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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암 5:1-13
성경본문내용 (1)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에게 대하여 애가로 지은 이 말을 들으라(2)처녀 이스라엘이 엎드러졌음이여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로다 자기 땅에 던지움이여 일으킬 자 없으리로다(3)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스라엘 중에서 천명이 나가던 성읍에는 백명만 남고 백명이 나가던 성읍에는 열명만 남으리라 하셨느니라(4)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5)벧엘을 찾지 말며 길갈로 들어가지 말며 브엘세바로도 나아가지 말라 길갈은 정녕 사로잡히겠고 벧엘은 허무하게 될 것임이라 하셨나니(6)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염려컨대 저가 불 같이 요셉의 집에 내리사 멸하시리니 벧엘에서 그 불들을 끌 자가 없을까 하노라(7)공법을 인진으로 변하며 정의를 땅에 던지는 자들아(8)묘성과 삼성을 만드시며 사망의 그늘로 아침이 되게 하시며 백주로 어두운 밤이 되게 하시며 바닷물을 불러 지면에 쏟으시는 자를 찾으라 그 이름이 여호와시니라(9)저가 강한 자에게 홀연히 패망이 임하게 하신즉 그 패망이 산성에 미치느니라(10)무리가 성문에서 책망하는 자를 미워하며 정직히 말하는 자를 싫어하는도다(11)너희가 가난한 자를 밟고 저에게서 밀의 부당한 세를 취하였은즉 너희가 비록 다듬은 돌로 집을 건축하였으나 거기 거하지 못할 것이요 아름다운 포도원을 심었으나 그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리라(12)너희의 허물이 많고 죄악이 중함을 내가 아노라 너희는 의인을 학대하며 뇌물을 받고 성문에서 궁핍한 자를 억울하게 하는 자로다(13)그러므로 이런 때에 지혜자가 잠잠하나니 이는 악한 때임이니라
강설날짜 2011-05-22

2011년 아모스 공부


너희는 애가를 들으라!

말씀:아모스 5:1-13

 

아모스 3:1-6:14절까지 말씀은 이스라엘에 대한 아모스 선지자의 설교입니다. 우리가 이미 살펴본 대로 3장은 이스라엘의 운명에 관한 말씀이고, 4장은 이스라엘의 죄와 회개치 아니하는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경고의 말씀이었습니다. 오늘부터 살펴볼 5장은 이스라엘에 대한 애가와 그릇된 기대감에 대한 책망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6장은 이스라엘의 현실적인 만족감에 대한 책망의 말씀입니다. 오늘부터 우리는 아모스 5장을 공부하겠습니다. 아모스 5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메시지의 핵심이 되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형식적인 예배생활에 치우쳐 신앙적인 열심은 보이나 삶의 전반적인 분야에서 공의롭게 살지 못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하나님의 이러한 심판이 이르기 전에 그의 백성들이 진심으로 회개하고 돌이켜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정의롭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 말씀을 통해서 죄악된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을 보고 슬픈 노래를 부르는 아모스 선지자의 애가를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1절에 보면 아모스 선지자는 애가로 지은 이 말을 들으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족속들아! 내가 너희에게 대하여 애가로 지은 이 말을 들이라”(1). 아모스 선지자는 이 말씀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회개에로 요청을 하고 있습니다. 애가는 단순히 슬픈 사건을 만난 자들이 부르는 탄식의 노래를 의미 할 수도 있지만, 장례식에서 불리는 노래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특히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장례식 때에 슬픈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해 직업적으로 애가를 불러주는 여인들을 동원하기도 하였습니다. 만약 아모스가 벧엘이나 길갈의 성소에서 예배드리는 회중들 앞에 직업적으로 애가를 부르는 여인들을 이끌고 나타나 그가 지은 장송곡을 부르게 했다면 5장에서 애가를 듣는 자들은 그들의 기억 속에 오래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선지자들이 왜 슬픈 노래를 불러야 하는 것입니까? 선지자들의 등장 시기를 보면 주로 왕정시대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과 맺으신 언약에 따라 왕 한 사람이 잘하면 백성들이 복을 받고, 왕 한 사람이 잘못하면 백성 전체가 벌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왕들이 하나님의 언약을 버리게 되면 선지자들이 나와서 책망을 하는 것입니다. 선지자들의 외침은 책망과 심판의 선포를 통하여 회개하고 돌이켜 여호와를 찾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외쳐도 돌아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선지자들을 배척할 뿐입니다. 그래서 말로해서 안되니까 때려서라도 돌이키려고 여러 가지 재앙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 재앙들이 그들에게 내려 맞고 맞아서 온 몸이 성한 곳이 없는데도 그들은 돌아오지를 않는 것입니다. 이사야 1:2-9절에 보면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더욱 더욱 패역하느냐. 온 머리는 병 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 뿐이어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유하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너희 땅은 황무하였고 너희 성읍들은 불에 탔고 너희 토지는 너희 목전에 이방인에게 삼키웠으며 이방인에게 파괴됨 같이 황무하였고 딸 시온은 포도원의 망대 같이, 원두밭의 상직막 같이, 에워싸인 성읍 같이 겨우 남았도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었으리로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선지자들은 때려도 돌아오지 않는 이스라엘의 결국은 심판뿐임을 보고 슬픈 노래를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왜 이들이 주께로 돌아오지 아니하는 것입니까? 주께로 돌아오는 것이 살 길이고, 생명의 길인데 이들이 돌아오지 아니하는 것은 자기들은 주께로 돌아와 있다고, 곧 자기들은 주를 잘 섬기고 있다고 스스로 착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4:4-5절에서 봤듯이 그들은 아침마다 희생을 삼일마다 십일조를 드리며 때를 따라 하나님께 각종 제사를 열심히 드리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 자신들은 결코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고 예배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종교적인 행위를 가지고서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다고 스스로 자기 정당화와 자기 확신에 빠져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자기 행함과 확신과 체험이 도리어 주님께로 돌이킬 기회마저 없애버리는 것입니다.

