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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암 7:10-17
성경본문내용 (10)때에 벧엘의 제사장 아마샤가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에게 기별하여 가로되 이스라엘 족속 중에 아모스가 왕을 모반하나니 그 모든 말을 이 땅이 견딜 수 없나이다(11)아모스가 말하기를 여로보암은 칼에 죽겠고 이스라엘은 정녕 사로잡혀 그 땅에서 떠나겠다 하나이다 하고(12)아마샤가 또 아모스에게 이르되 선견자야 너는 유다 땅으로 도망하여 가서 거기서나 떡을 먹으며 거기서나 예언하고(13)다시는 벧엘에서 예언하지 말라 이는 왕의 성소요 왕의 궁임이니라(14)아모스가 아마샤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선지자가 아니며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요 나는 목자요 뽕나무를 배양하는 자로서(15)양떼를 따를 때에 여호와께서 나를 데려다가 내게 이르시기를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라 하셨나니(16)이제 너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니라 네가 이르기를 이스라엘에 대하여 예언하지 말며 이삭의 집을 향하여 경계하지 말라 하므로(17)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아내는 성읍 중에서 창기가 될 것이요 네 자녀들은 칼에 엎드러지며 네 땅은 줄띄워 나누일 것이며 너는 더러운 땅에서 죽을 것이요 이스라엘은 정녕 사로잡혀 그 본토에서 떠나리라 하셨느니라
강설날짜 2011-06-26

2011년 아모스 공부

견딜 수 없는 말씀

말씀:아모스 7:10-17

 

