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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암 5:14-20
성경본문내용 (14)너희는 살기 위하여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지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말과 같이 너희와 함께 하시리라(15)너희는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며 성문에서 공의를 세울지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요셉의 남은 자를 긍휼히 여기시리라(16)그러므로 주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모든 광장에서 울겠고 모든 거리에서 오호라 오호라 하겠으며 농부를 불러다가 애곡하게 하며 울음군을 불러다가 울게 할 것이며(17)모든 포도원에서도 울리니 이는 내가 너희 가운데로 지나갈 것임이니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18)화 있을진저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는 자여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느뇨 그 날은 어두움이요 빛이 아니라(19)마치 사람이 사자를 피하다가 곰을 만나거나 혹 집에 들어가서 손을 벽에 대었다가 뱀에게 물림 같도다(20)여호와의 날이 어찌 어두워서 빛이 없음이 아니며 캄캄하여 빛남이 없음이 아니냐
강설날짜 2011-05-29

2011년 아모스 공부


너희는 살기 위하여!

말씀:아모스 5:14-20

 

우리는 지난 시간부터 아모스 5장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1-13절 말씀을 통해서 ‘너희는 애가를 들으라’고 하는 말씀에 대해 공부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애가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회개할 줄 모르는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처절한 심판이 어떠한 것인지를 시청각적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2절에 보면 “처녀 이스라엘이 엎드러졌음이여!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로다. 자기 땅에 던지움이여! 일으킬 자가 없으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아모스 선지자가 이 애가를 통해 그의 청중들 곧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고자 했던 시청각적 이미지는 부모들의 사랑과 보호 가운데 순결하게 자라온 한 처녀가 낯선 이방인들에 의해 겁탈을 당하고 길거리에 내버려져 있는 모습입니다.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을 뿐더러 주위에 어느 누구도 그녀를 일으켜 줄 사람이 없이 고통 속에서 죽어가는 모습인 것입니다. 이 모습이 바로 하나님의 택한 백성 이스라엘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이런 이스라엘의 모습이 바로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인 것을 배웠습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우리 자신들의 모습을 보면서 애가를 들어야 합니다. 자신의 죄악으로 인해 임할 하나님의 심판을 바라보며 애통히 회개하며 울며 울며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오늘도 우리는 계속해서 아모스 5장을 공부하겠습니다. 1-13절 말씀에서 ‘너희는 애가를 들으라’고 하며 회개를 촉구했던 아모스 선지자는 오늘 본문에서 다시 한번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회개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에서 아모스 선지자가 제시하는 회개의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입니까? 14-15절을 보면 “너희는 살기 위하여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지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말과 같이 너희와 함께 하시리라. 너희는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며 성문에서 공의를 세울지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요셉의 남은 자를 긍휼히 여기시리라”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살기 위하여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리라는 것입니다. 혹시 요셉의 남은 자를 긍휼히 여기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요셉의 남은 자’란 북 이스라엘의 국가적 멸망 가운데서도 구원 받게 될 소수의 남은 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14-15절 말씀은 4절과 6절에서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고 하신 말씀의 구체적인 실천적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회개의 가르침을 4-8절에서 제시된 회개의 가르침과 연관지어 본다면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로부터 원하시는 참된 삶의 모습이 어떠한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매순간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며 그 분의 도우심을 얻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를 통하여 그분과 인격적인 만남을 가지는 것과 동시에 이웃들에게 선을 베풀고 공의롭게 대하는 것입니다. 4-8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벧엘을 찾지 말며 길갈로 들어가지 말며 브엘세바로도 나아가지 말라. 길갈은 정녕 사로잡히겠고 벧엘은 허무하게 될 것임이라 하셨나니.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염려컨대 저가 불같이 요셉의 집에 내리사 멸하시리니 벧엘에서 그 불들을 끌 자가 없을까 하노라. 공법을 인진으로 변하며 정의를 땅에 던지는 자들아 묘성과 삼성을 만드시며 사망의 그늘로 아침이 되게 하시며 백주로 어두운 밤이 되게 하시며 바닷물을 불러 지면에 쏟으시는 자를 찾으라. 그 이름이 여호와시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14-15절에서 말하는 “너희는 살기 위하여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지어다…만군의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리라”는 이 말씀을 사람들은 어떻게 적용합니까? 어떤 사람이 사업이 어렵게 되거나, 병이 들거나, 곤란한 문제가 생기면 자신이 살기 위해 그 문제를 해결 하고자 합니다. 