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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최상범
성경본문 히 6:9-20
성경본문내용 (9)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 너희에게는 이보다 나은 것과 구원에 가까운 것을 확신하노라(10)하나님이 불의치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11)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12)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13)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 보다 더 큰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14)가라사대 내가 반드시 너를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 하셨더니(15)저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16)사람들은 자기보다 더 큰 자를 가리켜 맹세하나니 맹세는 저희 모든 다투는 일에 최후 확정이니라(17)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치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에 맹세로 보증하셨나니(18)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치 못할 사실을 인하여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하여 가는 우리로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19)우리가 이 소망이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 가나니(20)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
강설날짜 2012-09-23

2012년 9월 22일 한결교회 주일예배강설

히브리서 제16강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씀 : 히 6:9-20


히브리서 저자는 앞에서 타락하는 것에 대하여 통렬하게 경고를 했지만, 그러나 그러한 타락의 교리가 수신자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확신합니다.


(9)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 너희에게는 이보다 나은 것과 구원에 가까운 것을 확신하노라


오히려 히브리서 저자는 수신자들의 구원을 확신합니다. 더 나아가 혹시 통렬한 경고의 말씀 앞에서 낙심하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하는 염려 가운데 그들을 애정 어린 호칭으로 부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히브리서에서 수신자들을 이렇게 애정을 가득 담아 부른 것은 여기가 유일합니다. 그만큼 오늘 본문의 초점은 히브리서 수신자들에게 위로와 격려와 확신을 주고자 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10)하나님이 불의치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


히브리서 저자가 히브리서 수신자들의 구원을 확신하는 이유는 그들에게서 구원 받은 증거들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즉 거듭나지 않고서는 결코 나타낼 수 없는 행위가 그들에게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아가페의 사랑입니다. 단순히 불우이웃돕기를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그의 이름을 위하여 자기의 것을 희생하여 섬긴 것입니다. 이것이 10:32이하에 잘 나타납니다.


(32)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에 참은 것을 생각하라(33)혹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로 사귀는 자 되었으니(34)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산업을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산업이 있는 줄 앎이라(히 10:32-34)


수신자의 위치가 우리의 추측대로 로마라고 한다면, 그들은 가난한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을 힘써 섬겼을 것입니다. 교회사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로마교회가 예루살렘 교회와 여타 어려운 교회들을 재정적으로 힘써 섬겨왔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그들도 주님의 이름을 위해 이 일에 힘써 동참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주와 복음을 위해 믿음과 소망으로 한차례 고난과 핍박을 견뎌내었습니다. 비록 지금은 병적인 유아기에 오래도록 머물러서 영적으로 잠들어 있는 상태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그들의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행실은 바로 그들이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라는 부인할 수 없는 증거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그들의 행위를 하나님은 불의치 아니하사 다 기억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옛말에 “인간이란 은혜는 물에 새기고, 원한은 돌에 새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그 크신 은혜와 사랑도 잊어버리고 그렇게 배은망덕하게 살 때가 많은데, 하물며 사람들의 은혜야 어떠하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본성상 나에게 잘해준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든지 아니면 잘 기억을 못하고, 나에게 상처를 주거나 해를 입히면 그것을 평생 마음에 담고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불의한 모습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이시고 공평하신 분이시며, 또한 자비로우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는 하나도 기억하지 아니하시는 반면에, 우리의 선행은 다 기억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헌신하고 봉사하고, 희생하고 고난 받은 것을 결코 잊지 아니하시고 그것을 기억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그러한 우리의 헌신이나 봉사나 희생, 순종의 행위들이 부족한 순종입니다. 우리의 가장 최선의 선행에도 죄의 찌꺼기가 붙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자체로만 볼 것 같으면 그것은 하나님이 기뻐아니하시는 정도가 아니라 저주받을 죄 된 행실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부족한 순종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그리스도의 보혈로 덮어서 온전한 순종으로 기뻐 받아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절대로 그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는 것입니다.


