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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요 3:22-30
성경본문내용 (22)이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유대 땅으로 가서 거기 함께 유하시며 세례를 주시더라(23)요한도 살렘 가까운 애논에서 세례를 주니 거기 물들이 많음이라 사람들이 와서 세례를 받더라(24)요한이 아직 옥에 갇히지 아니하였더라(25)이에 요한의 제자 중에서 한 유대인으로 더불어 결례에 대하여 변론이 되었더니(26)저희가 요한에게 와서 가로되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강 저 편에 있던 자 곧 선생님이 증거하시던 자가 세례를 주매 사람이다 그에게로 가더이다(27)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28)나의 말한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거할 자는 너희니라(29)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였노라(30)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강설날짜 2009-10-18

2009년 10월 18일 설교


그는 흥하여야 하리라


말씀:요한복음 3:22-30

우리는 지난 두 주간에 걸쳐서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와 나눈 대화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오늘 말씀은 그 후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세례 요한은 “사람들이 다 예수님께로 갑니다”라고 하는 제자들에게 자신은 신랑 친구의 기쁨이 충만하다고 하면서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고 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세례 요한의 이 말씀이 구속사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애를 시작하신 후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푸는 요한을 찾아가서 그로부터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시기 때문에 세례를 받으실 필요가 없으셨습니다. 요한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세례 받으러 나오시는 예수님에게 “내가 당신께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하며 세례주기를 거부했습니다(마 3:14). 마태복음 3:15절에 보면 그때 예수님께서는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요구를 들은 세례 요한은 그 의미를 알고 예수님께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이로써 인간의 몸을 입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들의 모든 죄를 뒤집어 쓰셨습니다. 요한이 베푸는 세례를 통해 예수님께서는 ‘세상 죄를 지고 가신 하나님의 어린양’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의미 가운데는 그와 같은 놀라운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세례를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인치심이 뒤따랐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올라오실 때 어떤 하나님의 놀라운 인치심이 있었습니까? 마태복음 3:16-17절을 보면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 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하늘 문’이 열렸습니다. 이 사건은 후일 사도 요한에게 하늘 문을 열고 천상의 세계를 보여주신 주님을 떠올리게 됩니다. 요한계시록 4:1절에 보면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소리 같은 그 음성이 가로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특별한 계시를 통해 사도 요한에게 종말의 때를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바로 그 하늘 문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그에게 임하셨던 것입니다. 하늘 문이 열리고 성령이 그에게 임하셨을 때 하늘로부터 어떤 음성이 들려왔습니까?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예수님을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도장을 꽉 찍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 속에는 ‘예수님만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만한 유일한 인간이다’는 배타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로써 인간의 몸을 입은 거룩한 메시아가 유일한 하나님의 사랑과 기쁨의 대상이 되어 영원한 제물로 받쳐질 것이 증거 되었습니다. 세상 죄를 지신 그 거룩한 어린 양이 하나님께 바쳐지게 됨으로써 이룩될 구체적인 사역이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신 사건은 특별한 구속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곧바로 요단강에서 백성들에게 세례를 베푸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베푸신 세례는 외형상 요한의 세례와 유사한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본질적인 의미에 있어서는 완전히 구별됩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성경 전체적인 문맥을 통해서 볼 때 요한의 세례는 일정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베풀어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에 비해 예수님의 세례는 그의 사역 초기 단계에서 단기간에 베풀어졌던 것 같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푸신 것은 그의 전 사역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베풀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세례를 베푸시는 것은 십자가 사역과 연관된 선언적 의미를 지니고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신 것과 백성들에게 세례를 베푸신 사실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한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세례와 관련된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요한의 세례와 예수님의 세례를 동일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겠습니다. 2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니고데모와 대화하신 후에 제자들과 함께 유대 땅으로 가셔서 거기 함께 유하시면서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그 때 세례 요한도 물이 많은 살렘 가까운 에논에서 세례를 베풀고 있었습니다(23). 이때는 아직 세례 요한이 옥에 갇히지 않은 때였습니다(24). 25절에 보면 그런 상황 가운데 세례 요한의 제자들과 한 유대인 사이에 결례에 대하여 논쟁이 일어났습니다. 그들이 정결예식을 두고 논쟁을 벌였던 까닭은 세례 요한의 세례와 구약 율법의 정결 예식 사이의 연관성 여부에 관한 문제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구약시대 예루살렘 성전의 성소 앞에는 정결예식을 위한 물두멍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정결예식은 성막과 성전의 성소에서 뿐 아니라 일반 가정에서도 절기에 따라 지켜지는 규례였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예루살렘 성전과 성소에 연관되는 정결예식에 대한 논쟁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어린양이자 영원한 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관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여튼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성막과 성소 건립을 명하시면서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제사장들의 정결을 위하여 특별히 물두멍을 만들도록 지시하셨습니다. 출애굽기 30:17-21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물두멍을 놋으로 만들고 그 받침도 놋으로 만들어 씻게 하되 그것을 회막과 단 사이에 두고 그 속에 물을 담으라. 아론과 그 아들들이 그 두멍에서 수족을 씻되 그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 물로 씻어 죽기를 면할 것이요, 단에 가까이 가서 그 직분을 행하여 화제를 여호와 앞에 사를 때에도 그리 할지니라. 이와 같이 그들이 그 수족을 씻어 죽기를 면할지니 이는 그와 그 자손이 대대로 영원히 지킬 규례니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물두멍을 만들어 거기에 담긴 거룩한 물로 제사장들이 씻음으로써 정결케 하도록 지시했습니다. 제사를 드리면서 그 물두멍을 통해 정결케 하지 않는 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이는 외부적 정결을 위할 뿐 아니라 세상으로부터의 단절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더러운 것을 씻어내지 않은 상태에서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가게 되면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되어 죽음을 면치 못하게 됩니다. 따라서 이 정결예식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대대로 지켜야 할 하나님의 규례였습니다. 이처럼 성소 앞의 물두멍과 물은 인간이 거룩한 하나님께 나아가면서 반드시 통과하지 않을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이 죄 없으신 예수님에게 세례를 베푼 의미와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직접 세례를 베푸신 데에는 그와 연관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앞에서 본 대로 영원한 제사장이자 세상 죄를 지고가신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예수님께서 요단강의 세례를 통해 정결한 제사장이 되셨을 뿐 아니라, 자발적으로 인간의 모든 죄를 뒤집어 쓰셨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 가운데서 드러난 상징적인 의미와 더불어 예수님께서 세례를 베푸심으로써 자기 백성들을 친히 정결케 하시는 구속사적 의미를 드러내셨습니다. 그것은 구약 성경의 성취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나야 할 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미처 이러한 의미를 알지 못하는 요한의 제자들과 유대인 사이에 정결예식으로 인한 논쟁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세례 요한과 예수님께서 베푸시는 세례를 보면서 구약의 정결예식과 결부지어 논쟁하면서 그 의미를 찾고자 한 것입니다. 그것은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세례 요한을 하나님께서 특별히 보내신 선지자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발생할 수 있었던 일이었습니다.

