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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최상범
성경본문 히 7:25
성경본문내용 (25)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강설날짜 2012-10-07

2012년 10월 7일 한결교회 주일예배강설

히브리서 제18강


대제사장의 기도


말씀 : 히 7:25


우리는 지난주에 멜기세덱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잠간 복습을 하면, 결국 하나님께서는 율법에서 명한 레위 대제사장으로서는 그리스도의 대제사장 되심을 예표함에 있어서 불충분하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에 놀라운 섭리 가운데 멜기세덱을 아브라함에게 보내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다 풍성하게 예표하도록 하셨습니다. 그것이 4가지 점에서 그렇다고 했습니다.

 

먼저 첫 번째로 멜기세덱이라는 인물은 살렘 왕이면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습니다. 즉 그리스도께서 왕이면서 제사장이라는 점을 이 멜기세덱이 잘 예표하고 있는 것이죠.

 

두 번째로 이 멜기세덱이라는 인물은 창 14장에 혜성처럼 갑자기 등장했다가 곧바로 사라지는, 앞도 없고 뒤도 없는 신비한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비성은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시작한 날도 생명의 끝도 없는 그리스도의 영원성을 잘 예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멜기세덱이 정말 아비가 없고 어미가 없는 자가 아니었습니다. 멜기세덱은 예수님이 아닙니다. 그는 역사적인 실존 인물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이 멜기세덱의 부모가 누구인지, 언제 태어나고 죽었는지에 대해서 일체 침묵하고 있다는 점에 히브리서 저자는 초점을 두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시작한 날도 생명의 끝도 없어서 하나님의 아들과 방불한 자로서 창세기에 기술되고 있다는 것이죠. 따라서 이 멜기세덱처럼 그리스도께서도 영원토록 대제사장으로 계신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멜기세덱이 레위 대제사장보다 얼마나 우월했는가 하는 점입니다.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치고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을 위해 축복 기도를 했습니다. 이때 레위지파의 제사장들은 아브라함의 허리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말하자면 레위지파의 제사장도 아브라함 안에서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쳤고, 멜기세덱으로부터 복 빎을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십일조를 바쳤다, 복 빎을 받았다”는 것은 폐일언하고 상대방이 자기보다 높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던 멜기세덱이 레위의 대제사장보다 비교할 수 없이 우월하고 탁월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국 히브리서의 주된 논점인,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대제사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레위지파의 대제사장보다 얼마나 우월하며 탁월할 수밖에 없는가 하는 것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점에서 네 번째로 레위 대제사장조차도 아브라함 안에서 멜기세덱의 중보를 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것, 다시 말해 레위 대제사장들이 진짜 대제사장이 아니라, 그들도 중보를 받아야 할 존재들이라고 하는 사실은 레위지파의 제사장들 외에 별다른 제사장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레위 대제사장과 그의 사역이 전혀 실질적인 효과를 가져다 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은 연약하고 무익하여 아무것도 온전케 못한다고 히브리서 저자는 못 박고 있는 것입니다.

 

오히려 율법에 따라 세움 받는 것이 아닌, 창세전에 하나님의 맹세로 세워진 진짜 대제사장이 필요한데 그분이 바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분만이 참 대제사장이 되시기 때문에, 율법으로는 아무것도 온전케 할 수 없고, 하나님께 나아가게 할 수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언제라도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고, 또 그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갈 때에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여 온전히 구원하실 뿐만 아니라, 이미 구원받은 우리를 위해 지금도 기도하고 계신다는 것이 지난주 본문의 결론이었습니다.

 

항상 대제사장으로 계셔서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신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로와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예전에 예수님께서 성찬식을 제정하시고 제자들을 향해서 “오늘밤에 너희들이 다 나를 배신하여 버리고 도망갈 것이다” 그렇게 말씀하시니깐 베드로가 자신만만하게 “다 버릴지언정 저는 절대로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주님을 위해서 옥에도 갇히고 죽을 것도 각오하였습니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이 무엇이냐 하면 주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믿는 것입니다. 내가 내 힘과 의지와 결단으로 예수님을 믿고 끝까지 예수님을 붙잡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31)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32)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눅 22:31-32)


