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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요 1:14-18
성경본문내용 (14)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15)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거하여 외쳐 가로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니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16)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17)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18)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강설날짜 2009-08-23

2009년 8월 23일 설교


독생자의 영광!


말씀:요한복음 1:14-18

지난주에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데 있어서 가장 방해되는 것 중의 하나가 내가 예수를 믿어 주었다고 하는 생각에 대해서 생각해봤습니다. 내가 예수를 믿어 주었다고 하면 할수록 나의 영광을 챙기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5:44절에 보면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사람들마다 자기 영광관에 붙들려 있습니다. 곧 사람들마다 다 자기 영광을 구하는 본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영광관 곧 자기 영광을 구하는 것이 깨어져야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을 구하는 것입니다. 교회란 세상의 영광을 구하는 곳이 아니라 독생자의 영광을 구하는 곳입니다. 독생자의 영광을 바로 알고 볼 수 있는 사람이 모인 곳이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세상 영광이 무엇인지, 독생자의 영광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면 이미 그 사람은 하나님께로서 난 자입니다.

요한복음 1:5절에 보면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고 했습니다. 빛이 왔으되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람들이 어두움에 붙들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떤 자들이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까?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입니다. 하나님께 은혜를 입고 택하심을 받은 자들은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보게 되며, 그 분이 어떤 분이심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만이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보고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가 주어집니다. 지난주에 살펴본 대로 이런 은혜가 주어지는 것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그 어떤 노력이나 뜻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에게만 이런 은혜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은 또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예수님의 영광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예수님의 영광이 어떠합니까? 오늘 본문 요한복음 1:14절을 보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예수님의 영광은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과연 예수님의 겉모습이 그렇게 대단한 영광스러운 모습이었습니까? 화려하고 찬란하고 광채를 풍기면서 살았습니까? 아닙니다.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겉모습은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초라한 모습이었습니다. 이사야 53장에 보면 예수님의 몰골에 대해서 예언되어 있습니다. 이사야 53:1-3절을 보면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보면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다’는 말이 나옵니다. 여러분! 가뭄이 심해 바짝 마른 땅에서 잡초가 나오면 그 잡초가 싱싱하겠습니까? 시들어 보잘 것 없겠습니까? 시들어 보잘 것 없겠죠. 이처럼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겉모습은 말라 비틀어져서 풍채도 없었습니다.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했습니다. 남들 보기에는 흠모할 만한 아무런 풍채도 없고 싫어버린 바 되고 외면당할 수밖에 없는데도 불구하고 세례 요한은 거기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본다’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육신의 눈으로 보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그 영광의 본체를 아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인들이 독생자의 영광을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기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 곧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것을 본다는 것이 참으로 은혜인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예수님을 보고 독생자의 영광임을 아는 것이 왜 기적이며, 은혜인 것입니까? 우리가 독생자의 영광을 알기 위해서 먼저 세상 영광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세상 영광이란 어떤 것입니까? 사람들은 세상에서 언제 영광스럽다고 합니까? 사람들은 무언가 승리하였을 때, 아니면 목표를 달성하였을 때, 그리고 크고 놀랍고 위대하고 아름다운 일을 하였을 때 영광스럽다고들 합니다. 예를 들어서 집안에 유엔 사무총장이 나온다거나, 대통령이나 총리가 나온다거나, 고시에 합격하거나, 별을 달거나, 서울대학교에 들어가면 가문의 영광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고향 동네에는 플렌 카드를 내 걸고 잔치를 합니다. 죽으면 비석을 세운다거나 사당을 지어서 그 영광을 후손들에게까지 물려주고자 합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출세하는 것을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영광은 세상적인 영광입니다. 그런데 사탄은 이러한 세상의 영광을 가지고 예수님을 유혹하였습니다. 마태복음 4:1-11절에 보면 사탄은 첫째로, 돌로 빵을 만들어라고 유혹했습니다. 빵문제는 곧 경제 문제입니다. 둘째로, 사탄은 산에 올라가 세상의 영광을 보여 주며 나에게 절하면 이것을 다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셋째로, 사탄은 종교적인 문제로 예수님을 유혹했습니다.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사자들을 보내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할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사탄이 예수님을 유혹한 세 가지가 다 세상의 영광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모습입니다. 돈 잘 벌고, 세상의 영광스러움과 종교적인 기적과 체험까지 나타낼 수 있다면 이보다 더한 세상의 영광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사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이것을 위하여 달려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와 같은 유혹은 인류 최초의 유혹이며, 동시에 최후의 유혹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세상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보면 무엇이 그렇게 바뿐지 너무 바쁘게 삽니다. 특히 서울에 가보면 이 사실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제가 서울에서 공부할 때 아침 출근길에 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지하철로 쏟아져 들어옵니다. 무엇이 그렇게 바뿐지 마치 개미 떼가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과도 같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렇게 바쁘게 사는 것도 다 따지고 보면 예수님께서 사탄에게 미혹을 받은 이 세 가지 안에 다 들어갑니다. 