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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최상범
성경본문 히 5:11-14
성경본문내용 (11)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의 듣는 것이 둔하므로 해석하기 어려우니라(12)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13)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14)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
강설날짜 2012-09-02

 2012년 9월 2일 한결교회 주일예배강설

히브리서 제13강


병적인 유아상태(1)


말씀 : 히 5:11-14


히브리서 저자는 멜기세덱 이야기를 하다말고 갑자기 히브리서 수신자들을 권면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예수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 되신다는 깊은 복음의 진리를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영적으로 어린아이의 수준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먼저 그들의 영적 미성숙의 문제를 지적하고 경고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는 우리에게 두 종류의 신앙을 말하는데 하나는 젖을 먹는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이고, 또 하나는 딱딱한 음식을 먹는 장성한 자와 같은 신앙입니다. 똑같은 구조를 가지고 고린도전서에서는 육에 속한 그리스도인과 신령한 그리스도인을 말합니다.


(1)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2)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3)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고전 3:1-3)


젖을 먹는 어린아이는 곧 육에 속한 그리스도인을 말하는 것이고, 딱딱한 음식을 먹는 장성한 자는 신령한 그리스도인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생각하기를 신앙에는 어린단계의 신앙과 성장한 단계의 신앙이 있어서, 그래서 그 단계를 거쳐서 믿음이 자란다고 생각을 한 나머지, 오래도록 어린 상태에 머물러 있는 신앙도 신앙가운데 한 종류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은 너무 위험한 생각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에 있어서 실패의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입니까? 늘 결심해도 그 결심대로 살지 못하고 매일 죄에 굴복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누렸던 하나님과의 깊은 친교 속에서 그분을 사랑하고 또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을 받고 주님을 마음에 모시고 살아가는 것이 신앙생활의 근본이거늘, 그 근본을 경험하지 못하며 살아가는 그 궁극적인 원인이 무엇입니까? 이 모든 것들은 우리들이 어린아이의 상태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신앙에는 어린아이로 태어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마지막에 장성한 어른이 되기까지 성장의 과정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어린아이 상태에 오래도록 머물러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성장의 과정이 아니라 영혼의 중대한 질병중의 하나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아이를 출산하고, 그 아이가 갓난아이로 태어나서 젖을 먹고 조금 지나서는 기어다니고, 그리고 나중에는 걸어 다니고 해야 정상인데, 만일 1년 정도만 성장하고 그 상태에 멈춘다고 한다면, 한 걸음 더 나아가서 7-8살 쯤 되었는데도 계속해서 우유이상의 것을 먹을 수 없고, 언어구사도 안되고, 엉금엉금 기어 다니고 똥을 기저귀에 싼다고 한다면, 그 아이의 부모는 커다랗게 낙심하고 말 것입니다. 실제로 작년에 화제가 되었던 뉴스 가운데 갓난아이의 상태로 성장이 멈추어 버린 희귀병에 걸린 한 여성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나이가 31살인데, 생후 8개월 전후의 모습을 하고 있으면서, 혼자서는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기저귀를 차며, 밥을 떠먹여줘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만일 그 여성의 부모라면, 그 심정이 어떠하겠습니까? 정말 낙심이 되고 그 자녀를 보면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픔을 느끼면서 그렇게 눈물의 세월을 보내지 않겠습니까?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낳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신앙이 어려서 젖을 먹는 것 같은 유아시기가 있다는 것을 하나님도 인정하십니다. 그러나 그러한 유아기가 1년, 2년, 5년, 10년, 심지어는 20~30년 계속된다면, 그렇게 성장을 멈춘 채 우리의 신앙이 병적인 유아기에 계속 머물러 있다면, 우리를 보시는 주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실까요? 그리고 그러한 병적인 유아상태에 있는 본인의 삶 또한 얼마나 불행하고 비참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내가 혹시 병적인 유아상태에 머물러 있는 자는 아닌지 스스로를 점검해보아야 하고, 또 만일 내가 그러한 병적인 유아상태에 있다면, 우리는 오늘 말씀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여 들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 문제에 대한 적절한 해답을 갖지 않는 한 우리는 계속해서 그렇게 영적으로 성장을 멈춘 채 병적인 유아상태로 살다가 그렇게 인생을 끝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계속해서 육에 속한 어린아이와 같은 그리스도인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주님이 어떠한 은혜를 주신다 하더라도, 여러분들은 그 은혜를 곧 흘려버리고 다시 고갈된 상태 속에서 살아갈 것이며, 죄에 계속해서 굴복하며, 어떠한 신령한 세계도 맛보지 못한 채, 하나님을 대적하고 자신의 정욕을 따라 살게 되는 불경건의 삶을 지속하게 될 것입니다. 그 마지막이 무엇입니까?


