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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최상범
성경본문 히 9:1-10
성경본문내용 (1)첫 언약에도 섬기는 예법과 세상에 속한 성소가 있더라(2)예비한 첫 장막이 있고 그 안에 등대와 상과 진설병이 있으니 이는 성소라 일컫고(3)또 둘째 휘장 뒤에 있는 장막을 지성소라 일컫나니(4)금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언약의 비석들이 있고(5)그 위에 속죄소를 덮는 영광의 그룹들이 있으니 이것들에 관하여는 이제 낱낱이 말할 수 없노라(6)이 모든 것을 이같이 예비하였으니 제사장들이 항상 첫 장막에 들어가 섬기는 예를 행하고(7)오직 둘째 장막은 대제사장이 홀로 일년 일차씩 들어가되 피 없이는 아니하나니 이 피는 자기와 백성의 허물을 위하여 드리는 것이라(8)성령이 이로써 보이신 것은 첫 장막이 서 있을 동안에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 것이라(9)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의지하여 드리는 예물과 제사가 섬기는 자로 그 양심상으로 온전케 할 수 없나니(10)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만 되어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
강설날짜 2012-10-28

2012년 10월 28일 한결교회 주일예배강설
히브리서 제21강

 

육체의 예법

 

말씀 : 히 9:1-10

 

히브리서 저자는 이제 땅의 성막에 대해서, 그리고 그 성막에서 어떻게 제사장이 섬겼는지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합니다.

 

(1)첫 언약에도 섬기는 예법과 세상에 속한 성소가 있더라

 

첫 언약, 곧 옛 언약에는 하늘의 성소와는 대조되는 세상에 속한 성소가 있고, 거기서 제사장들이 섬기는 예법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성소의 구조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2)예비한 첫 장막이 있고 그 안에 등대와 상과 진설병이 있으니 이는 성소라 일컫고

 

지금 하는 이야기가 무슨 말인지 이해하려면 성막의 전체 구조에 대해서 대충은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 편지의 수신자들인 유대인 신자들은 성막의 구조에 대해서 어느 정도 사전지식이 있기 때문에 본문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지만, 우리는 성막에 대해 익숙하지 않은 이방인이기 때문에 히브리서 저자가 본문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막은 장이 100규빗이고 광이 50규빗이고, 성막 또는 회막이라고 불립니다. 규빗은 보통 성인의 팔꿈치부터 손가락 끝까지의 길이입니다. 사람마다 길이가 달라서 정확한 길이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평균 잡아 1규빗을 50cm로 보면 성막은 장이 50m, 광이 25m의 387평의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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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성막에는 사방으로 울타리가 쳐져 있고, 동쪽의 문이 하나 있으며, 이 문을 지나 들어가면, 제일 먼저 번제단이 보입니다.

 

 


번제단은 5규빗-5규빗의 정사각형의 모양으로 만들되, 조각목으로 만들어 놋으로 싸고, 모퉁이네 네 뿔이 있습니다. 이 번제단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불입니다. 모세가 번제단을 만들고 첫 제물을 올려놓았을 때,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불을 내려주셨습니다. 성막에 불을 주시면서 불을 꺼트리지 말라고, 레위기 6장 8절 이하에 3번이나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BC 586년 바발론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될 때까지 그 불이 꺼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거의 1000년 동안 탔습니다. 성막을 이동할 때는 불타는 채로 들고간 것이 아니라, 불을 옮기는 그릇에다가 불을 옮겨놓고, 꺼진 번제단을 메고 들고 이동했습니다. 번제단의 두 번째 특징은 ‘피’입니다. 동물제사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피를 뿌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루에 적게는 300마리에서 많게는 2000마리까지 동물의 희생제사를 드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번제단과 성소 사이에 물두멍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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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두멍은 성막에서 제사를 드리거나 또는 여러 가지 의식을 행할 때에 제사장이 수족을 씻을 수 있도록 물을 담아놓은 용기입니다. 놋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성소는 장이 33규빗 광이 12규빗으로 약 18평의 텐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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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면을 조각목에 금으로 싼 널판을 두르고 입구 쪽에는 휘장을 쳐서 들추고 들어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천장에는 물개 가죽을 네 번 덮어서 비가 새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성소 안에는 모든 기구가 금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평당 약 20억원 어치의 금이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성소에만 약 600억 정도의 금이 사용되는 것으로 추청 됩니다.