역대하 18장에 보면 이스라엘 왕 아합이 유다 왕 여호사밧에게 길르앗 라못을 치는데 함께 하자고 합니다. 그때 여호사밧 왕이 선지자에게 물어보자고 하여 아합이 물어보니 선지자들 400명이 모두 이긴다고 하는 것입니다. 확신과 기도응답의 증거물 까지 들고 나옵니다. 철로 뿔을 만들어 가지고 와서 이런 무기를 만들어 가지고 가면 이길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자 여호사밧 왕이 다른 선지자가 없느냐고 하자 아합이 자기에게 좋지 않게 말하는 선지자 한 사람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왕은 그 사람을 불러오라고 합니다. 그 선지자가 바로 미가야 선지자입니다. 그러면 미가야 선지자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역대하 18:18-22절에 보면 아합을 죽이기 위하여 거짓말 하는 영이 선지자들에게 들어가서 거짓말을 믿게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23절에 보면 시드기야가 자기들이 여호와의 계시를 받았다고 하면서 미가야의 뺨을 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때 아합이 누구의 말을 들었습니까? 미가야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고 거짓말을 하는 400명의 거짓 선지자들의 말을 들었습니다. 아합은 400명이 이긴다는 말을 듣고 나갔지만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변장을 하고 나갔습니다. 그러나 그가 어떻게 됩니까? 우연히 쏜 화살에 맞아 죽고 마는 것입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짓 확신에 차 있었기 때문에, 그로인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 결과 그들에게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이 임하기에 선지자는 그것을 보고 슬픈 것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9-12절을 보면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을 보고서 자기 확신에 빠지는 것입니다. 이들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을 얻지 못하는데,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않아서 진리를 믿지 아니하고 불의를 좋아하는 자들로 심판받게 하기 위하여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들이 왜 자기 확신에 빠져 있는 것입니까? 기도응답과 표적들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기들의 주장과 이론이 틀림없이 옳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에게 아무리 돌아오라고 외쳐도 들리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심판의 소식도 자기들은 예외로 여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거짓 확신의 무서움입니다. 도저히 돌이키지를 않는 것입니다. 이들의 모습은 오늘날 이단에 빠진 자들의 모습과도 같습니다.

 