(7)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 가는 자들의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8)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와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히 6:7-8)


하나님께서 이따금씩 은혜를 주셔도, 결국 변화되지 아니하고, 영적인 미성숙에 머무르면서 불경건의 가시와 엉겅퀴를 계속해서 낸다면, 결국 그 마지막은 불사름 외에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어떠한 희망도 행운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변화되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는 것을 알고, 오늘 말씀을 통해서 이 문제에 대한 적절한 해답을 찾아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병적 유아상태에서 벗어나서 신령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배워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병적 유아상태의 증상에 대해서 4가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4가지를 가지고서 각자 자신에게 적용해서 내가 과연 병적인 유아상태에 있는지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1. 성장이 없고, 유아상태가 오래도록 지속됨.


첫째로 병적 유아상태는 성장이 없고, 유아상태가 오래도록 지속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12)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 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히브리서 수신자들이 복음을 믿은 지 아주 오래되었다는 것입니다. 정상적으로 성장을 지속해왔다면 누구에게나 복음을 가르칠 수 있는 선생의 수준이 되어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전혀 성장하지 못했습니다. 오래도록 성장을 멈춘 채 신앙생활을 해온 것입니다. 이렇게 병적인 유아상태는 성장이 없는 상태가 오래도록 지속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옛날에 자신이 다녔던 초등학교에 가보신 적 있으십니까? 제가 몇 년 전에 제가 다녔던 초등학교에 가봤는데, 그 광경이 꽤 충격적이었습니다. 그 넓었던 운동장이 그렇게 작아 보일 수가 없고, 한없이 크던 건물들이 왜 그렇게 작아 보이는지, 그리고 한없이 높았던 학교를 향해 올라가는 오르막길이 이제는 나지막한 언덕처럼 보였던 것입니다. 건물이나 환경이 변할 리는 없습니다. 그러면 무엇입니까? 내가 성장한 것입니다. 자신이 성장하고 더 넓은 길을 많이 보고, 더 넓은 세상을 보았기 때문에 나중에 가보니깐 그 초등학교가 옛날의 동화의 나라같이 보이는 것입니다.

 