성소는 성소와 지성소로 구분되고, 그 사이에 또 하나의 휘장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본문은 성소를 첫째 장막으로, 지성소를 둘째 장막으로 지칭합니다.

 

(2)예비한 첫 장막이 있고 그 안에 등대와 상과 진설병이 있으니 이는 성소라 일컫고(3)또 둘째 휘장 뒤에 있는 장막을 지성소라 일컫나니

 

우선 성소에 들어가 보면 왼쪽에 금등대, 오른쪽에 떡상, 그리고 정면 뒤쪽에 분향단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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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등대는 금을 녹여서 만들지 않고 쳐서 만들었으며, 가운데를 중심으로 여섯 개의 줄기가 나와서 일곱 등불을 내도록 했고, 그 사이에 살구꽃을 수놓아 만들었습니다. 성소에는 자연적인 빛이 전혀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오직 이 금등대의 불빛이 성소를 밝혀주었고, 지성소는 하나님의 영광이 밝혀주었습니다. 최고의 양질의 감람유를 사용해서 밝혔기 때문에 그 불빛이 매우 밝았고, 성소 내부의 금에 반사되어 그 안을 환하게 비추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금등대의 불을 꺼트리지 말라고 명하셨으며, 따라서 제사장은 아침저녁으로 성소에 들어와서 간검하여서, 불똥을 제거하고 기름을 보충하여 항상 불빛을 발하도록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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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맞은편에 떡상이 있는데, 이 떡상은 조각목으로 만들고 금으로 싸서 만들었으며, 그 떡상 위에 무교병 12개를 6개씩 두줄로 놓고, 그 위에 유향과 가운데 기름병을 두어서 제사장으로 먹게 하였습니다. 이 진설병이라고 하는 떡은 기름과 함께 반죽하여 구워서 만들었고, 기름과 함께 먹을 것을 명하셨습니다. 그래서 제사장은 안식일 날 새 떡을 해다가 떡을 교체하면서 그 교체한 떡을 제사장들이 나눠먹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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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지성소로 들어가는 휘장 정면쪽에 분향단이 있습니다. 역시 조각목으로 만들고 금으로 싸서 만들었고, 네 모퉁이에 뿔이 있으며, 제사장은 아침저녁으로 금등대의 불을 간검할 때, 분향단의 향로도 살펴서 항상 그 향연이 1년 365일 늘 피어져 있도록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향을 피울 때는 반드시 번제단의 불을 가지고 드려야 했습니다.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는 다른 불로 분향해서 결국 불에 타 죽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휘장을 들추고 지성소로 들어가면 언약궤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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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세계의 중심은 이스라엘, 이스라엘의 중심은 예루살렘, 예루살렘의 중심은 성막, 성막의 중심은 지성소, 지성소의 중심은 법궤, 법궤의 중심은 ‘두 언약의 돌판’이라고 말합니다. 그만큼 언약궤(또는 법궤)는 성막에서 가장 중요한 기구입니다. 이 언약궤는 조각목으로 만들어 금으로 쌌고, 언약궤 뚜껑인 속죄소(또는 시은좌)는 정금으로 만들되, 그 위에 그룹들의 형상을 새겨놓았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 속죄소 위에서 이스라엘과 만나겠다고 말씀하셨고, 때문에 이 그룹은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를 상징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에덴의 회복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쫓아내시고 거기에 두루 도는 화염검과 그룹들을 두셔서 생명나무로 가는 길을 지키게 하셨는데, 바로 그 그룹들을 언약궤 위에 형상으로 새겨두심으로서 이 언약궤 앞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다시 생명을 얻을 수 있음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언약궤 안에는 언약의 두 돌판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오해하는 것 중에 하나가 법궤에는 두 돌판, 아론의 싹난 지팡이, 만나 항아리 이 세 가지가 다 들어 있다 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법궤 속에는 두 돌판만 넣으라고 말씀하셨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만나 항아리는 법궤 속에 넣으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만나 항아리는 법궤 앞에 두라고 하셨고, 모세의 율법책은 법궤 옆에 두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출 16:33-34; 신 31:24-26). 물론 고핫 자손들이 이 성막을 옮기면서 이 두 가지를 법궤 속에 잠시 넣어둔 기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기간은 언약궤가 존재한 1500년 기간 중에서 30-40년에 불과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솔로몬이 법궤를 열어보니깐 두 돌판만 발견했다는 기록을 열왕기상 말씀에서 우리는 찾아볼 수 있습니다(왕상 8:9). 나머지 두 가지는 잊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까지의 설명이 오늘 본문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느끼실 것입니다.

