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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마 26:1-30
성경본문내용 (1)예수께서 이 말씀을 다 마치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2)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이틀을 지나면 유월절이라 인자가 십자가에 못박히기 위하여 팔리우리라 하시더라(3)그 때에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가야바라 하는 대제사장의 아문에 모여(4)예수를 궤계로 잡아 죽이려고 의논하되(5)말하기를 민요가 날까 하노니 명절에는 말자 하더라(6)예수께서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 계실 때에(7)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8)제자들이 보고 분하여 가로되 무슨 의사로 이것을 허비하느뇨(9)이것을 많은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거늘(10)예수께서 아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저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11)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12)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사를 위하여 함이니라(13)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하시니라(14)그 때에 열 둘 중에 하나인 가룟 유다라 하는 자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말하되(15)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16)저가 그 때부터 예수를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17)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유월절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18)가라사대 성안 아무에게 가서 이르되 선생님 말씀이 내 때가 가까왔으니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 하시더라 하라 하신대(19)제자들이 예수의 시키신 대로 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였더라(20)저물 때에 예수께서 열 두 제자와 함께 앉으셨더니(21)저희가 먹을 때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하시니(22)저희가 심히 근심하여 각각 여짜오되 주여 내니이까(23)대답하여 가라사대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24)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 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25)예수를 파는 유다가 대답하여 가로되 랍비여 내니이까 대답하시되 네가 말하였도다 하시니라(26)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27)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28)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29)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30)이에 저희가 찬미하고 감람산으로 나아가니라
강설날짜 2007-10-07

2007년 10월 7일 설교


마지막 유월절


말씀:마태복음 26:1-30


요절:마태복음 26:26-28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26-28장은 마지막 이야기 단락으로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사건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사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16:21절 이래로 지속적으로 예수님의 사역의 절정을 이루게 될 사건들로 예고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결정적인 사건들이 예고된 대로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태는 이러한 사건들이 우연적 결과가 아니라 구약에서 예고되어 왔고 예수님 자신께서도 예고하신 하나님의 계획의 성취임을 이들 세 장에서 명확히 밝혀 나갑니다. 따라서 본 이야기 단락에서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은 예수님의 적대자들의 승리가 아니라 하나님과 예수님의 승리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말씀은 예수님께서 고난 받고 죽으시기전에 있었던 사건, 곧 예수님과 제자들이 마지막 유월절 만찬을 하시는 사건입니다.

1-2절에 보면 예수님은 모든 가르침을 마치신 후 지금까지 반복해서 예고하신 자신의 십자가 죽음이 이제 곧 일어날 것임을 밝히셨습니다. 이는 앞으로 전개될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이 단순히 예수님의 적대자들의 음모의 결과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계획의 결과임을 재차 확인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수난과 죽음의 사건들을 미리 아시고 자발적으로 받아들이시고 계심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이 ‘유월절’에 일어날 것이라는 점은 우연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유월절이 애굽에서 이스라엘의 구출을 의미하는 사건이고, 특히 그와 더불어 양이 희생되었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자신의 죽음이 유월절에 일어날 것이라는 예수님의 예고는 그의 죽음이 자신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한 대속적 죽음이라는 점을 강력히 시사해 주고 있습니다.