오늘 말씀은 지난 시간에 살펴본 세 가지 환상 즉 황충 환상, 불 환상, 다림줄 환상에 계속되는 말씀으로써 북 이스라엘의 궁중선지자요, 벧엘의 제사장인 아마샤가 이스라엘의 왕 여로보암에게 아모스 선지자를 고발하는 내용입니다. 10절에 보면 아마샤는 아모스를 모반을 꾀한 반역자로 고발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족속 중에 아모스가 왕을 모반하나니”(10). 아마샤는 이를 통해서 아모스를 역적으로 몰아 처단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서 왕이란 언제나 여호와의 율법을 가지고 백성을 통치하여야 합니다. 자기 마음대로 다스리면 안 되는 것입니다. 왕이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고 자기 욕심대로 통치를 하면 선지자들이 고발하게 됩니다. 그런데 선지자들의 고발을 받아들이면 왕은 회개하지만 그 고발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선지자를 죽이거나 핍박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대부분의 선지자들이 핍박을 받고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이것은 왕들이 선지자들의 고발 앞에 회개하고 여호와께로 돌이키지 아니하였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특히 북 이스라엘은 남쪽 유다의 성전과 그 제도를 모방하여 벧엘과 단에 성전을 짓고 그곳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왕이 임의대로 제사장을 세웠습니다. 이런 지경 가운데 있었기 때문에 왕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 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지자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바르게 증거 하여도 그들을 배척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왕들의 권세 아래 아부를 하면서 권력의 시녀노릇을 하고 있는 자들이 바로 궁중선지자들인 것입니다. 이들은 언제나 왕과 그 체제에 우호적인 자들입니다. 이런 거짓 궁중선지자들은 여호와께서 왕과 백성과 나라를 축복하시리라고 늘 거짓 평안을 남발하는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의 특징은 늘 평강을 말하고 축복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선지자들이 자신들과는 정반대로 하나님의 심판을 전하는 아모스 선지자를 용납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궁중 선지자의 대표격인 아마샤가 여로보암 왕에게 아모스가 반역을 꾀한다고 고발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아마샤를 보면서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10-11절에 보면 “때에 벧엘의 제사장 아마샤가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에게 기별하여 가로되 이스라엘 족속 중에 아모스가 왕을 모반하나니 그 모든 말을 이 땅이 견딜 수 없나이다. 아모스가 말하기를 여로보암은 칼에 죽겠고 이스라엘은 정녕 사로잡혀 그 땅에서 떠나겠다 하나이다 하고”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보면 ‘때에’라는 말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때란 아모스 선지자가 세 가지 환상을 통하여 북 이스라엘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을 말하는 때라고 봅니다. 지난 시간에 살펴본 대로 황충 환상과 불 환상을 통한 심판은 아모스 선지자의 중보기도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돌이켜 주셨지만 다림줄 환상을 통한 심판은 그대로 시행이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러한 심판의 소식을 들을 때에 아마샤는 회개하기보다 도리어 아모스가 나라를 해롭게 하는 자라고 몰아붙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를 북 이스라엘의 왕 여로보암에게 반역자로 고발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마샤가 아모스를 반역자로 고발하는 근거가 무엇입니까? 9절에 보면 “이삭의 산당들이 황폐되며 이스라엘의 성소들이 훼파될 것이라. 내가 일어나 칼로 여로보암의 집을 치리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아모스 선지자가 다림줄 환상 이후에 한 말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 보면 아모스는 여로보암의 집을 치리라고 하였는데 아마샤는 그 말을 조금 바꾸어 여로보암 왕이 칼에 죽으리라는 말로 고발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아모스의 그 모든 말을 인하여 견딜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족속 중에 아모스가 왕을 모반하나니. 그 모든 말을 인하여 이 땅이 견딜 수 없나이다”(10). 아마샤는 이를 통해서 자신은 충성된 자이고, 아모스는 모반하는 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아모스를 반역자로 몰아 죽이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 나라를 걱정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아마샤는 자신이 나라를 위하여 충성한다고 하면서 아모스를 고발하지만 그러나 실상 아마샤는 왕과 백성들로 하여금 회개할 기회를 박탈하게 함으로 이스라엘로 완전히 멸망하게 하는 자입니다. 그러나 아모스는 북 이스라엘을 위하여 오히려 중보기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는 비록 남 유다 출신이지만 북 이스라엘에 대한 예언자로 부름을 받아 하나님의 계시를 환상으로 보고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찌 서리이까”하면서 중보기도를 하는 것입니다(5). 그리고 이렇게 하나님의 심판을 선고하는 이유는 이스라엘로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살길이기 때문입니다. 5:4절에 보면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고 했습니다. 아모스가 심판을 외치는 것은 그들로 살길을 주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여호와를 찾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가운데 수많은 재앙들이 닥친 것은 여호와를 찾게 하기 위함인데 그러나 이러한 여호와를 찾을 기회마저 거짓된 평안과 축복으로 막아서는 것이 바로 거짓 선지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왕을 모반하는 것은 아모스가 아니라 아마샤 자신이 왕을 모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왕에게 충성된 자요, 아모스는 왕을 모반하는 자로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의 관심사는 여호와께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나라의 체제와 자신의 기득권의 안정에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속한 단체의 안녕과 발전에 마음을 두고 있는 것이지 여호와의 뜻과는 상관이 없는 자들입니다. 오직 자신들의 안정과 발전을 최고의 목표로 삼고 있는 자들입니다. 곧 자신들의 배를 위해서 사는 자들입니다. 이러한 아마샤와 같은 태도가 오늘날 이 시대라고 다를 것이 없습니다. 오늘날도 소위 정치 목사가 많습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한다고 하지만 하나님의 뜻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자신들의 배에만 관심이 있는 것입니다. 정치 목사뿐만 아니라 오늘날 대부분의 목회자가 그렇습니다. 목회자 뿐만 아니라 신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오직 자기들 교회의 외적 부흥과 세상적인 축복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이런 자들에게 여호와의 말씀은 견딜 수없는 것입니다. 참으로 여호와께 충성되고 나라를 살릴 수 있는 여호와의 말씀을 증거 하는 아모스의 말을 견딜 수 없어하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말씀의 본의를 들어내어 가는 목사들을 싫어하고 핍박합니다. 올바른 헌상을 가르치고, 올바른 예배를 가르치고, 올바른 절기의 의미를 가르치고, 올바른 부흥을 가르치면 도리어 이단이라고 정죄하고 파문시킵니다.

