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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암 8:11-14
성경본문내용 (11)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12)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에서 동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달려 왕래하되 얻지 못하리니(13)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피곤하리라(14)무릇 사마리아의 죄된 우상을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기를 단아 네 신의 생존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하거나 브엘세바의 위하는 것의 생존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하는 사람은 엎드러지고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라
강설날짜 2011-07-10

2011년 아모스 공부

 

말씀을 듣지 못하는 기갈

 

말씀:아모스 8:11-14

 

우리는 지난 시간에 이어 오늘도 계속해서 아모스 8장을 공부하겠습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는 1-10절 말씀을 통해서 아모스 선지자의 네 번째 환상! 곧 여름실과 환상에 대해서 공부했습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여름실과 환상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끝 곧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임할 하나님의 심판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동안 아모스 선지자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수많은 재앙들을 선포하여 왔습니다. 특히 4장에 보면 벧엘의 단과 궁이 파멸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방나라가 침입하여 낚시로 고기를 낚듯이 그들을 갈고리로 끌어 포로로 잡혀가겠다고 했습니다. 비가 내리지 않아 마실 물을 구하려고 비틀거리며 찾을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풍재와 깜부기 재앙을 내리며, 팟종이로 곡식들과 과일들을 다 먹어 버리게 하겠다고도 했습니다. 전염병과 칼에 죽임을 당하게 하겠다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온갖 재앙들은 다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경고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끝까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름실과 환상을 통해서 그 끝이 이르렀음을 보여 주셨습니다. 곧 하나님의 심판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 날에 궁전의 노래가 애곡으로 변할 것이며, 시체가 너무 많이 처처에 그냥 버려지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3) 이처럼 여름실과 환상을 통하여 그 끝을 계시하신 하나님께서는 이제 그 끝 날의 특징에 대해서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계시하고 있습니다.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기갈이라”(11). 우리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그 끝 날의 특징 곧 종말의 특징이 어떠한지를 배우고자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든지 믿지 않는 사람이든지 간에 사람들은 종말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영화도 보면 종말과 관련된 영화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한 교회사적으로 볼 때도 늘 종말과 관련된 이단들이 수없이 많이 나타났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지난 90년대초 시한부 종말론 자들인 다미 선교회가 온 나라와 교회를 혼란에 빠뜨리기도 했습니다. 지난 5월 달에는 미국의 시한부 종말론 자들로 인해 한바탕 소동이 있었습니다. 그만큼 종말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늘 관심의 대상인 것입니다. 그러면서 종말의 현상에 대해서도 말들이 많습니다. 요한계시록에 기초해서 적 그리스도가 나타난다고 하기도 하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과 같은 천재지변이 일어난다고 하기도 합니다. 전쟁과 전쟁의 소문이 끝이 없이 일어난다고 하기도 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종말의 현상을 생각합니까?

 

사람들은 종말의 현상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말을 합니다만 그러나 아모스 선지자는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부재 곧 말씀의 기갈을 세상 끝의 현상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1절을 보면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한 날이 이를 것인데 여호와께서 기근을 땅에 보내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 ‘한 날’이란 바로 끝 날 곧 심판의 날을 말합니다. 아모스 당시에는 북 이스라엘이 망하는 때가 되는 것이며, 오늘날에는 종말의 때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기갈이 종말의 현상입니다. 말세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기갈에 빠지게 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합니다. 그로인해 영혼의 갈급함으로 허덕이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 만물이 어떻게 보존되고 있는 것입니까?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모든 피조물이 보존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3절에 보면 “이는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 만물을 붙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말씀을 거두어 가 버리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천지 만물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듣지 못하는 기갈! 이것이 바로 마지막 심판이요, 끝인 것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는 북 이스라엘에 대하여 부지런히 선지자들을 보냈습니다. 남 유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 하는 선지자가 있다는 것은 아직도 완전한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희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 수 있다면 그것은 돌이킬 기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말씀을 거두어 가버리면 그것은 끝입니다.

 

인생의 호흡이 그 코에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람의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니 흙이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 코에서 호흡을 취하여 가버리시면 우리 인생은 흙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숨, 여호와의 바람, 여호와의 기운, 여호와의 말씀이 거두어져 버리면 그것이 이스라엘의 끝이요, 세상의 끝이요, 종말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두어 가버리면 그것이 끝이요,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먹고 사는 문제입니다. 먹을 것과 마실 것이 있으면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모스 선지자는 먹을 것과 마실 것이 없는 기갈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기갈이 세상 끝에 닥칠 것이라고 합니다. 먹을 것과 마실 것이 있으면 된다는 사람들에게는 전혀 알아들을 수도 없는 기갈이 닥치는 것입니다. 선지자들에게 예언하지 말라는 그들에게 이제는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하여도 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복이란 무엇입니까? 여호와의 말씀을 듣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여호와의 말씀을 듣는 것이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하면 그것이 환난이요, 그것이 저주인 것입니다. 먹을 양식과 마실 물이 없는 기갈보다 여호와의 말씀이 없는 기갈이 진정 가장 무서운 심판인 것입니다. 에스겔 7:1-6절에 보면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너 인자야 주 여호와 내가 이스라엘 땅에 대하여 말하노라. 끝났도다. 이 땅 사방의 일이 끝났도다. 이제는 네게 끝이 이르렀나니 내가 내 진노를 네게 발하여 네 행위를 국문하고 너의 모든 가증한 일을 보응하리라. 내가 너를 아껴 보지 아니하며 긍휼히 여기지도 아니하고 네 행위대로 너를 벌하여 너의 가증한 일이 너희 중에 나타나게 하리니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재앙이로다. 비상한 재앙이로다. 볼찌어다. 임박하도다. 끝이 났도다. 끝이 났도다. 끝이 너를 치러 일어났나니. 볼찌어다. 임박하도다”라고 했습니다.

