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5310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Extra Form
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요 20:11-18
성경본문내용 (11)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푸려 무덤 속을 들여다보니(12)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 편에 앉았더라(13)천사들이 가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가로되 사람이 내 주를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14)이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의 서신 것을 보나 예수신 줄 알지 못하더라(15)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로 알고 가로되 주여 당신이 옮겨 갔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16)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여 하니 (이는 선생님이라)(17)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 가지 못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신대(18)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
강설날짜 2011-02-13

2011년 2월 13일 설교


마리아에게 나타나신 예수


말씀:요한복음 20:11-18

 

우리는 지난주에 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요한복음의 저자 사도 요한은 막달라 마리아와 베드로와 자신이 본 것을 통해서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했습니다. 이들이 본 것은 무덤 문이 열린 것과 세마포와 머리를 쌌던 수건이 개켜져 있는 것, 그리고 빈 무덤이었습니다. 이런 사실들이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증거들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빈 무덤과 세마포와 머리를 쌌던 수건이 그대로 개켜져 있는 것을 보고 예수님의 부활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보지는 못했습니다. 오늘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신 사건입니다. 이를 통해 요한은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10절에 보면 무덤 문이 열려 있다는 마리아의 말을 듣고 무덤에 달려 왔던 베드로와 요한은 빈 무덤과 세마포와 머리를 쌌던 수건이 개켜져 있는 것을 보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의외로 아무말없이 그냥 집으로 가버렸습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을 믿었지만 아직 말씀에 기초해서 부활의 의미를 이해하지는 못했습니다. 9절에 보면 “저희는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고 하고 있습니다. 하여튼 베드로와 요한은 떠나가고 마리아 혼자 남아서 울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시체를 누가 훔쳐 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시체가 거기에 있었다면 마리아가 울지 않았을까요? 아마 시체에 향유를 바르면서 또 울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시체가 거기에 그대로 있었다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기독교는 없는 것이고, 우리의 신앙도 헛것일 뿐입니다. 그런데도 마리아는 시체가 없어졌다고 울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리아가 이렇게 울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마리아는 이른 새벽 아직 어두울 때에 무덤에 달려 올 정도로 예수님에 대한 사랑과 정성이 대단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힘없이 죽으시는 것을 보고서는 이제 끝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죽어 버렸는데 어떻게 다시 살아오겠느냐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시체에나 향유를 발라드리고 마지막 정성을 다 하려고 새벽에 달려 온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사랑한 마리아의 모습입니다.

 

성경에 마리아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가 많이 나옵니다만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다고 하신 말씀을 직접들은 여인입니다. 누가복음 24:5-6절을 보면 “여자들이 두려워하여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 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라”고 했습니다. 지금 예수님의 시체가 없어졌다고 울고 있는 여인들에게 무엇을 기억하라고 하시는 것입니까? 갈릴리에 있을 때 하신 말씀을 기억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하신 말씀이란 무엇입니까?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기간 동안 제자들에게 자신이 부활할 것을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6장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으신 후 비로소 자신이 예루살렘에 올라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신 후 삼일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그런 일이 일어나면 절대로 안 된다며 말리는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사단아 물러가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모습이 지금 마리아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마리아나 베드로의 생각의 한계란 죽음이 끝이라는 것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인생은 죽으면 끝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은 자가 눈앞에 살아나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1장에 보면 나사로가 죽은지 나흘 만에 살아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사로가 병들어 죽어간다는 소식을 듣고도 일부러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라”고 하시면서 이틀을 더 유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은지 나흘이나 되어 썩어 냄새가 날 때 오셔서 “나사로야 나오너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자 죽어 냄새가 나던 나사로가 살아서 걸어나왔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의 능력이 죽은 나사로를 살려 내신 것입니다. 이 나사로를 살리시는 사건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어떤 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5-26절에 보면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죽고 나서 나중에 부활한다는 것이 아니라 지금 부활과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부활이요, 생명되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삼일만에 살아나신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으십니까? 그런데 우리는 어떠합니까? 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울지 않습니까? 세상만사가 내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울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의 눈물이 어떤 눈물입니까? 예수님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울고 있습니까? 십자가의 사랑이 희미하여 진다고 애통하며 금식하며 우십니까? 기뻐해야 할 때는 울고, 울어야 할 때는 기뻐하고 있는 모습이 오늘날 우리의 모습이 아닙니까?

