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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창 11:1-9
성경본문내용 (1)온 땅의 구음이 하나이요 언어가 하나이었더라(2)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하고(3)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4)또 말하되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5)여호와께서 인생들의 쌓는 성과 대를 보시려고 강림하셨더라(6)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후로는 그 경영하는 일을 금지할 수 없으리로다(7)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그들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8)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신 고로 그들이 성 쌓기를 그쳤더라(9)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케 하셨음이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강설날짜 2008-08-10

2008년 8월 10일 설교


바벨탑과 하나님


말씀:창세기 11:1-9

우리는 지난 시간에 함의 후손 영걸들과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성취되는 지를 살펴봤습니다. 함의 후손 영걸들과 같이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다들 자기의 바벨탑을 쌓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나는 바벨탑을 쌓지 않는 데요’하는 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사람들이 쌓는 바벨탑은 함의 후손들이 쌓은 건축물로서의 바벨탑이 아니라, 자기 이름의 바벨탑입니다. 자기 이름에 최고의 가치와 의미를 두고 사는 것이 바로 바벨탑을 쌓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 이름에 최고의 가치와 의미를 두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까? 이름이란 자기의 전 인격과 전 존재를 나타내는 기호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이름이 무가치 해진다는 것은 자기의 존재가 무가치 해지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싫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은 명예훼손죄가 중한 죄입니다. 이처럼 자기 이름에 최고의 가치를 두고 사는 그런 의미에서 모든 사람은 자기의 바벨탑을 쌓고 있는 것입니다.

1-4절에 보면 “온 땅이 구음이 하나요, 언어가 하나이었더라.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하고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또 말하되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라고 했습니다. 홍수 심판 후 노아의 자손들로 인해 세상에 사람들이 번성하여 나갔기 때문에 온 땅이 구음이 하나요, 언어가 하나였습니다. 그들은 살기 좋은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야를 만나 거기에 정착하였습니다. 그들이 거기서 무엇을 하였습니까? 성과 대 곧 바벨탑을 쌓았습니다. 그들이 바벨탑을 쌓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기의 이름을 내고 흩어짐을 면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행위는 하나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거역하는 반역 행위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홍수심판 이후에도 창세 때 아담에게 주신 그 축복의 말씀 곧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창 1:28)는 말씀을 노아의 언약에 기초하여 다시 주셨습니다. 창세기 9:1절과 7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홍수 심판 이후 노아에게 반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편만하여 그 중에서 번성하라.”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에 편만하라.’ 이 말씀은 갖기 흩어져서 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을 하나님의 뜻대로 관리하며 다스리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온 세상에 흩어져서 하나님의 문화명령을 수행하는 삶을 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의 힘과 기술로 결집된 도시문명을 싫어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보호를 싫어하고 스스로의 보호를 원하여 가인으로 시작된 도시와 성읍의 건설은 필경 하나님을 배척하는 쪽으로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바벨탑을 쌓았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흩어져서 살라는 명령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행위인 것입니다.

바벨탑과 같은 국가적인 거대한 공사를 하려면 반드시 뛰어난 통치자의 지배아래 효율적인 조직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통치자로서의 자격은 영웅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벨탑을 쌓는 일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니므롯 이였을 것이라고 봅니다. 우리가 영웅이 되기를 원하고 또 다른 영웅을 찾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런 영웅을 통하여 자기세계를 더욱 공고히 구축하고자는 것입니다. 바벨탑은 시날 평지에 세워지는데 ‘시날’이라는 말은 두 강이 나뉘어지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이 시날 평지는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 강이 흐르는 비옥한 지역으로 추정합니다. 인류역사를 볼 때 이 지역은 4대 문명의 발상지입니다. 그들은 이곳에 거대한 바벨탑을 세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적하여 바벨탑을 쌓은 그들을 어떻게 하셨습니까? 5-8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인생들의 쌓는 성과 대를 보시려고 강림하셨더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후로는 그 경영하는 일을 금지할 수 없으리로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그들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신 고로 그들이 성 쌓기를 그쳤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에 불순종하여 자기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지지 않고자 바벨탑을 쌓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이들이 바벨탑을 쌓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적하게 되는 것은 한 족속이요, 하나의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그들이 바벨탑을 쌓지 못하고 온 지면에 흩어지도록 하기 위해 언어를 혼잡케 하셨습니다. 곧 수많은 언어를 사용하게 하셨습니다. 그러하여 서로 말을 알아듣지 못하게 하여 공사가 이루어 질 수 없게 하신 것입니다. 9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서로 말이 통하지 않게 하여서 말이 통하는 사람끼리 온 지면에 흩어지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바벨’이라는 말이 ‘혼잡케 하다’라는 그런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언어를 혼잡케 하여 바벨탑을 쌓는 그들을 온 지면에 흩어지게 하심으로 창조 때와 홍수 심판 후 노아에게 말씀하신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말씀이 성취되게 하셨습니다. 온 인류가 한 마음으로 뭉쳐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자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약속하신 말씀을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지게 하셨습니다.