내가 변하면, 성장에서 오는 옛날의 나와의 격차를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옛날의 나를 보면서, 어떻게 그렇게 성숙하지 못한 행실을 하면서 자기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았는지, 옛날을 회상하면 막 얼굴이 화끈거리고 부끄럽고 그래야 하는 것입니다. 어릴 적 초등학교 일기를 보면서 얼굴이 화끈거리고 부끄럽듯이 그렇게 격차가 있어야 하고, 재작년과 작년이 다르고 작년과 올해가 달라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옛날의 나와의 격차가 있습니까? 아니면, 어제나 오늘이나, 작년이나 재작년이나 자신이 늘 한결같습니까? 아니 더 나아가서 거꾸로 이지는 않습니까? 우리가 늘 하는 말이 “왕년에 나는...” 그러면서 옛날에 받은 은혜에 대해 회상하고, 옛날에 내가 얼마나 훌륭한 그리스도인이었는지, 얼마나 헌신했는지, 그러면서 옛날을 추억하고, 그리고 그때가 그리워지고,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고 느껴진다면, 그것은 바로 본인이 병적인 유아상태에 있음을 말해주는 부인할 수 없는 증거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병적인 유아기의 상태가 계속되었을 때 나타나는 또 다른 증상은 바로 그의 마음과 영혼이 점차로 단단하게 굳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점점 더 변화될 가능성이 희박해지는 그러한 강퍅한 영혼의 상태가 되어간다는 것이 바로 이 병적인 유아상태의 치명적으로 무서운 점입니다. 그래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전도자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무엇이냐 하면, 사람이 그리스도를 만나고 놀랍게 변화되는 확률을 보면, 그것이 어릴수록 그 확률이 높다는 것입니다. 정말 보기 어려운 일이 무엇이냐 하면, 신앙생활을 평생을 해온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오랫동안 유아상태에 있다가 말년에 주님을 만나고 놀랍게 회심하는 경우라는 것입니다. 그런 경우는 눈 씻고 찾아보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즉 병적인 유아기가 오래 지속되면 지속될수록 변화될 가능성은 점점 희박해진다는 것입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하나님 못 만나고, 병적인 유아상태에서 계속 묻어가고, 어떤 하나님의 은혜의 신령한 세계 속에 들어가지 못하면, 나이 먹는 것 자체가 절망을 향해서 한 발짝씩 다가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은 그렇게 죽는 것입니다. 그중에 많은 사람들은 구원의 확신조차 갖지 못한 채 죽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과연 구원받을 수 있을까 심히 의문이 되는데, 설사 구원받았다고 할지라도, 한 번도 마음을 바쳐서 주님을 사랑해본적도 없고, 주님을 위해 살아본 적도 없는, 그래서 일생동안을 처음 은혜 받았던 때를 떠올리면서 “그때가 좋았지...” 하면서 죽는 아주 불쌍하고 부끄러운 죽음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더욱이 교회가 그러한 병적 유아기에 머무르는 그리스도인으로 가득 차게 될 때, 그것은 그야말로 하나님 앞에 커다란 부끄러운 일이며, 그런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데 있어서 전혀 쓸모가 없고 도리어 훼방하고 방해만 될 뿐인 것입니다. 그래서 종종 하나님께서 이 땅을 심판하시기 전에 항상 교회를 먼저 심판하셨던 것입니다. 마지막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믿는 자들을 먼저 심판해서 청소해서 교회를 정결케 하신 후에 세상을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그만큼 교회를 향해서 거는 기대가 크고 놀라운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어리석고 바보 같은 것이 교회의 숫자를 자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인해전술로 오는 나라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진정으로 거듭난 신자의 마음에 새로운 생명의 원리가 심겨져서 그래서 하나님의 통치를 기뻐하고 그 통치 아래서 살아가는 것을 행복하게 생각하는 사람에 의해서 오는 나라인 것입니다. 이 세상은 서말의 가루와 같은 그리스도인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딱 한 줌도 좋으니깐, 누룩과 같은 그리스도인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게 누룩이 참된 누룩을 계속 만들면서 확장되어가는 그런 교회의 성장이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 것이지, 거듭나지 않거나, 혹은 거듭났다고 하더라도, 변화되지 않은 채 그렇게 10년 20년씩 병적인 유아상태에 머물러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교회에 모이는 것 자체가 하나님 나라의 희망적인 증거가 아니라, 아주 절망적인 증거인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혹시 그런 교회는 아닙니까? 정말 우리 자신을 진지하게 돌아보아야 합니다.


2. 죄에 반복적으로 실패함.


(14)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히 5:14)


여기 딱딱한 음식을 먹는 장성한 자는 지각을 사용함을 통해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한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지각’이라는 단어는 “감각기관, 인식 능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우리가 탁구를 배울 때, 처음 칠 때는 공도 제대로 맞추기가 힘들고, 초보자에게 아주 약하게 드라이브를 날려도 깜짝 놀라면서 공이 언제 지나갔는지도 모를 정도로 빠르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훈련과 연습을 통해서 연습하다보면, 서서히 모든 상황을 컨트롤 할 수 있는 상황이 오는데(공이 착착 달라붙는 느낌), 그때 우리가 그것을 “감이 왔다. 감 잡았다”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바로 공의 모든 흐름을 읽고 인식할 수 있는 지각이 생긴 것입니다.

 

그리고 14절에서 “사용하다”라는 단어는 “헥시스”라는 아주 독특한 단어인데, 이것은 끊임없는 훈련과 연습을 통해서 형성된(체득된) 하나의 습관을 의미합니다. 생활의 달인이라는 프로그램 중에서 제가 가장 기억나는 것 중에 하나가 초밥을 만드는 달인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초밥을 가장 맛있게 하는 밥알의 수가 대충 320개 정도라고 하는데 이 달인은 이 밥알 수를 정확하게 맞추면서 초밥을 만드는 것입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일반인들은 도저히 흉내조차 낼 수 없는 그런 것을 이 달인은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깐 달인이겠죠? 이 달인이 하루아침에 달인이 아니라 30년 동안 이 초밥을 만들면서 끊임없는 훈련과 연습을 통해서 바로 그러한 기술을 체득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헥시스”입니다.

