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5283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Extra Form
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요 18:15-18,25-27
성경본문내용 (15)시몬 베드로와 또 다른 제자 하나가 예수를 따르니 이 제자는 대제사장과 아는 사람이라 예수와 함께 대제사장의 집 뜰에 들어 가고(16)베드로는 문 밖에 섰는지라 대제사장과 아는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문 지키는 여자에게 말하여 베드로를 데리고 들어왔더니(17)문 지키는 여종이 베드로에게 말하되 너도 이 사람의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하니 그가 말하되 나는 아니라 하고(18)그 때가 추운 고로 종과 하속들이 숯불을 피우고 서서 쬐니 베드로도 함께 서서 쬐더라
(25)시몬 베드로가 서서 불을 쬐더니 사람들이 묻되 너도 그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베드로가 부인하여 가로되 나는 아니라 하니(26)대제사장의 종 하나는 베드로에게 귀를 베어 버리운 사람의 일가라 가로되 네가 그 사람과 함께 동산에 있던 것을 내가 보지 아니하였느냐(27)이에 베드로가 또 부인하니 곧 닭이 울더라
강설날짜 2010-12-26

2010년 12월 26일 설교


베드로의 예수님 부인


말씀:요한복음 18:15-18, 25-27

 

우리는 지난 시간에 예수님께서 대제사장들에게 심문을 받으시는 사건을 공부했습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서 대제사장들의 악함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오늘 우리는 베드로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닭 울기 전에 세 번 부인하는 사건을 공부하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자신을 부인할 것을 13장에서 예고하셨습니다(요 13:36-38).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예고하신 그대로 성취가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하는 이 사건은 예수님께서 대제사장들에게 심문 받으시는 사건을 기록하는 중간에 기술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본문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요한복음 저자가 이 사건을 통해서 말씀하고자 하는 그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배우고자 합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누구든지 예수님을 따르면 유대교에서 출교를 시켜버리겠다고 협박을 하고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9:18-22절에 보면 “유대인들이 저가 소경으로 있다가 보게 된 것을 믿지 아니하고 그 부모를 불러 묻되 이는 너희 말에 소경으로 났다 하는 너희 아들이냐. 그러면 지금은 어떻게 되어 보느냐. 그 부모가 대답하여 가로되 이가 우리 아들인 것과 소경으로 난 것을 아나이다. 그러나 지금 어떻게 되어 보는지 또는 누가 그 눈을 뜨게 하였는지 우리는 알지 못하나이다. 저에게 물어 보시오. 저가 장성하였으니 자기 일을 말하리이다. 그 부모가 이렇게 말한 것은 이미 유대인들이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는 출교하기로 결의하였으므로 저희를 무서워함이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의 제자들은 용감하게 예수님을 따라 나섰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왕이 되시면 자기들이 한자리 할 생각들이 있었지만 그러나 제사장들처럼 예수님에 대하여 적대감을 가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적대감이 아니라 오히려 예수님을 위한다고 따라 다녔습니다. 그중에 베드로가 늘 앞장섰던 사람입니다.

 