그러면 이 바벨탑 사건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먼저 우리는 오늘날 이 바벨탑의 사건을 보면서 우리가 얼마나 우리 이름을 드러내는 그런 바벨탑을 쌓고 있는가를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 이와 같은 우리의 모습을 확인하고 회개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오직 주의 이름만을 부르며,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들을 보면 먼저 자신의 개인적인 이름을 내고자 하는 욕망이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처음에 사람을 당신의 형상대로 그 이름을 아담이라고 지어주신 것은 그가 그 이름을 지어주신 주인의 말에 순종하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가 최초로 무엇을 발견하면 자기 이름을 붙이지 않습니까? 그렇게 이름을 지음으로 이름을 지어 주신 분의 솜씨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범죄 한 이후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곧 자신의 영광을 구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이것이 범죄 한 인간의 본성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이름도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입신양명(立身揚名)이지요. 출세하여 이름을 날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자기의 이름만 날리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이름도, 가문의 이름도 덩달아 날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효도라 하여 족보 책에도 보면 입신양명한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페이지를 더 많이 할애하여 그 업적을 자세하게 기록하는 것입니다. 이러다 보니 우리가 자녀를 닦달하면서 공부하라고 하는 것도 다 너 잘되라고 한다고 하지만 사실 그 자녀의 잘 됨은 곧 자기 자신의 이름과 직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 인생은 일평생 자기 이름 하나 제대로 내어보고자 하는 그런 바벨탑을 쌓다가 한평생을 보내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자기 이름을 위하여 탑을 쌓았다가 비참하게 죽은 사람이 두 사람 있습니다. 그가 사울 왕과 압살롬입니다. 사무엘상 15:12절에 보면 사울은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웁니다. “사무엘이 사울을 만나려고 아침에 일찍 일어났더니 혹이 사무엘에게 고하여 가로되 사울이 갈멜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고 돌이켜 행하여 길갈로 내려갔다 하는지라.” 전쟁의 승리는 여호와께서 싸우심으로 승리 한 것인데 그는 자기를 위해 기념비를 세운 것입니다. 이런 사울왕의 최후가 어떠합니까? 사울 왕의 최후가 얼마나 비참하였는지는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사무엘상 31:1-13절에 보면 사울 왕은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자신의 두 아들 요나단과 아비나답과 함께 전사했습니다. 사울 왕이 화살을 맞아 부상을 당했는데 그는 이방인의 손에 죽는 수치를 면하기 위해 병기든 자에게 칼을 뽑아 죽여  달라고 했지만 병기든 자가 그렇게 하지 못하자 자신이 칼을 뽑아 그 위에 엎드려져 죽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사울 왕의 시신을 가져다가 목을 베고 갑옷을 벗긴 후 시체를 벧산 성벽에 못 박아 달았습니다. 이처럼 사울 왕은 자신의 이름을 내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사무엘하 18:18절에 보면 압살롬이 자기의 대를 이을 아들이 없어서 자기 기념비를 세웁니다. 이런 압살롬의 최후가 어떠합니까? 14절 이하에 보면 다윗 왕이 선대하라고 하는 부탁에도 불구하고 다윗 왕의 신하들에 의해 무참히 살해를 당합니다. 압살롬은 요압의 창에 심장이 찔려 죽어 갈 때 요압의 병기 맡은 자들이 둘러싸 쳐 죽입니다. 이에 무리들이 압살롬의 시체를 구덩이에 던지고 그 위에 돌무더기를 쌓았습니다. 이처럼 자기를 위해 기념비를 세운 압살롬의 최후는 비참하였습니다.