 

그리고 본문에 "연단을 받아“라는 말 역시 ”훈련하다“는 뜻입니다. 계속해서 스포츠 용어가 나오는데, 종합해서 설명하면, 감각하며 통제할 수 있는 지각을 통하여, 그리고 훈련을 통해 체득된 습관을 통하여 훈련을 받아서(신적수동태), 선악을 분별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선악을 분별한다는 말은 영적 분별력, 판단력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어렵게 생각할 것 없이, 영적 훈련을 통해서 참된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아가는, 성숙한 성품의 성향이 일관된 습관처럼 자리가 잡힌 그런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영적으로 민감해서 무엇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무엇을 하나님이 싫어하시는지를 잘 분별해서, 정말 말 한마디,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님 나라와 교회를 위하는 아주 바람직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말하는 것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마땅히 기대되는 모습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한 순간에 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오직 영적훈련을 통해서만 되는 것입니다. 이번 올림픽에서 유도 금메달 딴 선수가 한 유명한 말이 “죽기 살기로 하니깐 결국 지더라. 죽기로 하니깐 이겼다.”라는 말과 “나보다 더 고되게 훈련한 자가 있으면, 그 사람에게 금메달을 주겠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금메달 따는 것이 그냥 따는 것이 아니라, 바로 피나는 훈련과 노력을 통해서 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신령한 세계로 들어간다는 것, 장성한 자의 영역에 들어간다는 것 역시 아무것도 안했는데 예기치 못한 은혜가 갑자기 임해서 그렇게 확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통상적으로 성령님은 자신이 변화되기를 간절하게 갈망하면서, 신령한 세계로 들어가기를 간절히 사모하면서 말씀과 기도에 착념하고 하나님께 매달려 부르짖으면서, 매 순간 자기 뜻을 꺾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을 성령님은 변화시키시는 것입니다. 그러한 고된 훈련과도 같은 그런 과정을 통해서 영적인 지각과 습관을 갖게 되고 그러한 훈련을 받아서 선악을 분별하는 신령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저 취미생활 하듯이, 매주 동호회에 참석하듯이 매주일 왔다갔다만 해서는 결코 신령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런 사람의 신앙생활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종교 활동일 뿐인 것입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라, 신령한 사람은 바로 그러한 훈련을 통해 형성된 거룩한 성품의 습관과 영적인 지각이 있고, 선악을 분별하여서 죄를 이기고 세상을 이기는 신령하고 성숙한 삶을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병적인 유아상태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선악을 분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아무런 힘도 못써보고 늘 죄에 지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3-4장의 이스라엘의 모습처럼 항상 미혹되어서 바른 길에서 떠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죄에 반복해서 실패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게 죄에 반복해서 실패하는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은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사경회를 하면, 어떤 때는 마음이 녹아내리고 눈물을 흘리고, 은혜를 받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가 느껴져서 감격도 하고, “주님의 뜻대로 살아야 되겠다” 결심을 하는데, 이상하게 이러한 나의 결심을 비웃듯이 실패가 이기는 것입니다. 항상 작심삼일입니다. 그런 삶이 반복되면서, 결국은 그 마음에 주님의 은혜가 자신의 인생을 전혀 바꿔놓지 못한다고 하는 불신앙적인 패배의식이 자리 잡게 됩니다. 그러면서 스스로 생각하기를 자기가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또 넘어지고 이렇게 계속 실패하는 것이 정상적인 그리스도의 모습이다 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전적타락하고 무능력하고 근본 연약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라고 하면서 전적타락의 교리로 자신의 이러한 불신앙적 패배의식을 합리화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따금씩이라도 말씀을 듣다가 은혜를 받고, 찬양하면서 감격하고, 또 기도하면서 한 번씩 왈칵하면서 기도하는 체험을 한다는 것을 가지고서 안심하면서 자신은 충분히 하나님 앞에 긍휼과 사랑을 입고 있는 중이기 때문에 건강하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전혀 착각입니다.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이 이따금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이따금씩 하나님의 은혜를 느낀다고 해서 그것이 성장의 징조가 아닙니다. 아까 두 밭의 비유를 보십시오. 가시와 엉겅퀴를 낸 밭에도 하나님은 동일한 은혜의 비를 내려주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삶이 어떠한가 하는 것입니다. 성숙하고 죄를 이기고 세상을 이기며 정말 신령하고 경건한 삶이 나오는가, 아니면 죄에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굴복하면서 실패하는 삶이 나오는가 하는 것입니다. 만일 여전히 지속적으로 실패가 반복되고 있다면 그 사람은 이따금씩 받는 은혜와는 상관없이 여전히 병적인 유아상태에 있는 사람입니다. 물론 절대로 실패하지 않고 늘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실패가 어떤 형태냐 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제자리에 머물러서 실패를 반복하는 것이냐, 아니면 올라가면서 이따금씩 일어나는 실패냐 하는 것입니다. 신령한 자들도 때때로 넘어지고 실패하지만, 그것은 도리어 그 실패가 성숙의 계기가 되어서 이전보다 더욱 성숙한 자로 성장하게 됩니다. 그러나 병적인 유아상태에서 하는 실패는 아무런 진전도 없고 의미도 없는 그저 반복에 불과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새해가 시작되어서 올해부터는 정신 차려서 최소한 하루에 20분 이상은 기도하면서 살아가야 되겠다고 결심하고 또 새벽기도를 해야 되겠다고 결심했는데, 몇 번 해보다가 그만 털썩 주저앉아버리고 다시 기도하지 않는 예전의 삶으로 돌아가 버리는 경우와, 때때로 계획 실천에 실패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끊이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오면서 점차로 기도의 세계가 성장하는 것이 느껴지고, 기도가 나의 삶에 정착되고 뿌리를 내리는 것이 느껴지고,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과의 교제의 폭이 넓어지고 두터워지는 것이 느껴지는 경우와... 전자와 후자가 어떻게 똑같을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어떻습니까? 우리의 실패가 성숙해 가는 와중에서 피할 수 없이 경험하게 되는 실패입니까? 아니면 실패가 여러분들을 다시 옛사람으로 끊임없이 돌아가게 하는 그런 아무런 성장도 진전도 없는 그런 반복되는 실패입니까? 아니면 실패라는 것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성공을 향한 도전이 있어야지 실패가 경험되는 것인데, 그런 결단 자체가 없기 때문에, 아예 자신의 상태가 실패와 성공 사이를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완전한 죄의 지배하에 있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우리는 우리 자신을 깊이 돌아보아야 합니다. 만일 후자라면 우리는 지금 심각하게 우리의 영적 상태에 대해서 의심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3. 둔함.


