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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딤전 1:3-11
성경본문내용 (3)내가 마게도냐로 갈 때에 너를 권하여 에베소에 머물라 한 것은 어떤 사람들을 명하여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며(4)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착념치 말게 하려 함이라 이런 것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이라(5)경계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나는 사랑이거늘(6)사람들이 이에서 벗어나 헛된 말에 빠져(7)율법의 선생이 되려 하나 자기의 말하는 것이나 자기의 확증하는 것도 깨닫지 못하는도다(8)그러나 사람이 율법을 법 있게 쓰면 율법은 선한 것인 줄 우리는 아노라(9)알 것은 이것이니 법은 옳은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요 오직 불법한 자와 복종치 아니하는 자며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며 거룩하지 아니한 자와 망령된 자며 아비를 치는 자와 어미를 치는 자며 살인하는 자며(10)음행하는 자며 남색하는 자며 사람을 탈취하는 자며 거짓말 하는 자며 거짓 맹세하는 자와 기타 바른 교훈을 거스리는 자를 위함이니(11)이 교훈은 내게 맡기신 바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좇음이니라
강설날짜 2013-10-13

2013년 디모데전서 공부


에베소에 머물라 한 것은


말씀:디모데전서 1:3-11
 
우리는 지난 시간에 바울 사도의 인사말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바울 사도는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에게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있기를 간구하였습니다. 오늘부터 우리는 사도 바울이 영적인 아들 디모데에게 부탁하는 말씀을 공부하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 3-4절을 보면 “내가 마게도냐로 갈 때에 너를 권하여 에베소에 머물라 한 것은 어떤 사람들을 명하여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며,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착념치 말게 하려 함이라. 이런 것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바울 사도가 마게도냐로 가면서 디모데를 권하여 에베소에 머물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바울이 디모데를 권하여 에베소에 머물게 했다는 것은 디모데가 바울을 따라 가고 싶어 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디모데는 꼭 필요한 선교 동역자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에베소교회를 섬기는 것이 매우 중요한 문제였기 때문에 디모데를 권하여 에베소에 머무르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디모데가 에베소에 머물면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말씀하는 것이 바로 디모데전서의 내용입니다.

 

에베소 지역은 바울 사도가 이미 복음을 전한 곳입니다. 사도행전 20:29-32절을 보면 “내가 떠난 후에 흉악한 이리가 너희에게 들어와서 그 양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너희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좇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니.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내가 삼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에베소교회는 바울이 2차와 3차 전도 여행 때 복음을 전한 곳입니다. 사도행전 20장 말씀은 바울 사도가 3차 선교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가고 있는 중에 밀레도에서 에베소교회 장로들을 불러 놓고 그들에게 부탁하는 내용입니다. 바울은 배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가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에 에베소에 들렸다가 갈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에베소교회 장로들을 밀레도로 부른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예루살렘에 가면 자신이 유대인들에게 잡혀 갈 것임을 예감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에베소교회 장로들에게 자신이 떠나고 나면 흉악한 이리들이 오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다른 교훈을 전하여 자기들에게로 끌어갈 자가 올 것이기 때문에 사도의 가르침을 잘 기억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과 은혜의 말씀께 부탁을 합니다. 그런 후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갔다가 거기서 유대인들의 고소로 체포되어 로마로 압송이 되는 것입니다. 로마에서 어느 정도 재판을 기다리는 동안 상당한 자유를 얻어서 다시 전도 여행을 하면서 에베소에 디모데를 남겨 두고 떠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디모데는 이미 에베소교회에 다른 교훈을 전하는 흉악한 이리들이 들어와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교훈을 막고, 바른 복음을 다시 세우기 위하여 남겨진 것입니다.

 

그러면 디모데가 감당해야 할 임무가 무엇입니까? 3-4절을 다시 보면 “내가 마게도냐로 갈 때에 너를 권하여 에베소에 머물라 한 것은 어떤 사람들을 명하여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며,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착념치 말게 하려 함이라. 이런 것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바울 사도가 디모데로 하여금 에베소교회에 머물게 한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이 디모데로 하여금 에베소에 머물게 한 이유는 디모데로 하여금 어떤 사람들이 가르치는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게 하며,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착념치 말게 하려 함이었습니다. 그렇게 하여 하나님의 경륜인 믿음의 역사를 이루게 하려 함이었습니다.

 

바울 사도가 디모데를 통해서 이렇게 경계하게 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5절을 보면 “경계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나는 사랑이어늘”이라고 했습니다. 당시 에베소교회는 바울이 떠난지 약 3년 정도가 지났습니다. 그런 사이에 에베소교회에는 바울이 전한 복음 외에 다른 교훈을 가르치는 많은 거짓 교사들이 들어와서 교회를 혼잡케 하고 있었습니다. 그로인해 바울은 이런 에베소교회를 바로잡아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 없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게 하기 위하여 디모데로 하여금 에베소에 머물게 한 것입니다. 디모데가 에베소교회에 머물면서 거짓 교사들이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못하게 하며,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착념하지 못하게 돕도록 한 것입니다. 바울은 이를 통해서 에베소교회가 바른 복음 진리 위에 굳게 서서 복음의 열매가 풍성히 나타나게 하려 함이었습니다.