 

11절에 보면 마리아는 울고 있다가 구푸려 무덤 속을 들여다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때 마리아는 무엇을 보게 되었습니까? 12절에 보면 마리아는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하나는 머리 쪽에 하나는 발쪽에 앉아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마리아가 머리가 놓였던 곳과 발이 놓였던 곳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는 우리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추측컨대 수의가 놓여진 위치가 장사지낼 때 발이 놓였던 곳과 머리가 놓였던 곳을 가리켜 주었던 것 같습니다. 유대인들의 무덤은 석회석을 뚫어서 만든 편평한 방이었습니다. 보통 이러한 무덤들의 입구 쪽에는 작은 곁방이 있는데 여기서 안쪽으로 낮은 입구가 있고 거기서부터 여러 개의 매장실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더러는 오직 한 시체만 매장하도록 만들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가족이 모두 매장할 수 있도록 많은 매장실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주님이 묻혔던 이 무덤은 매장실 외에 몇 사람이 더 들어설 만한 넓은 공간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천사의 모습을 보고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이것은 아마 마리아가 예수님의 시체가 없어진 것에 너무 집착하고 있었기 때문이거나 아니면 천사의 모습이 흰 옷을 입은 것 외에는 외견상 별다른 것이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본문에서는 천사의 모습에 대해서는 단지 흰 옷을 입고 있었다고만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록은 누가의 기록과도 일치합니다. 사도행전 1:1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 나타났던 천사들도 흰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하여튼 13절에 보면 천사는 울고 있는 마리아에게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라고 물었습니다. 당시 마리아는 큰 슬픔과 절망 가운데 빠져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장사되는 것을 다 지켜봤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심히 고통스럽고 기력을 다 잃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게다가 예수님의 시신마저 무덤에서 없어졌으니 마리아의 슬픔과 절망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마리아의 생각은 온통 누가 예수님의 시신을 가져갔는가 하는 것에 사로잡혀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시신을 빨리 찾아서 향품을 발라 드리고 장례를 온전히 해 드리고자 하는 생각에 사로 잡혀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마리아의 대답을 보면 이를 알 수 있습니다. 천사의 질문에 대한 마리아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사람이 내 주를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고 했습니다(13).

 