세 번째로 병적인 유아상태에 있을 경우 나타나는 증상은 둔하다는 것입니다.


(11)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의 듣는 것이 둔하므로 해석하기 어려우니라


여기서 ‘둔하다’는 말은 ‘게으르다’는 말입니다. 이 말이 6장 12절에도 나옵니다.


(12)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


지금 히브리서 수신자들은 영적인 게으름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성숙과 완전을 향해서 나아가야 하고, 천상을 바라보면서 계속해서 순례의 길을 바쁜 걸음을 하면서 부지런히 걸어가야 하는데, 그만 영적인 잠에 빠져서 전진하지 못하고, 도리어 후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자신들의 상황이 심각하게 영적으로 위태한 상황인데, 마땅히 그것을 깨닫고 시급히 조치를 취하고 거기서 빠져 나오기 위해서 모든 주의와 관심과 노력과 열심을 기울여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 것입니다. 영적인 안일함과 게으름에 빠져서 영적으로 부주의한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병적인 유아상태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은 영적인 것에 부주의하고 게으르다는 것이 부인할 수 없는 아주 분명한 특징입니다. 병적인 유아상태에 오래도록 머무르는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영혼의 곤고한 상태에서 의문점은 많은데, 물음표는 수없이 많은데, 마침표는 한 번도 못 찍어본 사람입니다. “내가 왜 이렇게 곤고할까? 영적으로 왜 이렇게 핍절할까?” 오늘을 이렇게 생각하는데, 내일은 그냥 아무렇지 않게 세상일에 바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질문이 그때 끝난 것입니다. 수없이 물음표가 떠오르지만, 비누 방을 터지듯이 다 터져서 쉬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병적인 유아상태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는 사람의 공통적인 특징입니다. 뭔가 문제의식은 있는데, 정말 자신의 영적 상태에 대해서 성경이 뭐라고 말하는지, 그리고 자신의 영혼의 결말이 어떻게 비참한 지경에 이르게 될 것인지, 그러므로 그것을 피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없다는 것입니다. 즉 이 세상에서 공부하고 좋은 성적 받고, 좋은 데 취직하고 결혼하고 집장만하고, 사업하고 일 하는 데는 관심이 많고 많은 부지런을 내는데, 정작 본질적으로 중요한 우리의 영혼에 대해서는, 그리고 영적인 것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고 주의를 기울이지 아니하고 게으른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병적인 유아상태에 머물러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아주 분명한 증거입니다.


