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방문자 : 
    535
  • 어제방문자 : 
    1,174
  • 전체방문자 : 
    1,415,725
조회 수 5213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Extra Form
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벧전 1:22-25
성경본문내용 (22)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23)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24)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25)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강설날짜 2011-12-04
동영상 http://flvs.daum.net/flvPlayer.swf?vid=pvzRhjIWRaQ$

2011년 베드로전서 공부

 

뜨겁게 사랑하라

 

말씀:베드로전서 1:22-25

우리는 지난 시간에 조상의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함을 받은 것이 은이나 금과 같이 없어질 것 곧 썩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님을 배웠습니다(1:18-21). 우리가 구속함을 받은 것은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창세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여 주시고 우리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이로써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믿음과 소망 가운데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구속함을 받은 우리 성도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감사하며, 그 은혜를 찬양하는 인생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형제 사랑에 대한 베드로 사도의 권면의 말씀입니다. 1:13-21절 말씀에서 성도의 거룩한 삶에 대해서 권면한 베드로 사도는 이제 형제 사랑에 대해서 권면하고 있습니다(1:22-25). 우리가 핍박과 마귀의 유혹을 이기고 이 땅에서 주님의 재림을 소망하며 승리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진리를 순종함으로 형제를 피차 뜨겁게 사랑해야 합니다. 진리에 기초한 이 사랑이 우리로 하여금 모든 핍박과 환난 가운데서도 승리하게 합니다.

22절에 보면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고 합니다. 이 말씀을 보면서 우리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진리를 순종해서 내가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서로 사랑하자라고 합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이렇게 생각한다면 말씀의 성취력이 아니라 나의 행함의 능력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 진리를 순종할 수 있습니까? 우리 스스로 우리 영혼을 깨끗하게 할 수 있습니까? 우리 스스로 형제를 사랑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그러면 이 말씀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진리의 말씀이 우리로 하여금 형제를 뜨겁게 사랑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항상 살아 있습니다(히 4:12). 이 말씀이 우리로 하여금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만듭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영혼이 깨끗하게 됩니다. 그런 자들은 누가 뭐라고 안 해도 피차 서로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말씀의 능력입니다.

특히 여기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라는 말은 그 시제가 완료형입니다. 곧 이미 깨끗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들이 이미 정결하게 되었기 때문에 동료 그리스도인들을 거짓 없이 그리고 피차 뜨겁게 사랑해야 한다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이미 진리 곧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영혼이 깨끗하여 졌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거짓 없이 형제를 사랑해야 합니다. 여기서 ‘거짓이 없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아뉘포크리톤’(?νυπ?κριτον)이라는 말로 ‘배우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에 대한 사랑은 마치 배우가 연기를 하듯이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진심어린 마음으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해야 합니다. ‘뜨겁게’라는 단어가 ‘에크테노스’(?κτεν??)인데 이 단어의 의미는 ‘쉬지 않고’, ‘열심인’이란 의미의 ‘에크테네스’(?κτεν??)에서 유래된 말로 성도 간에 열심히 서로 사랑하는 자세를 지닐 것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미 그 영혼이 깨끗함을 받은 성도들은 함께 깨끗함을 받은 성도들을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열심히 사랑해야 합니다. 이와 같은 성도 간의 사랑이 핍박과 환난 가운데서도 승리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0:23-25절에 보면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아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라고 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주님의 재림이 가까울수록 우리 성도들은 소망을 굳게 잡고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라고 합니다. 말세를 사는 우리 성도들은 주님의 재림을 소망하며 서로 돌아보아 형제를 뜨겁게 사랑해야 합니다. 서로의 믿음의 선한 싸움을 격려해야 합니다. 형제를 사랑하고 서로의 선행을 격려할 때 사랑의 공동체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럴 때 그 공동체는 세상이 감당치 못할 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도들은 어떻게 사랑해야 합니까? 요한일서 3장에 보면 요한은 우리 형제들이 어떻게 서로 사랑해야 하는가를 말합니다. 요한일서 3:14-18절을 보면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보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라고 했습니다. 요한은 우리 성도는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다고 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기까지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가능합니까? 우리의 힘과 의지로는 불가능합니다. 주께서 은혜를 주셔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왜 목숨을 버리기까지 형제를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까?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구원함을 받은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말미암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되 자기 목숨을 십자가에 내어 주시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함께 형제 된 자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어주기까지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 목숨을 내어주기까지 사랑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모든 율법과 선지자들의 강령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마 22:34-40). 이와같이 우리 성도들은 주님의 사랑을 힘입어 함께 형제 된 자를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에서 형제를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은 구체적으로 형제의 궁핍함을 도와주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보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일 3:17-18).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깨끗함을 입은 자들은 함께 형제 된 자들을 말과 혀로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해야 합니다. 이렇게 행함과 진실함으로 서로 사랑할 때 우리가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게 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은혜를 주셔서 우리 교회가 주님의 재림을 소망하며 거짓 없이 형제를 사랑하는 역사가 있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뜨겁게 피차 열심으로 사랑하는 역사가 있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교회가 사랑의 공동체가 되게 하여 주시고,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교회가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모든 핍박과 사단의 역사를 물리치고 승리하는 교회가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주님 앞에 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23절을 보겠습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고 했습니다. 형제 사랑에 대해서 말하던 베드로 사도는 다시 성도가 어떻게 구원 받았는지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에 대한 근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되었다’는 이 말씀은 우리가 거듭난 것이 우리의 노력한 결과로 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모든 노력은 헛되고 썩어질 것들 뿐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다 육체이기 때문입니다. 흙으로 돌아갈 육체이기에 영원한 것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육은 육이요, 영은 영인 것입니다(요 3:6). 육에서 영으로 넘어가는 방법이 인간에게서는 나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거듭나는 것,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 우리가 영생을 얻고 하늘의 영원한 기업을 받는 것은 오직 썩지 아니할 씨로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썩지 아니할 씨가 무엇입니까? 그 썩지 아니할 씨는 바로 하나님의 살아있고 항상 있는 말씀인 것입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벧전 1:23). 그런데 이 말씀의 능력을 1:2절에서는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이라”고 했습니다(벧전 1:2). 그런데 이 모든 일을 이루심에 있어서 인간이 한 일이 무엇입니까?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여 주시고 그의 피 뿌리심을 얻게 하시려고 성령으로 구별하여 내신 것입니다. 이것이 썩어지지 아니할 씨 곧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된 것입니다.

