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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요 14:13-26
성경본문내용 (13)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14)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15)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16)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17)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18)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 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19)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터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20)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21)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22)가룟인 아닌 유다가 가로되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게는 아니하려 하시나이까(23)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24)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의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25)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26)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강설날짜 2010-08-22

2010년 8월 22일 설교


또 다른 보혜사


말씀:요한복음 14:13-26

 

우리는 지금 지난 두 주간 요한복음 14장을 살펴봤습니다. 첫 시간에는 ‘처소를 예비하러 가신다’는 의미에 대해서 살펴봤고, 두 번째 시간에는 ‘너희가 나를 알았더면’이라는 제목으로 살펴봤습니다. 오늘도 계속해서 14장을 공부하겠습니다. 오늘은 본문을 통해서 주님께서 약속하신 ‘또 다른 보혜사’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보혜사 성령을 보내어 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13-15절에 보면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무엇이 중요합니까? ‘무엇이든지’가 중요합니까? 아니면 ‘내 이름으로’가 중요합니까? ‘무엇이든지’는 ‘내 이름으로’라는 말에 제한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이름이란 단지 결재용 도장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마음, 예수님의 삶, 예수님의 인격,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때 간구 하신 내용 등 그러한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것에 대해 정리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그저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는 것을 단지 열심히 기도하기만 하면 응답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흔히 마태복음 7:7절을 그렇게 오해합니다.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두드리라 열릴 것이라. 악한 자라도 자기 자식에게 좋은 것을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 여기서 구하면 좋은 것을 주신다고 하니 내가 좋아하는 것을 구하지 하나님 아버지께서 좋아하는 것을 구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복음 11장에 보면 같은 기도의 내용이 나오는데 좋은 것을 무어라고 합니까? 성령입니다. 누가복음 11:9-13절을 보면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아비 된 자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면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면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찌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구한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좋은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이 임하면 어떻게 됩니까? 그리스도처럼 죽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렇게 되도록 간절히 찾고 구하고 두드리겠습니까? 스데반처럼 되는데 구하시겠습니까? 스데반은 돌로 치는 자들을 위해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핍박하는 자들을 향해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이런 기도가 됩니까? 아니면 “저들을 심판하소서.” 그렇게 말합니까? 대부분 후자일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기도라고 하는 것이 전혀 주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말이야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라고 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에서 기도란 무엇입니까? 아들을 인하여 곧 아들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들이 이 땅에 살면서 무엇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입니까? 세상의 것으로 아니라는 것입니다. 곧 세상의 업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기도하신 것입니다. 곧 자신을 위하여 기도하신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구하는 기도를 하였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를 보면 “아버지여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말하는 기도란 내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만이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악한 아비라도 자기 자식에게 좋은 것을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신다는 것과 우리가 좋아하는 것이 다른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아이는 사탕이 좋은데 아버지는 칫솔을 주는 것입니다. 아이는 게임기가 좋은데 아버지는 성경책을 사주시는 것입니다. 아이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것은 괴로운 것이지만 아버지 입장에서는 좋은 것입니다.

 

그러면 기도의 최종 목표가 무엇입니까? 15절을 보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고 했습니다. 기도하면 곧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모든 것을 주신다 하시고서 왜 갑자기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킨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결국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기도의 최종목표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계명을 지킨다는 것도 역시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며,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기도는 나를 사랑하는 것이 최종목표이니 영원한 평행선이 아니라 반대로 가는 것입니다. 이런 우리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기도를 할 수 있을까요? 그러니 예수님께서 보혜사를 보내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구하시는 것은 바로 보혜사를 보내시는 것입니다. 16절을 보면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구하시는 기도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기도는 바로 보혜사를 우리에게 주사 영원토록 함께 거하시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의 최종목표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인데 우리가 안 되는 것을 너무나 잘 아시기에 보혜사를 우리에게 보내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보혜사가 우리에게 오시면 우리의 고집을 꺾으시고 결국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가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를 향한 끝없는 사랑인 것입니다. 우리는 나를 사랑하는데 주님은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내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랑에 결국 항복당하여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노라고 하는 고백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 일을 보혜사께서는 오늘도 이루어 내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욕심을 따라 구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우리를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는 자로 만드시기 위하여 보혜사를 보내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아버지께 구하시겠다는 기도의 내용입니다.

 