오늘 본문 5:4-5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벧엘을 찾지 말며 길갈로 들어가지 말며 브엘세바로도 나아가지 말라. 길갈은 정녕 사로잡히겠고, 벧엘은 허무하게 될 것임이라 하셨나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 이렇게 분명히 말씀하셨지만 그들은 여호와를 찾지 않고 벧엘과 길갈과 브엘세바를 찾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 곳은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중요한 장소들입니다. 벧엘과 길갈은 우리가 이미 살펴봤습니다. 그런데 브엘세바는 어떤 곳입니까? 브엘세바는 예루살렘 남서쪽 약 80km에 위치한 곳으로서 아브라함이 단을 쌓았던 곳이며, 이삭과 야곱에게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타나신 곳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지로 간주되어 많은 북 이스라엘 백성들이 순례로 내려오곤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세 곳이 이미 우상숭배와 함께 행하여지는 혼합종교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곳을 찾는 그들은 자기들이 여호와를 잘 섬기고 있다고 스스로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배경 속에서 오늘 본문의 말씀을 살펴봐야 합니다. 본문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1-17절까지가 하나의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이 구조를 대칭구조라고 하기도 합니다. 제일 가운데 부분이 8절과 9절인데, 창조와 섭리, 심판을 하시는 주 여호와 곧 “그 이름이 여호와시니라”는 말씀으로 이 말씀을 중심으로 하여 대칭구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 이름이 여호와시니라”는 말씀을 중심으로 ‘슬픈 노래’(1-3, 16-17), ‘여호와를 찾으라. 그러면 살리라’(4-6, 14-15), ‘범죄행위’(7, 10-13)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이름이 여호와시니라”고 하신 이 부분을 보면서 함께 대응 구절을 살펴보면 그 뜻을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아모스의 애가는 아주 간단합니다. 2절에 보면 “처녀 이스라엘이 엎드려졌음이여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로다. 자기 땅에 던지움이여 일으킬 자가 없으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이스라엘을 처녀로 봅니다. 이 처녀가 엎드려지고 던져져서 다시 일어나지도 못하고 일으켜 줄 사람도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일어나지도 못하고 어느 누구도 일으켜 세워 줄 자가 없으니 슬프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외쳐도, 때려도 돌이키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 결과가 16-17절에 보면 모든 광장에서 거리에서 포도원에서 애곡하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모든 광장에서 울겠고 모든 거리에서 슬프도다! 슬프도다! 하겠으며, 농부를 불러다가 애곡하게 하며, 울음꾼을 불러다가 울게 할 것이며, 모든 포도원에서도 울리니 이는 내가 너희 가운데로 지나갈 것임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지금 이스라엘의 상황은 나라가 부강합니다. 그래서 마음이 든든한 것입니다. 6:1절에 보면 사마리아에 거하여 마음이 든든한 자 곧 열국 중에서 우승하여 유명한 자들이라고 합니다. 그러한 부강함과 동시에 그들의 종교적인 행위 또한 열심이었습니다. 벧엘로, 길갈로, 브엘세바를 찾고, 절기를 지키고, 희생제물을 드리고, 삼일에 한 번 십일조를 드리고, 찬송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더더욱 그들의 마음이 든든한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누가 울겠습니까? 누가 죄를 책망하고 심판을 경고하는 그 말에 귀를 기울이겠습니까? 그러나 선지자는 이들에게 임할 하나님의 심판을 미리 보고 알기에 슬픈 노래를 부르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6:20-26절을 보면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가라사대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이제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이제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인자를 인하여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그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저희 조상들이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그러나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화 있을진저! 너희 이제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진저! 너희 이제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저희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7:29-31절에도 보면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이 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 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형적은 지나감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두 곳의 말씀을 보면 선지자들이 왜 울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종교적인 열심이란 누가 감히 따라 가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을 보면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하시면서 우신 것입니다. 어미 닭이 새끼를 품듯이 그들을 품으려고 하였으나 그들이 원하지 아니하였다는 것입니다(마 23:37-38). 선지자들의 슬픈 노래를 지금 예수님께서도 부르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아모스 5:4-6절과 14-15절을 보면 “여호와를 찾으라”고 합니다. “살기 위하여 여호와를 찾으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듣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자기들은 부지런히 여호와를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길갈로, 벧엘로, 브엘세바까지 가면서 여호와를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절기도 지키고, 희생제사도 드리고, 찬양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중심에 무엇이 있었습니까? 금송아지가 들어 있는 것입니다. 풍요와 다산의 신 바알을 마음에 품고 여호와를 부르는 것입니다. 이런 그들에게 여호와를 찾으라고 하여도 돌이키지 아니하며, 오히려 여호와를 찾으라고 말하는 자를 핍박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식으로 말하면 주일성수를 잘하고 십일조를 잘 드리고 온갖 봉사도 잘 하는 사람에게 회개하고 예수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때 어떤 반응이 나올까요? 대부분 화를 낼 것입니다. 자기 신앙체계와 자기 확신에 붙들려 있기에 회개의 메시지를 전하는 자에게 도리어 미움과 불신을 가지게 되고 반발과 대적하는 마음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주님을 찾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중에 혹시라도 회개하고 돌이킬 자가 있는가 하고서 선지자는 외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회개한다고 해서 반드시 용서한다는 법칙은 없는 것입니다. 사람을 죽여 놓고서 보상해줄게 한다거나 미안하다고 용서가 되는 것입니까? 용서를 하여야 하는 사람이 회개한다고 무조건 기계적인 용서를 하여야 하는 경우는 없는 것입니다. 교통사고도 사망사고일 경우 합의하지 않으면 구속이지 않습니까?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죽인 자들이 무슨 회개하고 헌신하고 봉사한다고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15절에서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요셉의 남은 자를 긍휼히 여기시리라는 것입니다. 용서는 긍휼히 여기시는 분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여호와를 찾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만 긍휼히 여기시는 것은 주님의 마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자기의 공로를 주장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나 믿어 주었으니, 내가 회개 했으니, 내가 무엇을 했으니, 내가 충성했으니’하는 이런 것들이 나올 자리가 아닌 것입니다. 오직 겸손히 긍휼을 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호와를 찾는 자의 바른 태도요, 자세인 것입니다.

