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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벧후 1:1-7
성경본문내용 (1)예수 그리스도의 종과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같이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2)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3)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자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4)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5)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6)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7)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강설날짜 2012-03-25
동영상 http://flvs.daum.net/flvPlayer.swf?vid=jXxby6mwVhc$
2012년 베드로후서 공부
                                                 신의 성품에 참예하라
말씀:베드로후서 1:1-7

오늘부터 베드로후서를 공부하겠습니다. 1:1절에 보면 ‘보배로운 믿음’이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믿음이 보배롭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면서 온 몸으로 느끼는 보배는 어떤 것입니까? 금이나 은과 같은 것이죠. 그런 것들을 살 수 있는 돈을 보배로 여깁니다. 그런 돈을 벌수 있는 능력 있는 인간이 보배로운 인간입니다. 그래서 가정이나 회사나 교회나 간에 돈을 잘 벌어올 수 있는 사람이 보배로운 인간 대접을 받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런 현실을 가짜 현실이라고 합니다. 마귀에게 속아서 가짜 보물을 진짜 보물인 것처럼 여기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말하는 보물을 믿지 않고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보물을 믿고 사는 것이 우리의 습관입니다. 놀이나 교육이나 관습이 모두 다 이 세상의 보물을 차지하는 것을 복이라고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에 보면 예수님을 믿는 것이 보배라고 합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을 믿는 것이 보배로운 것입니까? 베드로후서 3:7절에 보면 이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모든 것들이 다 불살라져 없어진다고 합니다. 요한일서 2:15-17절에도 보면 세상에 속한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 좇아오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영원하다고 합니다. 고린도전서 16:22절에 보면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찌어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무시무시한 저주의 선포가 예수님을 사랑하지 아니하는 곳에 나타납니다. 그러면 우리가 사는 모든 삶의 내용이 예수님을 사랑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나를 사랑하고 있습니까? 주님께서는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늘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를 위해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실 때에 자기를 보고 우는 여자들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누가복음 23:28절에 보면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와 네 자녀들을 위하여 울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4장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의 파괴와 함께 세상 끝 날의 심판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예수님을 사랑하지 아니하는 일에 대하여 회개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자녀들이 예수님보다 세상의 것들을 더 사랑하는 것에 대하여 눈물로 기도하고 있습니까? 자녀들이 공부하지 아니하는 일에 대해서는 애타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듣는 일에 대해서는 애타하지 않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이지 않습니까? 솔직하게 우리의 보물이 무엇입니까?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들을 보물로 여기지 않습니까? 우리가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들을 보물로 여기고 있다면 우리는 오늘 이 말씀 앞에서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는 것이 참된 보배임을 아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이 세상이 다 불살라져도 없어지지 아니할 보배입니다. 천하를 주고도 살 수 없는 것이 보배로운 믿음입니다.