오늘날도 가끔 자식이 없는 사람이나 자수성가한 사람들이 사회에 기부금을 내든지, 자신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공적 비를 세우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런 것도 결국은 자기의 이름을 위한 것입니다. 이러한 개인적 바벨탑 쌓기가 좀더 확대되어 나타나는 것이 창세기의 바벨탑과 같은 국가적인 차원의 바벨탑인 것입니다. 결국 인간들이 힘을 합하여 만들어 내고자하는 것이 바벨탑임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은 세상의 원리입니다. 뭉쳐야 산다는 것은 힘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종교에서도 서로의 힘을 과시하기 위하여 힘을 모으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속한 것이 아니기에 예수님은 이 땅의 힘과 세력을 원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오늘날 예수를 믿는 다는 사람들이 세상의 힘을 원하고 있다는 것은 마귀에게 속고 있는 것입니다. 속고 있으면서도 속는 줄도 모르고 힘을 가지기 위하여 안달을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개인이 결국 자기의 이름을 내기 위하여 바벨탑을 쌓고 있는 것이기에 이러한 개인이 모인 것이 사회요, 국가입니다. 그러니 단체가 구하는 것도 결국은 바벨탑입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속한 가정이나 단체나 국가는 무조건 잘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곳에 내 이름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도 예외가 아닙니다. 다른 교회는 다 망해도 우리 교회는 잘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영광입니까?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자기 이름 때문입니다.

이처럼 개인이 자기 이름에 가치를 두고 바벨탑을 쌓는 것이 결국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며, 망하는 길입니다. 마찬가지로 단체나 국가가 자기 이름을 내는 것도 결국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기에 망하는 것입니다. 역사적인 바벨론의 멸망은 예레미야 50-51장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이름을 내고 자기 힘으로 흩어짐을 면하자는 것이 자력으로 구원을 이루어 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벨탑을 쌓는 자들의 사상입니다. 많은 과학자들이 지구의 자원의 고갈을 염려 합니다. 벌써 인구가 60억을 넘었습니다. 지구의 자원이 고갈되면 어떻게 합니까? 그래서 천문학적인 돈을 투자하면서 우주를 개척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우리는 살아남을 것이라는 바벨탑을 쌓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상을 다니엘서에서는 어떻게 봅니까? 다니엘 2:31-45절을 보면 “왕이여 왕이 한 큰 신상을 보셨나이다. 그 신상이 왕의 앞에 섰는데 크고 광채가 매우 찬란하며 그 모양이 심히 두려우니. 그 우상의 머리는 순금이요 가슴과 두 팔은 은이요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요 그 종아리는 쇠요 그 발은 얼마는 쇠요 얼마는 진흙이었나이다. 또 왕이 보신즉 손대지 아니한 돌이 나와서 신상의 쇠와 진흙의 발을 쳐서 부서뜨리매. 그 때에 쇠와 진흙과 놋과 은과 금이 다 부서져 여름 타작마당의 겨 같이 되어 바람에 불려 간 곳이 없었고 우상을 친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나이다. 그 꿈이 이러한즉 내가 이제 그 해석을 왕 앞에 아뢰리이다. 왕이여 왕은 여러 왕들 중의 왕이시라 하늘의 하나님이 나라와 권세와 능력과 영광을 왕에게 주셨고 사람들과 들짐승과 공중의 새들, 어느 곳에 있는 것을 막론하고 그것들을 왕의 손에 넘기사 다 다스리게 하셨으니 왕은 곧 그 금 머리니이다…이 여러 왕들의 시대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망시키고 영원히 설 것이라. 손대지 아니한 돌이 산에서 나와서 쇠와 놋과 진흙과 은과 금을 부서뜨린 것을 왕께서 보신 것은 크신 하나님이 장래 일을 왕께 알게 하신 것이라 이 꿈은 참되고 이 해석은 확실하니이다”라고 했습니다. 바벨론 왕이 꾼 꿈을 다니엘이 해석하여 주는 것입니다. 그 당시의 세계 최고의 강대국이 바벨론인데 바벨론의 왕을 누가 세웠습니까? 하나님께서 세우셨습니다. 그러므로 바벨론 왕이 꾼 그 꿈의 내용이 큰 신상인데 금과 은과 놋과 철과 진흙이 섞인 그런 신상을 본 것입니다. 금은 임금이고 그 다음에 은 같은 나라, 놋 같은 나라, 철 같은 나라, 철과 진흙이 석인 나라가 일어날 것과 그 신상이 결국은 사람이 손으로 하지 않는 산에서 뜨인 돌이 날아와서는 그 신상을 부수고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신다는 것입니다. 34-35절에 보면 “또 왕이 보신즉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하고 뜨인 돌이 신상의 철과 진흙의 발을 쳐서 부숴뜨리매 때에 철과 진흙과 놋과 은과 금이 다 부숴져 여름 타작마당의 겨 같이 되어 바람에 불려 간 곳이 없었고 우상을 친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상에 가득 하였나이다”고 했습니다. 즉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 낸 모든 국가와 세계를 호령하고 통치하는 나라들도 사람의 손에 의하지 않은 뜨인 돌에 박살이 나서 다 사라지고 그 뜨인 돌만 태산으로 우뚝 서는 것입니다. 그 뜨인 돌로 이루어진 나라가 바로 44절에서 하나님이 세우신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영원히 망하지 아니하는 나라에서 살려면 사람의 손으로 아니한 나라에 속하여야 되는 것입니다.