(42)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마 10:42)


하나님은 이처럼 자비하고 의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에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하는 어떤 작은 일이든지 하나님은 잊지 아니하시고 반드시 상으로 갚아주십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상 받을 소망이 있는 자마다, 이 땅에서 선행을 계속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저자가 하고자 하는 말은 “너희가 그런 일을 하였고, 지금도 미약하지만 하고 있기 때문에 너희가 상을 잃지 않을 것이다. 나는 너희의 구원을 확신한다.”는 것입니다. 다만 문제는 너희가 지금 이 상태에서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2)우리가 너희 무리를 인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함은(3)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4)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살전 1:2-4)


사도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서 나타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행실을 보고서 기쁨으로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하면서 그들의 택하심을 안다고 말합니다. 히브리서와 마찬가지로 구원을 확신하지만, 그러나 앞뒤 문맥의 분위기가 히브리서와 완전히 다릅니다. 이것은 마치 나팔꽃을 심었는데, 그 나팔꽃이 꽃을 피우는 것을 보면서 이 꽃이 나팔꽃이 맞구나 하는 것과, 나팔꽃이 싹만 난 상태여서, 단지 그 잎사귀를 보고 나팔꽃이 확실하다고 말하는 것과의 차이입니다. 저는 잎사귀를 봐도 그것이 나팔꽃인지 알지 못하지만, 그러나 전문가들은 잎사귀 하나만으로도 그것이 나팔꽃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싹만 난 상태로는 그저 품종을 확인하는 것 외에 주인에게 어떠한 기쁨도 못되는 것입니다. 오히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싹만 난 상태라면, 주님의 기쁨이 아니라 슬픔과 걱정과 염려의 대상인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에서 저들의 성화의 수준과 책임 있는 신앙의 표로서 칭찬의 근거로 사용되었지만, 히브리서에서는 기껏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을 확인하는 최소한의 표로서 쓰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구원을 확신하지만, 그러나 거기에는 어떤 안타까움이나 염려, 불안 같은 것이 함께 있는 것이죠. 그래서 “구원에 가깝다”라고 번역했습니다. 지난주 해석을 정정합니다. 제가 구원을 소유했다라고 말씀드렸는데, 원어를 다시 보니, “구원을”이 아니라 “구원의”라고 하는 소유격이었습니다. 그러면 의미가 좀 달라지죠. “구원에 속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9절은 그들이 구원의 속한 것과 이보다 더 나은 것에 해당됨을 확신한다는 뜻입니다. 한글 성경은 그것을 “구원에 가깝다”라고 번역했습니다. 잘 된 번역입니다. 이것은 그들의 구원을 확신하지만, 그러나 거기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하는 불안과 염려가 그 속에 함께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수신자들이 참된 거듭난 신자로서 구원의 소망이 있는 자들인데, 계속하여 믿음으로 전진해 나아가지 아니하고 병적 유아기에 머물러 있어서 잘못하면 흘러 떠내려갈 위험에까지 처해 있었기 때문에, 히브리서 저자는 수차례 통렬하게 경고해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저자의 의도는 결코 그들이 결국 버림을 받게 될 것을 말하고자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너희는 구원받은 성도가 아니다”라는 것을 말하고자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통렬하게 경고한 것은 너희가 영적인 잠에서 깨어나서, 병적인 유아기에서 벗어나서, 신령한 그리스도인으로 변화 받아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구원의 순례의 길을 완주하도록 돕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해서 말씀하실 때도 “(15)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16)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계 3:15-16)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 “정말 차라리 미지근하지 말고 차가워져라 내쳐버리게...” 이 말을 하려고 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정말 미워서 버리시려고 그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무엇이 목적이었습니까?


(19)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계 3:19)


회개하고 열심을 내도록 하시기 위해서 책망하신 것입니다. 토하여 내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그들을 영적인 미성숙과 영적인 잠에서 깨워서 열심을 내도록 하기 위한 사랑의 채찍인 것입니다. 더 나아가 이런 내침을 당할까 두려워하는 마음은 주님의 책망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가 늘 가져야 마음자세인데, 바울은 그것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27)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고전 9:27)


바로 이 두려움이 성화에 열심을 내게 하는데 동기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경고의 참 목적입니다.


