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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미 7:8-13
성경본문내용 (8)나의 대적이여 나로 인하여 기뻐하지 말지어다 나는 엎드러질지라도 일어날 것이요 어두운데 앉을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의 빛이 되실 것임이로다(9)내가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니 주께서 나를 위하여 심판하사 신원 하시기까지는 그의 노를 당하려니와 주께서 나를 인도하사 광명에 이르게 하시리니 내가 그의 의를 보리로다(10)나의 대적이 이것을 보고 부끄러워하리니 그는 전에 내게 말하기를 네 하나님 여호와가 어디 있느냐 하던 자라 그가 거리의 진흙같이 밟히리니 그것을 내가 목도하리로다(11)네 성벽을 건축하는 날 곧 그 날에는 지경이 넓혀질 것이라(12)그 날에는 앗수르에서 애굽 성읍들에까지, 애굽에서 하수까지,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이 산에서 저 산까지의 사람들이 네게로 돌아올 것이나(13)그 땅은 그 거민의 행위의 열매로 인하여 황무하리로다
강설날짜 2011-10-16
동영상 http://flvs.daum.net/flvPlayer.swf?vid=Ymy7VYDCdks$

2011년 미가서 공부

 

내가 그의 의를 보리라

 

말씀:미가서 7:8-13

우리는 지난 시간에 미가 선지자가 예루살렘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을 보고 ‘재앙이로다!’라고 하며 탄식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미가 선지자가 왜 예루살렘을 향하여 탄식하였습니까? 의인이 한명도 없어서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받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계속해서 미가서 7장을 공부하겠습니다. 지난 시간에 미가 선지자는 예루살렘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을 보고 탄식하였습니다. 그런 가운데 7절에 보면 그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겠다’고 했습니다. “오직 나는 여호와를 우러러 보며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나의 하나님이 나를 들으시리로다”(7). 오늘 본문 9절에 보면 미가 선지자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의를 보겠다’고 합니다. “내가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니. 주께서 나를 위하여 심판하사 신원하시기까지는 그의 노를 당하려니와 주께서 나를 인도하사 광명에 이르게 하시리니. 내가 그의 의를 보리로다”(9). 이 세상은 우리의 소망이 될 수 없습니다. 다 치우쳐 우상을 숭배하고 타락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의만이 우리의 진정한 소망입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진정 바라봐야 할 것이 무엇인지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은 오늘 하루를 살면서 무엇을 바라보며 사십니까? 무엇에 바빠하며 하루를 보내십니까? 시편 기자는 시편 39:6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에 분요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취할는지 알지 못하나이다”(시 39:6). 우리가 바쁘게 살면서 재산을 좀 모으고, 세상에서 누리며 사는 다른 것들을 이룬 것이 있습니까? 그러나 그런 것들을 시편 기자는 그림자와 같고 헛된 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종말과 연한의 어떠함을 알게 하사 자신의 연약함을 알게 해 달라고 간구하는 것입니다. 시편 39:4-5절에 보면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의 어떠함을 알게 하사 나로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주께서 나의 날을 손 넓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의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마다 그 든든히 선 때도 진실로 허사 뿐이니이다(셀라)”라고 했습니다. 자기의 인생이 허사임을 아는 사람만이 주님을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39:7절에 보면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왜 소망이 주께만 있다고 합니까? 단지 허무하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시편 39:8절을 보면 “나를 모든 죄과에서 건지시며 우매한 자에게 욕을 보지 않게 하소서”라고 했습니다. 시편 기자는 자신을 죄에서 건져달라고 합니다. 우매한 자에게서 욕을 보지 않게 해 달라고 합니다. 이 말씀에 기초해서 볼 때 소망이 주께만 있는 이유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시고, 우매한 자에게 욕을 보지 않게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시고, 우매한 자로부터 욕을 보지 않게 할 자가 누구입니까? 우리 주님이십니다. 주님만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할 구주가 되시며, 우매자들로부터 욕을 먹지 않게 하실 분이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평소에 생각하는 구원이나 복이란 어떤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까? 시편 기자가 말하고 있는 헛된 것들, 곧 재물과 세상의 영화로운 것들이 많아지는 것을 복이라고 여기지는 않습니까? 이런 것들을 복이라고 생각을 하는 것은 이 세상이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이 세상이 죄로 인하여 심판받는다고 생각을 한다면, 곧 베드로 사도가 베드로후서 3:7절에서 말하고 있는 대로 이 세상이 장차 불로 심판 받기 위해 간직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세상에서 눈에 보이는 것들을 복이라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도리어 이 세상에서 건지심을 받는 것을 복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본다’라고 하는 것은 마치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원망하다가 불 뱀에 물려 고통하는 상황에서 모세의 놋 뱀을 바라보았듯이 그런 상황으로 보아야할 것입니다.