 

(2)예비한 첫 장막이 있고 그 안에 등대와 상과 진설병이 있으니 이는 성소라 일컫고(3)또 둘째 휘장 뒤에 있는 장막을 지성소라 일컫나니(4)금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언약의 비석들이 있고

 

우선 분향단이 성소에 있지 않고 지성소에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난해한 부분입니다. 아마도 이것은 솔로몬 성전 때에는 분향단이 지성소에 있게 된 것을 성막에까지 확대 적용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언약궤 안에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언약의 비석들이 있다고 설명하는 것도, 세 가지가 같이 들어가 있었다라고 하는 유대인의 전승을 따른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이런 문제뿐만 아니라, 히브리서 7장 27절도 문제가 있습니다.

 

(27)저가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저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니라(히 7:27)

 

대제사장이 자기를 위하여 제사 드리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해 제사 드리는 의식은 일 년에 단 한번 대속죄일날에 행하였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본문은 그것을 매일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여러 학자들이 견해를 내는데, 그 중에 가장 그럴듯한 견해는 제사장이 아침저녁으로 매일 번제를 드렸는데, 그 매일의 제사를 대속죄일 제사의 측면에서 해석한 것이라고 보는 입장입니다.


이런 것들 때문에 어떤 사람은 히브리서가 틀렸다라고 말하는데, 그럴 수 없습니다. 히브리서는 정확한 사실만을 말하는 보고서나 논문도 아니고 과학책도 아닙니다. 히브리서는 수신자들을 설복하여 복음에 헌신하도록 하기 위해 보낸 편지이고 설교입니다. 그가 인용한 전승에 따라서 약간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을 수 있으나, 그것이 맞냐 틀리냐가 논점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이를 통해 성령께서 교회에게 하시는 말씀이 무엇인지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도 이것을 말씀합니다.

 

(8)성령이 이로써 보이신 것은 첫 장막이 서 있을 동안에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 것이라(히 9:8)

 

성령이 이를 통해 보이고자 하신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바로 여기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저자는 성막의 구조를 말하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5)그 위에 속죄소를 덮는 영광의 그룹들이 있으니 이것들에 관하여는 이제 낱낱이 말할 수 없노라(히 9:5)

 

히브리서 저자는 성소의 구조를 설명하다 그 설명을 그것을 갑자기 멈춥니다. “이것들에 관하여는 이제 낱낱이 말할 수 없노라”라고 하는 말이 매우 중요한 말입니다. 더 말할 수 있겠지만, 그리고 각각에 대하여 모형론적인 해석들을 할 수 있겠지만, 논점이 흐려지니 더 이상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요점만 말하겠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성막의 각각의 기구들을 통해 낱낱이 설명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는 것입니다. 즉 성막은 그리스도의 모형이요 그림자라는 것입니다. 성막의 구조와 기구들, 그 섬기는 예들은 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성소의 금등대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떡상도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금등대를 보시면서 “나는 빛이요” 라고 말씀하셨고, 떡상을 보시면서 “나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산 떡이라”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분향단을 보시면서 “내 이름으로 기도하면 무엇이든지 아버지께서 들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언약궤는 예수님을 말하고, 속죄소도 예수님을 말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얼마든지 일일이 설명할 수 있지만,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논점이 흐려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도 이 부분에 대해서 다루지 않겠습니다. 나중에 출애굽기 배울 때 목사님이 다루어주실 것입니다. 물론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성막을 해석할 때, 지나친 알레고리 해석은 금물이라는 것입니다. 강준호 목사의 성막론이라는 강의가 인기가 있는데, 제가 보니깐 참고할 부분도 있지만, 해석에 있어서 문제도 많았습니다. 그런 강의는 안 보시는 것이 오히려 나을 것 같습니다. 성막이 그리스도의 모형이지만, 꼭 성막을 정확하고 자세하게 알아야지만 그리스도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면 큰 잘못을 범하는 것입니다. 물론 성막을 잘 알면 더 좋겠지만, 몰라도 예수님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성막을 통해서 성령이 보이고자 하신 오늘 본문의 요점만큼을 확실하게 알고 있어야지만 예수님을 제대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막과 거기서 섬기는 제사장의 사역을 통해 성령이 보이고자 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히브리서 저자는 성령이 땅의 성막을 통해 보이고자 하시는 바를 드러내기 위해 제사장의 성소 사역과 대제사장의 대속죄일의 사역에 초점을 맞춥니다.