네가 나를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너를 붙잡고 있다고 말씀해주신 것입니다. “내가 너를 위해 기도하였으니, 네가 믿음을 잃어버리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구원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에 죄사함 받고 구원받았고, 내가 열심히 기도 많이 하고 말씀을 열심히 읽고 배워서 은혜생활을 잘했기 때문에 끝까지 믿음을 잃지 않고 구원의 완성에 이르렀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성격의 것이 아닙니다. 만일 우리가 구원이라는 것을 “내가 ~~ 했기 때문에”라고 하는 ‘나’의 행위에 초점이 맞추어진다면, 그런 식으로 우리가 믿음을 생각하고 그런 식으로 구원을 생각하게 된다면, 우리는 베드로처럼 실패를 경험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베드로가 자기 자신을 의지했을 때, 어떻게 할 수밖에 없었습니까? 그는 예수님이 말씀하신대로 닭 울기 전에 3번 부인했고, 특히 3번째는 예수님을 저주하면서까지 부인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자신의 실패 앞에서 절망과 좌절감에 통곡하며 울었다고 했습니다. 이때 만일 예수님의 기도가 없었다면, 그는 유다처럼 목매달아 자살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기도로 말미암아 그의 믿음이 떨어지지 아니하고 보전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시고 나서 그들보다 먼저 갈리리로 가셔서 그들에게 나타나셨는데, 그때 베드로를 나무라거나 책망하시거나 하지 않으시고, 그 아침에 잡은 고기를 가져다가 구어서 맛있는 아침식사를 대접하시고, 변함없는 사랑으로 섬겨주셨습니다. 그리고 세 번 사랑 고백을 하게 하셔서 3번 부인한 죄를 극복하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죄인을 향한 긍휼의 마음을 가진 대제사장의 모습입니다. 자기 백성의 연약함을 동정하고 자비와 은혜를 베풀어 그들이 어려울 때 도와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이 주님의 사랑의 섬김 앞에서 완전히 자기 의가 깨어졌던 것입니다. 그때 그가 깨달은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예전에는 내가 주님을 선택했고, 내가 모든 것을 버려두고 주님을 좇았고, 내가 주님을 열심히 섬겼고, 내가 주님을 믿고, 내가 주님을 끝까지 붙잡는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니라, 주님이 나를 창세전에 택하셨고, 부르셨고, 나의 믿음이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해 기도하셨고, 지금도 긍휼로 용납하시고 그 실패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끝까지 나를 붙드셨기 때문에 내가 지금 여기에 있을 수 있는 것이구나... 그렇게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즉 내가 예수님을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나를 붙잡고 계신다는 그 사실에 자신의 신앙을 세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이후로부터 베드로는 이제 자신의 행위를 의지하지 아니하고 온전히 주님의 사랑과 은혜만을 의지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이다.

 

믿음은 구원의 근거를 내 자신에 두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대제사장으로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에 두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지는 가장 어려운 문제가 무엇입니까? 분명히 “예수님을 만났는데,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았는데, 왜 늘 구원의 확신 없이, 매일 흔들리고 의심하고 낙심하고 절망하는가? 왜 죄를 이기는데 날마다 실패하는가?”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베드로처럼 구원과 신앙을, 내 믿음, 내 노력, 내 의지, 내 열심, 내 결단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받습니다. 게으르지 아니하고 열심을 내서 기도하고 말씀 읽고 배우기 힘써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그렇게 해야 하는데, 문제는 그것이 나의 구원을 지탱하는 근거로 자리 잡게 되면, 그것이 결국은 우리를 실패와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하는 무서운 율법주의가 된다는 것입니다.