그러면 이 보배로운 믿음이 무엇인지, 그 믿음이 어떻게 성도에게 주어지는 지를 보고자 합니다. 1절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종과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같이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라고 합니다. 베드로는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과 사도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베드로 자신이 사도라고 밝힌 것은 이 편지의 권위를 부여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사도들은 사도 자신들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은 자이기에 그들의 말은 자신의 말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을 임의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사도들이 어떻게 증거 하였는지를 보고 해석하고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가 개인의 자질과 능력이 아님을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라는 이 말씀에서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었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의가 아닌 것입니다. 베드로도 유대인이기에 자신의 의가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율법이 금한 음식을 먹지 않았고 이방인과 교제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베드로를 주님께서 어떻게 이끄셨습니까? 사도행전 10장에 보면 보자기 환상을 통해 이방인 고넬료의 집에 가서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환상을 통해 부정한 짐승을 잡아먹으라는 말씀을 세 번이나 듣습니다. 그 때 베드로는 자신은 어려서부터 그런 음식을 먹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15). 베드로가 이 환상의 의미를 알게 된 것은 고넬료의 집에 가서 복음을 전할 때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는 것을 보고 알았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예루살렘 회의에서 이방인도 우리와 똑 같이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것을 말하면서 율법의 멍에를 매게 하지 말자고 합니다(행 15장). 이와 같이 이방인도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고백이 나오기까지 주님께서는 베드로를 직접 인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가 사도가 된 것은 자신이 잘나서 된 것이 아니라 은혜로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동일하게’라고 하는 것입니다. 동일하게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보배로운 믿음을 받는 자들에게 편지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보면 ‘의’도 받는 것이며, ‘믿음’도 받는 것입니다. 누가 더 의롭거나 누가 더 잘 믿는다는 것이 없습니다. 모두가 다 동일하게 은혜로 받는 것입니다. 그러니 믿음은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오직 주님만 자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 바로 보배로운 믿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각 지역에서 믿음으로 인하여 여러 가지 환난을 당하는 자들에게 위로와 격려의 편지가 되는 것입니다. 보배로운 믿음을 받은 자들은 세상의 썩어질 보배가 아니라 하늘에 간직한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보배를 받은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3-4절을 보면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이 보배로운 믿음이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베드로전서 1:18-19절을 보면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 피가 보배입니다. 그로부터 주어진 믿음과 소망이 보배입니다. 베드로전서 2:4-5절을 보면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찌니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에게는 싫어버린 바 된 돌입니다. 사람들은 세상에서 썩어지고 없어지고 불살라질 것들을 보배로 여기고 있었기에 예수님이 버림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에게는 보배로운 돌이지만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돌입니다. 베드로전서 2:6-8절을 보면 “경에 기록하였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 돌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의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또한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었다 하니라. 저희가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저희를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이 싫다고 버린 돌을 보배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세상에서는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그들이 지혜로운 자들이며 복 있는 자들입니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이런 예수님을 우리의 힘으로 사랑할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도 여전히 얼굴을 돌리고 싶은 예수가 아닙니까? 이런 예수님이 이미 이사야 53장에 예언되어 있습니다(3). 그런데도 오늘날 예수님을 세상의 도깨비 방망이처럼 주문만 외우고 두드리기만 하면 은과 금이 쏟아지는 것처럼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 자들을 좋아라고 따라다니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런 것도 하나님께서 다 그렇게 미리 정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보배는 세상에서 버림받은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이것은 창세전에 미리 예정된 자들에게 믿음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욱 보배로운 믿음입니다.

그러면 이런 보배로운 믿음을 받은 자들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이런 질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은혜를 받았으니 이제는 그 은혜에 보답하자’는 식으로 나옵니다. 그러나 우리가 보답을 하거나 갚을 수 있는 은혜라면 그것은 은혜가 아니라 빚입니다. 우리가 일한 대가로 받을 수가 없는 것이기에, 거저 주시는 선물이기에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선물을 주신 것은 갚으라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하고자 하시는 것입니까? 2절을 보면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찌어다”라고 합니다. 우리가 보배로운 믿음을 선물로 받았다면 그 선물이 어떻게 준비되고 어떻게 주어졌는지 알아가라고 합니다.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 것이라고 합니다. 각 지역에서 흩어진 성도들이 세상에서 버림받은 돌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믿는 자들에게는 보배가 된다는 사실을 알면 알수록 더욱 은혜와 평강이 넘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7:3절에서는 이렇게 증거 합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그렇습니다.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이 은혜를 알아가면 갈수록 은혜와 평강이 넘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에베소교회의 성도들에게 그 사랑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알아가라고 한 것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 3:17-19).