4. 말씀을 경험하지 못함.


그런데 이 둔한 것이 특별히 어떤 점에서 둔하냐 하면, 듣는데 둔한 것입니다. 이것을 “(13)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14)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라고 표현했습니다.

 

듣는데 둔하다는 말은 딱딱한 음식을 못 먹을 자가 되었다는 것이고, 그것은 곧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의의 말씀에 대해서는 다음 주에 보다 자세하게 설명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의의 말씀, 곧 복음의 진리의 깊이 있는 말씀의 살아있는 능력을 경험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병적인 유아상태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 피할 수 없는 공통된 특징은 말씀에 대한 깨달음이 거의 없거나 있다고 하더라도 매우 희박하다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의 맛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맛을 모르기 때문에 그들은 매일 설교를 들어도 잠만 오고, 시간을 내어서 성경을 읽는 경우가 거의 없고, 주일예배 끝나고 집에 꽂아놓은 성경을 일주일동안 그대로 보관했다가 그 다음 주일 아침에 꺼내서 먼지를 후 불어서 손으로 탁해서 들고 오는... 그런 교인을 “후탁(?)” 교인이라고 합니다. 그런 사람한테 야고보서 찾아보라고 하면, 어디 있는지를 못 찾아서 창세기부터 찾아 헤매는 것이죠. 이것이 병적인 유아상태에 있는 사람들의 말씀에 대한 지각이 없는 모습인 것입니다.

 

그러나 신령한 그리스도인들은 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각이 있기 때문에 그 맛을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시 19:10에서 말하기를 이 하나님의 말씀이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찬송가에도 보면 “달고 오묘한 그 말씀, 생명의 말씀은...” 그래서 이 성경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영혼의 참된 기쁨이 넘치고, 말씀을 통해서 세상이 줄 수 없는 큰 위로를 얻고, 주님과의 더 깊은 사귐 속에서 힘을 얻고, 능력을 얻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을 읽으면서 주님의 구원의 은혜를 깊이 깨닫고 눈물을 많이 흘리는 것입니다. “예수 세상 계실 때 많은 고생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일 어머님이 읽으며 눈물 많이 흘린 것 지금까지 내가 기억합니다.” 저도 실제로 어렸을 때, 저희 어머니가 성경을 읽으면서 자주 우시는 모습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리고 성경이 다 헤어지도록 그렇게 성경을 읽으시고 구절구절마다 밑줄을 수없이 그으면서 암송하시고, 그것을 메모장에다가 적어다가 늘 그것을 들고 다니시면서 묵상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저에게 매일 하시는 말씀이, “성경을 읽어봐라, 너무 은혜롭다” 그렇게 말씀하시는데, 그 말을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때 저에게 이 성경책은 너무나 재미가 없는 것이고 읽어도 하나도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 그런 책이었습니다. 방대한 양의 무협소설이나 만화책 같은 것은 읽을 때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데, 이 성경책은 1장 넘기기가 너무 어려운 것입니다. 그것은 육에 속했기 때문에, 영적 지각이 없기 때문에 말씀의 맛을 모르는 것입니다.

 