 

(6)이 모든 것을 이같이 예비하였으니 제사장들이 항상 첫 장막에 들어가 섬기는 예를 행하고(7)오직 둘째 장막은 대제사장이 홀로 일년 일차씩 들어가되 피 없이는 아니하나니 이 피는 자기와 백성의 허물을 위하여 드리는 것이라

 

6절에 제사장들이 항상 첫 장막에 들어가 섬기는 예를 행했다고 말합니다. 제사장이 보통 24000명 정도가 있는데, 1000명씩 24반차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한주에 한 반차씩 섬기고 차례차례 다음 반차로 교체 되는데, 24주면 24반차가 다 한 번씩 섬기는 것이고, 그렇게 치면 1년에 두 바퀴를 도는 셈입니다. 그런데 설사 자기가 소속된 제사장 반차가 이번 주에 성소를 섬기게 되었다 하더라도 1000명중에서 이 일을 섬길 사람을 제비뽑아 하도록 했기 때문에 성소에 들어가는 것이 어떻게 보면 평생에 한번 있을까 말까하는 것이었습니다.


누가복음에 세례요한의 아버지 제사장 사가랴가 아비야 반열에서 제비 뽑혀 성소를 섬기게 되었을 때, 그것이 평생 있을까 말까하는 놀라운 특권이었던 것입니다. 그 놀라운 특권의 직분을 섬기는데, 거기서 천사를 만나고 벙어리가 되어서 나오는 바람에 더 유명한 사건이 되었던 것입니다.

 

(8)마침 사가랴가 그 반열의 차례대로 제사장의 직무를 하나님 앞에 행할새(9)제사장의 전례를 따라 제비를 뽑아 주의 성소에 들어가 분향하고(10)모든 백성은 그 분향하는 시간에 밖에서 기도하더니(눅 1:8-10)

 

오직 제사장들만 성소에 들어가 기도할 수 있고, 그것도 모든 제사장이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반차가 섬길 때, 그리고 그 제사장들 중에서 제비 뽑힌 자만 성소에 들어가 금등대를 간검하고 분향단의 향을 피우면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예배드렸던 것입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은 뭐합니까? 다 밖에서 기도했습니다. 이것이 옛 언약의 섬기던 예입니다.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기도할 권한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제사장을 통해서 하나님께 기도해야 했고, 또한 다만 자기 대신 하나님께 기도해줄 제사장을 밖에서 바라보기만 해야 하는 입장이었습니다. 아니 성소의 휘장 때문에 볼 수 없고, 다만 제사장이 입은 방울달린 옷에서 나오는 방울 소리를 들었을 뿐입니다. 그래서 그 소리를 듣고서 “아! 제사장이 나를 위해 하나님 앞에 중보하며 기도하는구나...” 그렇게 위로를 얻을 뿐이었습니다. 물론 그들도 밖에서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한 기도와 제사장이 드리는 기도에는 명백한 구분이 존재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나아가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과 신령한 친교를 나누는 것이 기도인데, 그러한 기도는 제사장만이 할 수 있었고, 백성들은 제사장을 통해 그런 기도를 하나님께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다시 말하면 구약의 일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께 직접적으로 기도할 특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매일 언제나 어디서나 내가 기도하고 싶을 때는 하나님께 직접 나아가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이렇게 기도하는 것이, 구약에서는 제사장만이 드릴 수 있었고, 그것도 평생에 한번 있을까 말까하는 그런 성소에 나가 하나님의 면전 앞에서 기도할 수 있는 특권을 우리는 매 순간 누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침이나 밤이나, 직장에서나 학교에서나 어디서나 수시로 기도할 때마다 우리는 바로 하나님께 직통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특권인지를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7절에서 히브리서 저자는 대속죄일의 사역에 대해서 말합니다. 사실 여기에 본문에 포인트가 있습니다.