민수기 21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광야에서 힘들고 어려우니까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불 뱀을 보내어 물려 죽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고통 가운데서 모세에게 나아가 하나님께 간구해 달라고 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간구하자 하나님께서는 놋 뱀을 만들어 장대에 높이 달고 그것을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그리하면 살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모세가 놋 뱀을 만들어 장대에 달아 높이 세우고 백성들로 하여금 바라보게 하였습니다. 이때 모세의 말을 믿고 그 놋 뱀을 바라본 자들은 다 나음을 입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을 바라본다’라는 것은 이 세상이 죄악의 고통 속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만이, 곧 이 세상에 소망이 없다는 것을 아는 자만이 주님을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14-15절을 보면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들리신다는 것은 십자가에 달리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그 십자가를 바라보면 영생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마치 불 뱀에 물려 죽어가던 사람들이 모세가 장대에 높이 단 놋 뱀을 바라보았을 때 감쪽같이 낳은 것과 같이 말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불 뱀에 물려서 고통 하며 죽어가는 중에 장대에 달린 놋 뱀을 바라본다는 것이 어리석은 모습이 아닙니까? 뱀에 물리면 어떻게 해야 하죠? 먼저 119에 신고해야 합니다. 그리고 뱀에게서 떨어져서 몸을 높은 곳으로 눕히고 물로 상처부분을 씻어 낸 후 독이 퍼지지 않도록 상처 윗부분을 묶어야 합니다. 그런 후 병원에 가서 해독제를 써야 합니다. 그런데 놋으로 만들어 장대에 높이 단 놋 뱀을 바라본다고 구원을 얻겠습니까? 인간적으로 보면 이런 행동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고통을 해소하기 위하여 열심히 살아가는데 최고의 고통이요, 저주인 십자가를 바라보고 그를 믿으면 영생을 얻는다고 하니 누가 바라보겠습니까? 그러므로 주를 바라본다는 것은 사람의 능력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택하신 자들만이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바라보도록 만드시는데 무엇에 대하여 절망하게 하시는 것입니까? 인간의 모든 행함에 대하여 고발을 하면서 바라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즉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심판을 받아야 마땅하다는 것을 인식시키시고 주를 바라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주님을 바라보면서 또 엉뚱한 것들을 기대하고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 본 7절 말씀을 다시 보면 “오직 나는 여호와를 우러러보며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나의 하나님이 나를 들으시리로다”라고 했습니다. 미가 선지자는 왜 여호와만 바라보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택하셨다는 이스라엘! 그것도 예루살렘 안에 죄악만 가득하기에 그렇게 바라보는 것입니다. 지도자로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자기의 욕심을 따라 뇌물을 주고 받으며, 오직 자기 배만 섬기며 사는 세상인 것입니다. 그 어느 누구도 기대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이 이미 선고된 것입니다. 그런 절망적인 상황 가운데서 여호와를 우러러 보며,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본 것입니다.