 

7절과 10-13절을 보면 공법을 인진(쓴 쑥)으로 변하게 하며, 정의를 땅에 던지고 있습니다. 성문에서 책망하는 자를 미워하고 정직히 말하는 자를 싫어하는 것입니다. 가난한 자를 밟고 부당한 세금을 취하면서 자기들은 다듬은 돌로 된 집을 건축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그들이 어떻게 된다고 합니까? 그 집에 살지 못할 것이며, 아름다운 포도원을 심었으나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리라고 합니다. 이러한 것들이 다 율법의 저주에 속하는 것입니다. 자기들은 열심히 무엇을 이루었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그러한 것들이 결국 바람을 잡은 것처럼 헛된 것이 되어 버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때에는 지혜 자가 잠잠한 것입니다. 지혜 자가 선지자라면 잠잠하지 말고 외쳐야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끝까지 간 상황에서는 지혜 자가 잠잠한 것입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빌라도 앞에서 잠잠하신 것처럼 잠잠한 것이 심판인 것입니다(마 27:11-14). 잠언 9:8절에 보면 거만한 자를 책망하지 말라고 합니다. 책망하지 않고 잠잠 하는 것! 이것 자체가 바로 이미 심판인 것입니다(롬 1장).

 

8-9절을 보면 “묘성과 삼성을 만드시며 사망의 그늘로 아침이 되게 하시며 백주로 어두운 밤이 되게 하시며 바닷물을 불러 지면에 쏟으시는 자를 찾으라. 그 이름이 여호와시니라. 저가 강한 자에게 홀연히 패망이 임하게 하신즉 그 패망이 산성에 미치느니라”고 했습니다. 별들을 만드시며, 사망의 그늘로 아침이 되게 하시며, 백주로 어두운 밤이 되게 하시며, 바닷물을 불러 지면에 쏟으시는 자가 누구입니까?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우주 만물을 운행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창조자 하나님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바알을 풍요와 다산의 신으로 섬기고 있지만 그러나 그것은 다 헛된 것이며, 오직 창조자이신 여호와만이 참 하나님이심을 알라는 것입니다. 비가 오는 것도 바알이 주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바닷물을 불러 지면에 쏟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강한 자에게 홀연히 패망이 임하게 하신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창조주요, 다스리는 분이시요, 심판의 주가 되시는 분에게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는 그 모든 권세를 예수님께 위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로 주의 자리에 등극하셔서 지금 온 세상을 다스리고 계시며 장차 심판주로 임하실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우리가 알고 믿는다면 지금 우리는 우리의 모습을 보면서 울어야 합니까? 웃어야 합니까? 우리가 참으로 주님이 오시기를 고대하며 사모하며 기다리고 있습니까? 아니면 잠시 있다 없어질 것들에 마음과 정신을 빼앗기고 있습니까? 선지자는 미리 보는 자였습니다. 오늘날 미리 보는 자는 성도들 입니다. 미리 본다는 것은 성경의 계시를 알고 믿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온 우주 만물이 다 주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렇기에 눈에 보이는 것들은 영원하지 아니합니다. 주님의 나라만이 영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나라를 사모하지 않고 썩어질 것들에 마음이 빼앗겨 있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울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가족을 보면서, 우리의 교회를 보면서, 이 세상을 보면서 울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라고 하셨습니다(마 5:4).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말씀 앞에 겸손하게 하시고, 그 말씀 앞에서 죄를 깨닫고 회개하며, 주님의 심판으로 인해 애통히 애가를 부르며 우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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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3 [에스겔 13장] 거짓 선지자들의 종말 file 겔 13:1-23 손재호 2018-04-22 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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