이 방법 저 방법 찾아보다가 결국 ‘살기 위하여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라’는 말씀을 보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렇구나! 사는 길은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구나! 내가 좀더 착하고 바르게 살자. 악하게 살지 말자. 그것이 내가 사는 길이구나!’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자라는 것은 결국 자신이 선악의 기준을 가지고 설정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살리는 것은 선이고, 자기를 죽이는 것은 악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에서 산다는 것은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세상에서 산다는 말과 전혀 다른 차원입니다. 세상에서는 살기 위하여 종교를 찾고 신을 찾는다면 성경에서 살기 위해서는 여호와를 찾으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세상에서 죽으라는 말씀과 같습니다. 사람들은 살기 위하여 힘과 권력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너희는 그러한 것들을 의지 말고 오직 나를 의지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보이지도 아니하시는 분이신데 단지 말씀하신 내용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선지자들을 통하여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의 말씀의 내용들을 보면 다 자기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죽이는 길입니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나라가 힘이 있어야 되는데 말(馬)도 의지하지 말고, 권력도 의지하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구원이 사람의 힘이나 말의 힘에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내용이니 누가 이러한 말씀을 믿겠습니까? 사람들은 자기들의 손에 잡히는 재물과 권력을 가지려고 하는 것이지 여호와를 찾으려고 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모스 시대에 선을 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 시대적인 상황에서는 강한 자들이 약한 자들을 착취하지 아니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은혜로 구원을 받았고, 은혜로 가나안 땅을 분배 받았기에 땅 자체가 모두 주님의 것입니다. 땅만 아니라 모든 것이 다 주님의 은혜로 주어진 것임을 늘 잊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땅의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에 대한 보호를 말씀하면서 그들이 옛날에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상기시키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기득권을 포기하기에는 너무 멀리 간 것입니다. 이미 빈익빈 부익부가 심화되어서 그들의 사회구조가 바알의 정신으로 가득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스스로 잘 믿고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자기들은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자기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잘 섬겨서 그렇게 복을 받고 산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우리가 서론에서 살펴봤지만 아모스 시대에 북 이스라엘은 잘 사는 나라였습니다. 다윗과 솔로몬 시대 이후 가장 부강하고 잘 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니 우리가 이렇게 잘 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헛된 믿음과 확신 가운데 살고 있으니 선지자들의 돌아오라는 외침이 들리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14절을 다시 보면 “너희는 살기 위하여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지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말과 같이 너희와 함께 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기 위하여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너희의 말처럼 너희와 함께 하리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자기나라가 그렇게 잘 산다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보시기에 그들은 선을 구하지 않고 악을 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라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도덕적으로 착하고 선하게 살라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바알을 구하는데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다운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공의를 행하고 긍휼을 나타내라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7:1-11절을 보면 “여호와께로서 예레미야에게 말씀이 임하니라. 가라사대 너는 여호와의 집 문에 서서 이 말을 선포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경배하러 이 문으로 들어가는 유다인아 다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로 이곳에 거하게 하리라.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너희가 만일 길과 행위를 참으로 바르게 하여 이웃들 사이에 공의를 행하며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지 말며 무죄한 자의 피를 이곳에서 흘리지 아니하며 다른 신들을 좇아 스스로 해하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를 이곳에 거하게 하리니 곧 너희 조상에게 영원 무궁히 준 이 땅에니라. 너희가 무익한 거짓말을 의뢰하는도다. 너희가 도적질하며 살인하며 간음하며 거짓맹세하며 바알에게 분향하며 너희의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을 좇으면서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에 들어와서 내 앞에 서서 말하기를 우리가 구원을 얻었나이다 하느냐 이는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려 함이로다.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이 너희 눈에는 도적의 굴혈로 보이느냐 보라 나 곧 내가 그것을 보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남 유다에 대한 말씀입니다. 