이러한 세상의 영광만 바라보고 사는 사람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예수님을 보고서 하나님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을 알아본다는 것이 하나님의 크신 은혜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인간의 힘과 노력으로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은혜는 오직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자신들을 볼 때 우리가 얼마나 세상 영광에 젖어있는지 독생자의 영광에 무지하고, 시시하게 여겨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이와 같은 모습이 자식을 사랑하는 모습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자식을 얼마나 사랑합니까? 하나님의 영광보다도 자식이 잘되고, 자식이 이 세상에서 영광을 얻기를 얼마나 바랍니까? 그런반면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을 얼마나 보기를 원합니까? 대부분의 부모들은 하나님의 영광보다 자식의 영광을 더 귀하게 여깁니다. 이것은 모든 인간의 죄악된 본성입니다. 우리 가운데 자식의 영광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더 구한다고 자부할 수 있는 분들이 얼마나 될까요? 우리가 자식이 좋은 대학교에 들어가고 잘되는 것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귀하게 여기지 않습니까? 자식들이 공부 잘하여 좋은 성적을 받아 올 때 우리가 얼마나 기쁩니까? 자식이 공부 잘하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도록 하기 위해 얼마나 마음을 씁니까? 자식이 공부 잘하고 좋은 대학교에만 들어갈 수 있다면 우리 부모들은 무엇이든지 뒷바라지 해 주고자 합니다. 물론 이것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죠. 그런데 문제는 이런 자식에 대한 사랑이 하나님에 대한 사랑보다 앞서서 항상 하나님이 우리 마음에서 두 번째 자리로 밀려나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가 자식들에게 공부 잘하는 것보다 예수 믿는 것이 더 기쁘다고 말해주는 부모님이 계십니까? 이 세상에서의 영광보다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해주는 부모가 있습니까? 저는 자식들에 대한 저의 자세와 하나님에 대한 나의 자세를 대비해 보면서 마음을 점검해 볼 때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안타까운 것은 내가 자식들을 사랑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신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독생자의 영광을 볼 수 없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독생자의 영광을 본다는 것은 기적이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어느 누구도 독생자의 영광을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독생자의 영광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독생자의 영광이 무엇인지 성경이 증거 하는 말씀을 통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빌립보서 2:6-8절을 보면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독생자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시지만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신 것입니다. 자기를 낮추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신 것입니다. 이와 같은 독생자의 영광은 역설적인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종이 되는 것이 영광입니까? 부끄러움입니까? 일반적으로 부끄럽게 여깁니다. 세상에서의 영광이란 미꾸라지가 용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독생자의 영광은 종의 모습으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자기 자신을 낮춤이 영광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이 독생자의 영광을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낮아지심과 십자가의 죽으심이 왜 영광이 되는 것입니까? 누가복음 1:14절에 보면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라고 했습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마구간에 누워계시는데 이것을 천사가 무엇이라고 노래합니까? ‘지극히 높으신 곳에서 하나님께 영광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사건이 독생자가 마구간에서 태어난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주님께서 영광이라고 하는 것은 세상의 영광과 분명 반대되는 것이지요? 그러면 가난하여 어렵게 태어난 사람은 다 영광스러운 것인가요? 결코 그런 것은 아닙니다. 독생자, 곧 하나님의 아들이 말구유에 누이신 것이 표적이라고 합니다. 말구유는 말 먹이통입니다. 짐승 같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자신을 낮추시고 말구유에 오신 것이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러 오신 하나님의 메시아라는 표적이라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12절에 보면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주는 표적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탄생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이 드러나는 것이기에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손으로, 사람의 능력으로 무엇을 만들어 내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독생하신 그 분을 보니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것이 보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독생자의 영광인데, 그런데 이 영광을 누구만 알아보는 것입니까? 하나님께로서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만이 알아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낮아지심이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라고 천사들이 노래하는 것입니다(눅 2:14). 오직 하나님께로서 기뻐하심을 입은 자들만이 독생자의 영광을 아는 것이고, 그 평화를 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사람의 공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탄생의 모습만 이러한 모습입니까? 예수님의 이 땅에서의 삶의 모습은 어떠하였습니까? 앞에서 본 이사야 53:1-3절을 다시 보면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예언의 말씀대로 사신 것입니다. 멸시를 당하시고, 사람들에게 싫어버린바 되시고, 많은 간고와 질고를 겪으셨습니다. 정말 예수님의 세상에서의 생애는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영광과는 정반대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해 군병들에게 수난 받으실 때 그의 모습이 얼마나 비참했으면 그 얼굴을 마주보고 침을 다 뱉었겠습니까? 우리가 어느 정도 멸시천대를 해야 얼굴에 침을 뱉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아들이 그 정도의 수모를 받았다는 것이 어느 정도의 비참한 자리인지 상상이나 되십니까? 우리가 어지간히 나쁜 짓을 하지 않고서는 그 사람을 향하여 침을 뱉지 않습니다. 뒤로야 욕할지 모르지만 상대방의 면상에 대고 그렇게 침을 뱉는다는 것은 여간해서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얼굴에 침 뱉음을 당하셨습니다. 얼마나 무시하였으면 그렇게까지 하였겠습니까? 우리가 영화나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예수님의 얼굴 뒤의 후광이 비치고 신비한 위엄이 있었다면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이처럼 낮아지심이 결국은 십자가로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를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 독생자의 영광과 십자가의 영광이 얼마나 세상의 헛된 영광을 고발하고 있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억지로 짜내고 짜내어 사람들 보기에 멋있는 건물 만들어 놓고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우스운 이야기가 되어 버립니까?