그러면 이 보혜사가 무엇입니까? 한문으로는 지킬 ‘보(保)’ 은혜 ‘혜(惠)’ 스승 ‘사(師)’입니다. 은혜로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도우시는 스승이라는 말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도우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또 다른’ 보혜사라고 합니다. 또 다른 보혜사란 예수님과 전혀 다른 분이라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마음과 뜻을 가지신 분이신데 오시는 모습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은 육체로 계시기에 공간의 제한이 있습니다. 그러나 보혜사로 오실 분은 그러한 제한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름입니다. 그러므로 다르다고 해도 예수님의 마음과 성품이 같으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이루어 내시고자 하시는 목표도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말로 성령, 곧 진리의 영, 그리스도의 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구하시는 것은 이 보혜사가 오셔서 자기 백성들을 친히 도우시고 인도하시고 위로하시고 이끌어 가시도록 기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떠나가시는 것이 유익하다고 하시는 것은 자신이 떠나가야 이 보혜사가 오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보혜사의 뜻이 도우시고 위로하시는 분이시라고 하시니 이 보혜사가 오시면 우리를 거저 도와주시고 위로하시고 성공하게 하시고 능력 있게 하시고 펄펄뛰고 날게 하시는 그런 분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성령은 거룩한 영이시고 그리스도의 영이시고 진리의 영이시기에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세상에서 성공하기 위한 그러한 보혜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출세하는데 도움을 주는 성령이 결코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세상에서 환난과 고난을 당하게 하셔서라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게 하시는 역할을 하시는 분이 성령이십니다. 26절을 보면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고 했습니다. 보혜사를 성령이라고 하십니다. 이 성령은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생각나게 하시고 모든 것을 가르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생각나게 하시고 또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것이 바로 성령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17절을 보면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고 했습니다. 이 성령은 세상이 받을 수 없는 영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세상의 것을 추구하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영이라는 말씀입니다. 오히려 세상에서 버림을 받고 배척을 받는 영이 진리의 영입니다. 바로 예수님의 모습을 제자들에게 반복시키는 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누가 이러한 진리의 영을 알 수 있고 받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까? 아무도 원하지 않아야 당연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람들이 원하지 않았듯이 진리의 영을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 것입니다. 진리의 영이 오시면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니 세상과 충돌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이 임한 증거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과연 성령을 받은 자입니까? 우리가 찾고 구하는 바가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의 것들이 아닙니까? 만약 아직도 자신이 예수를 믿어서 세상의 덕을 보고자 함이라면 빨리 회개를 하시든지 아니면 다른 동네에 가보셔야 할 것입니다. 결코 세상의 성공을 예수님이 약속하신 적이 없습니다. 나의 나라는 이 땅에 속하지 아니하였다고 주님이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18:36). 그리고 주님의 택하신바가 되고 주님의 성령을 받은 자는 오히려 세상에서 미움을 받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5:18-19절을 보면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예수님을 사람들이 좋아 하겠습니까? 이게 사람의 능력으로 될 일입니까? 그러므로 세상은 결코 받지 못하는 것이 보혜사입니다. 그리고 혹시 안다고 하여도 원하지 않는 것입니다. 모두가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쾌락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세상에서 어떻게 이것이 죄인 줄 알고 주님을 믿고 주님을 따를 수가 있습니까?

 

다시 17절을 보면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고 했습니다. 세상은 성령을 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저희란 세상과 구별된 예수님의 택하신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주님께서 택하신 자 곧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자들만이 이 성령을 받고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계는 마치 예수님 안에 아버지가 계시듯이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도록 하시는 장치가 바로 성령이 오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처소를 마련하는 것이며, 이렇게 되어 성령이 오시면 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고 예수님이 우리 안에 있음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 안에 진리의 영이 계십니까? 보혜사로 계십니까?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이제 내 안에 보혜사가 계시는지 안 계시는지를 점검해 보고자 합니다. 20절을 보면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고 합니다. 그 날에 즉 보혜사가 오시면 이러한 내용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심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알게 됩니까? 21절을 보면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압니다. 예수님의 계명을 지킨다는 것을 결국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는 압니다. 그러면 지금 내가 예수님을 사랑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분명히 보혜사가 임한 증거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육신을 가지고 이 땅에서 발을 붙이고 사는 한 끊임없이 하나님의 뜻에 저항하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무나 거북스러운 것입니다. 생소합니다. 이런 일이 체질에 맞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생소한 일이 우리에게 생명의 길이 되는 것입니다. 마땅한 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의 뜻을 저항하는지를 우리는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바로 답이 나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기쁩니까? 나를 사랑하는 것이 기쁩니까? 나의 재미와 나의 욕망이 채워지는 것이 기쁩니까? 주님의 욕망이 나에게 채워지는 것이 기쁩니까? 물어볼 것도 없죠. 주님의 요구가 나에게 채워지는 길은 고난의 길입니다. 자기부인, 자기 십자가의 길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두 가지의 욕망 속에 끼워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누가 강합니까? 주님이 강하십니다. 어느 정도로 강하십니까? 영원토록 강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무리 저항하여도 주님이 영원하시니 우리가 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성령을 보내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되고 예수님을 나의 주로 고백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고 정말 우리 안에서 성령 하나님의 역사로 인하여 ‘예수님이 나의 주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입니다’고 하는 고백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이 오셔서 결국 이루어 내실 일이 무엇입니까? 로마서 8:12-30절을 보면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찌니라.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성령이 오셔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시고 그리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신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아들의 신분이 된 것입니다. 이 아들을 이제는 아들다운 자로 만들어 내시는데 그 길이 바로 고난의 길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재 당하는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고난 속에서 우리가 연약하여 탄식하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연약하여 하지 못하는 것을 보혜사 성령께서 친히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간구하고 계십니다. 그리하여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십니다.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십니다. 우리 안에 이러한 소원을 두고 행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이 일을 위하여 성령을 보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의 모습을 돌아볼 때 참으로 한심스럽고 좌절이 되고 낙심이 된다 할지라도 그러나 소망을 잃지 않음은 주님의 약속, 즉 주님께서 보혜사를 보내셔서 영원토록 함께 하신다는 이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22절에 보면 가롯이 아닌 유다가 예수님께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는 아니하려 하십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유다는 예수님께서 공적으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제자들에게만 나타내시는 것이 이해가 안 되었던 것 같습니다. 23-2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런 유다의 질문에 직접적으로 대답해 주시지는 않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의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다의 질문에 자신을 사랑하는 자는 자신의 말을 들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자를 아버지께서 사랑하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아버지와 거처를 함께 한다고 하셨습니다. 곧 이 말씀은 예수님과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랑하여 계명을 지키는 자들 안에 거하러 오신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다에게 자신은 세상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보혜사 성령의 인도함을 받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로 진리 가운데서 참으로 세상에서 자유함을 누리며, 아들의 영광의 형상에 이르기를 소원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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