그 나라가 어떤 나라입니까? 아들의 나라입니다. 사람의 손이 가미되지 않은 주님 홀로 십자가 지신 그 나라만 영원히 망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손으로 세운 것은 흔들어 무너뜨려 버리고 흔들리지 아니하는 나라만 남기시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26-29절을 보면 “그 때에는 그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거니와 이제는 약속하여 이르시되 내가 또 한 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하셨느니라. 이 또 한 번이라 하심은 진동하지 아니하는 것을 영존하게 하기 위하여 진동할 것들 곧 만드신 것들이 변동될 것을 나타내심이라.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고 했습니다. 흔들리지 아니할 것만 남기시기 위하여 땅 뿐만 아니라 하늘까지 흔들어 버리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늘의 별들도 익은 무화과가 떨어지듯이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이때에 흔들리지 아니할 나라의 위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 나라는 아들의 피뿌림으로 이루어진 나라입니다. 이 나라에 들어간 자는 이제 자기 이름을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주의 이름만을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행전 4:12절에 보면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도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 외에는 구원자가 없음을 말할 뿐만 아니라 자기의 이름을 내세우는 자도 구원의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베드로가 성령 충만하여 행한 설교입니다.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시고 이 이름의 권세가 날 때부터 앉은뱅이 된 자를 고쳤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11절에 보면 “이 예수는 건축자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셨느니라”라고 합니다. 사람의 손에 버려졌기에 사람의 손이 가미되지 아니한 돌로서 이제 모퉁이 돌이 되어 새롭게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내 이름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의 이름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물론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는 자만 불러내시지만 어쨌든 우리의 자격 우리 이름의 자격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의 이름만이 구원의 능력이 되고 그러므로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주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자기의 이름은 죽었다는 것입니다. 다시는 자기의 바벨탑을 쌓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자! 우리 이름을 내자.’ 이러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합니다. 오직 주의 이름만 높아져야 하는 나라에서 어찌 죄인의 이름을 드러낸단 말입니까?

요한계시록에 보면 구원받은 자의 이마에 누구의 이름이 있다고 합니까? 요한계시록 3:12절을 보면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이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고 했습니다. 이기는 자, 곧 적은 믿음으로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한 이긴 자에게 이름을 기록해 주시는데 하나님의 이름과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예수님의 새 이름이 기록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요한계시록 22:4절에서는 한가지로 나타납니다. 천국에서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게 되는데 그 종들의 이마에 그의 이름에 새겨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우리의 이름과 자존심을 그만 챙겨야 합니다. 우리가 언제까지 바벨탑을 쌓겠습니까? 언제까지 자, 우리 이름을 내자고 하시겠습니까? 우리의 이름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사 오직 우리의 구원은 주의 이름에 있음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나의 이름 챙기지 말게 하시고, 오직 주의 이름을 위하여 사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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