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방문자 : 
    1,002
  • 어제방문자 : 
    890
  • 전체방문자 : 
    1,390,020
조회 수 5333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Extra Form
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마 27:27-56
성경본문내용 (27)이에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를 데리고 관정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그에게로 모으고(28)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29)가시 면류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가로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30)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31)희롱을 다한 후 홍포를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32)나가다가 시몬이란 구레네 사람을 만나매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웠더라(33)골고다 즉 해골의 곳이라는 곳에 이르러(34)쓸개 탄 포도주를 예수께 주어 마시게 하려 하였더니 예수께서 맛보시고 마시고자 아니 하시더라(35)저희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은 후에 그 옷을 제비 뽑아 나누고(36)거기 앉아 지키더라(37)그 머리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 쓴 죄패를 붙였더라(38)이때에 예수와 함께 강도 둘이 십자가에 못박히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39)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40)가로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 오라 하며(41)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가로되(42)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저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러면 우리가 믿겠노라(43)저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저를 기뻐하시면 이제 구원하실지라 제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 하며(44)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45)제 육시로부터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 구시까지 계속하더니(46)제 구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47)거기 섰던 자 중 어떤 이들이 듣고 가로되 이 사람이 엘리야를 부른다 하고(48)그 중에 한 사람이 곧 달려가서 해융을 가지고 신 포도주를 머금게 하여 갈대에 꿰어 마시우거늘(49)그 남은 사람들이 가로되 가만 두어라 엘리야가 와서 저를 구원하나 보자 하더라(50)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다(51)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52)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53)예수의 부활 후에 저희가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54)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되는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가로되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55)예수를 섬기며 갈릴리에서부터 좇아 온 많은 여자가 거기 있어 멀리서 바라보고 있으니(56)그 중에 막달라 마리아와 또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도 있더라
강설날짜 2007-11-11

2007년 11월 11일 설교


십자가에 못 박히신 왕


말씀:마태복음 27:27-56

오늘 말씀은 왕의 수난과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사건입니다. 왕 되신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죽으시는 사건은 우리의 유한한 정신으로는 다 이해 할 수 없는 신비하고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영혼의 경외함으로 이 사건을 바라보게 하시고, 하나님의 놀라운 구속역사의 비밀을 깨달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오늘 본문을 살펴보기 위해서 한 가지 유념해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예수님에 대한 생생한 모습에 대한 저자 마태의 과묵입니다. 다른 복음서들은 마태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 주지만 그러나 그들 모두 역시 십자가 앞에서는 조심스런 과묵함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을 읽으면서 마태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왕에 관한 이야기를 기술하면서 왜 십자가 처형 장면에 대해서 과묵하셨는지 그 의도에 유의하면서 이 사건을 읽어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27-31절에 보면 빌라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내어 주자 군병들은 예수를 관정 안으로 끌고 들어가 군대를 그에게로 모우고 옷을 벗긴 후 ‘홍포’를 입혔습니다. 또한 그들은 가시로 면류관을 엮어서 예수님의 머리에 씌웠습니다. 갈대로 왕의 홀을 대신하여 오른손에 들게 하였습니다. 그런 후 그 앞에서 무릎 꿇고 희롱하였습니다.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 지어다.” 그들은 예수님께 침을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쳤습니다(27-30). 이로써 이사야 50:6절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수욕과 침 뱉음을 피하려고 내 얼굴을 가리우지 아니하였느니라”는 말씀이 성취되었습니다.

원래 십자가에 못 박힐 죄인은 벗긴 채 끌고 가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였습니다. 그런데 군병들은 홍포를 벗기고 도로 예수님의 옷을 입혀서 끌고 갔습니다. 32-38절은 십자가에 달리기 위해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과정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십자가형을 집행할 때는 먼저 채찍질을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밤새도록 심문을 당하시고 많은 채찍을 당하셨습니다. 그로인해 예수님의 육신은 탈진이 되셨습니다. 탈진하신 예수님은 더 이상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실 수 없으셨습니다. 그러자 군병들은 구레네 사람 시몬에게 강제로 십자가를 지고가게 했습니다. 졸지에 시몬은 군인들에게 잡혀 억울하게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지고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시몬에게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은혜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로마서 16:13절에 보면 “주 안에서 택함을 입은 루포와 그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고 바울이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을 보면 시몬은 나중에 바울의 좋은 동역자요, 그의 어머니도 바울이 자신의 어머니라고 말하는 것을 볼 때 믿음이 훌륭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시몬과 그 가족은 이 사건을 계기로 구원함을 받고 예수님의 제자들이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예수님은 해골이라 불리는 골고다 언덕에 이르렀습니다. 34a절에 보면 골고다에 도착하신 예수님께 사람들은 ‘쓸개를 탄 포도주’를 드려 마시도록 하였습니다. 이것은 십자가에서 처형당하는 죄수에게 그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마취제로 제공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마시기를 거절하셨습니다(34b). 이는 예수님께서 모든 고통을 온전한 정신으로 겪으시겠다는 의사 표현이었습니다. 이로써 시편 69:21절 “그들이 쓸개를 나의 음식물로 주며, 목마를 때에는 초를 마시게 하였사오니”라는 말씀을 성취하셨습니다.