3-5절에 보면 그 때에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가야바의 집에 모여 예수를 잡아 죽일 궤계를 꾸미고 있었습니다. ‘가야바’는 주후 18-36년 기간 동안 대제사장으로 재직한 인물로서, 전임 대제사장 안나스의 사위였습니다. 이들은 대제사장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논의 결과 명절에는 민요가 날까하여 하지 말자고 하였습니다. 이런 그들의 악한 모습은 뒤이어 나타나는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부은 여인의 행동과는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6-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 계실 때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식사하시는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문둥이 시몬은 이전에 예수님으로부터 자신의 병을 치유 받았습니다. 그는 그 은혜에 감사하여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초청하여 식사대접을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식사 하고 계실 때 한 여인이 나와서 그의 머리에 ‘매우 값비싼 향유’를 부었습니다. 그녀가 왜 이런 행동을 했는지는 잘 알 수 없습니다. 아마도 그녀는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시라는 자신의 신념을 이러한 행동으로 표현한 것 같습니다. 마가와 누가는 그 향유를 ‘나드’라고 밝혔습니다. ‘나드’는 인도에서 수입된 극상품 향유로서 대개 죽은 자를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여인의 행동을 본 제자들의 반응이 어떠하였습니까? 8-9절에 보면 제자들은 분히 여기며 “무슨 의사로 이것을 허비하느뇨? 이것을 많은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며 여인을 책망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떻게 보셨습니까? 10-12절에 보면 예수님은 그녀가 행한 일이 낭비가 아니라 자신에게 ‘좋은 일’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행동이 좋은 일인 이유를 12절에서 밝혀 주셨습니다. “이 여자가 내 몸에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사를 위하여 함이니라.” 예수님은 여인이 한 행동이 자기에게 좋은 일인 이유는 그것이 자신의 장사를 준비한 일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이 시점에서 그녀가 예수님의 몸에 향유를 부은 것은 그의 죽음을 준비하는 일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음에 대해 수차에 걸쳐서 교육을 받아 왔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그들은 그 의미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에 반해 이 여인은 예수님의 죽음을 내다보며 그 일을 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여인의 이런 행동 앞에서도 예수님의 죽음보다는 자신들의 눈앞에 보이는 현실적 문제에 집착해 있었습니다. 이것이 제자들의 문제였습니다. 가난한 자들은 항상 제자들 곁에 있을 것이고, 제자들은 그들에 대한 구제를 소흘히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11). 하지만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직면하신 죽음의 의미를 바르게 인식하고 이 여인과 같이 그 일을 위해 준비해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의 아름다운 행동을 역사화 하셨습니다. 13절에 보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이 복음’은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가르침과 능력뿐 아니라, 그분의 죽음까지를 포함하는 것입니다. 이 복음이 온 세상에 선포될 것이라는 예고는 이미 24:14절에서도 언급된 바 있습니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 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그런데 예수님은 이 일이 자신의 제자들에 의해 수행되어야 할 것임을 분명히 밝히신 것입니다. 28:19절에도 보면 주님은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지도자들인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고 모의하였지만, 백성들의 소요를 두려워하여 당장 그 계획을 실행할 수 없는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그런데 15절에 보면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가 그 해결책을 제안하고 나섰습니다. 그것은 백성들의 소요를 피하여 예수님을 잡아 죽일 수 있는 방책을 대제사장들에게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대제사장들에게 넘겨주려는 의도는 본문에는 정확히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 12:6절에 보면 요한은 그의 의도가 돈 때문이었음을 시사해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유다의 배반 이유가 단지 돈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어쩌면 그는 예수님께서 제시하신 메시아 상이 자신의 기대와 너무도 다르다는 사실 때문에 예수님께 대한 극심한 실망감에 빠졌고, 그 결과 그를 배반하기에 이르렀는지도 모릅니다. 