마리아가 천사에게 대답하고 뒤로 돌아섰는데 그때 어떤 사람이 거기 서 있는 것을 봤습니다. 14절에 보면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로 알았습니다. 마리아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것이 눈물이 앞을 가려서 잘 안 보였는지, 아니면 부활하신 모습이 너무나 달라져 있어서 그랬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나타나신 여러 경우에 대한 묘사에서 보듯이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이 예전의 모습과는 좀 달랐던 것 같습니다. 누가복음 24장에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은 엠마오 도상에서 두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들과 걸으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가 예수님이신줄 알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식사하면서 떡을 떼어 주실 때 비로소 예수님이신줄 알았습니다. 이런 것을 볼 때 부활하신 모습이 예전의 모습과 조금은 달랐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영체를 가지셨다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도마에게 상처난 옆구리를 만져 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육체를 가진 존재로 부활하신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 육체는 시공을 초월하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입혀주신 것이었습니다. 하여튼 마리아는 그가 부활하신 예수님인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15절에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낯선 사람처럼 정중하게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고 물었습니다. 이에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만일 당신이 시신을 옮겨갔다면 어디 두었는지 알려 달라”고 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시신을 찾아다가 마지막 장사를 치루고자 한 것입니다. 마리아의 이러한 요청은 그녀의 예수님에 대한 신앙심과 헌신적인 자세가 어떠한지를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16절에 보면 그 때 주님께서는 “마리아야”라고 하시며 그녀의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그때서야 마리아는 거기 서 계시는 분이 예수님이신줄 알아보고 ‘랍오니여’ 곧 선생님하며 만지고자 하였습니다. 그런데 1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왜 만지지 말라고 하셨을까요?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만지지 말라”고 하신 의미를 우리는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그 의미를 여러 가지로 추측해 볼 수는 있습니다. 어떤 분은 제자들이 오해 할까봐 마리아에게 만지지 말라고 했다고 하기도 합니다. 곧 사도행전에 보면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하고 묻습니다. 이처럼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오해할까봐 만지지 말고 하나님께로 올라 간다하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도 좋은 생각이라고 생각됩니다. 또 어떤 분은 레위기 23:9-14절에서 첫 이삭 한 단을 제사장에게 가져다주어 하나님께 흔들어 제사로 드리라고 했습니다. 이 규례를 바탕으로 부활의 첫 열매되신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께 드려진다는 의미에서 마리아에게 손을 대지 못하게 했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마리아가 자신을 만지는 것을 거절하신 것이 아닌 것으로 봅니다. 곧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마리아가 손을 대면 자신이 더럽혀질까봐 손을 대지 말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도마에게는 만져 보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8장에 보면 여인들이 예수님을 만지며 경배했다고 했습니다(마 28:9). 그러므로 자신을 만지지 말라고 하신 것은 단지 부활하신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께로 올라가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마리아와 제자들을 만날 것이기 때문에 자신을 붙들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깨우쳐 주신 것으로 봅니다. 그러나 사실 이것도 확실한 것은 아닙니다. “나를 만지지 말라”고 하신 말씀에 사용된 동사 곧 ‘만지다’라는 동사가 ‘하프토’(a{ptw)라는 단어입니다. 이 동사는 어떤 물체가 실물인지 아닌지를 알아보기 위해 손가락 끝으로 만져보는 것이 아니라 ‘꽉 붙잡는’ 혹은 ‘움켜쥐는’ 것을 의미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잠시 동안 제자들과 함께 머물러 계실 계획이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40일 동안 머물러 계시며 제자들에게 부활신앙을 갖도록 도와주시고 그들이 자신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 주셨습니다. 이처럼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당장 사라져 버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마리아는 당장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고 두려워하며 예수님을 꽉 붙잡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칼빈은 마리아에게는 만지지 말라고 한 것은 예수님을 세상에 묶어 두려하는 것을 보고 만지지 말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직 하늘의 영광에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감정을 자제할 것을 당부하신 것입니다. 한마디로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에게 부활의 목적을 제시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목적은 그들이 생각한 대로 세상에서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오르셔서 그에게 약속된 나라를 소유하시고 그의 영광을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의 우편에 앉아 교회를 다스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자신이 하나님 아버지 우편에 앉기 전에는 그의 부활이 완성되지 않은 만큼 부활의 반쪽 부분만 가지고 만족해 하며 그의 임재를 세상에 제한하려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를 통해 자신과 새로운 관계를 요구하신 것입니다. 이제는 전에와 같이 예수님을 손으로 만져보거나 눈으로 볼 수 없는 새로운 상황으로 들어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십니다. 그리고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어 교회를 다스리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를 통해 제자들과 영구히 함께 하십니다.

 

17절에 보면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너는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형제들’이라는 말은 예수님의 직계 가족 이상의 것을 뜻합니다. 이 표현은 예수님께서 이제 제자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으실 것을 나타내주고 있는 것입니다. 죽음과 부활을 겪으신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형제라고 부르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들을 형제라 부르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셨습니다. 히브리서 2:11절에 보면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을 대표하신 분이 되셨고, 하늘에서 임하신 주가 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초기 사역에서 동일한 생각을 표현하신 적이 있습니다. 마가복음 3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설교하고 계실 때 그의 모친과 형제들이 찾아왔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는 “누가 나의 모친이며 동생들이냐?”고 하셨습니다(막 3:33). 그리고 둘러앉은 자들을 보시며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는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고 하셨습니다(막 3:35).