35절에 보면 군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제비를 뽑아 그 옷을 나누었습니다. 처형당한 죄수의 물품은 처형 집행자들에게 주는 것이 당시 관례였습니다. 아무튼 그들의 이러한 행위는 시편 22:18절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라고 하신 말씀을 성취하고 있습니다. 군인들은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님을 지켰습니다(36). 하지만 그들은 이 임무를 수행하는 가운데 마침내 예수님께서 누구신지를 진정으로 깨닫게 되는 놀라운 은혜를 입게 되었습니다. 54절에 보면 “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되는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가로되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고 고백했습니다.

십자가에 처형될 죄수는 처형 장소로 가는 동안에 자신의 죄 패를 목에 걸고 가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아마도 예수님께서도 죄 패를 목에 걸고 가신 것으로 보입니다. 군병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후 그 죄 패를 십자가 위에 달았습니다(37). 예수님은 두 명의 ‘강도들’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38). 그들은 노상강도라기보다는 로마에 저항하던 폭도들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참조. 눅 10:30). 예수님은 자신의 가르침을 통해 그처럼 무력을 사용하는 자들과 분명히 구별된 ‘무저항’과 ‘원수사랑’의 원리를 강조해 오셨습니다(참조. 5:38-47). 그런데도 예수님께서 이러한 정치적 폭도들과 함께 처형당하신 것은 매우 역설적입니다. 이는 아마도 이사야 53:12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죽음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기 때문이다”라고 하신 말씀의 성취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왕의 이야기를 기술하면서 예수님의 처참한 십자가 처형 장면을 전혀 기술하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그는 35절과 36절에 보면 “저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그 옷을 제비 뽑아 나누고 거기 앉아 지키더라”고 완료형으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4복음서의 저자 모두에게서 발견되는 공통적인 현상입니다. 마태가 십자가를 완료형으로 기술하고 있는 것은 이미 완성된 행위 그 자체에 주의를 집중시키고자 한 것 같습니다. 이를 통해서 독자들이 십자가를 육신적이고 감성적으로 이해하기보다, 그러한 ‘고통을 당하신 이유’에 관심을 가지도록 하기 위함이었던 것 같습니다. 십자가는 우리 신앙의 핵심적인 신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십자가를 단순히 감성적이고 육신적으로 이해하기보다 이 십자가에 담긴 깊은 영적인 의미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왜 그 처참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입니까? 이사야 선지자는 그 이유를 약 700년 이전에 이미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 53:5). 예수님께서는 완전한 인간이심, 하나님으로써 우리의 죄악을 대신 지고 우리 대신 형벌을 받으셨습니다. 쓸개 탄 포도주로 고통을 감하시지도 않으시고, 우리가 받아야할 고통을 고스란히 대신 감당하셨습니다. 이사야 53:4절에 보면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이 예언의 말씀이 성취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셔서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하나님의 언약을 성취하셨습니다. 이로써 우리가 죄사함을 받고, 나음을 입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구원함을 받고 교회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높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본 무리들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39절에 보면 지나가던 자들이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머리를 흔들며’ 그분을 모욕하였습니다(39). 그들의 이러한 모습은 시편 22:7절 “나를 보는 자는 다 나를 비웃으며…머리를 흔들며 말하되”을 인상적으로 성취하는 모습입니다. 지나가는 자들이 예수님을 비웃는 초점은 성전에 대한 예수님의 입장 때문입니다. 40a절에 보면 “성전을 허물고 삼일 만에 지으려는 자야”하며 비웃었습니다. 그들은 이어서 40b절에 보면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네 자신을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와 봐라”고 합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이 빈정거림은 예수님께서 사역을 시작하는 상황에서 있었던 사단의 시험을 회상케 합니다(4:3, 6). 예수님은 사역 초기에 사단에게 받으신 시험을 사역의 절정 상황에서 유사하게 받고 계신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내려올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십자가에서 내려오시지 아니하셨습니다.