이렇게 육신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은 말씀에 대한 깨달음이 없고 말씀에 대한 지각능력이 없기 때문에 말씀을 사랑하지 않고 사모하는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오면 제일 싫은 시간이 설교 듣는 시간입니다. 예배 견디기, 견디러 가는 것입니다. 설교 참으러 가는 것입니다. 단언하건데 설교시간에 상습적으로 조는 사람은 육에 속한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러나 신령한 그리스도인은 말씀을 사랑하기 때문에 설교 시간을 귀하게 여기고 그 말씀에 귀 기울여 집중해서 듣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깨닫게 해주시면, 말로 다 할 수 없는 영혼의 큰 기쁨을 누리고, 하나님과의 더 깊은 교제와 사귐 속에서 영적으로 성숙해져가게 되는 것입니다. 비만의 무서운 것이, 살이 찌면, 그 살찜으로 인해서 더 식욕이 왕성해지고, 그래서 더 먹게 되고, 그러면 또 그로 인해서 더욱 더 살이 찌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원리의 순환이 신령한 그리스도인에게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사랑하여 집중하여 듣고, 깨닫는 만큼 성장하게 되는데, 그렇게 성장한 만큼 또한 말씀에 대한 식욕이 더 커져서 말씀을 더 알고 싶고 깨닫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가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좋은 설교를 듣고 싶고 경건서적을 읽고 싶고 보다 딱딱하고 깊이 있는 교리를 연구하고 배우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나 직장 때문에 여건이 되지 않아서 그렇게 원하는 만큼 충분히 배울 수 없기 때문에 큰 아쉬움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말씀을 원 없이 연구하고 배울 수 있는 목회자가 너무 부러운 것입니다. 목회자에 대한 부러움이 있으면, 그 사람은 신령한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러나 목회자가 작은 월급 받고 고생하는 것을 보면서, 불쌍하게 여겨진다면 그 사람은 육에 속한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고 육에 속한 그리스도인은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설교를 듣고 나면 무슨 말 했는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고, 이따금씩 재미있는 예화만 기억나는 것입니다. “최목사 이빨 하는데 300만원 들었다더라.” 그것만 기억나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가 왜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할튼 그것은 기억이 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육에 속한 그리스도인은 복잡하고 머리 아픈 것은 싫고 단순하고 간단한 것만 좋아합니다. 리챠드 백스터 목사의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리챠드 백스터가 깊이 있는 구원의 도리에 대해서 한 농부에게 가르쳐주었더니, 그 농부가 말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별로 아는 것이 없는 농부입니다. 나 같은 농부도 그것을 다 알아야 됩니까?” 그때 리챠드 백스터 목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천국은 당신이 가기에는 너무 높군요.”

 

여러분 보십시오. 오늘날의 한국교회의 신앙생활의 가장 커다란 어려움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모든 것을 간단하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만 믿으면 죄사함 얻고, 구원받고, 행복한 삶을 살게 된다. 헌신 충성 봉사하면 축복 받는다.” 이런 간단한 메시지가 강단에서 선포되고, 또 이런 메시지가 있는 곳으로 사람들이 몰려갑니다. 그러나 이런 말씀을 통해서 과연 영혼이 성장할 수 있습니까? 그 영혼이 참으로 변화될 수 있습니까? 불가능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신앙생활이라는 것이 결코 간단하지 않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우리 이 몸이 병들었을 때, 그것을 수술하여 고치려면, 우리나라에서 제일 머리 좋은 사람들이 인체에 대해서 수십 년을 공부해서 그 후에 칼을 들고 수술하는데, 하물며 그러한 인체보다 더 복잡하고 미세한 영혼을 병든 상태에서 치료해서 고쳐 새사람 되게 하는 그것이 어떻게 그렇게 생각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그렇게 간단하게 모든 것이 뚝딱하고 되겠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정말, “예수님 믿고 구원 끝”이라면, 하나님이 이렇게 이해하기 어려운 성경을 이렇게나 두껍게 왜 주셨겠습니까? 간단하게 이해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 같으면, 왜 교회에 목회자를 두셔서 이 성경을 풀어 가르치게 하셨습니까? 절대로 간단하지 않습니다. 물론 처음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는데 있어서 반드시 이 성경 전체의 가르침을 다 꿰고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처음 거듭나는 것은 정말 간단한 진리를 듣고도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받고 난 이후에 성장해 나가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젖만 먹어서는 안 되고 딱딱한 음식을 먹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때가 되면 젖을 끊고 밥을 먹어야 충분한 영양이 공급되어서 정상적인 성장이 가능한 것이지, 계속 젖만 먹고 있으면 죽지는 않겠지만 완전히 핍절한 상태에서 성장을 제대로 할 수가 없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인 것입니다.

 