마태복음 16:16절에 보면 베드로는 예수님을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는 위대한 신앙 고백을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이 신앙 고백을 들으신 후 비로소 자신이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6:17-21절을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이에 제자들을 경계하사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라.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위대한 신앙 고백을 한 베드로가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그런 일이 일어나면 절대로 안 된다며 예수님을 강하게 책망하며 말리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6:22절에 보면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간했다’라는 말은 헬라어로 에피티마오(ejpitimavw)라는 말인데 ‘비난하다’, ‘책망하다’, ‘훈계하다’, ‘금하다’, (엄격하게) ‘따지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십자가에 죽으신다고 하시는 예수님을 강하게 책망하며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이와 같은 행동은 그가 예수님께 대한 자신의 충성심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처럼 베드로는 예수님에 대한 충성심이 특별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런 베드로에게 무어라고 하셨습니까? 마태복음 16:23절에 보면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고 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막아선 것이 바로 사단의 일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왜 그러는가 하면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생각이 곧 사단의 일인 것입니다. 사람이 최선을 다한 것, 예수님을 위하여 목숨까지 바치고자한 생각이 결국 누구의 일로 드러난 것입니까? 사단의 일로 드러난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한계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마태복음 16:24-2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따르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자기는 정말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음을 알고, 곧 죽은 자임을 알고 따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기 십자가를 어떻게 이해하는가 하면 내가 주를 위하여 힘을 다하여 봉사하고 헌신하고 충성하는 것으로 자기 십자가를 진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충성도를 보고서 하나님께서 내신 성적을 매기듯이 그 충성도에 따라 차별적으로 상을 주신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렇게 하면 이 세상에서 자자손손 복을 받는다고 하니 아멘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미가서에 나타나는 제사장이나 선지자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미가서 3:5절에 보면 “내 백성을 유혹하는 선지자는 이에 물면 평강을 외치나 그 입에 무엇을 채워주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전쟁을 준비하는도다”라고 했습니다. 뇌물을 주면 축복해 주고 뇌물을 주지 않으면 저주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또한 미가서 3:11절에도 보면 “그 두령은 뇌물을 위하여 재판하며 그 제사장은 삯을 위하여 교훈하며 그 선지자는 돈을 위하여 점치면서 오히려 여호와를 의뢰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시지 아니하냐.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는도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 오시기 약 700년 전의 모습입니다. 백성의 지도자들과 제사장과 선지자들이 어떤 모습인지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무어라고 합니까?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니 우리에게 재앙이 내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직 여호와가 자기들 가정이나 자기들 국가의 수호신으로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언약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신데 이들은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하든지 제사를 드려줄 테니 우리의 안전과 평안과 복을 달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니 이러한 대제사장이 무엇을 위하여 예수님을 죽이는 것입니까? 자기들의 안정된 직장과, 수입을 흔들고 있는 위험천만한 예수를 그냥 둘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이 섬긴 것은 여호와의 이름을 말하였지만 실상은 자기들의 배를 섬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제사장들의 실상이었습니다. 그들의 아비가 마귀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이런 제사장과 선지자들과는 달랐습니다. 주를 위해 목숨을 버리겠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 목숨을 바쳐 충성한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결심과 목숨을 건 결단입니까?

 

그런데 요한복음 13:36-38절을 보면 “시몬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나의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 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 오리라.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내가 지금은 어찌하여 따를 수 없나이까?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가 목숨을 걸겠다는 것이 헛말이겠습니까? 아닙니다. 진심이고, 예수님에 대한 충성심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베드로의 말에 고맙다고 하시거나 책망하시거나 하시지 않습니다. 담담히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내게 이르노니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요 13:38).

 