 

또한 에스겔 7:26-27절에도 보면 “환난에 환난이 더하고 소문에 소문이 더할 때에 그들이 선지자에게 묵시를 구하나 헛될 것이며, 제사장에게는 율법이 없어질 것이요, 장로에게는 모략이 없어질 것이며, 왕은 애통하고 방백은 놀람을 옷 입듯하며, 거민의 손은 떨리리라. 내가 그 행위대로 그들에게 갚고 그 죄악대로 그들을 국문한즉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들을 보면 ‘끝났다’는 말씀과 함께 그 심판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금과 은이 있으면 물과 양식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그러한 금과 은, 그것을 얻기 위하여 사고파는 행위가 아무런 소용이 없는 날이 이른다는 것입니다. 모든 자에게 재앙이 이르기에 사고파는 것이 의미가 없기에 은과 금도 쓰레기처럼 내어버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때의 재앙이 무엇입니까? 선지자에게 묵시를 구하나 헛될 것이며, 제사장에게 율법이 없어지며, 장로에게 모략이 없어질 것이라고 합니다. 곧 하나님의 말씀이 없어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지막 재앙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거두어져 버렸기에 그제야 구한다고 허둥대어도 더 이상 말씀을 구할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끝에 이른 심판이요, 재앙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것도 종말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초림을 구약에서 종말의 현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종말이란 예수님의 초림으로부터 시작해서 재림하실 때까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미 우리들은 종말 안에 살고 있습니다. 곧 그 끝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재앙이 무엇이겠습니까? 먹을 것과 마실 것이 없는 재앙이 아닙니다. 물론 지금도 온 세계에서 먹을 것과 마실 것이 없어서 굶어죽어 가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만 그것은 이 지구상에 먹을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나라들마다 나누어 먹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사람을 죽이는 무기를 만드는 비용의 절반만 들여도 세상에 굶어죽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이것을 알면서도 서로 군비 경쟁을 하고 있는 것이 인간들입니다. 그러므로 양식과 물이 없어서가 아니라 인간의 죄와 욕심으로 인하여 죽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종말을 사는 성도들에게 정작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우리를 살리는 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서 우리에게 자기의 살과 피를 십자가에서 찢어주신 그 말씀으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우리의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무엇을 구하며 살고 있습니까? 12-13절을 보면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에서 동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달려 왕래하되 얻지 못하리니.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피곤하리라”고 했습니다. 온 사방이 말씀을 찾아 구하나 구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날에는 곧 그 끝 날에는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도 찾지 못한다고 합니다. 젊은 청년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해 기갈에 허덕이는 것입니다. 젊은 청년들이 찾지 못하면 노약자는 어떠하겠습니까? 더더구나 찾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끝 날에는 젊은 사람이나 늙은 사람이나 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찾고 찾아도 얻지 못합니다. 그로인해 영적인 기갈에 허덕이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이 없는 기갈! 이것이 끝 날에 있을 종말의 현상입니다. 말씀을 듣지 못하는 기갈! 이것이 종말에 있는 하나님의 심판의 현상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구하지 않고 사는 것이 재앙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주님의 말씀과 상관없이 살면서도 이것을 재앙으로 여기지 못하는데 있습니다. 우리의 육체는 하루만 굶어도 먹을 것 밖에 생각나지 않습니다. 아니 밥을 제때 주지 않아도 우리는 짜증이 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함으로 인한 기갈이 우리에게 있습니까? 하루만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해도 죽을 것 같은 마음이 있습니까? 그런데 우리의 실상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듣지 않아도 잘 살고 있습니다. 하루 이틀이 아니라 한 달 두 달 심지어 몇 년씩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아도 잘 살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씀에 대한 기갈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아도 잘 살고 있다라는 것은 이미 우리가 깊은 병에 들어 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정상적인 사람은 한끼만 못 먹고, 하루 동안 물을 마시지 못해도 기갈을 느끼고 미친 듯이 물과 양식을 구합니다. 정상적인 사람은 하루 세끼 꼬박꼬박 밥을 먹습니다. 그러나 병든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입맛이 없습니다. 그래서 밥을 잘 안먹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아도 갈하지 않고 잘 살고 있다고 하는 것은 우리 영혼이 깊이 병들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구하여도 자기 좋은 말만 구하기 쉽습니다. 이런 행위도 우리가 깊이 병들었음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건강하고 정상적인 사람은 음식을 골고루 먹습니다. 음식을 골고루 섭취해야 건강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편식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구한다고 하면서도 자기가 좋은 말씀만 구합니다. 곧 자기들의 취향 따라 구하는 것입니다. 자기들의 귀에 즐거운 소리를 찾아 구하는 것입니다. 이것 또한 종말의 특징입니다. 이것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거두어 가버리시는 것입니다.