여호와의 전 앞에서 예배하려 가는 유다 사람들에게 예레미야 선지자가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먼저 예레미야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고 합니다. 그리고 너희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고 합니다. 그러면 너희가 살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레미야는 이곳이 여호와의 전이라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면서 이곳에서 여호와의 전이라고 하며 제물을 드리고 경배하는 것을 받으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무익한 거짓말을 의뢰하고 도적질하고 살인하고 간음하고 거짓맹세하고 바알에게 분향하면서 성전에 들어와서는 우리가 구원을 얻었나이다고 하며 안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써 바른 행위를 하지 않으면서 형식적인 예배를 드리는 그들의 거짓됨을 실랄하게 책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은 오늘날 우리의 모습이 아닙니까? 우리의 모습이 이들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우리가 이렇게 잘 살게 된 것이 누구의 은혜라고 말합니까?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나라와 함께 하시니 이렇게 잘 살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경제대국이 되는 것을 복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야고보서에서는 부를 축적하는 것이 심판을 쌓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약 5장). 야고보서 5:1-3절을 보면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을 인하여 울고 통곡하라.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아모스 시대나 이 시대나 여호와께로 돌아간다는 것은 죽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어떻게 스스로 자기의 소유를 믿지 아니하고 주님의 말씀을 믿고서 살아가겠습니까? 오늘날 이 시대는 무한 경쟁의 시대입니다. 인간이 타락한 이후 경쟁의 시대가 아닌 때가 어디 있었습니까만 오늘날은 더욱 그 경쟁이 치열한 시대입니다. 천재 한 명이 천 명을 먹여 살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학교 공교육도 일반기업체의 경영 철학을 그대로 도입하여 무한경쟁 체제로 가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 흐름 속에서 학교가 평준화되면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민족 사관학교나 대원외국어 고등학교에 가려면 그곳에 가기 위한 학원이 따로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학원에 시험 쳐서 떨어지면 그 학원에 가기위한 학원이 또 있다고 합니다. 이런 경쟁 사회 속에서 평준화해서 어떻게 이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런 세상에서 교회도 무엇을 요구하고 있습니까? 부자가 되고 지위가 높아지는 것을 축복이라고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알의 사상과 무엇이 다릅니까? 그러므로 우리 교회 잘된다고, 우리나라 잘된다고 하는 거짓말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아모스 시대에도 아모스의 말을 견딜 수 없어 하는 것입니다. 아모스 7:10절에 보면 “때에 벧엘의 제사장 아마샤가 이스라엘의 왕 여로보암에게 기별하여 가로되 이스라엘 족속 중에 아모스가 왕을 모반하나니 그 모든 말을 이 땅이 견딜 수 없나이다”라고 합니다. 여로보암 시대에 모든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아모스 선지자는 전혀 반대되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지금 회개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다고 외치는 것입니다. 이런 아모스의 말에 그들은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2:12절과 7:12-13절에 보면 아모스에게 예언하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15절을 다시 보면 “너희는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며 성문에서 공의를 세울지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요셉의 남은 자를 긍휼히 여기시리라”고 합니다. 아모스는 이스라엘의 지금 형편을 보고서 슬피 울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께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산다는 것입니다. 그 돌아오는 길은 성문에서 공의를 세우라는 것입니다. 성문은 재판을 하는 자리인데 이곳에서 조차 불법이 판을 치고 있는 것입니다. 가난한 자를 억울하게 하고, 뇌물을 받으니 공의가 사라지고 긍휼도 사라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살기 원한다면 회개하고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공의를 나타내고 긍휼을 나타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있어서 여호와께로 돌아오는 길은 죽음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 자리에서 회개하고 돌아오면 혹시 긍휼을 얻을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혹시 요셉의 남은 자를 긍휼히 여기시리라.” 물론 우리의 회개가 구원의 조건이 아닙니다. 회개하는 것이 지극히 마땅하고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긍휼히 여기는 것은 오직 우리 주님의 전적인 소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긍휼과 자비가 무궁하시기에 혹시 하는 마음으로 그의 긍휼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우리가 주님께로 돌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사는 방식을 포기하시겠습니까? 물론 직장을 그만두고 일도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 땅에 발 딛고 사는 한 땀을 흘리고 수고해야 먹고 사는 것입니다. 이것은 범죄 한 우리 인생에게 주어진 삶입니다. 그래서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살후 3:10). 그러나 우리가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 것입니까? 그저 나의 존재의 영속과 발전과 영달입니까? 이런 삶에서 돌이키라는 것입니다. 소유의 넉넉함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눅 12:15).