3절을 보면 베드로는 놀라운 일을 말합니다.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자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베드로가 말하는 놀라운 일이 무엇입니까? 그의 신기한 능력입니다.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주님의 능력입니다. 주님께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렇게 하시는 것을 자기의 영광과 덕이라고 합니다. 이로써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다고 합니다.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보배로운 믿음을 받지 못한 자는 숨 쉬고 밥 먹고 세상의 영광과 권세를 누리고 세상의 복을 받아 산다고 해서 그것이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미 죄와 허물로 죽어 더러워지고 썩어질 것들만 좋아하던 우리를 부르신 것은 부르신 그 분의 영광과 덕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부르신 자를 알아가면 갈수록 그 주님의 영광과 덕을 찬송하고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신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4절을 보면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라고 합니다. 이 약속을 받은 자들로 하여금 정욕으로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여기서 베드로 사도는 두 가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정욕으로 인하여 썩어질 것을 피하게 하는 것과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먼저 세상의 썩어질 정욕들이 어떤 것들입니까? 세상과 세상에 속한 것들입니다.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을 사랑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그 안에 없는 것입니다. 요한1서 2:15절을 보면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고 했습니다. 야고보서 3:13-16절도 보면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뇨.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찌니라.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스려 거짓하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니.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요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들에 보면 세상의 지혜와 하늘의 지혜를 비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들에서 세상의 썩어질 정욕들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을 사랑하기 위하여 시기하고 질투하며 쟁투하는 것이 다 정욕적인 것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을 피하라고 해서 피할 자가 누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보배롭고 지극히 큰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자들, 곧 보배로운 믿음을 받은 자들은 이 세상의 정욕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야 할 것임을 아는 것입니다. 세상의 정욕들은 다 썩어질 것들임을 아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다 불살라져 없어질 것임을 아는 것입니다. 이렇게 알게 되고 피하게 되는 것은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의 능력이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썩어질 것을 피하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신의 성품에 참예하게 하는 것입니다.

방금 두 곳의 성경에서 정욕적이란 것은 자신의 욕심을 위하여 시기와 질투가 일어나며 세상을 사랑하는 것에서 나왔습니다. 나의 만족과 이익을 따라 선과 악을 결정하며 살아온 것입니다. 그런 자에게 신의 성품에 참예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마태복음 5:43-48절을 보면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만이 신의 성품에 참예한 자들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유대인이지만 율법을 지키지 못한 자들을 죄인취급하면서 세리와 창기를 경멸하고 이방인들은 짐승처럼 여긴 그들에게 예수님은 하나님의 온전하심이 어떤 것인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유대인들이 하고 있는 수준이란 것이 이방인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란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악인과 선인에게 동일하게 햇빛과 비를 주시는 하나님의 온전하심과 같이 온전하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어떤 누구도 하나님의 아들이 되거나 하나님의 온전하심에 이를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받은 자만이 하나님의 성품에 참예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약속의 능력이 썩어질 세상의 정욕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 자들에게 이제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까? 5-7절을 보면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고 합니다. 여기서 ‘이러므로’라는 말은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받았기에 세상의 썩어질 정욕을 피하고 신의 성품에 참예한 자로서 더욱 힘쓰라는 말입니다. 특히 이 말씀에 보면 처음에는 ‘더욱 힘쓰고’라고 했고, 끝에는 ‘공급하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전적으로 책임을 지고 이루어가라는 말이 아닙니다. 만약 이 말씀이 다시 전적인 우리의 책임으로 이루어가야 할 사항이라면 앞에서 하신 말씀과 모순이 되는 것입니다. 이미 1-4절까지 말씀에서 본 것처럼 주님께서 보배로운 믿음을 주셨고,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믿음만 주시고 덕과 지식과 절제와 인내와 경건과 형제우애와 사랑을, 경건과 인내를 빼 놓고 주셨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 모든 것들이 다 세상의 지혜가 아니라 하늘로서 온 지혜입니다. 그러므로 이미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들이 다 주어졌으니 그것을 더욱 알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1:2절에서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더욱 많을찌어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1:3절에서도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 우리를 부르신 자를 앎으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우애를, 형제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는 것은 이미 주어진 것 속에 이런 것들이 있음을 알아가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받았습니까? 그렇다면 그 안에는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이미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약속 안에서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절제와 인내와 경건과 형제우애와 사랑을 맛볼 수밖에 없는 사람이 되었음을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원해서가 아니라 이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받았기에 절제할 수밖에 없으며, 인내할 수밖에 없으며, 형제우애와 사랑을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의 영광과 덕으로 부르신 그분을 찬송하고 감사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사 우리로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주신 주님의 은혜를 알게 하여 주시길 원합니다. 그 안에 모든 덕을 이미 주신 것을 알게 하여 주시길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가는 가운데 우리에게 주신 덕을 더 깊이 알아 가게 하시고, 우리로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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