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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암 5:21-27
성경본문내용 (21)내가 너희 절기를 미워하여 멸시하며 너희 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나니(22)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23)네 노래 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지어다 네 비파 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24)오직 공법을 물 같이, 정의를 하수 같이 흘릴지로다(25)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사십년 동안 광야에서 희생과 소제물을 내게 드렸느냐(26)너희가 너희 왕 식굿과 너희 우상 기윤 곧 너희가 너희를 위하여 만들어서 신으로 삼은 별 형상을 지고 가리라(27)내가 너희를 다메섹 밖으로 사로잡혀 가게 하리라 이는 만군의 하나님이라 일컫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강설날짜 2011-06-05

2011년 아모스 공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

말씀:아모스 5:21-27

 

우리는 지금 아모스 5장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1-13절 말씀을 통해서 ‘너희는 애가를 들으라’는 말씀을, 14-20절 말씀을 통해서 ‘너희는 살기 위해서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라’는 말씀을 살펴봤습니다. 오늘도 계속해서 5장을 공부하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원의 날인 여호와의 날을 기다려왔습니다. 다윗의 무너진 장막이 다시 세워지기를 사모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기다린 여호와의 날이 심판이 날이 되어 버렸음을 아모스 선지자는 5:18-20절에서 말했습니다. “화 있을 진저!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는 자여!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느뇨? 그 날은 어두움이요, 빛이 아니라. 마치 사람이 사자를 피하다가 곰을 만나거나 혹 집에 들어가서 손을 벽에 대었다가 뱀에게 물림 같도다. 여호와의 날이 어찌 어두워서 빛이 없음이 아니며 캄캄하여 빛남이 없음이 아니냐.” 이처럼 이스라엘은 구원의 날인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고 기다렸지만 심판의 날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면 왜 여호와의 날이 구원의 날이 아니라 심판의 날이 되어 버렸습니까? 21-24절을 보면 “내가 너희 절기를 미워하여 멸시하며 너희 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찌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 네 노래 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지어다. 네 비파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오직 공법을 물 같이, 정의를 하수 같이 흘리지로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절기, 성회, 번제, 소제, 화목제, 노래, 비파 등이 나옵니다. 당시 궁중 선지자들은 모든 날과 달과 절기를 다 잘 지켰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께 제물을 잘 드렸으며, 찬양까지 잘 하였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이러한 것을 하라고 하였으니 자기들은 시키는 대로 다 잘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무엇이 잘 못 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도리어 우리가 이렇게 절기도 잘 지키고, 제물도 잘 바치고, 찬양도 잘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이 나라가 잘 먹고 잘 살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당시 궁중 선지자들의 자세였습니다.

 

그러나 아모스 선지자는 전혀 다르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21-24절을 다시 보면 너희 절기를 미워하며 멸시한다고 합니다. 너희 성회를 기뻐하지 아니하신다고 합니다. 번제나 소재를 드릴지라도 받지 아니한다고 하십니다. 너희의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돌아보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찬양을 그치라고 합니다. 비파소리를 듣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오직 공법을 물 같이, 정의를 하수 같이 흐르게 하라고 합니다. 이 말씀을 볼 때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써 공의와 정의를 실천하지 아니하면서 형식적으로 열심히 제사를 드린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은 그 행위가 아무리 열심이 있다고 하여도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한 것입니다. 그래서 아모스 선지자는 이런 그들을 실랄하게 비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들은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모스의 말씀을 듣겠습니까? 귀를 막고 듣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언하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2:12; 7:12-13). 그런데 아모스 선지자만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호세아, 미가, 이사야, 예레미야 등의 다른 선지자들도 이와 똑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호세아 6장에서 하나님은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호세아 6:6절에 보면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1장에 보면 이사야 선지자는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바라고 했습니다.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다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고아와 과부를 억울하게 하고 학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드리는 제사나 절기는 내가 싫어한다고 하셨습니다. 견디지 못하며 무거운 짐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사야 1:11-14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예레미야 7장에서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고 합니다. 예레미야 7:1-11절을 보면 “여호와께로서 예레미야에게 말씀이 임하니라. 가라사대 너는 여호와의 집 문에 서서 이 말을 선포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경배하러 이 문으로 들어가는 유다인아 다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로 이곳에 거하게 하리라.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너희가 만일 길과 행위를 참으로 바르게 하여 이웃들 사이에 공의를 행하며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지 말며 무죄한 자의 피를 이곳에서 흘리지 아니하며 다른 신들을 좇아 스스로 해하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를 이곳에 거하게 하리니 곧 너희 조상에게 영원 무궁히 준 이 땅에니라. 너희가 무익한 거짓말을 의뢰하는도다. 너희가 도적질하며 살인하며 간음하며 거짓맹세하며 바알에게 분향하며 너희의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을 좇으면서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에 들어와서 내 앞에 서서 말하기를 우리가 구원을 얻었나이다 하느냐. 이는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려 함이로다.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이 너희 눈에는 도적의 굴혈로 보이느냐. 보라. 나 곧 내가 그것을 보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했습니다.