 

(7)오직 둘째 장막은 대제사장이 홀로 일년 일차씩 들어가되 피 없이는 아니하나니 이 피는 자기와 백성의 허물을 위하여 드리는 것이라(히 9:7)

 

지성소에는 언약궤가 있고 그 뚜껑인 속죄소(또는 시은좌)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언약궤 위 속죄소에서 구름기둥이 나와서 하늘로 뻗어 있었고, 그 구름은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를 상징했던 것입니다. 지성소는 바로 하나님이 친히 임재하여 거하시는 곳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죄인이 함부로 들어가면 큰일 나는 것입니다.

 

(2)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형 아론에게 이르라 성소의 장안 법궤 위 속죄소 앞에 무시로 들어오지 말아서 사망을 면하라 내가 구름 가운데서 속죄소 위에 나타남이니라(레 16:2)

 

그러나 이런 곳에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었던 유일한 인물이 있었는데, 그는 모세였습니다. 모세는 이 지성소 안에 수시로 들어가서 하나님과 대면하여 얘기 나누고 교제하며, 계시를 받았던 유일한 인물입니다. 대제사장은 1년 1차 들어갈 수 있지만, 모세는 수시로 들락날락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모세를 아론 대제사장보다 더 높은 스페셜 제사장이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서 바로 새언약의 백성의 특권을 그림자의 형식으로 미리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어쨌든 모세 이후에는 오직 대제사장만이 1년에 하루만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성소에 들어갈 때에는 몸을 깨끗이 씻어야 했고, 하얀 세마포 옷만 입어야 했으며, 향로의 향연을 지성소에 피워서 속죄소를 보지 못하도록 가려야 했습니다.

 

(12)향로를 취하여 여호와 앞 단 위에서 피운 불을 그것에 채우고 또 두 손에 곱게 간 향기로운 향을 채워 가지고 장 안에 들어가서(13)여호와 앞에서 분향하여 향연으로 증거궤 위 속죄소를 가리우게 할지니 그리하면 그가 죽음을 면할 것이며(레 16:12-13)

 

그리고 그냥 나가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피를 가지고 나아갔습니다. 자기를 위해서는 수송아지의 피, 백성들을 위해서는 양이나 염소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로 들어갔습니다.

 

(7)오직 둘째 장막은 대제사장이 홀로 일년 일차씩 들어가되 피 없이는 아니하나니 이 피는 자기와 백성의 허물을 위하여 드리는 것이라

 

그래서 그 피를 뿌려서 이스라엘의 모든 범죄와 부정함을 깨끗케 하였던 것이고, 그 지성소에 들어간 대제사장만이 유일하게 하나님의 면전 앞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대제사장이 성막에서 사역하는 동안 단 한 사람도 성막에 있지 못했고, 다 밖에서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이러한 이 땅의 성소에서 대제사장의 대속죄일의 사역이 결국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 무엇입니까?

 

(8)성령이 이로써 보이신 것은 첫 장막이 서 있을 동안에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 것이라

 

