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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요 7:37-52
성경본문내용 (37)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38)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39)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 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40)이 말씀을 들은 무리 중에서 혹은 이가 참으로 그 선지자라 하며(41)혹은 그리스도라 하며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가 어찌 갈릴리에서 나오겠느냐(42)성경에 이르기를 그리스도는 다윗의 씨로 또 다윗의 살던 촌 베들레헴에서 나오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며(43)예수를 인하여 무리 중에서 쟁론이 되니(44)그 중에는 그를 잡고자 하는 자들도 있으나 손을 대는 자가 없었더라(45)하속들이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로 오니 저희가 묻되 어찌하여 잡아오지 아니하였느냐(46)하속들이 대답하되 그 사람의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때까지 없었나이다 하니(47)바리새인들이 대답하되 너희도 미혹되었느냐(48)당국자들이나 바리새인 중에 그를 믿는 이가 있느냐(49)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로다(50)그 중에 한 사람 곧 전에 예수께 왔던 니고데모가 저희에게 말하되(51)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판결하느냐(52)저희가 대답하여 가로되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 상고하여 보라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하느니라 하였더라
강설날짜 2010-03-07

2010년 3월 7일 설교


생수의 강 예수!


말씀:요한복음 7:37-52

오늘 말씀은 초막절 마지막 날 예수님께서 성전에 서서 외치신 말씀입니다. 37-38절에 보면 “명절 끝 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생수의 강되신 예수님의 위대한 초청의 음성입니다. 예수님은 초막절에 실로암 우물에서 물을 길러 성전 재단에 붓는 풍습을 통해 자신이 생수의 강이 되심을 선포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말씀의 의미를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예수님 당시 초막절에 행해졌던 행사에 대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날부터 여섯째 날까지는 제사장들이 앞장을 서고 성전에 올라온 유대인들도 동참하여 행렬을 이루어 하루에 한 번씩 실로암 연못에서 물을 길러다가 성전의 재단에 부었습니다. 이를 통해 과거 조상들에게 출애굽의 광야 길에서 물을 공급하여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참조. 민 20:8-10). 또한 다른 한편으로는 장래 추수 때에 풍성한 추수를 소망하며 비를 내려주실 것을 간구하는 예식을 행하였던 것입니다. 반면에 일곱째 날이 되면 이와 같은 행렬을 일곱 번 연속적으로 행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런 예식 중에 이사야 12:3절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와 시편 113-118편의 찬송을 드리면서 하나님께 감사와 소망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그리고 모든 예식이 끝나고 난 다음 날에는 안식일처럼 일체의 노동을 금하고 온 회중들과 함께 성회로 모여 하나님께 희생 제물을 드림으로 절기의 마지막을 마무리하였습니다. 레위기 23:34-36절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칠월 십오일은 초막절이니 여호와를 위하여 칠일 동안 지킬 것이라. 첫날에는 성회가 있을찌니. 너희는 아무 노동도 하지 말찌며, 칠일 동안에 너희는 화제를 여호와께 드릴 것이요, 제 팔일에도 너희에게 성회가 될 것이며, 화제를 여호와께 드릴찌니. 이는 거룩한 대회라. 너희는 아무 노동도 하지 말찌니라”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초막절에 바로 이와 같은 행사를 통해 광야에서 물을 주시고 육신의 양식을 채워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념하며, 비를 주사 풍요를 기대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런 백성들의 기대를 이용하여 자신이 생수의 강이심을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께서 서서 이 말씀을 선포하시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선생의 자세는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앉아 있는 것입니다. 곧 앉아서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서서 외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강한 감정을 넣어서 이 말씀을 선포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강한 감정을 가지고 목마른 인생들을 초청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예수님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하셨습니다. 자신을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이 말씀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39절에 보면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예수님을 믿는 자가 받을 성령을 가리켜 하신 말씀입니다. 