그런데 육에 속한 그리스도인, 병적인 유아기에 오래도록 머물러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이러한 딱딱한 음식을 소화해내지 못하고 또 받아들이지를 못한다는 것입니다. 어렵고 머리 아픈 것은 딱 질색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평생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병적인 유아기에 오래도록 머물러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4가지 증상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4가지 증상(오래도록 성장이 없음, 죄에 반복적으로 굴복, 영적인 게으름과 부주의함, 말씀에 대한 사랑이 없음)을 가지고서 우리 자신의 영혼과 비교해 보십시오. 나의 영혼의 상태가 어떠합니까? 병적인 유아기에 머물러 있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현재 내 모습과 꼭 같지는 않습니까? 만일 우리가 병적인 유아기에 오래도록 머물러 있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우리는 아무런 희망이 없는 자임을 알아야 합니다. 암만 출석교인으로서 교회에 빠지지 않고 나오고, 기독적인 문화에 익숙해져가고, 교회의 관습에 익숙해져서 교회 와서 예배도 같이 드리고 식사도 같이 하고 이야기를 같이 나누고 그렇게 교회에서 북적북적해도 그 모든 교회생활이 그에게 줄 수 있는 유익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참으로 변화되지 않는 한 불행하고 비참한 병적인 유아상태에서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여러분 병적인 유아상태에 머무르는 삶이 얼마나 비참한 삶인지 생각해보십시오.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경험하지 못하고 언제나 메마르고 영적으로 허접하고 핍절한 삶 속에서 영혼의 곤고함을 느끼고, 계속해서 죄에 굴복하면서 죄책감과 좌절감, 패배의식으로 고통당하고,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양다리 걸치면서 세상으로 확 갈수도 없고, 그렇다고 주님께 온전히 순종할 수도 없는, 그렇게 세상과 교회, 어디에서도 만족함이 없는 어둡고 우울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러한 삶이 세월이 흘러가면 언젠가 저절로 끝날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신앙의 세계에서 ‘저절로’라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뭔가 여러분들이 이 시점에서 여러분들의 영혼의 건강의 상태를 돌아보고 중대한 결정을 하지 않으면, 이렇게 경험해온 불우한 신앙생활의 모습은 여러분의 교회의 출석의 기간과는 상관없이 죽을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에게 가장 시급한 것이 무엇입니까? 직장 문제입니까? 결혼 문제입니까? 건강 문제입니까? 아닙니다. 내 영혼이 병적인 유아기에서 신령한 그리스도인으로 변화되는 것이 가장 시급한 문제입니다.

 

여러분 사람이 죽어가고 있는데, 그 사람을 데려다가 예쁜 옷을 입히고, 머리를 예쁘게 볶고, 눈썹을 그리고, 립스틱을 바르고, 예쁘게 화장을 한들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죽어 가는 사람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고침을 받아 생명을 얻게 하는 것 아닙니까? 마찬가지로 육적인 상태에 오래도록 머물러 있어서 우리의 영혼이 거의 죽은 자와 방불한 아사상태에 있는데, 그것을 고침 받아 영혼이 다시 생기를 얻고 영적으로 변화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무엇이 있습니까? 오늘의 메시지는 우리를 향한 긴급메시지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병적인 유아기에서 벗어나 신령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는 이 말씀의 빛 앞에서 자신의 영혼의 상태를 진실 되게 직시해야 합니다. 그리고 변화에 대한 간절한 갈망을 가져야 합니다. 결국 변화는 오직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의의 말씀을 경험함으로써만 신령한 그리스도인으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단번에 확 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위해서 나 자신을 죽을 각오로 훈련해야 합니다. 수도원에서 영성훈련하듯이 무슨 훈련을 하라는 말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의 방도에 온전히 매달려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공적인 가르침부터 절대적으로 참석하고, 귀를 기울여서 집중해서 듣고, 이해가 되지 않으면, 다시 인터넷으로 보고, 그래도 이해가 안 되면, 찾아와서 물어보고... 그리고 목회자가 추천해준 경건서적도 읽어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루에 시간을 정해서 기도하고 무시로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의 조명하시는 은혜를 구하면서, 자기를 참되게 변화시켜달라고 매달리면서 기도해야 합니다. “육에 속한 곳에서부터 신령한 세계 속으로 나를 옮겨주소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의의 말씀을 경험하게 하시고, 나를 신령한 그리스도인으로 변화시켜주소서. 만일 제 영혼이 변화될 수 없다면, 차라리 더 이상 저를 이 세상에 살게 하지 마시고, 생명을 거두어주시옵소서” 이런 각오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매달리는 사람을 주님이 만약에 모른다고 하신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성품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러실 수가 없는 분이십니다. 자녀가 깊은 물에 떠내려가면서 “엄마! 엄마!” 하면서 손을 내미는데, 그냥 떠내려 보낼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주님은 여러분이 병적인 유아기에 머물러 있다 하더라도 여전히 사랑하시고 계시고, 그렇게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를 고쳐 변화시켜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시기를 간절히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주님을 믿음으로 바라보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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