24절을 보면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이사야 40:6-8절을 보면 “말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가로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본래 이사야 선지자가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 낙심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시는 위로의 말씀입니다. 바벨론이 지금 강성하나 곧 쇠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이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바로 이러한 이사야의 말씀을 인용하여 주의 말씀의 절대성과 영원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풀의 꽃과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합니다. 우리 인생은 풀과 같은 존재이기에 하나님의 기운이 한번 불어버리면 광풍에 풀이 마르고 꽃이 떨어지는 것처럼 다 말라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한 것입니다. 여기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다’라는 말은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풀은 금방 시듭니다. 꽃도 금방 떨어집니다. 이와 같이 우리 인생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우리 인생이 이 땅에서 누리는 영광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야고보서 4:14절에 보면 야고보는 우리 인생을 잠간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와 같다고 했습니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약 4:14).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풀과 같이 안개와 같이 잠시 있다가 사라져 버리는 존재입니다. 이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우리 인생을 가리켜 일장춘몽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베드로 사도는 이에 반해서 무엇이 영원하다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1:25). 베드로 사도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풀과 같은 우리 인생과 세세토록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조 시키고 있습니다. 이것을 통해서 베드로 사도는 무엇이 진정으로 중요한가 하는 것을 독자들에게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인생이 어떤 존재인지를 바르게 인식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설 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이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우리 인생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지음을 받았고, 그 말씀에 의하여 풀처럼 사라지게 하시면 사라질 존재입니다. 아무리 우리 인생이 영광스럽다고 하여도 하루 아침에 풀과 같이, 안개와 같이 잠시 있다가 곧 사라질 존재들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증거 하는 인생입니다.

그러면 베드로 사도는 무엇이 중요하다는 말입니까?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 곧 세세토록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합니까? 우리는 우리 인생에 있어서 무엇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까? 우리의 관심사는 늘 어디에 가 있습니까? 썩어지고 더럽혀지고 쇠하여질 이 세상과 이 세상의 것들에 가 있지 않습니까? 이것이 이 땅을 사는 우리 인생들의 실존입니다. 이런 우리 인생들에게 오늘 이 말씀은 참으로 충격을 주는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한 우리로 하여금 정신을 바짝 차리게 하는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우리 인생은 어떤 인생을 살고자 합니까? 잠시 있다 사라질 이 세상의 헛된 부귀와 영화에 목을 매고 살고 있습니다. 잠시 있다가 사라져버릴 이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과 헛된 영광에 빠져서 일생을 허덕거리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은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벧전 2:24-25a). 이 말씀은 너희 인생들이 너희는 한 포기 풀과 같은 존재임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오직 우리 주님을 믿고 의지하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들리는 자는 영원한 주의 말씀 곧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게 될 것입니다. 이런 자에게 영원한 생명이 주어질 것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우리 주님과 함께 영생복락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세세토록 있는 주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25절을 다시 보면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세세토록 있는 주의 말씀은 이미 우리에게 전하여진 복음입니다. 우리에게 전하여진 복음은 곧 살아 있고 영원히 있는 주의 말씀인 것입니다. 살아 있고 영원히 있는 말씀이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히 살아계시고 영원히 있는 분입니다. 이 말씀이 오늘도 살아서 역사하시기에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도구로, 나팔로 사용하셔서 창세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여 내신 자들을 불러내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속함을 받는 것은 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능력이 아니고, 복음을 듣는 자들의 능력도 아닌 것입니다. 오직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 그대로 성취가 되어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이 복음의 말씀을 믿는 자들이 나온다면 그 동일하게 말씀의 능력을 맛보는 자들이기에 서로서로 기뻐하며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는 이것은 누가 시켜서 되는 일이 아닙니다. 서로 사랑하라고 명령한다고 되는 일도 아닙니다. 서로 사랑하자고 외치고, 무슨 운동을 하고, 힘쓴다고 되는 일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의 능력이 우리를 그렇게 만들어 내시는 것입니다. 항상 살아 있는 말씀의 능력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의 능력을 찬양합니다.