 

또한 미가 선지자는 미가서 6장에서 천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보다 인자를 사랑하고 공의를 구하며 하나님과 조심스럽게 동행하는 것을 원한다고 말씀하였습니다. 미가서 6:6-8절을 보면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 일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여호와께서 천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를 인하여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따로 있었습니다. 그것은 공법이 물 흐르듯 하며, 정의를 하수 같이 흐르게 하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의 백성으로써 하나님의 백성다운 삶을 살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아모스 시대는 북 이스라엘 안에 온갖 불의와 불법과 학대가 가득했습니다. 권세 잡은 자들은 가난한 자를 착취했습니다. 그래서 빈익빈 부익부가 판을 쳤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나라에 은혜는 사라지고 바알의 경제체제가 자리 잡아버린 것입니다. 나라가 온통 이러한 모습인데도 그들은 절기를 지키고, 제물을 바치고, 찬양을 한다고 마음이 든든하고 교만해 진 것입니다. 자신들은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한 것입니다. 자신들이 하나님을 잘 섬겼기 때문에 나라가 잘 되고 복 받고 잘 살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어떠합니까? 우리도 이들과 똑같이 생각하지 않습니까? 교회로 열심히 모이고, 헌금도 잘하고, 봉사도 잘하면 신앙생활 잘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정작 주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에는 관심이 없고, 마음에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형식적으로 주일 성수를 하고, 십일조를 드림으로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런 종교적인 행위를 신앙생활의 척도로 삼고 복을 받으리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를 보십시오. 얼마나 성도들을 쥐어짜고 있습니까? 새벽기도다, 특별기도다, 무슨 집회다 얼마나 성도들을 뽂아 됩니까? 성도들도 열심히 교회 행사에 충성스럽게 참석하면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합니다. 정말로 하나님의 은혜에 접촉되어서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자원하여 마땅함으로 온 마음을 다해 봉사하고 헌신하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입니다. 하나님께 칭찬들을 일입니다. 그러나 오직 교회 외적인 부흥을 위해 성도들을 몰아내고, 성도들은 마음에도 없이 하나님을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의무적으로 그렇게 하고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 가증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받지 아니하십니다.