이제 그동안 예수님의 죽음을 주도해 온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 곧 이스라엘의 모든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모욕하는 최종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42-43절을 보면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저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러면 우리가 믿겠노라. 저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저를 기뻐하시면 이제 구원하실지라. 제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고 하였습니다. 한편 43절의 그들의 빈정거림은 시편 22:8절 “그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 걸, 그를 기뻐하시니 건지실 걸 하나이다”을 성취하고 있습니다. 이제 예수님과 함께 못 박힌 강도들조차도 예수님을 조롱하고 있습니다(44).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수님을 거절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수난의 절정일 뿐 아니라, 예수님의 지상 사역의 절정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그의 백성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결정적인 사건입니다. 따라서 그의 죽음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뇌와 고통에도 불구하고 패배가 아니라 승리인 것입니다. 본 단락은 예수님의 죽음에 수반되는 고통의 절정과 그 결과로 일어난 승리적 현상들을 대조적으로 잘 드러내 보여 주고 있습니다. 45절에 보면 “제 육시로부터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 구시까지 계속되더니”라고 했습니다. 구약에서 대낮에 해가 져서 깜깜해지는 현상은 엄청난 슬픔과 애통을 상징하였습니다(암 8:9). 또한 ‘어두움’은 주의 날에 임하게 될 심판의 상징으로 언급되기도 하였습니다(욜 2:2, 31; 습 1:15). 실제로 출애굽 당시 바로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 결과 온 이집트에 어두움이 삼일동안 엄습했습니다(출 10:22).

46절에 보면 죽음에 직면하신 예수님은 하나님께 큰 소리로 부르짖으셨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막다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하는 뜻입니다. 이 부르짖음은 예수님께서 직면하신 고통의 진정한 의미를 잘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고통은 육체적 아픔에서 기인된 것이라기보다 아버지께 버림을 당하신 데서 기인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버림받아 마땅한 ‘많은 이들’을 위한 ‘대속물’로서 자신이 대신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 잔을 마시기 위해 겟세마네에서 하나님께 세 번이나 동일한 기도를 하셨습니다. 아버지께 버림을 당한다는 것이 이처럼 힘든 일이기에 그처럼 간절한 기도로 철저히 준비하셨습니다. 그러나 막상 그 일에 직면하셔서는 이처럼 고뇌에 찬 모습으로 하나님께 부르짖고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부르짖음은 시편 22:1절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옵시며 내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라는 말씀을 인용인 것이 분명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신 상황 가운데서도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부르짖음이 원망의 부르짖음이 아니라 순종과 신뢰 관계에 근거한 부르짖음이었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처럼 절박한 부르짖음을 들은 주변 구경꾼들 중 어떤 이들은 예수님께서 ‘엘리야’를 부른다고 착각하였습니다(47). 엘리야는 유대교 종말론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이었습니다. 특히 후기 유대교에서는 절박한 상황에 처한 자를 돕기 위해 엘리야가 하늘에서 나타날 것이라는 기대가 발전되어 왔습니다. 아마도 구경꾼들은 예수님께서 이러한 기대를 가지고 엘리야를 부른다고 생각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거기에 서 있던 자들 중에 한 사람이 ‘식초’(옥소스, ?ξο?)를 적셔서 예수님께 마시게 하였습니다(48). 그의 이러한 행동은 아마도 시편 69:21절 “그들이…목마를 때에는 식초를 마시게 하였사오니”를 성취하기 위한 행동으로 보입니다(참조. 요 19:28-29). 여기서 언급된 식초는 아마도 물을 타서 희석한 포도주 식초로서 노동자들과 군인들이 피로를 풀기 위해 마시던 음료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식초를 제공한 자의 행동은 친절의 표현이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지켜보던 다른 이들은 예수님께 대한 진정한 도움은 시원한 음료수가 아니라 엘리야가 나타나서 그를 십자가에서 구출해 내는 것이라고 빈정거리고 있습니다(49).