곧 장차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받으실 예수님께서 부어 주시는 ‘진리와 생명의 충만한 성령’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은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에게 역사하실 ‘하나님의 영’이자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따라서 오실 성령의 사역은 예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예수님의 것을 가지고 그것을 알리는데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6:13-14절을 보면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이 임하면 그 안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넘친다고 하셨습니다. ‘생수의 강이 흘러넘친다’는 것은 생수의 강이 임하는 곳마다 생명이 소성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스가랴 14:8-21절에 보면 “그 날에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를 것이라. 여름에도 겨울에도 그러하리라. 여호와께서 천하의 왕이 되시리니 그 날에는 여호와께서 홀로 하나이실 것이요, 그 이름이 홀로 하나이실 것이며, 온 땅이 아라바 같이 되되 게바에서 예루살렘 남편 림몬까지 미칠 것이며, 예루살렘이 높이 들려 그 본처에 있으리니 베냐민 문에서부터 첫문 자리와 성 모퉁이 문까지 또 하나넬 망대에서부터 왕의 포도주 짜는 곳까지라. 사람이 그 가운데 거하며 다시는 저주가 있지 아니하리니 예루살렘이 안연히 서리로다. 예루살렘을 친 모든 백성에게 여호와께서 내리실 재앙이 이러하니 곧 섰을 때에 그 살이 썩으며 그 눈이 구멍 속에서 썩으며 그 혀가 입속에서 썩을 것이요, 그 날에 여호와께서 그들로 크게 요란케 하시리니 피차 손으로 붙잡으며 피차 손을 들어 칠 것이며, 유다도 예루살렘에서 싸우리니 이 때에 사면에 있는 열국의 보화 곧 금 은과 의복이 심히 많이 모여질 것이요, 또 말과 노새와 약대와 나귀와 그 진에 있는 모든 육축에게 미칠 재앙도 그 재앙과 같으리라. 예루살렘을 치러 왔던 열국 중에 남은 자가 해마다 올라와서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숭배하며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 천하 만국 중에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숭배하러 예루살렘에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비를 내리지 아니하실 것인즉 만일 애굽 족속이 올라오지 아니할 때에는 창일함이 있지 아니하리니 여호와께서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열국 사람을 치시는 재앙을 그에게 내리실 것이라. 애굽 사람이나 열국 사람이나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의 받을 벌이 이러하니라. 그 날에는 말 방울에까지 여호와께 성결이라 기록될 것이라. 여호와의 전에 모든 솥이 제단 앞 주발과 다름이 없을 것이니. 예루살렘과 유다의 모든 솥이 만군의 여호와의 성물이 될 것인즉 제사 드리는 자가 와서 이 솥을 취하여 그 가운데 고기를 삶으리라. 그 날에는 만군의 여호와의 전에 가나안 사람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그 날에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를 것이라고 합니다. 그것이 여름에도 그러하고 겨울에도 그러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을 치러왔던 열국 중에 남은 자가 해마다 올라와서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숭배하며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고 했습니다.

에스겔서 47:1-12절을 보면 “그가 나를 데리고 전 문에 이르시니 전의 전면이 동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서 동으로 흐르다가 전 우편 제단 남편으로 흘러내리더라.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길로 말미암아 꺾여 동향한 바깥 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물이 그 우편에서 스미어 나오더라. 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으로 나아가며 일천척을 척량한 후에 나로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 다시 일천척을 척량하고 나로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일천척을 척량하고 나로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다시 일천척을 척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창일하여 헤엄할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이것을 보았느냐 하시고 나를 인도하여 강 가로 돌아가게 하시기로 내가 돌아간즉 강 좌우편에 나무가 심히 많더라.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 물이 동방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소성함을 얻을찌라.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 가므로 바닷물이 소성함을 얻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또 이 강 가에 어부가 설 것이니 엔게디에서부터 에네글라임까지 그물 치는 곳이 될 것이라. 그 고기가 각기 종류를 따라 큰 바다의 고기 같이 심히 많으려니와 그 진펄과 개펄은 소성되지 못하고 소금 땅이 될 것이며,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실과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실과가 끊치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실과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로 말미암아 나옴이라. 그 실과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이 강물이 이른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소성함을 얻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다”라고 하십니다(9). 예루살렘 성전에서부터 흘러나오는 물에 의해 이스라엘뿐 아니라 이 물이 흐르는 각처의 생물과 사람들이 다시 소생하게 되는 생명의 회복 역사가 일어난다고 하십니다. 이 약속의 말씀이 지금 초막절에 예루살렘 성전에 서서 말씀하고 계시는 예수님에 의해 종말론적으로 성취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소망의 역사를 내다보시면서 성전에 서서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리라”고 선언하시는 것입니다(37-38).