이 말씀보다 좀더 강력하게 나타나는 곳을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26:31-35절을 보면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밤 닭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 베드로가 가로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예고에도 불구하고 베드로와 그의 제자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은 결코 자신들은 실족하지 않을 것이라고 큰 소리쳤습니다. 33절에 보면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자신들에게 닥칠 그 엄청난 위험을 직면할 때 주님께서 도와주시도록 겸손히 요청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다 주를 버릴지라도 자신은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다고 큰 소리를 쳤습니다. 이런 베드로에게 주님께서는 그가 직면하게 될 상황을 좀 더 구체적으로 밝혀주셨습니다.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34). 예수님의 거듭된 예고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오히려 자기 자신의 확고한 자신감을 더욱 강하게 표현 했습니다. 35절에 보면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고 했습니다. 베드로뿐만 아니라 모든 제자들도 다 그렇게 하였습니다. 사실 십자가에 못 박히실 예수님을 따라가는 제자들의 바른 자세는 자기 스스로의 자신감에 차 있기보다는 자신의 자신감마저도 부인하고, 철저히 예수님께 의존하는 자세를 갖는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제자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철저히 예수님을 의지하기보다 자기 자신을 의지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베드로와 제자들의 반응은 아직도 그들이 제자도의 원리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반증해 줍니다. 베드로와 제자들은 자신들에게 닥쳐올 어둠의 세력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자기 자신들과 자신들의 연약함을 몰랐습니다. 특히 베드로는 “다른 사람들은 다 주를 버릴지라도 자기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다”고 큰 소리쳤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그에게 단순히 네가 나를 부인하리라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진실로 진실로’를 두 번이나 말씀하시면서 ‘네가 나를 부인한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진실로’라는 말은 ‘아멘’이라는 말입니다. ‘아멘으로 말하노니 너는 나를 닭 울기 전에 세 번이나 나를 부인한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누구 말이 맞았습니까? 예수님의 말이 맞았습니까? 베드로의 말이 맞았습니까? 당연히 예수님의 말씀이 맞지요. 예수님의 말씀대로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연약함이요, 한계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향한 베드로의 마음은 진심이었습니다. 그는 주님을 누구보다 사랑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힐 때 누가 십자가까지 따라 갑니까? 베드로와 다른 한 제자가 예수님께서 잡히시고 끌려가시는 곳까지 따라 갑니다. 이것은 대단한 용기입니다. 모든 제자들은 다 도망갔는데 베드로와 다른 한 제자는 안나스 대제사장의 뜰에까지 따라 간 것입니다. 그러면 다른 한 제자는 누구입니까? 요한복음 18:15절에 보면 이 제자는 대제사장과 잘 아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이면서도 대제사장과 친분이 있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을 대부분의 성경 학자들은 사도 요한으로 보고 있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지 않고 이 제자라는 표현으로 자신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도 요한은 대제사장과 아는 사이니까 들어간다고 하여도 베드로는 대제사장과 알지도 못하는데 그 제사장의 뜰에까지 따라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대단한 사랑이요, 용기인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요한복음 보다 더 생생하게 부인하는 마태복음을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26:69-75절을 보면 “베드로가 바깥뜰에 앉았더니 한 비자가 나아와 가로되 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거늘. 베드로가 모든 사람 앞에서 부인하여 가로되 나는 네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겠노라 하며 앞문까지 나아가니 다른 비자가 저를 보고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되 이 사람은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매. 베드로가 맹세하고 또 부인하여 가로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더라. 조금 후에 곁에 섰던 사람들이 나아와 베드로에게 이르되 너도 진실로 그 당이라 네 말소리가 너를 표명한다 하거늘 저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가로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닭이 곧 울더라.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하신 말씀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고 했습니다. 베드로가 죽을지언정 주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죽는 자리까지 함께 하겠다고 맹세를 하였지만 그러나 계집종 앞에서 조차 예수님을 부인한 것입니다. 단순한 부인이 아니라 맹세하고 저주하면서까지 세 번이나 부인하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의 말씀대로 되었습니다.

 

