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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암 6:1-14
성경본문내용 (1)화 있을진저 시온에서 안일한 자와 사마리아 산에서 마음이 든든한 자 곧 열국 중 우승하여 유명하므로 이스라엘 족속이 따르는 자들이여(2)너희는 갈레에 건너가고 거기서 대 하맛으로 가고 또 블레셋 사람의 가드로 내려가 보라 그곳들이 이 나라들보다 나으냐 그 토지가 너희 토지보다 넓으냐(3)너희는 흉한 날이 멀다 하여 강포한 자리로 가까와지게 하고(4)상아 상에 누우며 침상에서 기지개 켜며 양떼에서 어린 양과 우리에서 송아지를 취하여 먹고(5)비파에 맞추어 헛된 노래를 지절거리며 다윗처럼 자기를 위하여 악기를 제조하며(6)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시며 귀한 기름을 몸에 바르면서 요셉의 환난을 인하여는 근심치 아니하는 자로다(7)그러므로 저희가 이제는 사로잡히는 자 중에 앞서 사로잡히리니 기지개 켜는 자의 떠드는 소리가 그치리라(8)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주 여호와가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였노라 내가 야곱의 영광을 싫어하며 그 궁궐들을 미워하므로 이 성읍과 거기 가득한 것을 대적에게 붙이리라 하셨느니라(9)한 집에 열 사람이 남는다 하여도 다 죽을 것이라(10)죽은 사람의 친척 곧 그 시체를 불사를 자가 그 뼈를 집 밖으로 가져갈 때에 그 집 내실에 있는 자에게 묻기를 아직 너와 함께 한 자가 있느냐 하여 대답하기를 아주 없다 하면 저가 또 말하기를 잠잠하라 우리가 여호와의 이름을 일컫지 못할 것이라 하리라(11)보라 여호와께서 명하시므로 큰 집이 침을 받아 갈라지며 작은 집이 침을 받아 터지리라(12)말들이 어찌 바위 위에서 달리겠으며 소가 어찌 거기 밭 갈겠느냐 그런데 너희는 공법을 쓸개로 변하며 정의의 열매를 인진으로 변하며(13)허무한 것을 기뻐하며 이르기를 우리의 뿔은 우리 힘으로 취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는 자로다(14)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한 나라를 일으켜 너희를 치리니 저희가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시내까지 너희를 학대하리라 하셨느니라
강설날짜 2011-06-12

2011년 아모스 공부

내가 너희를 치리니!

말씀:아모스 6:1-14

 

오늘 우리는 아모스 6장을 공부하고자 합니다. 아모스 6장은 3장부터 시작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아모스 선지자의 설교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사람들이 이 세상을 살면서 제일 바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대부분 건강하고 경제적으로 넉넉하게 사는 것일 것입니다. 그래서 지난 17대 대통령을 경제 대통령을 자부하는 사람을 뽑았습니다.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넉넉하면 마음이 안정되고 삶이 평안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경제적인 부를 추구합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에 보면 마음이 안일하고 든든한 것이 허무한 것이며, 그 허무한 것들을 기뻐한 까닭에 심판을 당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절을 보면 “화 있을진저! 시온에서 안일한 자와 사마리아 산에서 마음이 든든한 자 곧 열국 중 우승하여 유명하므로 이스라엘 족속이 따르는 자들이여!”라고 합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먼저 화가 있다고 선언합니다. 어떤 자에게 화가 있다고 합니까? 시온에서 안일한 자와 사마리아 산에서 마음이 든든한 자라고 합니다. 시온은 남 유다를 말하고, 사마리아는 북 이스라엘을 말합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남 유다나 북 이스라엘이나 간에 그들이 다 마음이 든든하게 여기며, 안일하게 살아가므로 그들에게 화가 있다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책망은 정치, 경제, 종교계의 상류층들에 대한 책망의 말씀입니다. 가난한 자들은 먹고 살기 바쁘기에 마음이 든든하거나 안일할 틈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난한 자들이라고 해서 심판에서 예외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마음도 역시 그 삶의 목표와 방향이 세상의 안일함과 든든함에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사마리아 사람들이 마음 든든하게 여기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종교적인 선택의식 때문입니다. ‘열국 중 우승하여’라는 말씀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다른 나라를 치고 그들을 가나안 땅에 심어 놓은 것을 말합니다. 그로인해 마음이 든든한 것입니다. 그리고 아모스 당시에 사마리아는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인 부요함으로 인해 더욱 마음이 든든하였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종교적인 안정이 있다면 어지간한 어려움은 극복합니다. 그러나 종교적인 안정감과 함께 경제적인 부요까지 주어지고 있으니 얼마나 든든하게 여기고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선지자들은 이러한 거짓된 안정감, 곧 헛된 안정감으로 마음 든든해하는 자들에게 그 뿌리를 흔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2절에 보면 “너희는 갈레에 건너가고 거기서 대 하맛으로 가고 또 블레셋 사람의 가드로 내려가 보라. 그곳들이 이 나라들보다 나으냐. 그 토지가 너희 토지보다 넓으냐”라고 합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마음이 든든한 북 이스라엘에게 ‘갈레와 하맛과 가드에 가보라’고 합니다. 갈레와 하맛과 가드! 이 세 곳이 이스라엘보다 좋거나 땅이 넓으냐는 것입니다. 그들이 강한 부족이라도 너희보다 못하게 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처럼 너희도 헛된 것으로 힘을 삼고 있으면 그렇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세상 나라나 개인이나 흥망성쇠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영원한 흥함이나 영원한 망함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러한 흥망성쇠로 인해 불안해하기도 하고 든든해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들은 세상의 흥망성쇠와 상관없이 주님으로 인해 평안해하며 마음 든든해하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헛된 것을 자기의 힘으로 기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에게 흉한 날, 곧 심판의 날이 곧 닥치게 될 것입니다.