(5)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6)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히 12:5-6)


이런 경고의 말씀 앞에서 “그래 나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가보구나..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으니 나는 아무런 희망이 없구나...”그러면서 아예 자포자기로 가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그렇게 절망에 빠지는 것은 전혀 히브리서 저자가 의도한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면 그의 의도가 무엇입니까? 열심을 내게 하는데 있습니다.


(11)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즉 지난주에 배웠듯이 히브리서 저자는 그들에게 통렬하게 경고하여서 그들의 헛된 안전감과 그릇된 구원의 확신을 무너뜨려 그들로 구원의 순례의 길을 걸어가기 위해 열심을 내게 하고, 또한 그들을 하나님의 능력의 말씀 앞에 세워서 하나님이 그들을 얼마나 사랑하시고, 또 그들에게 허락된 구원과 모든 주어진 약속들이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얼마나 튼튼하고 견고한 것인지를 알려줌으로써 참된 구원의 확신 위에 세워주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이러한 저자의 의도가 가장 잘 나타나 있습니다.


(11)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그렇게 우리 각자 각자가 경고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정신을 차려서 영적으로 부지런하게 되면, 우리는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게 됩니다. 자신의 구원에 대한 확신이 또렷해지고, 또 장차 얻게 될 하나님 나라의 기업에 대한 기대감을 풍성하게 합니다. 반대로 게으르면, 영적으로 태만하게 되어져서 그 영적 태만이 우리의 신앙을 파괴하고, 우리의 소망을 빼앗아버릴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의 확신을 읽어버리게 될 것이고, 육신의 정욕에 깊이 침잠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게으르지 아니하고 영적으로 부지런해야 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부지런하다는 것은 영적인 것에 주의를 기울이고, 영적인 일에 마음을 들이고 시간을 들이고, 영적인 것에 예민하고, 말씀을 읽고 기도하고, 주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데 부지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2)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


그렇게 부지런해야 하고, 또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과 오래 참음에 대해서는 11장에 가서 더 자세히 논증될 것인데, 여기서 미리 언급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을 포함한 신구약의 모든 믿음의 선조들, 영웅들은 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고, 또 오래 참아서 결국은 약속대로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았습니다. 이들의 믿음과 오래 참음을 우리도 본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지만 우리도 약속을 상속받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믿음과 오래 참음을 통해서만 약속을 상속받을 수 있습니까? 그것은 약속과 그 약속의 성취 사이에는 항상 얼마간의 기간이 있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이 기간은 믿는 사람을 시험하여 그 믿음을 연단하기 위해 주어진 시간입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끝까지 인내하고 견디는 사람은 종국에 이르러 그 약속의 성취를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천로역정에 보면, 해석자의 집에서 여러 가지를 보게 되는데, 그중에 하나가 바로 정욕, 인내라고 하는 두 아이의 이야기입니다. 어떤 사람이 재물 보따리를 주었더니, 정욕이라는 아이는 혼자 그것을 다 가지고 매우 기뻐합니다. 그러나 순식간에 다 없어지고 결국 빈손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인내는 끝까지 불평불만 없이 지내다가 더 좋은 상을 받습니다. 정욕은 눈앞에 보이는 이 세상의 기쁨과 즐거움, 쾌락, 돈, 행복을 추구했고, 그것으로 만족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영원한 세상에서 어떠한 기업도 얻지 못했습니다. 반면에 인내는 이 세상의 모든 기쁨과 즐거움, 돈, 행복을 포기하고 오래도록 참고 견뎠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그것보다 더 좋은 하늘나라를 기업으로 얻었습니다.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합니다. 우리는 눈앞에 정욕을 위해 영원한 장래 기업을 잃어버리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삭의 장자 에서는 눈앞에 죽 한 그릇 때문에 장자의 명분을 팔아버려서 결국 기업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장래에 우리에게 주어질 더 나은 삶, 더 나은 세상을 바라보면서 이 세상에서 모든 것들을 절제하면서, 그리고 주와 복음을 위해 고난을 받으면서 참고 견뎌야 합니다.