 

나의 구원의 근거를 내 경험이나 내 열심, 내 신앙, 내 확신에서 찾는다고 한다면, 우리의 구원에 대한 확신은 결국 우리의 상태에 따라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잘 할 때는 구원받은 자인 것처럼 생각되었다가도, 그렇지 못할 때는 구원이 취소되었거나 아직 구원받지 못한 자로 여겨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뭔가 잘하고 있는 것 같을 때는 “내가 말씀을 열심히 읽고 내가 기도를 열심히 했기 때문이다”라고 하는 자기 자랑을 내고, 또 그렇게 못하는 사람을 보면서 “당신이 나와 같은 경지에 이르지 못한 것은 당신이 게으르기 때문에 그렇다”라는 식으로 정죄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내가 뭔가 형편없는 신앙생활을 하는 것 같으면, “내가 게으르고 기도 안하고 말씀 안 읽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를 받아주시지 않는 거야”라고 하는 자책과 절망적인 생각을 하면서 끊임없이 자신의 행위에 얽매이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들이 바로 처음 구원은 은혜로 주어졌지만, 그러나 그 이후는 우리에게 맡겨진 우리의 몫이고 우리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율법주의인 것입니다. 이것이 로마가톨릭적인 생각인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혹시 이런 차원에서 머물고 있지는 않습니까?

 

물론 우리가 말씀을 열심히 읽고 배우기를 힘쓰고 기도하는데 힘써야 우리의 신앙이 잘 자라고, 그래야 믿음의 길을 끝까지 갈 수 있는 것이고, 또 우리가 게으르고 기도 안하고 말씀 안 읽으면 우리의 신앙생활이 형편없게 될 것이라는 것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의무에 게으른 것에 대해서 죄책감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확실하게 기억해야 할 것은 과연 그러한 것들이 우리의 구원을 지탱하고 있는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과연 구원이 우리에게 달려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아니라는 것이죠. 무엇이 우리를 지탱하고 있습니까? 주님의 택하심과 부르심, 그리고 지금도 우리를 위해서 대제사장으로서 기도하시는 중보의 사역이 우리의 구원을 지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6:19-20에서 이렇게 말씀했던 것입니다.


(19)우리가 이 소망이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 가나니(20)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히 6:19-29)


우리가 소망이 있는 이유는 내가 잘나서, 또는 내가 잘해낼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내 자신만 봐서는 낙심하고 절망할 수밖에 없지만, 내 구원을 지탱하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니라, 바로 우리 앞서가신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 성소에서 지금도 일하시고 계시기 때문에, 그것이 영혼의 닻이 되어 튼튼하고 견고한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바울도 로마서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롬 8:33이하).


우리를 의롭다 하신 분은 하나님이시고, 주님이 우리를 위해 우편 보좌에서 우리를 기도하시니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어낼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구원은 영원한 것입니다. 우리가 바로 우리의 영혼의 눈을 들어 이 사실을 바라보아야 하고 그것을 온전히 의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확실하고 영원한 중보 사역의 터 위에 나의 신앙을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의 믿음이 튼튼하여서 오래참음으로 세상의 유혹과 핍박을 견디고 신앙의 경주를 완주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열심이 아닌 주님의 열심이 우리의 구원을 지탱하고 있다면, 우리가 열심을 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왜 말씀과 기도에 힘써야 하죠? 그것은 그리스도의 중보의 사역의 공로로 값없이 주어지는 은혜가 말씀과 기도에 힘쓰는 우리의 노력과 애씀을 수단으로 해서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구원과 성화 모두가 주님이 주도권을 가지고 계시지만, 그러나 우리가 로봇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인격체로 다루시기 때문에 로봇 다루듯이 은혜를 기계적으로 주시는 것이 아니라, 은혜의 방도에 힘을 써서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는 우리의 믿음이 반응을 수단으로 사용하셔서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게으르지 아니하고 은혜의 방도에 집중해야 하는 것이고, 결코 그것을 공로나 자랑으로 여겨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믿음으로 오래 참을 수 있고, 소망을 끝까지 담대히 가질 수 있으며, 또 말씀과 기도에 힘써서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오직 이 대제사장 되신 주님의 사역을 믿고 온전히 의지할 때만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즉 “나 자신이 전적으로 주님의 손 안에 있고, 주님은 영원히 나를 포기치 않을 것이고, 지금도 나를 위해 기도하고 계시고 긍휼과 자비로 도우시고자 하늘의 은혜의 보좌의 문을 나를 향해 활짝 열어놓고 계신다.”라고 하는 믿음이 우리로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믿음을 가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대제사장의 사역을 믿고 의지하여 큰 위로와 힘을 얻고 구원의 확신을 가지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주님이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으로 천상에서 기도하고 계시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아마 베드로를 위해서 하신 기도와 다르지 않을 것이지만, 특별히 요한복음 17장은 그분의 기도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잘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15)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16)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삽나이다(17)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18)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19)또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요 17:15-19)