성경 한곳만 더 보고 마치겠습니다. 히브리서 4:12-13절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습니다. 좌우에 어떤 날선 검보다 더 예리하여 우리의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는 것입니다. 그 말씀의 능력이 베드로전서의 말씀을 가지고 지금 우리로 하여금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고 있는 것입니다. 잠시 있다가 사라질 인생의 헛된 영광이 얼마나 속속들이 우리 골수 깊숙이 박혀있는지를 아시기에 그 예리한 말씀의 검으로 우리를 수술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와 만물을 상관하시는 분 앞에서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 드러남 속에서 ‘어찌할꼬?’하며 탄식을 하게 되는 일이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성령의 역사도 말씀을 떠나서 독자적으로 역사하지는 않습니다. 늘 말씀으로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6:13절에 보면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고 하셨습니다. 성령 하나님은 우리를 늘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자의로 말하지 않고 듣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성령 하나님은 우리를 진리의 말씀 가운데로 인도하셔서 그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죄를 드러내시고, 우리로 회개케 하시며, 우리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곧 우리로 말씀 앞에서 자신의 죄가 드러나고 부끄러움을 당하는 그때에 복음을 듣게 하시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우리 인생이 풀과 같고, 우리 인생의 영광이 풀의 꽃과 같은 존재임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또한 천지는 없어지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어짐을 믿는 믿음을 허락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로 오직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 곧 우리에게 전하여진 복음을 믿고 의지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함께 형제 된 자를 피차 뜨겁게 사랑함으로 승리하게 하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TAG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성경본문 설교자 강설날짜 조회 수
643 [미가 1장] 너희는 다 들을찌어다! file 미 1:1-16 손재호 2011-07-31 5228
642 [아모스 1장] 이방의 죄와 심판(1) 암 1:3-12 손재호 2011-04-10 5227
641 [히브리서 11장] 홍수 이전의 믿음의 선진들 히 11:4-7 최상범 2012-12-16 5224
640 [요한복음 8장] 진리와 자유! 요 8:21-59 손재호 2010-03-28 5216
» [베드로전서 1장] 뜨겁게 사랑하라! 벧전 1:22-25 손재호 2011-12-04 5213
638 [요한복음 7장] 초막절 성전 강화 요 7:1-36 손재호 2010-02-28 5210
637 [요한복음 16장] 보혜사 성령이 오시면 요 16:1-11 손재호 2010-09-26 5210
636 [창세기 49장] 야곱의 자식에 대한 예언(3) 창 49:13-28 손재호 2009-07-12 5200
635 [창세기 25장] 아브라함의 죽음 창 25:1-18 손재호 2009-01-11 5194
634 [베드로후서 1장] 신의 성품에 참예하라 벧후 1:1-7 손재호 2012-03-25 5178
633 [창세기 43-44장] 유다의 회개와 희생 창 43:1-44:34 손재호 2009-05-31 5162
632 [요한복음 16장] 근심이 기쁨으로 요 16:16-24 손재호 2010-10-10 5159
631 [요한일서 5장] 하나님의 증거! 요일 5:6-12 손재호 2008-03-16 5145
630 [창세기 45장] 자신을 드러낸 요셉 창 45:1-28 손재호 2009-06-07 5134
629 [히브리서 11장] 마지막 주자 히 11:32-40 최상범 2013-01-27 5124
628 [창세기 17장]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다 창 17:1-27 손재호 2008-10-19 5123
627 [아모스 5장] 너희는 애가를 들으라! 암 5:1-13 손재호 2011-05-22 5118
626 [로마서 12장] 영적 예배! 롬 12:1-2 손재호 2009-11-29 5108
625 [히브리서 2장] 표적과 기사 히 2:3-4 최상범 2012-07-01 5106
624 [창세기 5장] 아담 자손의 계보 창 5:1-32 손재호 2008-06-22 5103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 41 Next
/ 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