(13)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 24:13)


그러면 천로역정에서 어떻게 ‘인내’라는 아이는 믿음으로 오래 참을 수 있었습니까? 그것은 더 좋은 상이 반드시 있을 것이라는 보증이 그에게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한 몇일을 굶은 상태로 있는데, 어떤 사람이 와서 맛있는 케잌을 가져다 놓고 “그것을 10시간만 먹지 않고 참는다면, 내가 100억을 주겠다.” 그렇게 약속했다고 생각해 보십시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그것을 먹지 않고 참을 수 있습니까? 그 사람이 정말 갑부이고 100억을 준다는 계약서에 도장이 찍혀 있으면 안 먹는 것입니다. 100억 준다는데, 누가 미쳤다고 그 잠간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맛있는 케잌을 먹겠습니까? 그럴 사람이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이 알고 보니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사람이고, 자주 헛소리 하는 사람이고, 땡전 한 푼 없는 가난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면, 100억을 기대하면서 그것을 먹지 않고 참고 있을 사람 또한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100억 주지도 않을 건데, 그냥 케잌이나 먹고 말지” 그럴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오래 참음을 가능케 하는 가장 근본적인 동인이 무엇입니까? 그 허락된 약속이 지금 눈앞에 있는 것보다 얼마나 좋은 것인가 하는 것을 아는 것과 그리고 그 약속이 과연 믿을만한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즉 보증이 되느냐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 말씀의 포인트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해주시고 구원해주실 뿐만 아니라, 영생과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상급으로 주시겠다고 약속해주셨습니다. 이것이 지금 하나님께서 장난치시는 것이 아니잖아요? 하나님이 정말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다고 하신 것이 그저 “천국에 살기 좋은 집 한 채 주겠다.” 그런 정도가 아니라 한 나라의 왕 자리를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한 나라 전체를 통째로 너에게 주겠다는 것입니다. 지금의 가장 초강대국인 미국보다도 훨씬 비교할 수 없이 강하고 영원히 행복하고 영원한 나라, 하나님 나라를 우리에게 주겠다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도 우리가 천로역정의 정욕처럼 주와 복음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기보다도 이 세상의 좋은 것들, 즉 좋은 성적, 좋은 직장, 돈, 차, 집, 행복한 결혼, 만족스러운 가정... 이런 것들을 꿈꾸며 살아가고 있다면, 그것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터무니없는 거짓말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의 증거입니다. 즉 하나님은 거짓말을 하시는 분이시고, 사실 가진 것이 없는 가난한 분이시고, 헛소리 하시는 분이시라고 생각하는 그런 신성모독적인 생각을 하지 않고서야 누가 그러한 놀라운 하나님 나라의 상급을 걷어 차버리고 당장에 만족을 위해서 이 세상의 것을 붙잡겠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하늘을 소망하지 않고 이 세상을 소망하며 산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께 대한 신성모독적인 반역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자신을 돌아보십시다. 우리가 어떠합니까? 우리가 아주 심각해 질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여러분! 과연 하나님의 약속하신 것이 그런 뜬금없는 헛소문에 불과한 것입니까? 과연 하나님은 거짓말 하시는 분이십니까? 그럴 수 없다는 것이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말씀하고 하는 바입니다. 그것을 히브리서 저자는 아브라함의 예를 통해서 오늘날 우리들에게 설명하는 것이죠.


(13)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 보다 더 큰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14)가라사대 내가 반드시 너를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 하셨더니(15)저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이 사건은 창 22장에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사건을 인용한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맹세하심으로 약속하셨는데...


(16)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17)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18)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창 22:16-18)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이삭을 바치는 순종을 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맹세하심으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15절에서는 “(15)저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라고 말씀하는데, 이 구절은 히브리서 내에서 최대의 난해구절입니다. 무슨 뜻으로 이 말을 했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제 생각에는 지금 창세기 22강의 맹세의 약속을 받은 후 이후에 그가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그 성취를 맛보았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이것이 그의 전 인생을 두고 한 말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즉 아브라함을 처음 부르시고 약속하신 것이 12장인데, 아브라함이 그 약속의 말씀을 믿고 오래 참음으로 그의 인생 가운데서 그 약속의 성취 맛보았다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이삭을 낳을 때에도 자신의 힘이 없어지고, 사라의 태가 말랐다는 것을 알면서도 믿음이 없어지지 아니하고, 오래 참아서 결국 이삭을 낳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그의 믿음이고, 그의 오래 참음이었습니다. 그리고 하이라이트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는 사건입니다. 하나님이 이삭을 바치라고 하셨을 때, 그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는데, 사실 그 명령이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매우 순종하기 어려운 명령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아들을 죽이는 것도 어려운 것이지만,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는 이삭을 통해서 언약을 성취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삭이 언약의 자손인데 죽으면 그 하나님의 언약은 어떻게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혼란스러울 수 있었는데, 그러나 아브라함은 주저하지 않고 이삭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죽은 이삭을 다시 살리실 줄로 믿었던 것입니다. 즉 언약을 성취하심에 있어서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믿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그는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약속을 받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확신을 갖도록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 맹세로 보증하셨던 것입니다.