오늘 본문 8-9절을 보면 “나의 대적이여! 나로 인하여 기뻐하지 말찌어다. 나는 엎드러질찌라도 일어날 것이요, 어두운데 앉을찌라도 여호와께서 나의 빛이 되실 것임이로다. 내가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니 주께서 나를 위하여 심판하사 신원하시기까지는 그의 노를 당하려니와 주께서 나를 인도하사 광명에 이르게 하시리니 내가 그의 의를 보리로다”라고 합니다. 범죄 함으로 인하여 엎드려지고 어두움에 처하게 됩니다. 그러자 대적들이 기뻐하는 것입니다. 이럴 때에 선지자는 자기들의 죄를 인하여 심판을 받음이 마땅하다고 인정합니다.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자비하심에 소망을 두게 됩니다. 비록 엎드려지고 어두움에 처할지라도 주님께서 인도하사 빛으로 인도하시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적들아 즐거워하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공의로우시므로 죄악을 그냥 두시지 않고 심판 하시지만 그 심판의 때가 지나면 광명으로 인도하실 텐데 그러면 내가 그의 의를 보리라고 합니다. 구원 받은 자는 그의 의를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10절을 보면 “나의 대적이 이것을 보고 부끄러워하리니 그는 전에 내게 말하기를 네 하나님 여호와가 어디 있느냐 하던 자라. 그가 거리의 진흙 같이 밟히리니 그것을 내가 목도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그 의가 나타나면 대적들이 부끄러워한다는 것입니다. 대적들이 무어라고 하였겠습니까? 예루살렘 백성들이 적에게 포로로 잡혀가고 나라가 망하게 되니 너희가 여호와를 믿는다고 하면서 그 전능한 여호와가 어디에 있느냐고 조롱하는 것입니다. 범죄를 인하여 심판하사 신원하시기 까지 그것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신원의 날은 이사야 61:2절에 나오는 말인데, 하나님께서 대적들을 심판하시는 때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여기에는 이중적인 의미를 띠고 있는데, 성도들에게는 영원한 복락을, 악인들에게는 영원한 형벌이 주어짐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심판 중에 있을 때에 네 하나님이 어디에 있느냐고 말하던 자들이 대적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러한 조롱을 받아 왔습니다. 그들의 범죄로 인하여 심판을 당하는 중에 이러한 조롱을 받지만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을 위하여 죄를 사하여 주시고 구원하여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시편 79편을 보면 “하나님이여! 열방이 주의 기업에 들어와서 주의 성전을 더럽히고 예루살렘으로 돌무더기가 되게 하였나이다. 저희가 주의 종들의 시체를 공중의 새에게 밥으로 주며, 주의 성도들의 육체를 땅 짐승에게 주며, 그들의 피를 예루살렘 사면에 물 같이 흘렸으며, 그들을 매장하는 자가 없었나이다. 우리는 우리 이웃에게 비방거리가 되며, 우리를 에운 자에게 조소와 조롱거리가 되었나이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영원히 노하시리이까. 주의 진노가 불붙듯 하시리이까. 주를 알지 아니하는 열방과 주의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는 열국에 주의 노를 쏟으소서. 저희가 야곱을 삼키고 그 거처를 황폐케 함이니이다. 우리 열조의 죄악을 기억하여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우리가 심히 천하게 되었사오니 주의 긍휼하심으로 속히 우리를 영접하소서.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를 도우시며, 주의 이름을 위하여 우리를 건지시며, 우리 죄를 사하소서. 어찌하여 열방으로 저희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말하게 하리이까. 주의 종들의 피 흘림 당한 보수를 우리 목전에 열방 중에 알리소서. 갇힌 자의 탄식으로 주의 앞에 이르게 하시며, 죽이기로 정한 자를 주의 크신 능력을 따라 보존하소서. 주여! 우리 이웃이 주를 훼방한 그 훼방을 저희 품에 칠 배나 갚으소서. 그러하면 주의 백성 곧 주의 기르시는 양 된 우리는 영원히 주께 감사하며 주의 영예를 대대로 전하리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시편 말씀에 보면 범죄 함으로 인하여 심판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열방이 이스라엘에 쳐들어와서 성전을 더럽히고 예루살렘을 돌무더기로 만든다는 것입니다. 주변의 적들이 온갖 조롱을 한다고 합니다. 그런 중에 하나님께 간구하기를 긍휼히 여겨주시고, 죄를 사하셔서 주의 이름을 인하여 구원하여 달라는 것입니다. 네 하나님이 어디에 있느냐고 조롱하는 자들에게 벌을 내려달라고 간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자들이 하나님의 의를 보게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을 동시에 보게 되는 것입니다.