 

예레미야 7:21-26절을 보면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 희생에 번제물을 아울러 그 고기를 먹으라. 대저 내가 너희 열조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날에 번제나 희생에 대하여 말하지 아니하며 명하지 아니하고 오직 내가 이것으로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내 목소리를 들으라. 그리하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겠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너희는 나의 명한 모든 길로 행하라. 그리하면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나 그들이 청종치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도 아니하고 자기의 악한 마음의 꾀와 강퍅한 대로 행하여 그 등을 내게로 향하고 그 얼굴을 향치 아니하였으며, 너희 열조가 애굽 땅에서 나온 날부터 오늘까지 내가 내 종 선지자들을 너희에게 보내었으되 부지런히 보내었으나 너희가 나를 청종치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고 목을 굳게 하여 너희 열조보다 악을 더 행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것은 번제나 희생을 요구하시고자 하심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청종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원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절기를 지키고, 제물을 바치고, 찬양대를 조직하고 악기까지 동원하여 노래하였지만 그들은 여호와의 말씀은 듣지 아니하였습니다. 율법의 규정대로 그들은 절기를 지키고 제물을 바치고 찬양을 하고 온갖 헌신을 한다고 하였지만 그들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멀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바알을 좇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는 반역이었습니다.

 

결국 애굽에서 나오면서부터 거듭 거듭 반역한 것이 이스라엘의 역사라고 선지자가 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모스 5:25절을 보면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사십년 동안 광야에서 희생과 소제물을 내게 드렸느냐”고 반문합니다. 곧 광야 40년 동안 너희가 무엇을 하였는가 하는 것입니다. 광야에서 절기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희생제물을 제대로 드리지 않았고, 할례도 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가나안 땅으로 들여 놓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인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광야에서 우상을 섬겼다는 것입니다.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를 받으면서도 우상을 함께 섬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이러한 지적은 이스라엘의 모든 행위를 부정하여 버리는 것입니다. 그들이 아무리 절기를 지키고, 제물을 바치고,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한다고 하여도 그 것은 결국 자기를 위한 우상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이와 같은 그들의 죄악을 날카롭게 지적합니다.

 

반면에 궁중에 있던 거짓 선지자들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아모스 선지자와는 반대로 우리가 하나님께 절기와 제물과 봉사를 잘하고 있으니 이러한 경제적인 풍요와 나라의 안정을 누리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거짓 선지자들에게 있어서 아모스 선지자의 말은 도저히 견딜 수 없는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모스 7:10절을 보면 “때에 벧엘의 제사장 아마샤가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에게 기별하여 가로되 이스라엘 족속 중에 아모스가 왕을 모반하나니. 그 모든 말을 이 땅이 견딜 수 없나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또 7:12-13절에 보면 “아마샤가 또 아모스에게 이르되 선견자야 너는 유다 땅으로 도망하여 가서 거기서나 떡을 먹으며 거기서나 예언하고 다시는 벧엘에서 예언하지 말라. 이는 왕의 성소요 왕의 궁임이니라”고 합니다. 북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궁중선지자인 아마샤가 아모스를 향하여 예언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는 아모스 선지자의 예언의 말로 인하여 이 땅이 견딜 수 없어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들이 지금까지 행하여 온 모든 것이 전부 다 부정되어지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형식적인 신앙생활은 여호와를 섬기는 것을 모방하고 있으나 그 내용에 있어서는 이미 금송아지를 단과 벧엘에 만들어 놓고 섬기고 있었기에 여호와를 배반하고 우상을 그들의 왕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이런 그들에게 아모스 선지자는 무엇을 선포합니까? 그들은 그 우상을 지고 다메섹 밖으로 잡혀 가리라고 하였습니다. 26-27절을 보면 “너희가 너희 왕 식굿과 너희 우상 기윤 곧 너희가 너희를 위하여 만들어서 신으로 삼은 별 형상을 지고 가리라. 내가 너희를 다메섹 밖으로 사로잡혀 가게 하리라 이는 만군의 하나님이라 일컫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법궤를 지고 가야할 하나님의 백성들이 우상을 지고 가야 하는 신세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스라엘 가운데서 하나님의 의가 시행되지 않음으로 인하여 이들은 망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망한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아니하였습니다. 아모스의 이런 심판의 말씀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행위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비록 금송아지를 섬기고 있었지만 여호와라고 하고 그 우상의 전을 성전이라고 하면서 절기를 따라 제물을 바치고 노래를 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런 행위로 인해 자기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아모스 선지자의 말에 견딜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현실이 이러하지 않습니까? 우상 하나님을 섬기고 있으면서 자기는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마음에 바알을 품고 있으면서도 지금까지 주일을 성수하고 십일조를 바치고 있으니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정말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여서 그렇게 합니까? 아니면 형식적으로, 의무적으로 행하고 있습니까? 세상에서 잘 살고 복 받기 위해서 그렇게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혹시 저주가 임할지 몰라서 그렇게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들었다고 하면서 오히려 모이기를 힘쓰지 않고, 말씀의 본의를 힘써 배워가지 않으면서 자신은 자유 한다고 생각하고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방종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세상의 성공을 좇아가고 있다면 그것은 우상숭배인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지금까지 교회의 가르침을 잘 받았거나 안 받았거나 간에 우리 마음에 주님을 사랑함이 없다면 그것은 전부 자기를 사랑하는 우상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를 섬겨온 것입니다. 주님을 섬긴다는 것도 결국 그 반대급부로 나를 섬기기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우상숭배인 것입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 헌신하는 것, 자신이 원하는 것이 채워지지 않으면 헌신하지 않는 것 이런 것은 다 우상숭배입니다.