 

그러면 아모스 선지자의 돌이키라는 말씀에 대한 이스라엘의 반응은 어떠하였습니까? 이스라엘은 끝끝내 돌아오지 아니하였습니다. 결국 이런 그들에게 남은 것은 통곡하는 일만 남은 것입니다. 16-17절에 보면 “그러므로 주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모든 광장에서 울겠고 모든 거리에서 오호라 오호라 하겠으며, 농부를 불러다가 애곡하게 하며, 울음군을 불러다가 울게 할 것이며, 모든 포도원에서도 울리니 이는 내가 너희 가운데로 지나갈 것임이니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고 했습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모든 광장에서, 모든 거리에서, 모든 포도원에서 울리라고 합니다. 경제가 잘 돌아갈 때 광장과 거리와 포도원에서 기쁨과 즐거움의 소리가 넘쳤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포도원은 큰 재산입니다. 그리고 포도는 사람을 즐겁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즐거움이 이제는 통곡으로 바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로 지나가시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로 지나간다는 말씀은 그들에게는 심판이 되는 것입니다. 끝끝내 회개하고 돌아오지 아니하는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애곡하며 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18-20절을 보면 “화 있을 진저,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는 자여!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느뇨? 그날은 어두움이요, 빛이 아니라. 마치 사람이 사자를 피하다가 곰을 만나거나 혹 집에 들어가서 손을 벽에 대었다가 뱀에게 물림 같도다. 여호와의 날이 어찌 어두워서 빛이 없음이 아니며 캄캄하여 빛남이 없음이 아니냐”고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 날을 구원의 날로 사모했습니다. 그러나 그 날이 구원의 날이 아니라 심판의 날이 된다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고 있을 만큼 그들은 여호와를 사랑하고 섬기고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절기를 지키고, 희생 제사를 드리고, 찬송을 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하면서 살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임하시는 날에 자기들은 구원을 받고 악인들은 심판을 받으리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 정도로 그들은 자기 의에 사로잡혀 여호와 하나님에 대하여 무지한 것입니다. 결국 이들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심판뿐입니다. 사자를 피하였는데 곰을 만나고 곰을 만나서 겨우 집으로 돌아와 벽에 손을 대는 순간 뱀에게 물려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날 저와 여러분은 과연 주님께로 돌아와 있습니까? 살기 위해 주님을 찾고 있습니까? 세상에서 살기 위함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살기 위해 주님을 구하고 있습니까? 아모스 선지자는 우리가 살기 위해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라고 합니다. 마태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합니다(마 6:33). 세상에 어느 누가 죽고자 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사람들은 다 살고자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주님과 함께 살 수 있습니까? 우리가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살기 위해서는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의 힘과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성령이 임해야 합니다. 성령이 임해야 자기가 죽어 마땅한 죄인이요, 우상숭배자임을 알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바울과 같이 “나는 날마다 죽노라”는 고백이 나오는 것입니다(고전 15:31). 이것이 진정 성도가 사는 삶의 모습입니다. 살기 위해 주님을 쫓는 모습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하나님을 찾고 선을 구하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사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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