(16)사람들은 자기보다 더 큰 자를 가리켜 맹세하나니 맹세는 저희 모든 다투는 일에 최후 확정이니라(17)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치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에 맹세로 보증하셨나니(18)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치 못할 사실을 인하여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하여 가는 우리로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약속이 참된 이유는 두 가지 때문인데, 1) 하나님은 거짓말 하실 수 없으신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냥 약속의 말씀만 하셔도 그것은 절대적으로 신뢰할 만한 말씀입니다. 그러나 2) 하나님이 여기다가 맹세까지 더하셨습니다. 맹세는 자기 말의 확실성과 엄숙함을 강조하기 위해 하는 것으로서 다투는 일의 최후 확정입니다. 그렇게 맹세할 때는 자기보다 큰 사람으로 맹세하는데, 맹세 중에서도 가장 엄중한 맹세는 “여호와의 사심과 같이”란 말로 맹세하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하나님은 재판 법정에서 자신의 이름으로 맹세하도록 하셨는데, 그것은 그 증언의 진실성을 엄중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왜냐하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해놓고 거짓말을 하게 되면, 결국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컬은 것이 되어서 죄를 당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이름으로 맹세하도록 하셔서 법정에서 진실만을 말하도록 하신 것인데, 하나님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이렇게 자기 약속을 보증하고 싶으실 때는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신 것은 순전히 의심 많은 우리의 연약함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뜻이 변치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에 맹세로 보증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자신의 인격과 전 존재를 그 약속에 묶으신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거짓말 하실 수도 없으시고, 또 하나님 자신을 걸어 맹세로 약속하셨기 때문에 그것은 틀림없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바로 아브라함은 그 약속을 믿음으로 오래 참았던 것이고, 그리하여 오래 참음으로 약속을 받아 우리의 믿음의 본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아브라함을 본받아서 이렇게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음으로 오래 참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에만 우리가 그 약속된 기업을 상급으로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과연 믿음과 오래 참음이 그러한 약속을 기업으로 받게 하는 공로적인 조건이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아브라함이 처음 부르심을 받고 약속을 받았을 때부터, 전혀 의심하지 아니하고 온전히 믿고 인내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우리가 다 알고 있습니다.

 

그가 얼마나 두려움이 많고 의심이 많았습니까? 애굽에 내려가서 바로에게 자기 아내를 누이라 속이고, 또 그랄에 우거할 때에도 아비멜렉 왕에게 자기 아내를 누이라 속였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셨는데도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자식이 없으니깐 그 약속을 못 믿어서 자기 집에서 길리운 다메섹 엘리에셀을 입양하려고 하기도 했고, 또 사라의 여종 하갈을 통해서 자식을 낳으려고 하는 아주 불신앙적이고 인간적인 생각을 따라 행동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낳은 이스마엘을 바라보면서 수년간을 하나님의 약속도 잊고 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언약을 믿지 못하는 아브라함이 어떻게 믿음과 오래 참음의 본이 되는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습니까? 어떻게 이삭을 바칠 만큼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까?

