; 24:2). 임금의 호의를 거절하고 도리어 반역을 한 살인 한 자들에게 군대를 보내어 그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살라 버리는 것은 임금으로서는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이 비유는 처음 하나님 나라에 초대받은 자들이 거절함으로 그들에게 임할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상징합니다. 처음 하나님 나라에 청함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종들을 능욕하고 죽임으로 그들은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처음 초대받은 자들이 거절함으로 이제 전혀 예상치 않았던 자들이 잔치에 청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8-10절에 보면 임금은 종들에게 이르기를 혼인 잔치는 예비 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치 아니하니 사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라고 했습니다. 이에 종들이 길에 나가서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왔습니다. 그리하여 혼인 잔치에 손님이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사거리 길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이 초대받는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은 선악을 불문하고 누구나 다 하나님 나라에 초대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이것은 새로운 하나님 나라에 초청된 사람들이 어떤 계급에 국한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곧 새로운 하나님 나라 백성의 기준에 더 이상 어떤 외적 장벽도 있을 수 없음을 시사해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11-13절에 보면 누구나 초대를 받았지만 결혼 잔치에 참여하는 자들에게는 한 가지 조건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예복’을 입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팔레스틴에서는 귀족들의 결혼 잔치 때 입구에서 예복을 나눠주는 풍습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이와 같은 풍습에 기초해서 임금의 아들의 결혼 잔치에 모든 사람들이 참석할 수 있지만 한 가지 조건은 예복을 입고 참석해야함을 말씀하셨습니다. 임금이 손님들을 보기 위해 연회장에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에 임금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들어왔느냐?” 그러나 그 사람은 유구무언이었습니다. 이에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이 사실이 말해주는 바가 무엇입니까? 천국에는 악한 자와 선한 자가 모두 초청되지만 그 자격이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가 왜 예복을 입고 들어오지 않았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유구무언 이었다’는 것은 그가 알지 못했거나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서 안 입은 것이 아니라, 일부러 입지 않을 것을 작정하고 고의로 안 입었음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결혼 잔치에 참여하면서 예복을 입지 않고 참석하였다는 것은 잔치를 주관하는 주인에게 모욕을 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가 잔치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이 박탈당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말하는 ‘예복’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예복’이 뜻하는 의미는 단순히 예수님의 보혈의 피를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모든 백성에게 기대되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지칭합니다. 마태복음 7:21절에 보면 예수님은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요한계시록 19:7-8절에 보면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 되었으니.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들을 기초로 해서 볼 때 ‘예복’은 단순히 예수님의 보혈을 믿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포함해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는 처음 초대받은 자들이 거절함으로써 누구에게나 열려져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아무런 기준도 없는 자유방임적인 것은 아닙니다. 포도원 농부 비유에서 새로운 농부도 열매를 맺어야 하듯이(21:41,43), 결혼 잔치에 참여하는 자는 반드시 예복을 입어야 합니다. 곧 하나님의 뜻을 행해야 합니다. 예복을 입지 않은 자는 결혼 잔치에 쫓겨나 바깥 어두운 곳에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됩니다. 비유에서 예복을 입지 않은 자에 대한 임금의 조치는 실제 혼인 잔치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이 사실은 마지막 때 하나님 나라에서 기대되는 ‘하나님의 뜻을 행한 삶’을 준비하지 못한 자들이 직면하게 될 운명을 묘사해 주고 있습니다. 7:23절에 보면 주님은 주여 주여 하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는 자들을 가리켜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혼인 잔치에는 누구나 참석할 수 있지만 반드시 ‘예복’을 입어야 합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뜻을 행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들만이 하나님 나라의 혼인 잔치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반면 하나님의 뜻을 행하지 않는 자들은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예수를 믿는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다는 말은 주님의 통치를 받으며, 주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이런 자가 하나님 나라의 혼인 잔치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21:43절 말씀으로 되돌아가서 우리가 예복에 대해서 좀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주님은 “너희는 하나님 나라를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기초해서 볼 때 하나님의 뜻대로 행한다는 말과 하나님 나라의 열매를 맺는다 말이 같은 말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복을 입는다는 말은 하나님 나라의 열매를 맺는 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 나라의 열매는 무엇일까요? 하나님 나라의 열매는 한 마디로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라는 말은 하나님의 왕권 곧 하나님의 통치권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란 하나님의 왕권을 수락하고 왕권에 복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왕권을 인정하고 복종하는 자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입니다. 이런 자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왕권을 수락하고 그 왕권에 복종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 나라의 열매를 맺음으로 하나님의 천국 잔치에 참여하는 복된 자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혼인 잔치의 비유를 말씀하신 후 결론적으로 무슨 말씀을 하셨습니까? 14절을 보면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결론적인 말씀은 오늘 혼인 잔치 비유의 메시지를 간결하게 요약해 주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왕의 아들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오기를 거절하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이들은 초대에는 응하였으나 연회장에서의 규범, 곧 하나님 나라의 규범에 복종하기를 거부하였습니다. 이들 두 대상들은 모두 초대는 받았지만 선택은 받지 못한 자들이었습니다. 곧 천국의 혼인 잔치에 참석하여 그 은혜를 누리지는 못했습니다. 그들이 혼인 잔치에 참석하여 그 은혜를 누리지 못한 이유는 모두 자신들의 거절에 있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자기 밭으로 갔고, 어떤 이들은 자기 상업차로 갔습니다. 어떤 이는 스스로 예복을 입기를 거절하였습니다. 이들은 다 청함을 받은 자에 불과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왕의 아들의 혼인 잔치에 참석한 자들은 선택받은 자들입니다. 여기서 ‘선택 받은 자’라는 말은 그들의 운명이 그들 자신이 아닌 다른 주체, 곧 하나님의 선택에 의존해 있음을 말해 줍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이 하나님 나라의 혼인 잔치에 참여하게 된 것은 곧, 그들이 구원함을 받은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에 속한 일임을 말해 줍니다. 물론 인간의 문제에서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 사이의 긴장이 쉽게 설명되어 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오늘 비유에서는 그 긴장 관계를 설명하기보다는 두 가지 모두의 절대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비유는 마태복음 13장에서 언급되고 있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잘 번영해 주고 있습니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열매 맺지 못하는 길가 밭과 돌 밭, 그리고 가시덤불 밭은 초대를 받았지만 선택을 받지 못한 자들을 나타냅니다. 반면, 열매 맺은 좋은 밭은 청함을 받아 하나님 나라 잔치에 참석하게 된 선택 받은 자를 나타내줍니다. 우리는 오늘 비유의 말씀을 통해 우리 자신들을 돌아봐야 합니다. ‘나는 청함을 받은 자인가, 택함을 받은 자인가?’ 우리가 성경공부를 하고 교회에 출석한다고 해서 다 택함을 받은 자는 아닙니다. 곧 교회에 출석하고 있다고 해서 다 하나님 나라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참여하는 자는 예복을 입은 자가 곧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택함을 받은 자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사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되어 청함을 받은 자가 아니라 택함을 받은 자가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 나라 혼인 잔치에 참여하는 복된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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