 

이러한 아모스 선지자의 말씀을 스데반 집사가 그대로 인용합니다. 사도행전 7:40-44절을 보면 “아론더러 이르되 우리를 인도할 신들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 애굽 땅에서 우리를 인도하던 이 모세는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노라 하고 그 때에 저희가 송아지를 만들어 그 우상 앞에 제사하며 자기 손으로 만든 것을 기뻐하더니. 하나님이 돌이키사 저희를 그 하늘의 군대 섬기는 일에 버려두셨으니 이는 선지자의 책에 기록된바 이스라엘의 집이여 사십 년을 광야에서 너희가 희생과 제물을 내게 드린 일이 있었느냐. 몰록의 장막과 신 레판의 별을 받들었음이여! 이것은 너희가 절하고자 하여 만든 형상이로다. 내가 너희를 바벨론 밖에 옮기리라 함과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스데반 집사는 예수님을 거역하고 죽인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을 출애굽 후 광야에서 우상을 숭배함으로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갔던 조상들과 같다고 책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스데반 집사의 이러한 설교를 듣고서 사람들이 이를 갈며 돌을 들어 스데반 집사를 쳐 죽인 것입니다. 성전을 고수하며, 그들의 잘못된 하나님 섬김을 포기하지 아니하고 선지자들을 죽인 그들이 최종적으로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죽인 자들이라는 말에 그들은 견딜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우리의 모습이 말씀에 의하여 드러나게 되면 어떤 자세를 가집니까? 마음에 찔려 회개합니까? 아니면 이가 갈립니까? 말씀 가르치는 자를 불신하며 이것 저것 핑계를 대며 떠나고자 하지 않습니까? 오늘날도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요? 형식적으로 행하는 예배와 헌상과 봉사이겠습니까? 아니면 죽도록 충성하고서도 무익한 종임을 아는 것이겠습니까? 무익한 종의 자세입니다. 그러면 왜 죽도록 충성하고서도 무익한 종임을 아는 것입니까? 죄가 무엇인지,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임하게 됨으로 자기에게서 나오는 모든 것이 선한 것이 없음을 알기에 혹시 선한 열매들이 나왔다하더라도 그것은 그야 말로 우리의 혈과 육이 아니요, 오직 주님의 은혜임을 알기에 죽도록 충성하고서도 자기를 자랑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제사가 아니라 상한 심령이라고 시편 51편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편 51:17절을 보면 “하나님이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입니다.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님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십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하나님이 진정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세상을 좇지 아니하고 진정 하나님이 원하시는 제사, 곧 상한 심령을 주님께 온전히 드리며, 무익한 종의 자세로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섬겨나가는 자들에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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