하여튼 마태는 유다가 예수님을 넘긴 대가로 받은 돈을 ‘은전 서른 개’로 명시하고 있습니다(15).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의 음모(3-5), 및 가룟 유다의 배반 계획(14-16)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주도하고 계심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21-2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가룟 유다의 배반 계획도 이미 알고 계셨다는 사실을 제자들에게 밝히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이 이처럼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아시면서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음식을 잡수셨습니다(17-20). 그러면서 이 유월절 만찬이 자신의 죽음과 어떤 연관을 갖는지를 밝히셨습니다(26-30). 17절에 보면 무교절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유월절 잡수실 것을 어디서 준비 할까요?” 하고 물었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는 18절에 보면 ‘성안 아무에게’ 가서 준비하라고 했습니다. 마태는 그 집이 누구의 집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예수님은 유월절 식사를 자신의 ‘때’와 연관시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내 때가 가까웠으니.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 하라.” 마태복음 안에서 ‘때’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결정적인 시점, 곧 성취의 때(8:29) 또는 완성의 때(13:30; 21-34)를 의미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본문에서는 때가 예수님의 죽음의 때를 의미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을 하나님께서 정하신 계획이 결정적으로 성취되는 사건으로 이해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유월절 식사가 하나님의 계획의 결정적 성취인 자신의 죽음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밝히셨습니다. 18절에 보면 “가라사대 성안 아무에게 가서 이르되 선생님 말씀이 내 때가 가까웠으니.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 하시더라 하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볼 때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의 때를 인지하시고, 그 때를 의지적으로 준비하시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19절에 보면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시키신 대로 유월절을 예비했습니다. 저물 때에 예수님께서 열 두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만찬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식사 중에 자신의 죽음이 제자들 중 한 사람의 배반에 의해 이루어질 것이라는 충격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21). 이 충격적인 선언을 들은 제자들은 몹시 슬퍼하며 근심스런 표정으로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주님 저는 아니지요?” 이러한 그들의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나와 함께 접시에 손을 담그는 자, 바로 그가 나를 넘겨줄 것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23). 이 대답은 예수님을 배반할 자가 지금 이 식사 자리에 함께 있음을 말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어쩌면 예수님의 이 답변은 시편 41:9절 “내가 신뢰하여 내 떡을 나눠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의 발꿈치를 들었다”고 하신 말씀을 염두에 두신 것 같습니다. 제자들 중 하나가 자신을 넘겨줄 것임을 선언하신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이 단지 제자들 중 하나의 배반에 의한 돌발적인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 가운데 이루어지는 일임을 분명히 밝혀주십니다. 24a절에 보면 예수님은 “인자는 자신에 관하여 기록된 대로 떠나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이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이고, 자신은 그 뜻을 이루기 위해 자발적으로 그 길을 가고 있음을 밝히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그 뜻을 이루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는 배반자의 행동에는 변명의 여지가 있을 수 없습니다. 주님은 가룟 유다에게 임할 화를 생각하시면서 “차라리 태어나지 않은 것이 그에게 더 좋았을 것이라”고 하시며 안타까워하셨습니다(24b).