예수님은 마침내 ‘큰 소리로 부르짖으시고 영혼이 떠나갔습니다’(50). 마태는 예수님의 죽음에 있어서 예수님 자신의 의지적인 요소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받은 자신의 생명을 하나님께 돌려드리신 것입니다(참조. 눅 23:46). 마태는 마지막 ‘큰 소리’가 무슨 말씀이었는지 밝히지 않습니다. 어쩌면 요한이 언급한 ‘다 이루었다’(요 19:30)라는 승리적 선언일 수도 있을 것이고, 어쩌면 누가가 언급한 ‘내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눅 23:46)라는 탄원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숨을 거두실 때에 어떤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까? 51절에 보면 ‘성전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둘로 찢어지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것은 상징적인 예표의 제도가 영원히 끝났다는 사실을 표시하는 위대한 상징적 행위였습니다. 성소의 휘장은 인간을 하나님으로부터 격리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은 이 휘장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일 년에 한번 제사장이 짐승의 피를 가지고 나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인간과 하나님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휘장이 찢어진 것입니다. 이로써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이 사건의 의미를 히브리서 10:19-20절에서 명쾌하게 기술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담이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무너졌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이 놀라운 은혜의 역사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찬양합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놀라운 신비를 찬양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이 십자가의 신비를 누리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이 십자가를 통해 늘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누리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51b절에 보면 휘장이 찢어지는 사건과 더불어 땅이 흔들리고 바위들이 갈라졌습니다. 구약에서 지진은 하나님의 강림하신 심판적 행동으로서 종말론적 현상으로 예견되고 있습니다(사 24:19; 욜 3:16; 나 1:5-6). 따라서 예수님의 죽음과 더불어 지진이 일어난 것은 그분의 죽음이 종말론적으로 결정적인 사건임을 시사해 주고 있습니다. 이 지진과 더불어 무덤들이 열리고, 잠자던 많은 성도들의 몸이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 후에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도시에 들어가 많은 사람들에게 나타났습니다(52-53). 지진과 더불어 일어난 이 엄청난 사건에 대해서 마태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언급하지 않습니다. 구약에 보면 마지막 날에 죽은 자들이 육체적으로 부활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사 26:19; 겔 37:1-14; 단 12:2). 아마도 마태는 이 사건을 통해 그러한 예언들이 성취되었음을 확인해 주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더불어 일어난 이 엄청난 자연적, 초자연적 사건들을 지켜본 이방인 ‘백부장’과 그와 함께 예수님을 지키던 ‘군인들’은 아마도 예수님의 죽음의 의미를 깊이 깨닫게 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은 몹시 두려워하며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고 고백했습니다(54b).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을 바라보며 이스라엘의 지도자들과 구경꾼들은 예수님을 조롱하고 모욕하는데 반해(39-43, 49), 이방인 백부장과 군인들은 그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지하고 그 사실을 고백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충격적이고 역설적입니다.

이제 마태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이야기를 그 죽음의 증인들에 대한 추가적인 언급으로 마무리 짖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증인들의 목록에 보면 여인들만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은 예수님을 배반하거나 부인하거나 버리고 도망한데 반해, 여인들은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죽으실 때까지 그분과 함께 하였습니다. 사실 마태복음에서 열한 제자들에 대한 언급이 다시 나타나는 것은 부활 후 갈릴리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상황이라는 점을 고려해 볼 때(28:16), 예수님의 죽음과 장사와 부활을 함께 목격하고 증언할 수 있는 직접적인 증인들은 갈릴리에서부터 예수님을 줄곧 수행하며 섬겨온 바로 이 여인들이었습니다.

TAG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성경본문 설교자 강설날짜 조회 수
659 [요한복음 13장] 새 계명을 주신 예수 요 13:34-35 손재호 2010-08-01 5355
658 [호세아 14장] 여호와의 도에 행하라. file 호 14:9 손재호 2013-09-29 5349
657 [창세기 35장] 사랑하는 라헬의 죽음 창 35:16-29 손재호 2009-04-05 5347
656 [요한복음 10장] 양의 문 예수! 요 10:1-10 손재호 2010-04-25 5340
655 [히브리서 1장] 저가 천사보다 얼마큼 뛰어남은 히 1:4-14 최상범 2012-06-17 5339
» [마태복음 27장] 십자가에 못 박히신 왕 마 27:27-56 손재호 2007-11-11 5333
653 [창세기 30장] 야곱의 독립 투쟁 창 30:25-43 손재호 2009-02-22 5316
652 [히브리서 6장]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히 6:9-20 최상범 2012-09-23 5314
651 [요한복음 20장] 마리아에게 나타나신 예수 요 20:11-18 손재호 2011-02-13 5310
650 [호세아 2장] 너희 어미와 쟁론하라. file 호 2:1-7 손재호 2013-03-24 5296
649 [히브리서 9장] 그리스도의 피뿌림의 효력 히 9:11-14 최상범 2012-11-04 5286
648 [요한복음 18장] 베드로의 예수님 부인 요 18:15-18,25-27 손재호 2010-12-26 5282
647 [히브리서 12장] 징계를 참으라 히 12:4-13 최상범 2013-02-10 5264
646 [창세기 1장] 하나님의 창조목적(2) 창 1:26-28; 엡 1:3-6 손재호 2008-04-20 5261
645 [요한복음 12장] 헬라인들의 방문 요 12:20-26 손재호 2010-06-27 5255
644 [히브리서 7장] 대제사장의 기도 히 7:25 최상범 2012-10-07 5241
643 [출애굽기 3장] 모세를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부르신 하나님 file 출 2:23-3:10 손재호 2014-05-25 5239
642 [창세기 34장] 야곱을 징계하신 하나님 창 34:1-31 손재호 2009-03-22 5233
641 [요한일서 5장] 세상을 이기는 믿음! 요일 5:1-5 손재호 2008-03-09 5229
640 [미가 1장] 너희는 다 들을찌어다! file 미 1:1-16 손재호 2011-07-31 5210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 40 Next
/ 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