요한복음 13:31-32절을 보면 “저가 나간 후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지금 인자가 영광을 얻었고 하나님도 인자를 인하여 영광을 얻으셨도다. 만일 하나님이 저로 인하여 영광을 얻으셨으면 하나님도 자기로 인하여 저에게 영광을 주시리니 곧 주시리라”고 했습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영광을 얻으셨고, 하나님도 영광을 얻으셨다고 말씀하시는데 무엇 때문에 영광을 얻으셨다고 하십니까? 이 말씀은 저가 나간 후에, 곧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기 위하여 나간 후에 하시는 말씀입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러 나간 것은 이제 곧 예수님께서 잡히셔서 십자가에서 죽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십자가를 통하여 예수님이 영광 받으시고 하나님께서도 영광을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왜 영광이 되는 것입니까? 이것이 영광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과 은혜가 그 십자가에서 가장 크게 드러나는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영광을 이해하게 될 때 이제 주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를 제대로 아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아들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알지 않기로 작정하고 십자가만 자랑하겠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2:2절에 보면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십자가에서 독생자의 영광을 본 것입니다. 그러자 지금까지의 영광은 갑자기 배설물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빌립보서 3:8-9절에 보면 바울 사도는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고 했습니다. 사도 요한은 그 독생자의 영광이 얼마나 충만한지 요한복음 1:16절에서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고 말하였습니다. 이처럼 독생자의 영광이란 십자가를 통한 영광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세상 영광의 유혹에 넘어질 때가 많이 있습니다. 돈을 많이 벌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합니다. 세상적으로 성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합니다. 많은 사람이 모이는 큰 교회를 이루고, 큰 성전을 지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자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세상에서 성공하여 주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하는 생각이 얼마나 자주 듭니까? 그런데 바로 이런 것이 예수님께서 거절하시는 세상 영광입니다. 지금 우리가 이런 식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독생자의 영광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십자가의 영광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는 독생자의 영광이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만이 알게 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에는 독생자의 영광, 곧 일찍 죽임 당하신 어린양의 영광이 온 세상에 온전히 들어나게 됩니다. 그 앞에서 세상의 모든 헛된 영광들이 날아가 버리게 됩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 영광이 아니라, 독생자의 영광을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독생자의 영광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주님께서 재림하셔서 그 영광을 온 세상에 온전히 드러내실 그 영광의 날을 소망하며, 주님의 영광을 구하는 삶을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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