성령께서 보여주시고자 하신 것은 이 땅의 성막과 대제사장의 대속죄일의 사역은 결국 지성소로 들어가는 길이 막혀 있다는 것입니다. 심해잠수정은 바다 밑 수km까지 항해하는 특수 잠수정입니다. 이 잠수정의 특징은 바깥외벽이 정말 두껍고 단단한 특수합금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다 밑으로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물의 압력이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10m 내려갈 때마다 1기압이 증가합니다. 수심 10km만 내려가도 수압이 1천 기압이 됩니다. 최근에 중국이 7km까지 내려가는 잠수정을 개발해서 대기록을 세웠지만, 아직도 인류의 최첨단 과학기술로도 바다 밑으로 10km까지 내려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엄청난 압력을 견뎌내기 위해서는 그 바깥 외벽이 엄청 두꺼워야 하고 아주 단단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리창도 내야 하는데, 유리는 더 취약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아주 두꺼운 특수 유리를 장착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거룩하신 하나님이 이스라엘 가운데 그냥 임재하여 거하신다면, 모든 이스라엘은 다 부정하고 흠이 있는 죄인들이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진멸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가운데 거하시기 위해서는 어떻게 할 수밖에 없습니까? 그 죄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이상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에는 서로 범접할 수 없는 두껍고 튼튼한 막이 겹겹으로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왜 구약에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까다롭고 복잡하고, 또 1년에 단 한번만, 그것도 대제사장만 나아갈 수 있는지 그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계시는 지성소가 얼마나 거룩한 곳이며, 죄인이 결코 범접할 수 없는 곳이며, 일 년에 한번 들어가는 대제사장조차도 목숨을 걸고 들어가야 하는 두렵고 떨리는 자리인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애 처음으로 대제사장으로 위임되어서 지성소에서 첫 사역할 때에는 서툴러서 실수로 죽을 수가 있기 때문에 평생에 딱 한번 밧줄을 허리에 매고 들어가게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이스라엘 가운데 거하신다는 것은 이스라엘을 향한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잘 보여주기도 하지만, 또한 한편으로는 그것은 매우 위험천만한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위험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겹겹이 외벽을 쌓으셨던 것이고, 이를 통해서 성령께서는 지성소로 들어가는 길이 막혀 있음을 우리에게 드러내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성막을 통해 성령께서 보이고자 하신 두 번째가 바로 이 옛 언약이 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 할 수 없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9)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의지하여 드리는 예물과 제사가 섬기는 자로 그 양심상으로 온전케 할 수 없나니(10)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만 되어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라는 말은 해석이 어렵습니다.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한데, 이 장막은 그 당시 사람들에게 그 길이 막혔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고 해석하는 한 가지가 있고, 또 이 장막은 오늘날 우리에게 옛 언약의 근본 한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후자가 보다 문맥에 어울리는데, 즉 “이에 의지하여 드리는 예물과 제사가 섬기는 자로 그 양심상으로 온전케 할 수 없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10절에서 “이런 제사의식들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만 되어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두셨다” 라고 말씀합니다.


제사의식들, 대제사장의 사역, 그리고 먹고 마시는 음식법들, 여러 가지 씻는 정결예법들이 실질적으로 그 사람의 내면에 죄 사함을 허락하고 그 사람의 내면을 정결하게 하고 그 양심을 온전케 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외적으로, 그리고 겉으로만, 의식적으로만 깨끗하고 거룩하게 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육체의 예법에서 육체는 내면 또는 영적인 것과 반대되는 우리의 외적이고 물리적인 육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율법은 육체를 깨끗케 하였다는 것입니다. 구약에 보면 동물 희생제사를 통해서 또 여러 가지 씻는 의식들을 통해 “죄사함을 받을 것이다, 정결하게 될 것이다, 거룩하게 될 것이다” 그런 선포가 많이 나오지만, 그것이 정말 죄 문제를 해결하고 내면의 부정을 정결하게 했다는 말이 아니라, 육체를 정결케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는 율법을 육체의 예법이라, 육체와 상관된 계명이라고 말했던 것입니다(히 7:16).


그래서 율법은 바로 내면에 대해서 전혀 말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주로 외적이고 의식적인 부분에 많이 치중합니다. 먹고 마시는 음식법도, 무엇을 먹고 마시느냐에 따라 정하게 되고 부정하게 됩니다. 시체를 만지면 부정하게 되고, 출산하면 부정하게 되고, 아들을 낳으면 40일 부정하고, 딸을 낳으면 80일 부정합니다. 피부병에 걸리면 부정하고, 생리하면 부정하고 남녀가 동침하면 부정했습니다. 몸에 흠이 있는 장애인들은 부정하여 성막에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몸이 정상이고, 표준이고 정결해야만 성막에 나아가 하나님께 제사 드리고 예배드릴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구약 율법에 “하나님을 사랑치 않는 자, 그 마음이 더러운 자는 성막에 들어올 수 없다” 그런 구절 있습니까? 없습니다. 율법은 대체적으로 육적인 것에 대해 많이 언급합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부정한 자들은 정해진 기간 동안 모든 사회적인 활동을 끊고 집에만 있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부정한 자와 접촉하는 자는 함께 부정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부정한 자는 성막에 나아갈 수 없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이렇게 율법은 내면의 더러움과 부정보다도 육체의 부정과 육체의 더러움, 육체의 병든 것에 대해서 더 문제를 삼습니다. 그리고 율법의 정결예법과 제사의식이 이러한 육체의 더러움을 씻어내는데 그 초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옛 언약은 근본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에, 양심을 온전케 하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이스라엘 사이에 그러한 두꺼운 외벽이 꼭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에게는 두 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그러면 과연 구약의 백성들은 죄 사함을 받지 못하였는가 하는 것입니다. 구약의 백성들은 내면에 그 어떠한 은혜도 받지 못하였습니까? 아닙니다. 다윗의 시편을 보십시오. 그들도 죄 사함을 받았고, 양심의 정결케 됨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동물제사를 통해서 받은 것이 아니라, 그 동물제사를 보면서 장차 오실 구속자의 죽음을 바라보는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과의 친교를 누렸습니다. 그러나 우리보다는 희미하고 덜 풍성했습니다.