 

오늘날 이 시대도 아모스 시대와 꼭 같은 상황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보다 자신들의 유익을 먼저 추구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오직 나를 중심으로 세상을 보는 모든 사고방식과 체제를 정죄합니다. 성경은 여호와가 주이심과 예수 그리스도가 주이심을 증거 하시고 그대로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여호와가 주이심을 알리시고, 이제 신약에서는 그 여호와의 일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예수님이 받으시고 이루어 가고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세상을 통치하시고 다스리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무릎이 예수님께 꿇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그 진노가 급하신 것입니다. 빌립보서 2:9-11절에 보면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또한 시편 2:10-12절에 보면 “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관원들아 교훈을 받을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그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다 복이 있도다”라고 했습니다.

 

지금도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예수의 이름을 부르면서 자기가 속한 단체의 안녕과 발전을 위하여 주를 신으로 부르고 있다면 이것은 아마샤의 충성과 다를 바 없는 거짓된 충성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모스의 외침은 지금도 이 땅이 견딜 수 없는 메시지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게 되면 우리교회 잘되기는 빠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싫어하는 것입니까? 예수님께 관심이 없고 자신이 돈을 내고 마음을 들여서 만들어 놓은 교회라는 단체에 마음을 가지고 있는 자들은 싫은 것입니다. 교회를 통해서 밥을 먹고 사는 사람들이나 교회를 통해서 자기의 이름을 내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싫은 이야기들입니다. 또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면 성도 개개인이 세상에서 성공하고 복 받는 것은 빠지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누가 싫어합니까? 예수 믿고 복 받고자 하는 자들이 싫어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세상에서 성공하고 물질적인 축복을 받고 세상에 소망을 두고 사는 자들이 듣기 싫어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으면서도 발전된 자아상을 보이고자 한다면 오직 예수님만으로는 만족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자들이 무어라고 하겠습니까? 7:12-13절에 보면 “아마샤가 또 아모스에게 이르되 선견자야 너는 유다 땅으로 도망하여 가서 거기서나 예언하고 다시는 벧엘에서 예언하지 말라. 이는 왕의 성소요, 왕의 궁임이니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아모스 선지자에 대한 최고의 모독입니다. 하나님의 묵시의 말씀을 전하는 아모스에게 단지 밥 벌어 먹고 살기위하여 선지자 노릇하는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는 남쪽 유다 출신이니 그곳에 가서 선지자 노릇하고 밥이나 빌어먹고 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벧엘에서는 예언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벧엘은 왕의 성소요, 궁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마샤는 왕의 권위를 내세우면서 자기의 영역이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자기 영역에 들어와서 남의 밥 그릇을 깬다는 식입니다. 아마샤에게는 하나님의 뜻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직 자신의 밥 그릇 챙기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아모스에게 고향에 가서 밥이나 빌어먹고 벧엘에서는 예언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예수님의 마음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우리 교회, 자기 자신과 가족들이 잘되기만을 마음에 두고 있다면 아마샤와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본의가 들어날 때 견딜 수 없어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본의를 들어내는 자에게 반발하며 대적합니다. 말씀의 본의를 들어내는 목회자를 쫓아내거나 아니면 자신들이 떠나갑니다. 이런 일이 오늘날 교회 가운데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주님의 부르심을 입은 모든 선지자들의 말은 사람으로 하여금 견딜 수 없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 견딜 수 없는 말씀으로 인하여 두 가지 반응 즉 회개하든지 아니면 돌로 치든지 하는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 계속된 선지자들의 행렬 곧 미움을 받고 핍박을 받는 일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그 절정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유대인들이 얼마나 견딜 수 없어 했는가 하는 것은 그들이 예수님을 죽인 사건에서 분명히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어떻게 하면 죽일까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던 것을 복음서에 보면 여러 곳에서 나타납니다. 마태복음 12:9-14절에 보면 “거기를 떠나 저희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편 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를 송사하려 하여 물어 가로되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붙잡아 내지 않겠느냐?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하시고, 이에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손을 내밀라 하시니 저가 내밀매 다른 손과 같이 회복되어 성하더라.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꼬 의논하거늘”이라고 했습니다. 참된 안식을 주시는 예수님이 얼마나 싫었는지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서로 의논하는 것입니다. 결국 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다 마음을 합하여 예수님을 죽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제일 잘 섬기고 율법을 잘 지킨다는 이들의 마음이 평소에 무엇에 의하여 지배당하고 있었는가 하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이들의 마음의 정체를 다 드러내어 버리니 그들이 견딜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이 땅이 얼마나 견딜 수 없어하는지를 우리는 잘 알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8:4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향하여 너희 아비는 마귀라고 하셨습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요 8:44). 마태복음 12:34절에 보면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하셨습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마 12:34). 마태복음 23:33절에서도 독사의 새끼들이라고 하셨습니다.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마 23:33).