10절을 다시 보면 이러한 구원의 의가 나타나면 적들은 거리의 진흙같이 밟힐 것이라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저의 백성들이 온 세계에서 주께로 돌아오리라는 것입니다. 11-13절을 보면 “네 성벽을 건축하는 날 곧 그 날에는 지경이 넓혀질 것이라. 그 날에는 앗수르에서 애굽 성읍들에까지, 애굽에서 하수까지,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이 산에서 저 산까지의 사람들이 네게로 돌아올 것이나 그 땅은 그 거민의 행위의 열매로 인하여 황무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네 성벽을 건축하는 그 날에는 네 지경이 넓어지리라는 것입니다. 어디까지 넓혀진다고 합니까? 앗수르에서 애굽까지,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이 산에서 저 산까지 넓혀진다고 합니다. 이 말씀은 그 당시의 알려진 세계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그날에는 그 지경이 온 세상에 넓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온 세상에서 주의 백성들이 돌아올 것이라는 것입니다. 포로로 잡혀 갔던 자들만이 아니라, 이방인들도 함께 돌아올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나온 그 지역들은 황폐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이는 구원이 예루살렘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구원이 예루살렘에서 나온다는 말이 무엇입니까? 미가서 4:1-3절을 보면 “말일에 이르러는 여호와의 전의 산이 산들의 꼭대기에 굳게 서며, 작은 산들 위에 뛰어나고 민족들이 그리로 몰려갈 것이라. 곧 많은 이방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서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만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산들의 꼭데기에 굳게 서며 작은 산들 위에 뛰어나게 된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많은 민족들이 그리로 몰려 올 것이라고 합니다. 많은 이방 나라들이 여호와의 산에 올라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율법이 시온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 나올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구원이 예루살렘에서 나온다는 말은 예루살렘에서 메시아가 탄생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 메시아를 통해서 구원의 역사가 일어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말씀의 성취는 도대체 언제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까? 일차적으로는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는 것으로 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의 궁극적인 성취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성취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4장에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예배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를 인하여 예배가 일어나는가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시면서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4:20-22절에 보면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난다’는 말은 바로 예수님 자신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주의 백성들이 온 세상에서 주께로 돌아오게 되는데 그들이 무엇을 보게 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의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가 성취되기 위해서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집행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들의 죄를 대신 담당하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죄 없으신 주님께서 죄인들이 받을 조롱과 멸시를 대신 다 받으신 것입니다. 그것은 ‘네 하나님이 어디에 있느냐? 네 하나님이 구원하시는지 보자’라는 조롱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죄의 심판의 자리에서, 곧 십자가에서 또한 주의 구원이 베풀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의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3:19-22절을 보면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율법으로 모든 입을 막고 심판 아래 있게 됩니다. 즉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입니다. 이 의는 율법과 선지자들의 증거를 받은 것입니다.

지금까지 본 미가 선지자의 증거도 구원을 얻은 자들이 하나님의 의를 보리라고 하였습니다. 그 의를 증거 하면서 심판과 하나님의 구원을 말하듯이 바울 사도가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을 말하는데, 율법과 선지자의 증거를 받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을 받은 자들은 율법 외에 나타난 하나님의 한 의를 선물로 받게 되는데, 그 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이루어내신 의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심판을 다 받아내시고, 그 의를 자기 백성들에게 선물로 주시는 방식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구원 받은 자는 결코 자기를 자랑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우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죄를 알지도 못하시는 분에게 돌리시면서 자기 백성을 의롭다고 하신 하나님의 의에 돌릴 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구원받은 자들은 이 세상이나 세상의 보이는 것들을 구하거나, 그런 것들을 가지고 자랑하지 아니합니다. 오직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를 받음으로 감사하고 찬송하는 것이 구원받은 성도들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사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의를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로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의 것들을 구하지 않게 하시고, 자랑하지 않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하며, 그를 자랑하며, 그에게 세세토록 감사와 영광과 존귀를 돌려드리는 삶을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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