우리는 이 기도를 주님의 대제사장적 기도라고 말합니다. 바로 이 기도를 지금도 우리를 위해 천상에서 드리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 중요한 핵심 내용은 우리의 믿음을 보전하시고 진리로 우리를 거룩하게 하사 온 교회의 지체가 사랑으로 하나 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이 주님의 기도가 지금도 우리를 붙들고 지탱하고 있는 것이고, 그리고 주님의 기도대로 반드시 이 일이 우리에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의 모습이 이 기도에서 많이 멀지만, 그러나 반드시 주님께서는 이 기도대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과 우리 한결교회를 그렇게 만들어 가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집시다. 왜냐하면 주님이 하시는 기도는 이룰 수 없는 일에 대한 실없는 바람이나 소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시라고 했습니다(7:22).


(22)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히 7:22)


예수님의 중보사역은 단순히 제3자의 입장에서 둘 사이의 양보를 이끌어내어 합의를 보게 하는 차원의 중보가 아닙니다. 이 경우는 중보일수는 있지만, 보증일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별로 달갑게 생각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달래고 애원하며 기도하심으로 우리를 받아달라고 그렇게 중보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이 중보 하시는데, 그 중보가 보증일 수도 있는 이유는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 자신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성자 하나님으로서 성부 하나님, 성령 하나님과 사랑으로 말미암아 온전히 하나로 연합하여 계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성부하나님은 성자 하나님이 무엇을 구하든지 다 들어주시는 것이고, 성자 하나님은 무엇이든지 성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만을 구하시는 것입니다. 성부 하나님이 달가워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성부 하나님의 마음과 성자 예수님의 마음이 동일합니다. 성부 하나님이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보내셔서 우리로 저를 믿게 하셔서 우리로 멸망 받지 않게 하신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성자 예수님이 구하시면, 그것은 성부 하나님께서 반드시 들으시고 그 기도대로 이루시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우리의 보증인이 되셨기 때문에 성부 하나님은 예수님의 기도를 반드시 들어주십니다. 보증이라고 하는 것은 계약 당사자의 모든 의무와 책임과 운명을 자신과 묶어서 그 모든 것들을 자신이 대신 짊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계약당사자가 무언가를 잘못하고 빚을 졌으면 그에 따른 변상을 하고, 필요한 의무를 못했으면, 대신 그 의무를 행해서 그 계약을 끝까지 이루는 것이 보증인의 역할입니다. 주님이 바로 그런 우리를 위한 보증인이 되셨습니다. 결국 성부 하나님이 예수님의 기도를 들어주심에 있어서 가장 큰 걸림돌은 우리의 허물과 죄인 것입니다.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죄인인 우리를 그냥 받아주실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보증이 되셔서 우리의 모든 죄에 대해서 치루어야 할 값을 하나님께 대신 다 지불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살아야 할 의무와 책임도 우리를 대신하여 행하심으로 하나님의 요구를 만족케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모든 방해요소는 없고, 주님과 연합해 있는 우리 교회를 향한 주님의 기도를 하나님께서는 못 들어주실 아무런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반드시 들어주시는 기도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주님의 대제사장적 기도는 반드시 이루어지는 기도입니다. 주님께서 택하신 자는 반드시 구원에 이를 것이고, 주님의 교회는 결코 망하지 아니하고, 온전히 거룩하고 하나 된 공동체가 되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이 하시는 이 일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임을 믿고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을 그 일에 도구로 드려 헌신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를 힘입어서 진정으로 믿음으로 거룩한 삶을 살고, 서로 용서하고 서로 사랑해서 하나가 되는 공동체를 만들어 가시는 주님의 일에 나 자신을 헌신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게 하여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하여 이러한 주님의 기도대로 우리가 거룩하여지고, 구원의 완성으로까지 자라가는 역사, 우리 모임이 거룩하고 하나 된 사랑의 한결교회로 자라가는 역사를 우리 모임 가운데 충만히 허락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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