 

오늘날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이 좋습니까? 아니면 견딜 수 없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이 좋다면 믿음이 아주 좋거나 아니면 자기에게 좋은 말만 해주니 그럴 것입니다. 정말 예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나의 주관이나 선입견으로 취사선택하지 아니하고 받는다면 그 말씀들은 다 견딜 수 없는 말씀이 됩니다. 그래서 회개하든지, 아니면 돌을 던지든지 하는 것이 우리들에게도 그대로 일어날 것입니다.

 

12-13절을 다시 보면 아모스 선지자가 북 이스라엘에 대하여 선포한 말씀을 인하여 견딜 수 없어하는 아마샤가 아모스에게 “너는 유다 땅으로 도망하여 가서 거기서나 떡을 먹으며 거기서나 예언하고 다시는 벧엘에서 예언하지 말라”고 합니다. 여기에 대한 아모스 선지자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14-17절에 보면 “아모스가 아마샤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선지자가 아니며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요, 나는 목자요, 뽕나무를 배양하는 자로서 양떼를 따를 때에 여호와께서 나를 데려다가 내게 이르시기를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라 하셨나니. 이제 너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 찌니라. 네가 이르기를 이스라엘에 대하여 예언하지 말며 이삭의 집을 향하여 경계하지 말라 하므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아내는 성읍 중에서 창기가 될 것이요, 네 자녀들은 칼에 엎드려지며 네 땅은 줄띄워 나누일 것이며 너는 더러운 땅에서 죽을 것이요, 이스라엘은 정녕 사로잡혀 그 본토에서 떠나리라 하셨느니라”고 합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두 가지로 대답합니다. 곧 자신의 선지자직과 그 말씀에 대한 거부의 결과를 말합니다. 먼저 자신은 선지자도,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라고 합니다. 양떼를 따르고 뽕나무나 재배하던 자라고 합니다. 뽕나무란 우리처럼 누에를 기르는 뽕나무가 아니라 무화과의 일종으로 열매를 위한 나무입니다. 아모스는 자신이 이런 농부인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언하라고 하셔서 예언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자기는 자격도 없는 사람이지만 여호와께서 시키시니 말하지 아니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명예나 이익을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아모스 선지자는 자기가 여호와께 받은 여호와의 말씀을 거부하기에 아마샤와 이스라엘이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그들이 받을 하나님의 저주가 어떠합니까? 16-17절을 다시 보면 “이제 너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 찌니라. 네가 이르기를 이스라엘에 대하여 예언하지 말며 이삭의 집을 향하여 경계하지 말라 하므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아내는 성읍 중에서 창기가 될 것이요, 네 자녀들은 칼에 엎드려지며 네 땅은 줄띄워 나누일 것이며 너는 더러운 땅에서 죽을 것이요, 이스라엘은 정녕 사로잡혀 그 본토에서 떠나리라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아마샤와 북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말씀을 거부함으로 그들의 아내는 창기가 되고, 그들의 자녀는 칼에 죽고, 그들의 땅은 줄 띄워 나누어 질 것이고, 그들은 더러운 땅에서 죽으리라고 합니다. 이 저주처럼 북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하여 망하므로 아모스가 저주한 그대로 그들에게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않고 그대로 다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은 식언치 아니하시는 분이십니다. 민수기 23:19절에 보면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오늘날 예수님의 말씀도 믿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도행전 4:12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행전 4:12). 그렇습니다. 다른 어떤 이름으로도, 다른 어떤 행위로도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만 구원을 얻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천하 인간에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이름을 주신 일이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믿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적으로 보면 예수님의 말씀은 견딜 수 없는 말씀인 것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미련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견딜 수 없는 말씀을 받고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미련한 십자가를 구원의 도리로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하나님의 말씀이 견딜 수 없는 말씀이 되지 않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의 말씀으로 받아 누리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구원을 얻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축복을 누려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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