 

14절을 보면 “무릇 사마리아의 죄된 우상을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기를 단아 네 신의 생존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하거나 브엘세바의 위하는 것의 생존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하는 사람은 엎드러지고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로 인하여 맹세하여야 하는데 이들이 찾아가서 맹세하는 것은 우상들에게 맹세한 것입니다. 부지런히 그들은 여호와의 말씀을 찾아 구한다고 사마리아로, 단으로, 브엘세바로 다녔지만 그들이 섬긴 것은 금송아지 우상이었습니다. 그것들을 섬기면 나라도 잘되고, 가정도 잘되고, 평안하고, 건강하고, 든든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마리아의 안일한 자들이 든든해하는 것처럼 여호와의 말씀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것들로 든든해하며 사는 것입니다. 이러한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보냈으나 듣지 아니함으로 여호와의 말씀을 거두어 가버리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끝이요, 심판인 것입니다. 이것이 말씀의 기갈입니다.

 

디모데후서 4:1-4절에 보면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고 했습니다. 6절에 보면 바울 사도는 자신의 죽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곧 바울은 죽음을 앞에 두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과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한다고 하면서 아주 엄중히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 엄중히 권면하는 권면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때가 이르면 사람들이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말세의 특징은 자기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를 기쁘게 해 줄 곧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보다 진리에서 떠나 허탄한 이야기를 좇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어떻게 보면 말씀이 홍수처럼 넘쳐나는 시대입니다. 기독교 방송에서 항상 하나님의 말씀이 흘러나옵니다. 그러나 세속화된 말씀이 넘쳐날 뿐 하나님의 말씀의 본의를 드러내는 교회가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말씀의 기갈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의 상황이 아닙니까? 끝이 이른 것입니다. 사람들마다 얼마나 개성이 강한지 모두가 자기들의 취향대로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자기에게만 관심이 있는 것입니다. 자기의 마음에 드는가, 아닌가로 교회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찬송을 좋아하는 사람, 기도를 좋아하는 사람, 전도를 좋아하는 사람, 구제와 선교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이 생각하는 좋은 교회 상이란 자기가 평소에 좋아하는 것을 잘하고 있는 교회를 선호하고 좋아할 것입니다. 그런 것이 부족하면 교회가 뭐 이래 하면서 불평을 하든지 자기 취향에 맞는 교회를 찾아 갈 것입니다. 물론 ‘나는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좋아 합니다’고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역시 자기가 평소에 좋아하는 방향은 또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모습이 아닙니까?

 

이러한 인간들에게 주님은 어떤 말씀으로 찾아오시는 것입니까? 유대인의 메시아 상도 아니고, 이방인의 메시아 상도 아닙니다. 유대인은 꺼려하고 이방인은 미련스럽게 보이는 십자가로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그들의 소원과 요구를 부수어 버리는 방식으로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0:5-6절에 보면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너희의 복종이 온전히 될 때에 모든 복종치 않는 것을 벌하려고 예비하는 중에 있노라”고 했습니다. 모든 이론을 파하고, 교만을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는 말씀으로 오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종말에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모든 이론을 파하고 교만을 파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를 사모해야 합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도를 사모하고 순종하는 길이 살 길입니다.

 

성경 한 곳을 보고 마치겠습니다. 시편 119:97-103절입니다.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묵상하나이다. 주의 계명이 항상 나와 함께하므로 그것이 나로 원수보다 지혜롭게 하나이다. 내가 주의 증거를 묵상하므로 나의 명철함이 나의 모든 스승보다 승하며 주의 법도를 지키므로 나의 명철함이 노인보다 승하니이다. 내가 주의 말씀을 지키려고 발을 금하여 모든 악한 길로 가지 아니하였사오며 주께서 나를 가르치셨으므로 내가 주의 규례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 시편 기자는 주의 법을 지극히 사랑한다고 고백합니다. 그리하여 그는 주의 법을 종일 묵상한다고 합니다. 주의 말씀이 항상 자신과 함께함으로 그 말씀이 원수보다 지혜롭게 한다고 합니다. 무엇보다도 시편 기자는 주의 말씀이 자신의 입에 꿀보다 더 달다고 고백합니다. 이 시편 기자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세상이 사욕을 쫓고 허탄한 이야기를 좇을지라도 우리는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찾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말씀의 본의를 힘써 배워가게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의 말씀으로 받아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을 풍성히 받아 누려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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