 

또한 바울 사도가 디모데를 에베소교회에 남겨 둔 이유는 율법의 오용을 막기 위함이었습니다. 6-7절 말씀을 보면 “사람이 이에서 벗어나 헛된 말에 빠져 율법의 선생이 되려하나 자기의 말하는 것이나 자기의 확증하는 것도 깨닫지 못하는도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당시 에베소교회에는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 없는 믿음에서 떠나 헛된 말에 빠져 있던 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곧 그들은 율법의 선생이 되려고 하였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떠나 다시 율법으로 돌아가고자 한 것입니다. 바울은 바로 이런 에베소교회를 위해서 디모데를 그곳에 남겨두어 그들로 하여금 율법의 오용에 빠지는 것을 막고자 한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바울이 전한 복음을 수호하여 그들로 하여금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 없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섬기게 하고자 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들을 봅시다. 많은 교회들이 복음을 수호하기 위해서 힘쓰고 있지만 다른 교훈들이 들어와 교회가 혼란 가운데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들이 전한 복음이 훼손되고 온갖 거짓 복음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도 지난 십여년 동안 복음을 수호하기 위해서 많은 힘을 써 왔습니다만 잠시 잠깐 방심하면 사도들이 전한 복음에서 떠난 다른 교훈들이 얼마든지 들어올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종교적인 본성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나 복음은 생소하게 여겨지고 모든 사람들이 수긍할 만한 것들을 하나님의 말씀인양 여기기 쉬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러한 것들이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보면서 우리는 우리의 경계로 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디모데전서 공부를 통해서 이런 은혜가 우리에게 있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복음이 다시 세워지고 우리 교회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 없는 믿음을 회복 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바울 사도가 이미 에베소에 복음을 증거 하였습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가 떠나고 나자 그의 예언대로 이리들이 나타나 다른 교훈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의 말이 왜 복음을 들은 자들에게 먹혀들어 가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수긍할만한 내용이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어떻게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만 의롭다함을 받을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만 믿어서는 안 되고 다른 것들을 보태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할례를 행하여야 한다든가, 특정한 날짜를 지켜야 한다든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다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 복음을 부정하는 교훈들입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디모데에게 이러한 교훈을 가르치지 못하게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3).

 

그리고 신화와 족보에 착념치 말게 하라고 합니다(4). 신화와 족보란 영지주의적 체계에서는 자세하게 늘어놓은 신화와 신들의 족보와 구약 성경의 인물들에 대한 사변적 해석이 큰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4:7절에서도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라”고 했습니다. 6:20절에서도 “거짓되이 일컫는 지식의 망령되고 허한 말과 변론을 피하라”고 했습니다. 이 당시에 신들의 족보를 따지면서 사변적으로 논쟁하는 일들이 많았던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이교의 영향도 있었지만 유대인들도 얼마나 족보를 따지기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자기들의 권위를 주장할 때 어느 집안이냐, 누구의 후손이냐를 따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누구의 문하생인가를 들고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대 랍비들이 자기들의 권위를 주장하기 위하여 자기들 스승의 족보도 따지고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최고의 권위는 모세까지 올라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자기들이 더 정통파라는 것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이 이제는 다 헛되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구별이 없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는 복음의 시대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런 복음의 시대에 쓸데없는 족보 논쟁을 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 족보 논쟁을 하지 못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족보에 대한 변론만이 아니라 참된 복음을 가리는 모든 것들을 전부 신화로 포함시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화 하면 그리스 로마 신화를 떠 올립니다. 그러한 신화들은 결국 인간의 내면을 그려낸 인간들의 이야기들인 것입니다. 이러한 신화만이 아니라 요즈음 우리나라에서는 무슨 무슨 신화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월드컵 4강을 신화라고 하였습니다. 경제발전을 신화라고 합니다. 그래서 신문마다 우리가 신화를 만들어 내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족보나 신화나 간에 결국 사람들의 이야기인 것입니다. 오늘날도 이러한 신화창조에 나서고 있는 것입니다. 감히 사람이 어떻게 이러한 엄청난 일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하는 찬사를 자신들이 받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에 착념하고 족보와 전통을 따지는 것은 결국 자기들의 행위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다른 자들보다 우월함을 내세우는 것이지 가난한 심령으로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것들에 착념치 말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변론을 내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다른 교훈과 신화와 족보에 착념하지 말고 그러한 것들을 금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참으로 성도에게서 나타나야할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 없는 믿음으로 나오는 사랑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열매는 없이 도리어 율법의 선생이 되려고 하니 율법의 뜻도 모르고서 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율법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율법의 선생이 되려고 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율법을 주신 것은 그것을 잘 지키라고 주신 것이지 그래서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말하는데 무엇이 문제인가 하는 것이 율법의 선생들이 주장하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이렇게 주장하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3:10절을 보면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고 했습니다. 율법을 지켜서 의롭게 되려면 율법 책에 기록된 모든 명령을 항상 행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제까지 율법을 행하였으나 오늘 행하지 않으면 저주 아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으로 의롭다 함을 받으려고 하면 오히려 저주를 자청하러 가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11-12절을 보면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나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이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니라.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라. 이를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선생이 되려고 하는 자가 이러한 율법의 뜻을 모르고 있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으로 돌아가는 것은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해방시키신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게 하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대신 저주 받으심을 아무른 효력이 없는 것으로 돌리는 것입니다. 계속하여 갈라디아서 3:13-14절을 보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저주를 받으심으로 우리를 율법에서 속량하셨습니다. 그런데 다시 율법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은 이 그리스도의 대신 저주 받으심을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아무 효력 없이 만드는 마귀적인 행위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 8절을 보면 “그러나 사람이 율법을 법 있게 쓰면 율법이 선한 것 인줄 우리가 아노라”고 합니다. 율법의 목적이 무엇인지 그것을 제대로 알고 율법을 쓰면 선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율법을 잘못 사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율법의 선생이라는 자들이 율법의 목적을 모르고 사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자체가 악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율법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통하여 인간이 죄인임을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법이 없으면 죄를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제대로 사용하는 것이란, 율법을 통하여 인간이 얼마나 죄인인가를 알게 하므로 그리스도에게도 인도하는 몽학선생으로 사용하여야 하는데 오히려 율법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을 스스로 지킴으로 구원에 이르고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고 본 것입니다. 여기서 유대인의 오해가 있는 것입니다.