그런데 이러한 생수의 강을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그 당시의 사람들이 모르는 것입니다. 오히려 무리들 중에서 ‘이 사람이 누구인가?’하는 논쟁을 하는 것입니다. 40-44절에 보면 “이 말씀을 들은 무리 중에서 혹은 이가 참으로 그 선지자라 하며, 혹은 그리스도라 하며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가 어찌 갈릴리에서 나오겠느냐. 성경에 이르기를 그리스도는 다윗의 씨로 또 다윗의 살던 촌 베들레헴에서 나오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며, 예수를 인하여 무리 중에서 쟁론이 되니 그 중에는 그를 잡고자 하는 자들도 있으나 손을 대는 자가 없었더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메시아는 다윗의 씨로 베들레헴에서 나온다고 하였는데 이 사람이 갈릴리 출신이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일 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어디에서 나셨습니까?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셨습니다. 누가복음 2:1-7절에 보면 “이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 되었을 때에 첫번 한 것이라.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인 고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그 정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되었더라.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미가 선지자의 예언대로 유대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지만 마태복음 2장에 보면 헤롯왕이 죽이고자 하였기 때문에 애굽으로 피했다가 헤롯이 죽은 후 갈릴리 나사렛으로 돌아오셨습니다. 곧 예수님께서는 유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지만 자라기는 갈릴리 나사렛에서 자랐습니다. 그래서 이 사실을 두고 어떤 이들이 “그리스도가 어찌 갈릴리에서 나오겠느냐?”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하지 않고서는 예수님이 생수의 강이 되심을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아니 복음은 항상 사람들을 두 부류로 나누어 버립니다.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사람과 예수님을 배척하는 사람으로 나누어 버리는 것입니다. 복음은 사람으로서는 깨달을 수도 없고 받아들일 수도 없음을 먼저 전제합니다. 복음은 오직 성령이 임하여야 깨닫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이 일하심은 성령이 임의대로 일하시는 것입니다. 물론 성령이 독자적으로만 역사하지는 않습니다. 성부와 성자의 뜻을 따라 함께 일하십니다. 그런데 성령이 임의로 역사한다는 말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이 말은 사람의 뜻과 무관하다는 것입니다. 곧 성령 하나님의 역사는 사람의 뜻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나의 정성이나 노력이나 애씀으로 성령을 받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이 성령의 역사에 대해서 많은 오해를 합니다. 마치 내가 힘쓰고 노력하면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성령 받는 방법을 가르치는 집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나 성령은 사람이 임의로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하여야 복음을 깨닫고 받아들일 수 있고 생수의 강이 흐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 때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는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만약 성령을 깨닫고 받아들이고 생수가 우리에게 임하였다면 그것은 오직 주님의 은혜입니다.