 

우리가 창세기에서 배운 것처럼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에게 복을 약속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를 언약을 믿는 믿음의 사람으로 연단해 가셨던 것입니다. 즉 계속적으로 약속의 말씀을 반복적으로 주셔서 믿음의 소망을 갖도록 도와주시고, 또 여러 가지 인생경험들과 인생채찍들을 통해 연단하여서 하나님은 언약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신다라고 하는 것을 아브라함으로 확신하게끔 하나님이 만들어주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부르시고, “믿고 인내하나 보자” 그러고 지켜보시다가 믿고 인내하면 그제서야 허락해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처음부터 약속을 주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이삭을 바친 후에 하신 약속의 말씀과 처음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약속하신 말씀이 본질적으로 하등의 차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무엇을 말해주느냐 하면,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쳤기 때문에 그 순종이 공로가 되어서 그가 약속을 받은 것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창세기 본문에서는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라고 함으로써 그가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이삭을 바친 순종 때문에 이 약속을 맹세로 주시는 것처럼 말씀하시지만, 그러나 그것은 그가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조건을 만족하는 공로를 내었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부르실 때 아브라함 안에 심어놓으신 생명의 씨앗이 꽃을 피웠음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믿음은 생명의 씨앗과 같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단순히 약속만 주신 것이 아니라, 그에게 이름과 신분만 주신 것이 아니라, 그를 자기 백성 삼으시고, 하나님을 닮는 새로운 성향을 그 안에 심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한 믿음의 씨앗을 아브라함은 처음부터 갖고 있었던 것이고, 약속도 처음부터 허락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보살핌 속에서 그 씨앗이 싹을 내고 자라서 결국은 꽃을 피워 열매를 맺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것이 이삭을 바치는 아브라함의 믿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믿음이 그렇게 열매로 나타났을 때, 그 순종을 조건으로 언약의 말씀을 맹세를 더하여 재확증 해주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세 가지는 바로 그 씨앗을 심으신 이도 하나님이시오, 자라게 하신 이도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생명의 씨앗에는 생명의 힘이 있고, 그 생명은 지지 않고 열매를 맺고야 마는 어떤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편에서 아브라함은 그 생명의 씨앗을 본인이 잘 가꾸어서 자라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언약의 수단이나 도구나 로봇으로 부름을 받은 것이 아니라, 언약의 당사자로서 인격체로 대우하시기 때문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은혜주시는 것에 따라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반응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 예수님을 처음 믿었을 때, 바로 이러한 믿음의 씨앗을 우리 마음에 심어주셨고, 우리 안에서 그 씨앗을 자라게 하셔서 결국은 꽃을 피워내시고 말 것입니다. 다만 우리의 의무는 그러한 하나님의 은혜 앞에서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반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로 그렇게 반응하도록 주님이 우리를 연단하시고 훈련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끝까지 고집을 피우면 두들겨 패서라도 그렇게 꽃 피우고 마실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믿음으로 오래 참을 때에 비로소 하나님의 약속을 기업으로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아브라함을 연단하셔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게 하셨던 것처럼, 우리를 연단하셔서 아브라함과 같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굳게 믿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굳게 믿고 이 세상을 소망하지 아니하고, 하늘을 소망하며 이 세상에서 참고 인내하는 삶을 살아서 결국에는 하나님의 약속을 기업으로 얻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시선을 아브라함에서 우리를 향해 돌립니다.


(18)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치 못할 사실을 인하여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하여 가는 우리로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거짓말 하실 수 없고, 또 맹세로 약속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변할 수 없는 참된 진리인 것입니다. 이 사실을 우리가 알 때,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하여 가는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우리는 앞에 있는 소망 곧 죽음 이후에 주어지게 될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얻기 위해서 피하여 가는 중인데, (도망가고 있는 중인데) 그렇게 도망가는 과정 가운데서 바로 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변할 수 없다라고 하는 진리가 우리에게 큰 위로를 주는 것입니다.

 

도망한다는 단어는 살인자가 보복을 피하여 도피성으로 도망가는 이미지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과 우리 모두는 다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고, 우리는 이 멸망의 성을 벗어나서 구원의 도성을 향해 순례의 길을 가는 가운데 있는데, 그 과정 속에서 우리 마음속에 드는 생각들이 무엇입니까? “내가 이렇게 열심히 걸어갔는데, 하나님이 나 모른다고 하시면 어떡하나? 예수님 믿어도,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죄가 혹시 남아있는 것은 아닐까? 혹시 가다가 예수님이 나의 연약함과 죄를 보시고 내가 맘에 안 드신다고 하시면서 나를 도중에 버리시면 어떡하나... 내가 길을 가다가 잘못 디뎌서 멸망으로 떨어지면 어떡하나...” 오만 걱정과 염려와 근심이 다 드는 것입니다. 그렇게 불안하고 염려가 될 때에 바로 이 하나님의 변함없는 약속의 말씀은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되고 소망이 되는 것입니다.