 

17절을 다시 보면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고 말씀 하셨는데 이것은 두 하나님이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곧 제자들이 믿는 하나님이 있고, 자신이 믿는 하나님이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마리아의 하나님께 대한 관계와 자신의 하나님께 대한 관계가 다르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영원한 아들이십니다. 마리아와 모든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고 영접함으로 그 가족의 일원이 된 것입니다. 요한복음 1:12-13절에 보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과 하나님과의 관계, 제자들과 하나님의 관계 이 두 관계는 오직 한 하나님과의 관계인 것입니다.

 

18절에 보면 마리아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제자들에게 가서 “내가 주를 보았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하나님께로 올라간다”하라고 하신 말씀을 전했습니다. 마리아로 인해 부활하신 예수님이 하나님께로 올라간다는 소식이 제자들에게 전달되었습니다. 마리아는 주님께서 명하신 하늘로 올라간다는 소식을 증거함으로써 부활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요한은 마리아의 말을 들은 제자들의 반응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우리는 제자들이 그녀의 메시지를 의심스럽게 받아들였을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마리아에게 자신을 나타내시고 하나님께로 올라간다고 제자들에게 전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성도들에게 있어서 복음의 기쁜 소식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왜 이러한 신령한 복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까? 땅에 있는 것 곧 사라져 버릴 안개와 같은 것들이 없다고 울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그런 것 때문에 울지 말아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1:3-9절을 보면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이 우리에게 산 소망이 됩니다. 이 소망은 우리가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받은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지금도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어 주십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사 말씀대로 삼일만에 부활하신 부활이요 생명되신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허락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부활하신 주님께서 하나님 아버지께로 올라가신다는 이 소식이 우리의 산 소망이 되게 하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TAG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성경본문 설교자 강설날짜 조회 수
658 [시편 84편] 하나님 집 문지기라도 시편 84편 1-12 손재호 5352
657 [호세아 14장] 여호와의 도에 행하라. file 호 14:9 손재호 2013-09-29 5347
656 [창세기 35장] 사랑하는 라헬의 죽음 창 35:16-29 손재호 2009-04-05 5344
655 [요한복음 10장] 양의 문 예수! 요 10:1-10 손재호 2010-04-25 5336
654 [마태복음 27장] 십자가에 못 박히신 왕 마 27:27-56 손재호 2007-11-11 5333
653 [히브리서 1장] 저가 천사보다 얼마큼 뛰어남은 히 1:4-14 최상범 2012-06-17 5328
» [요한복음 20장] 마리아에게 나타나신 예수 요 20:11-18 손재호 2011-02-13 5310
651 [창세기 30장] 야곱의 독립 투쟁 창 30:25-43 손재호 2009-02-22 5309
650 [히브리서 6장]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히 6:9-20 최상범 2012-09-23 5309
649 [호세아 2장] 너희 어미와 쟁론하라. file 호 2:1-7 손재호 2013-03-24 5294
648 [히브리서 9장] 그리스도의 피뿌림의 효력 히 9:11-14 최상범 2012-11-04 5281
647 [요한복음 18장] 베드로의 예수님 부인 요 18:15-18,25-27 손재호 2010-12-26 5280
646 [히브리서 12장] 징계를 참으라 히 12:4-13 최상범 2013-02-10 5262
645 [창세기 1장] 하나님의 창조목적(2) 창 1:26-28; 엡 1:3-6 손재호 2008-04-20 5257
644 [요한복음 12장] 헬라인들의 방문 요 12:20-26 손재호 2010-06-27 5253
643 [출애굽기 3장] 모세를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부르신 하나님 file 출 2:23-3:10 손재호 2014-05-25 5232
642 [히브리서 7장] 대제사장의 기도 히 7:25 최상범 2012-10-07 5228
641 [창세기 34장] 야곱을 징계하신 하나님 창 34:1-31 손재호 2009-03-22 5226
640 [요한일서 5장] 세상을 이기는 믿음! 요일 5:1-5 손재호 2008-03-09 5221
639 [미가 1장] 너희는 다 들을찌어다! file 미 1:1-16 손재호 2011-07-31 5206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 40 Next
/ 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