그런데 이 일 곧 성령이 임하기 위해서는 먼저 무슨 역사가 있어야 한다고 합니까? 39절 괄호안의 말씀을 보면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 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고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영광을 받으셔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영광을 받으셔야 성령이 임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영광을 받으신다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예수님의 십자가 영광을 가리킵니다. 곧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실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이루어 놓으신 결과인지를 먼저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예배하고 감사하고 헌상하는 것이 다 조건적이거나 거래가 되고 나의 행위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지키라는 날과 달과 절기들이 하나님이 무슨 일을 이루어 놓으셨는지 그것을 알고 기억하며 그 하나님의 일하심을 받아 누리는 차원에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예수님이 말씀하시고 있는 절기가 초막절인데 이 초막절은 어디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까? 유월절에 기초를 두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구약의 절기들이 하나님이 이루어 놓으신 그 일들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이 그들에게 베풀어 주신 복을 받았기에 지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예배와 감사와 찬송을 하는 모든 것도 이미 주님께로부터 모든 복을 받았기(엡1장)에 하는 것이지 내가 이것을 함으로 다른 복을 받아 낸다는 식이 되면 그것은 하나님을 상대로 장사하고자 하는 종교적인 거래가 됩니다. 이런 식으로 나가게 되면 반드시 나오는 말이 ‘일단 바쳐봐, 복 주나 안주나, 일단 기도해봐, 응답하나 안하나’ 이런 식으로 나갑니다. 이런 것은 하나님의 일하심을 무시하는 죄입니다.

그러면 성령을 받게 되면 어떻게 다시는 목마르지 아니하는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게 되는 것입니까? 예수님의 영광이란 앞에서 살펴본 대로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십자가가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긍휼과 그 은혜가 십자가를 통하여 나타난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을 이제 하나님께서 왕의 자리에 앉히심으로 모든 만물 위에 뛰어난 이름을 가지신 왕으로의 영광을 받으신 것입니다. 종의 모습으로 낮아지신 분이 십자가로 승리하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보좌에 앉으신 것입니다. 사도행전 2:33절을 보면 “하나님이 오른 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오순절 성령이 임하신 사건을 가지고 베드로가 설교하는 내용입니다. 오순절 성령이 임하신 것을 요엘서 2장에서 말일에 만민에게 내 영을 부어 주리라는 그 내용의 성취를 증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호와의 큰 일입니다. 그러므로 오순절 성령이 임한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으로 인하여 영광을 받으시고 왕의 자리에 앉으셔서 그 약속하신 성령을 부어주신 것입니다. 곧 아버지께 받아서 예수님이 성령을 보내신 것입니다. 에베소서 4:8절을 보면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셔서 왕의 자리에 등극하신 것은 우리가 마귀에 사로잡혀 있었는데 예수님이 십자가로 승리하셔서 우리를 다시 사로잡아 내셔서 성령을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주님의 엄청난 일하심으로 인하여 우리가 죄인임을 알고 예수님을 믿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다는 것이 기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성령이 임하시면 목마르지 아니한다는데 우리는 지금 어떠합니까?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그리하면 생수의 강이 그 믿는 자의 배에서 흘러 나리라”고 말씀하셨는데 여러분은 목마름이 없습니까? 갈증이 없습니까? 정말 예수님만으로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고 계십니까? 그렇지 않지요? 항상 목마르지요? 그러면 우리가 도대체 성령을 받은 것입니까? 못 받은 것입니까? 정말 주님을 믿는다는 것은 더 이상 세상의 그 무엇에 대하여 갈급해 하지 않는 것입니다. 형편이 어떻든 간에 자족하기를 배운 것은 생수의 강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은혜로 생수의 강되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생수를 마셨습니다. 이미 하나님의 은혜로 영생수를 마신 자는 생수의 강되신 예수님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 갈증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2:1-5절에 보면 “또 저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노릇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극치에 이르게 될 때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고 예수 그리스도로 구원을 받은 자는 생명수의 강에서 영원히 우리 주님과 함께 영생을 누리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 성도들의 진정한 소망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우리 주님의 위대한 초청의 음성을 듣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생수의 강되신 예수님을 허락해 주시고, 생수의 강되신 예수님으로 인해 우리 인생이 생명이 풍성한 복된 인생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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