그와 같은 논쟁을 벌이고 있는 동안 요한의 제자들은 세례를 받기 위해 자기 스승에게 몰려오던 사람들이 다 예수님에게로 가는 것을 보게 된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세례와 예수님의 세례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지 못한 요한의 제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 이 문제는 아주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요한의 제자들은 그 사실을 스승에게 고했습니다. 26절에 “저희가 요한에게 와서 가로되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강 저 편에 있던 자 곧 선생님이 증거하시던 자가 세례를 주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 제자들의 염려를 들은 세례 요한은 그것이 오히려 당연한 일이라고 답변했습니다. 세례 요한의 답변이 어떠합니까? 27-28절을 보면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나의 말한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거 할 자는 너희니라”고 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그것이 하나님의 구속사역이 계획대로 이루어져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세례 요한은 자신의 제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교훈을 주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자신을 따르던 제자들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역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자기를 따르던 제자들이 자신의 목적을 위한 제자들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을 따르던 제자들이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를 따라야 할 자들임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자기를 따르는 제자들에게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증거할 자가 너희니라”고 하셨습니다. 세례 요한의 이와 같은 자세는 오늘날까지 주님의 몸된 교회 가운데 보여주었던 매우 중요한 본이 되고 있습니다. 곧 오늘날 우리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증거자로서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 가를 모범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의 교사들은 어떤 경우에도 성도들을 자기에게 속한 제자로 만들고자 해서는 안됩니다. 이 세상의 모든 성도들은 주님의 제자가 되어야 하며, 교회에서 가르치는 직분을 가진 모든 교사들은 이 일을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만일 개인적인 종교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제자를 만들고자 온갖 노력을 기울이는 자가 있다면 그는 무지한 교사이거나 주님의 제자가 되어야 할 성도들을 자기를 위한 제자로 가로채는 배도의 길을 걷는 자일 뿐입니다.