그러면 베드로의 예수님을 부인 하는 이 사건이 우리들에게 말해주는 바가 무엇입니까? 인간이 아무리 결심하고 다짐하고 최선을 다하고 목숨을 바친다고 큰 소리 쳐도 그것이 주님을 위한 일이 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예수님을 보호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어떤 면에서 베드로의 이런 자세는 순수한 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베드로의 진심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순수한 생각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일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사람의 일이란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것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베드로를 향하여 “사단아 물러가라.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사람의 일을 생각한다”고 책망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제사장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해서 죽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베드로가 예수님께서 죽지 않도록 목숨 바쳐 막아낸다고 막아질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대제사장이 자기들의 권세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시면 어떻게 예수님께서 잡히시겠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베드로가 목숨을 바친다고 한들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을 막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은 어떠한 인간도 만들어 내거나 거부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마치 천지를 창조하실 때 삼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처럼 십자가를 통하여 자기 백성을 창조하여 내시는 것도 삼위 하나님께서 자신의 언약으로 이루어 내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는 것을 성경에서는 믿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베드로가 그렇게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서도 나중에 어떻게 다시 돌아오게 되었습니까? 그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위하여 기도하셨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22:31-34절을 보면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니.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으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저가 말하되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데도 가기를 준비 하였나이다. 가라사대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고 했습니다. 베드로가 옥에도 가고 죽는 자리에도 가기를 준비하였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하여 각오하고 준비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베드로의 결심과 준비와 각오가 어떤지를 보라는 것입니다. 막상 위협 앞에서 도망가지 않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그가 돌이키게 된 것은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위하여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기도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맹세와 저주로 예수님을 부인하였지만 그 부인한 것보다 주님의 기도의 능력이 더 크시기에 베드로를 돌이키시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께서 성령을 보내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오셔서 베드로로 하여금 주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진리를 깨닫게 하시고 그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베드로가 자신의 열심과 인간적인 충성심으로 옥에도 가고 죽는 자리에도 가겠다고 큰소리 쳤을 때는 예수님을 부인하였지만 성령이 오셔서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이런 그가 옥에도 가고 죽는 자리에도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순교의 길은 베드로가 간 것이 아니라 주님의 능력으로 가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도록 충성하고서도 그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리는 것입니다. 자기가 한 일이라고는 주님께 맹세하고서도 저주하면서 부인한 것뿐입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다시 그를 찾아오셔서 자신의 말씀을 이루어 내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얼마나 주님을 부인하고 있습니까? 사람들 앞에서 내가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시인을 하고 있습니까? 학교에서, 직장에서,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주님이 주가 되시고, 왕이 되심을 나타내고 있습니까? 우리는 우리의 삶을 통해서 볼 때 주님이 주되심과 왕되심을 나타내기보다 우리의 모든 삶의 상황 속에서 언제나 자신이 주인이 되어 자신의 뜻대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우리의 모습이 사실은 주님을 부인하고 있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말 한마디를 하면서도 나의 위신과 체면과 자랑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입니다. 전도를 하면서도, 섬기면서도 자기 과시가 나오게 되어 있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기도를 하면서도, 설교를 하면서도 자기 과시가 나오는 것이 우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이렇게 말씀을 듣고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결코 나의 실력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베드로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다시 찾아오시고, 기도하시고 말씀하신 것을 이루어 가신 것처럼 오늘도 자기의 백성들을 향하신 우리 주님의 약속의 말씀을 이루어나가시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우리의 연약함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지금도 우리가 주님을 떠나지 않고 주되심을 고백하며 주님의 통치를 받는 삶을 사는 것도 주님께서 기도하심으로 말미암음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이 신실하신 주님 앞에서 더 이상 자기 고집과 자기 성실을 의지하지 않게 하시고 겸손히 주님을 의지함으로 주님의 승리에 참여하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TAG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성경본문 설교자 강설날짜 조회 수
660 [요한복음 13장] 새 계명을 주신 예수 요 13:34-35 손재호 2010-08-01 5359
659 [호세아 14장] 여호와의 도에 행하라. file 호 14:9 손재호 2013-09-29 5351
658 [창세기 35장] 사랑하는 라헬의 죽음 창 35:16-29 손재호 2009-04-05 5350
657 [히브리서 1장] 저가 천사보다 얼마큼 뛰어남은 히 1:4-14 최상범 2012-06-17 5345
656 [요한복음 10장] 양의 문 예수! 요 10:1-10 손재호 2010-04-25 5344
655 [마태복음 27장] 십자가에 못 박히신 왕 마 27:27-56 손재호 2007-11-11 5333
654 [히브리서 6장]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히 6:9-20 최상범 2012-09-23 5319
653 [창세기 30장] 야곱의 독립 투쟁 창 30:25-43 손재호 2009-02-22 5318
652 [요한복음 20장] 마리아에게 나타나신 예수 요 20:11-18 손재호 2011-02-13 5310
651 [호세아 2장] 너희 어미와 쟁론하라. file 호 2:1-7 손재호 2013-03-24 5297
650 [히브리서 9장] 그리스도의 피뿌림의 효력 히 9:11-14 최상범 2012-11-04 5294
» [요한복음 18장] 베드로의 예수님 부인 요 18:15-18,25-27 손재호 2010-12-26 5283
648 [히브리서 12장] 징계를 참으라 히 12:4-13 최상범 2013-02-10 5277
647 [창세기 1장] 하나님의 창조목적(2) 창 1:26-28; 엡 1:3-6 손재호 2008-04-20 5263
646 [요한복음 12장] 헬라인들의 방문 요 12:20-26 손재호 2010-06-27 5257
645 [출애굽기 3장] 모세를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부르신 하나님 file 출 2:23-3:10 손재호 2014-05-25 5256
644 [히브리서 7장] 대제사장의 기도 히 7:25 최상범 2012-10-07 5245
643 [창세기 34장] 야곱을 징계하신 하나님 창 34:1-31 손재호 2009-03-22 5241
642 [요한일서 5장] 세상을 이기는 믿음! 요일 5:1-5 손재호 2008-03-09 5236
641 [히브리서 11장] 홍수 이전의 믿음의 선진들 히 11:4-7 최상범 2012-12-16 5216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 40 Next
/ 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