 

9-11절을 보면 “알 것은 이것이니 법은 옳은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요, 오직 불법한 자와 복종치 아니하는 자며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며 거룩하지 아니한 자와 망령된 자며 아비를 치는 자와 어미를 치는 자며 살인하는 자며 음행하는 자며 남색하는 자며 사람을 탈취하는 자며 거짓말 하는 자며 거짓 맹세하는 자와 기타 바른 교훈을 거스리는 자를 위함이니. 이 교훈은 내게 맡기신바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좇음이니라”고 했습니다. 법은 누구를 위하여 있는 것입니까? 옳은 자를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죄인을 위하여 있는 것입니다. 자신이 옳은 자라면 율법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죄인에게는 법이 소용이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로마서 3:9-18절을 보면 “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 나으뇨.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저희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저촉을 받지 않을 자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율법을 다 지켰다고 착각하고 있으니 율법을 제대로 알지 못한 것입니다. 율법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데 메시아가 온다는 것은 자기들을 죄에서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민족적이고 정치적이고 현실적인 메시아를 기다린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참으로 죄인임을 율법을 통하여 제대로 알았다면 예수님께서 어디에서 구속하시고자 하시는지를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이란 죄를 드러내는 것임을 바울 사도는 십계명을 중심으로 나열하고 있습니다. 불법한 자, 복종치 아니하는 자, 경건치 아니하는 자, 죄인, 거룩하지 아니한 자, 망령된 자, 아비를 치는 자, 어미를 치는 자, 살인 하는 자, 음행 하는 자, 남색 하는 자, 사람을 탈취하는 자, 거짓말 하는 자, 거짓 맹세하는 자, 기타 바른 교훈을 거스리는 자를 위함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에 해당 사항이 없습니까? 완벽하게 한 가지도 빠짐없이 이러한 죄 목록에서 깨끗하십니까? 여기에 기록된 것만이 아니라 기타 여러 가지 바른 교훈을 다 지키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다 저주아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율법의 기능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자신이 저주를 왜 받아야 당연한지를 알게 하는 것이 율법을 법 있게 쓰는 것입니다. 이러한 율법 앞에서 정죄를 당한 자는 그리스도의 대신 저주 받으심만을 사모하며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들이 거듭난 자들이며, 복음을 믿는 자며, 그 양심이 깨끗하고 청결하고 거짓 없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사랑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열매는 다른 교훈으로 안 되는 것입니다. 족보와 신화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을 지킴으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대신 저주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이제 이런 자들에게 율법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늘 복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복음은 이 모든 것들을 다 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11절을 다시 보면 “이 교훈은 내게 맡기신바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좇음이니라”고 증거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교훈이 아니라 바울 사도가 전하는 교훈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인데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이라고 합니다. 복 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이 바로 그리스도의 대신 저주 받으심으로 죄인이 의롭다함을 입은 것입니다. 이것을 디모데에게 부탁하는 것이며, 오늘 우리에게도 부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질문을 던져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 영광의 복음을 쫓아서 살고 있습니까? 복음을 복음으로 사용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또다시 유대인들이 율법을 잘 못 사용한 것처럼 잘 못 사용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 영광의 복음 앞에서 이 세상의 그 어떤 영광스러운 것도 빛을 잃어 버리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복음의 영광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이 복되신 하나님의 복음의 영광만을 위하여 사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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