(19)우리가 이 소망이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 가나니(20)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


우리가 그러한 수많은 의심과 염려 속에 있고, 수많은 위험과 유혹이 우리의 도중에 기다리고 있어서 정말 두렵고 불안하기 그지없는 순례의 여정인데, 어떻게 우리가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까? 그렇게 우리 눈앞에 폭풍이 불고 파도가 소용돌이치며 풍랑이 크게 일어난다 하더라도 우리의 믿음의 항해는 안전한데 왜냐하면, 우리의 배는 그 닻을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구원의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내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대제사장이 되신 것도 하나님의 맹세의 약속으로 된 것입니다.


(20)또 예수께서 제사장 된 것은 맹세 없이 된 것이 아니니(21)(저희는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었으되 오직 예수는 자기에게 말씀하신 자로 말미암아 맹세로 되신 것이라 주께서 맹세하시고 뉘우치지 아니하시리니 네가 영원히 제사장이라 하셨도다)(히 7:20-21)


이렇게 맹세로 그리스도 예수를 대제사장으로 우리에게 허락하실 것을 약속하셨고, 또 친히 오셔서 우리를 위해 대제사장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이 대제사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휘장 안에 들어가셨습니다. 하늘 성소 안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것이 왜 우리를 위한 들어가심입니까?

 

1) 앞서 들어가신 것입니다. ‘프로드로모스’라는 단어는 선구자라는 뜻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부활 승천하셔서 하늘 보좌 우편에 앉으셨고, 또 하늘 성전에 우리 앞서 들어가셨습니다. 그것은 예수 믿는 우리도 거기 들어가게 될 것을 보증해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의 첫열매가 되십니다. 첫열매는 앞으로 계속 열매가 달릴 것에 대한 보증이 되죠.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의 부활의 첫열매이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승천, 우리의 보좌우편에 앉음에 있어서도 첫 열매가 되십니다. 그러므로 이런 보장 때문에 우리는 든든합니다.


2) 그분은 우리를 위하여 대제사장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죄를 단번에 영원히 속죄하는 구속을 완성하시고, 하늘에 있는 지성소에 우리를 중보하시는 일을 하시기 위해 친히 들어가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을 믿는 우리는 그분의 피로 말미암아 영원히 죄사함을 받고, 그리고 결코 정죄함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의롭다 하신 이를 누가 송사하리요...”라는 말씀처럼 때때로, 사단이 우리를 죄인이라고 송사할지라도, 우리는 은혜로 말미암아 정죄를 받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때때로 연약하여 넘어질 때 징계는 있어도 구원에서 떨어져 정죄될 일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되고, 든든합니다.

 

그리고 그분은 하늘 지성소에 들어가셔서 지금도 대제사장의 중보사역을 감당하십니다. 지성소에서 우리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위해서 기도하고 계십니다. 끝까지 인내하여서 소망의 풍성함에 이를 수 있도록 중보 기도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 기도는 막연한 희망의 기도가 아니라, 반드시 이루어지는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니 베드로가 연약하여 넘어졌어도 다시 회개하고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얼마나 든든합니까?

 

그리고 또한 그분의 대제사장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하늘 지성소 곧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자격을 얻었고, 그리하여 그렇게 하나님께 나아가면 언제든지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얼마나 더욱 위로가 되고 소망이 생깁니까?

 

그러므로 이러한 그리스도 예수의 보증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약속된 구원과 영생과 하나님 나라의 상급들이 반드시 우리에게 주어질 것임을 확신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이 하나님의 약속은 영원히 변치 못할 약속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믿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이 세상을 소망치 아니하고 하늘을 소망하며 오래 참는 삶을 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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