세례 요한은 불필요한 염려를 하는 제자들의 말을 듣고 오히려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몰려가야 하는 당위성을 드러냈습니다. 세례 요한의 제자들은 세례를 받고자 요단강으로 나온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몰려가는 것을 보고 염려하였으나 세례 요한은 오히려 그것을 기쁨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세례 요한은 그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 말을 했습니다. 그는 이 세상에 메시아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을 잔치 집의 신랑으로 묘사했습니다. 그는 예수님과 그의 백성 사이를 부부관계로 묘사함으로써 그의 깊은 사랑을 드러냈습니다. 29절에 보면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였노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 가운데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기의 신부를 취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음이 선포되고 있음을 우리는 주의 깊게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실 대상은 마치 신랑의 잃어버린 신부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거짓의 아비요, 살인자와 같은 사탄은 사랑스런 신부와 같은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를 유혹하여 간음을 행함으로써 저의 몸을 더렵혔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의 택한 백성이 그 악한 자와 짝하여 더럽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신실하신 언약에 따라 그들을 구원하러 오신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신부를 맞이하는 신랑으로 예수님을 묘사하면서 이 점을 암시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처음부터 존재했던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볼 수 있습니다. 요한은 그와 관련된 의미를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역시 세례 요한이 깨달았던 것과 동일한 깊은 의미를 가질 때 하나님의 진정한 사랑을 알 수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타락해 창부와 같이 되어버렸으나 원래부터 사랑하고 있던 신부를 구원하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친히 이 세상에 오셔서 그 모습을 드러내신 것을 보며 자기도 그로 인해 큰 기쁨에 충만해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청세 전에 선택하신 당신의 자녀들을 마치 신랑이 신부를 기뻐하듯 영원한 기쁨의 대상으로 삼으셨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하나님을 배반한 인간의 죄악을 더욱 분명히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신부와 같은 자녀들을 되찾기 위해 인간의 몸을 입고 친히 이 세상에 오셨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후일 교회를 구성하여 주님의 신부로서 모습을 갖추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거룩한 피로 값주고 자기의 신부를 도로 사셨던 것입니다. 이로써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친히 구원하신 자신의 신부인 교회 사이에 신비적 혼인관계가 성립되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교회는 결코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놀라운 사랑의 관계에 놓이게 됨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세례를 베푸시는 예수님의 사역과 자기 제자들의 염려를 접하며 중요한 구속사적 의미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30절에 보면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고 했습니다. 세례 요한의 제자들은 이 말씀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만일 우리가 이 말씀을 윤리적인 관점에서 이해하려 한다면 결코 그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이 시대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말씀을 윤리적으로 이해하는데 그치고 있습니다. 현대의 많은 교인들은 하나님과 자신을 마치 동업자 관계에 있는 듯 오해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사람들은 자기가 잘되는 것이 마치 하나님의 뜻인 것처럼 믿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빙자하여 자기의 욕망을 채우려는 전형적인 형태입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는 흥하여 하겠고 자기는 쇠하여야 하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을 윤리적인 차원이 아니라 구속사적인 관점에서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어느 정도 윤리적인 면을 지니고 있다고 할지라도 결코 윤리 자체에 머물러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고 한 말의 진정한 의미는 구약의 완성과 신약의 흥기를 뜻합니다. 즉 자기까지 진행된 구약의 옛 언약이 완성되고 이제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새 언약이 시작되어야 함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인 메시아가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공적사역을 시작함으로써 구약의 모든 역할은 끝이 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례 요한의 이 말을 통해서 구약의 완성과 신약의 성취에 대한 하나님의 구속사적 의미를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세례 요한의 말을 단순히 윤리적인 측면에서 이해하고 내가 희생하고 수고하여서 예수님의 일을 크게 흥하도록 하자라고 생각 하는 것은 아직도 쇠하는 것과 흥하는 것을 세상적으로 비교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도 이 부분을 오해한 것으로 보입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라고 증거했습니다(요 1:29). 그러므로 예수님이 흥하는 길은 곧 잘되는 길은 십자가를 지고 가는 길입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이 감옥에 갇혀서 예수님의 소문을 들으니 과연 메시아일까 하는 의심이 들었습니다. 성령에 의하여 증거하고서도 예수님의 행하심이 흥해야 하는데 곧 빨리 세력을 규합하여 이 세상을 심판하고 다윗의 왕국을 재건하여야 하는데 들리는 소문이 죄인과 함께하시고, 병든 자를 고쳐 주시고, 가난한 자들과 함께 지내신다는 소문을 듣고 자기 제자를 예수님께 보내어 물어보게 합니다. 마태복음 11:2-6절을 보면 “요한이 옥에서 그리스도의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세례 요한이 실족할 만큼 예수님의 하시는 일이 유대인들의 기대에 못 미치는 일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배척 받으신 근본 이유입니다. 적어도 메시아라면 영웅으로 도탄에 빠진 민족을 구원하는 초인이 되어야 하는데 예수님은 나는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내 백성을 나에게로 이끄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 이 말씀을 이해하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비참하게 죽으심이 흥하는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이해 못하는 길이었기에 누구의 도움도 없이 예수님 홀로 걸어가신 그 흥함의 길이 바로 십자가의 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길을 이해하고 따르는 자는 오직 성령이 임한 자만이 따를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고 난 후의 제자들의 자세가 어떠하였습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기 전까지 누가 크냐고 다투던 그들이 ‘나는 아니요. 왜 나를 주목하느냐’고 말하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자기 개인의 권능과 경건의 능력이 아니고, 오직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의 이름이 이루어 내었다는 말을 하면서 제자들도 한결같이 주님의 뒤를 따라 세상에서 비참하게 죽어갔습니다. 이것이 주님을 따르는 자의 길입니다. 자신이 죽었다는 것을 짊어지고 가는 것, 그래야만 그리스도의 능력만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마치 고장 난 차가 견인차에 끌려가듯 하나님의 은혜로 끌려가는 주제에 무엇을 자랑합니까? 끌려가는 자세는 나의 힘이 아니라 견인차의 힘으로 가고 있음을 나타내는 역할이 고장 난 차의 할 일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한다”는 말씀의 참된 의미를 알게 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날마다 자신이 죽은 자임을 확인하며 은혜로 살게 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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