그러면 이어지는 두 번째 질문은 내면과 상관없는, 육체를 정결케 하는 예법을 이스라엘에게 왜 주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골탕 먹이시려고 주신 것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 때문에 그렇습니다. 새 언약이 오기 전에 반드시 옛 언약이 와야 하고 복음이 오기 전에 반드시 율법이 와야 합니다. 이 성막이라는 제도가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리고 오늘날 우리들에게 밝히 증거하는 것은 흠 있는 인간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어떠한 길도 없습니다. 오직 대속의 은혜와 제사장의 중보를 통해서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밝히 보여주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뿐만 아니라, 우리도 동일하게 깊이 깨닫고 늘 간직해야 할 진리입니다. 찬송 가사 중에 “예수님은 나의 친구” 라는 가사가 간혹 나오는데, 물론 그 가사가 예수님께서 우리를 친구삼아주시고 모친 삼아주시고 형제요 자매 삼아주신 은혜를 드러내기 때문에 너무 좋은 가사인데, 그러나 자칫 잘못하면, 예수님을 마치 옆집 아저씨 정도로 가볍게 생각하는 데로 빠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새 언약이 은혜와 사랑으로 충만해도 하나님이 만만해진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신 거룩하신 하나님이시고, 우리는 죄인입니다. 우리가 이 의식을 늘 깊이 생각하고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또한 생각해야 할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값없이 의롭다 함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구약과는 비교할 수 없는 은혜의 혜택들을 누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참으로 거듭난 자라면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 뿌림을 받아서 물로 씻어 양심이 온전케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아무런 외벽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늘 성소의 은혜의 보좌는 우리를 향해 어떠한 장애물도 없이 활짝 열려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이, 각자가 곧바로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의 면전에서 기도할 수 있으며, 이스라엘 가운데 하나님이 거하시는 것은 매우 위험천만한 일이었지만,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가운데 임하시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마음 안에 항상 임재하여 내주하셔도 전혀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죄에 대해서 정죄하고 심판하시고자 하시는 것이 아니라, 기억지 아니하고 불쌍히 여기시며, 동정하고 연약함을 도와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26)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 8:26)

 

우리가 기도할 수 없을 만큼 연약해질 때에도 성령께서는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하시고, 간구하시되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가 다 어디서 온 것입니까?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 되시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역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나를 위한 대제사장 예수님”을 믿고, 이 은혜의 복음 위에 굳게 서야 합니다. 늘 이 주님을 믿고 의지하여 살아가야 합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이 은혜 놀라운 은혜를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 얼마나 값비싼 대가를 치루셨습니까? 그분은 우리의 죄를 다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우리가 이 은혜를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을 돌아보십시오. 우리가 이 은혜를 얼마나 가볍게 여기면서 살고 있습니까? 이 은혜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있습니까? 늘 감사하면서 이 하나님을 마음에 모시고 그분의 통치를 받으면서 그분의 영광을 위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십니까? 주님을 위해 고난 받으며 믿음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오히려 이 은혜를 잊어버리고 이 세상의 것을 사랑하고 이 세상의 것을 소망하면서 믿음의 길에서 이탈해서 세상을 좇아 살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이 놀라운 은혜 앞에서 모두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가 구약백성들이 누리지 못했던 이 은혜를 등한히 여기고 세상을 좇아 살 때 얼마나 더 큰 심판이 있을 것인지 생각하고 우리는 거기서 돌이켜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더 나은 중보자 되신 그리스도의 은혜를 깊이 깨닫게 하여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죄된 삶을 회개하고, 이 새언약의 중보자 되시는 예수님을 믿고, 그 은혜위에 굳게 서서 그 은혜의 혜택들을 누리면서 신령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는 우리 모두게 되게 하여주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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