그러면 예수님의 선언에 대한 유다의 반응은 어떠합니까? 유다의 반응을 복음서 저자들 중 마태만이 유일하게 기술하고 있는데 25a절에 보면 “랍비여, 저는 아니지요?”라고 태연히 묻고 있습니다. 유다는 예수님 앞에 자신의 문제를 내어놓고 회개하기보다 가식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유다의 질문은 다른 제자들의 질문과 동일하지만 한 가지 차이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른 제자들은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불렀는데, 유다는 ‘랍비’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마태복음에서 다른 제자들은 예수님을 랍비라고 부른 적이 없습니다. 이런 사실에 비춰 볼 때 유다가 사용한 이 호칭은 예수님께 대한 그의 인식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시사해 줍니다. 유다의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네가 말하였다”고 간략하게 대답하셨습니다(25b). 예수님의 이 답변은 간접적이지만 긍정적으로 인정하시는 것이 분명합니다. 유다는 이때라도 회개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유월절 식사 중에 자신의 십자가 죽으심의 의미를 설명해 주셨습니다. 26-28절에 보면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떡을 들고 축복 기도를 하셨습니다. 떡을 들고 축복 기도를 드리신 후에 제자들에게 주시는 모습은 마치 무리들을 먹이신 두 차례의 기적들을 생각나게 해 줍니다(14:19; 15:36). 그런데 주님께서는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받아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떡을 자신의 몸과 일치시키고 있습니다(26). 떡을 쪼개시는 행동은 자신의 몸이 찢기시게 될 것임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입니다. 떡을 ‘받아서 먹어라’는 명령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죽으심의 효력을 누려야 함을 시사해 주고 있습니다(26b). 이스라엘이 유월절 음식을 먹음으로써 애굽에서 탈출한 의미를 되새기고, 구원의 은혜를 누리게 되듯이, 제자들도 떡을 먹음으로써 예수님의 구속적 죽음의 의미를 되새기고, 그 죽음의 효력을 함께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것은 죄사함을 얻도록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고 하셨습니다(28). 예수님의 이 말씀은 구약과의 다양한 연관성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이 말씀은 유월절 양의 희생을 연상케 해줍니다. 한편 세부적으로 ‘언약의 피’는 출애굽기 24:8절을 반영해 주고 있습니다. “모세가 그 피를 취하여 백성에게 뿌려 가로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 또한 ‘죄사함을 얻도록’과 그와 연관된 ‘언약’은 예레미야 31:31-34절을 반영해 주고 있습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하였음이니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여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또한 ‘죄사함을 얻도록…흘리는 나의 피’는 이사야 53:10절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를 반영하고, ‘많은 사람’이 죄사함을 얻도록 자신의 목숨을 주는 모습은 이사야 53:12절 “이러므로 내가 그로 존귀한 자와 함께 분깃을 얻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하시니라”를 반영해 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구약적 배경은 예수님의 죽음이 구약에서 예언된 새 언약을 제정하는 성취적 사건임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구약의 시내 산 언약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민족 사이에 맺어졌습니다. 또한 구약의 언약은 희생제물의 피를 필요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점들에 있어서 새 언약도 예외가 아닙니다. 다만 구약의 언약은 양이 희생 제물로 피를 흘림으로써 성립되었는데 반해 이제 새 언약은 많은 사람이 죄 사함을 얻도록 예수님 자신께서 피를 흘리심으로써 성취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 이제 새 언약은 옛 언약과 달리 하나님과 예수님의 언약의 피를 마시는 자들로 새로이 구성된 백성 사이에 맺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흘리신 언약의 피는 진정한 이스라엘을 구성하는 새로운 기반을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유월절 만찬을 통해서 성찬식을 재정하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성찬식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찬식에 관하여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첫째로, 이 성찬식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기억해야 하는 하나의 기념식이라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22:9절에 보면 주님께서는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성찬식을 통해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살이 찢기시고 피를 쏟으신 주님의 대속의 죽으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의미를 새기며 주님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려드려야 합니다. 둘째로, 이 예식은 기념 이상의 교통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오고 오는 모든 시대에 주님의 제자 된 무리들이 모여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며 이 교통하심에 참여할 것입니다. 이 신성한 기념적 의식을 통하여 그들은 예수님과 실제적이며, 신령한 교통 속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셋째로, 이 예식은 교통 이상의 언약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즉 이 예식이 의미하는 것은 그 성찬에 동참하는 사람들은 주님께서 원하시는 모든 일에 주님과 하나가 되어서 참여한다는 것을 선언하는 언약인 것입니다. 옛 유월절 예식은 탈출의 예식이었고, 또한 소망의 예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새 예식은 탈출의 예식이긴 하지만 이 탈출은 주님께서 이미 완성하신 것으로서 우리의 마음을 앞으로 다가올 것에 대한 소망으로 채우는 것이 아니라 이미 성취된 승리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 채우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성찬의 예식에 참여하는 것은 주님을 기억하기 위함이며, 주님과 교제하기 위함이며, 또한 주님을 향한 충성을 서약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명하신 성찬식을 거행하면서 이 사실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성찬식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하시고 우리가 늘 그것을 행하며 그 은혜에 참여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2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승리하게 될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실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나라’에서 제자들과 함께 새 포도주를 마시게 되는 메시아적 잔치를 바라보셨습니다. 이 메시아적 잔치는 예수님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도 함께 동참하시는 잔치입니다. 이 메시아적 잔치는 장차 주님의 재림을 통해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가 극치에 이를 완성된 메시아적 잔치를 의미합니다. 주님은 십자가와 부활과 재림을 통해 이루어질 진정한 승리를 바라보셨습니다. 30절에 보면 유월절 식사가 끝나자 예수님은 유월절 전통을 따라 찬송하며 ‘감람산’으로 가셨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도 주님께서 바라본 하나님 나라에서 이루어질 진정한 메시아의 잔치를 바라보게 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도 그 잔치에 참여하는 복된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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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4 [마태복음 14장] 오병이어 표적! 마 14:1-21 손재호 2007-04-23 4063
423 [마태복음 27장] 사형선고를 받는 왕 마 27:1-26 손재호 2007-11-04 4055
422 [마태복음 5장] 마음이 청결한 자! 마 5:8 손재호 2006-02-19 4054
421 [요한일서 4장] 영을 다 믿지 말고 요일 4:1-6 손재호 2008-02-17 4033
420 [베드로전서 2장] 두려워함으로 순복하라 벧전 2:18-25 손재호 2012-01-08 4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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