 

3절을 보면 “너희는 흉한 날이 멀다 하여 강포한 자리로 가까와지게 하고”라고 합니다. 이 말은 마음이 든든한 북 이스라엘이 선지자들의 심판에 관한 선포를 우습게 여기며 흉한 날이 멀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지금 그들은 안일하고 마음이 든든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더욱더 강포한 자리로 가까이 가는 것입니다. 곧 그들은 점점 더 사치와 방종으로 치닫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하나님과 함께 하니 복을 받아서 그렇게 되었다고 하는 헛된 자부심에 사로잡혀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와 같은 생각으로 인해 헛된 종교적인 안정감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어떤 방향으로 나가고 있는 것입니까? 4절에 보면 “상아 상에 누우며 침상에서 기지개켜며 양떼에서 어린 양과 우리에서 송아지를 취하여 먹고”라고 합니다. 그들은 좋은 집과 좋은 가구를 갖추고 삽니다. 상아로 침대를 만들어 누우며, 고기는 가장 좋은 어린 양과 우리의 송아지 고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단지 배고파서 먹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좋고 맛있는 음식으로 골라먹는 것입니다. 사람이 배고픈 문제가 해결되면 그다음에 찾는 것이 무엇입니까? 더 맛있고 더 멋있는 것을 찾아 나서는 것입니다. 우리의 송아지 고기란 방목하여 기르는 것보다 육질이 더 부드럽고 좋게 만든 비육우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그들은 사치를 하면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가난한 자들은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리고 있는데 그들의 고통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자신들의 사치를 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면 그 다음에 추구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문화적인 욕구입니다. 5절에 보면 “비파에 맞추어 헛된 노래를 지절거리며 다윗처럼 자기를 위하여 악기를 제조하며”라고 했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면 사람들은 보다 나은 문화생활을 찾아 나섭니다. 곧 고상한 문화적인 욕구를 쫓아 행합니다. 그래서 밥을 먹어도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에서 우아한 클래식 생음악을 들으며 먹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 백성들도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니 이제는 비파에 맞추어 헛된 노래를 지절거리는 것입니다. 곧 보다 낳은 문화생활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다윗처럼 자기를 위해 악기를 제조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악기를 제조했습니다. 그런데 사마리아 사람들은 자기들의 여흥을 위해, 곧 자신들의 문화적 만족을 위하여 악기를 제조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6절에 보면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시며, 귀한 기름을 몸에 바르면서 요셉의 환난을 인하여는 근심치 아니하는 자로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포도주를 대접으로 마신다는 것’은 술을 많이 마시는 것도 되지만 대접이란 여호와의 성막에 사용하기 위하여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께 드린 그릇과도 대비가 되는 것입니다. 곧 그들은 하나님께 드리는 귀한 대접에 포도주를 마시며, 귀한 기름을 자기 몸에 발랐습니다. 그들이 사막에서 기름을 몸에 바르는 것은 자기 몸을 보호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기름은 감람기름 정도로도 충분하였습니다. 그런데 ‘귀한 기름을 바른다’라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 귀한 기름을 구별하여 드리는 것과 연관이 됩니다. 율법에는 여호와께 향으로 드리기 위한 기름을 사람들이 사용하기 위해 제조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을 위해 귀한 기름을 만들고 그것을 자기 몸에 발랐습니다. 이것은 자기 자신이 신이 되어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30:22-38절에 보면 거룩한 향 기름을 만드는 방법과 사용법에 대해서 명하고 있습니다. 특히 31-33절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이것은 너희 대대로 내게 거룩한 관유니. 사람의 몸에 붓지 말며, 이 방법대로 이와 같은 것을 만들지 말라. 이는 거룩하니 너희는 거룩히 여기라. 무릇 이와 같은 것을 만드는 자나 무릇 이것을 타인에게 붓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 하라”고 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어떤 방법으로 귀한 기름을 제조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들은 귀한 기름을 자신들을 위해 바른 것입니다. 이것은 자신들을 한껏 높이고 있는 것을 말해 줍니다. 결국 찬양도 영광도 자기들이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만족과 영광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이렇게 살면서 무엇에는 관심이 없는 것입니까? 요셉의 환난에는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6b절에 보면 “요셉의 환난을 인하여는 근심치 아니하는 자로다”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시고 귀한 기름을 자기 몸에 바르면서도 요셉의 환난에는 근심이 없었습니다. 이들은 오직 자신의 먹고 마시며 즐기는 것을 생의 최고의 목표로 삼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가난한 자들의 고통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여기서 요셉의 환난이란 지금 북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지파가 에브라임지파입니다. 에브라임은 요셉의 차남으로 북 이스라엘의 가장 강력한 지파가 됩니다. 그러한 북 이스라엘에 가난하고 헐벗은 백성들이 많았습니다. 이러한 요셉의 환난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자신들의 안일한 삶만 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요셉의 환난이란 창세기에서 실제 요셉을 형들이 종으로 팔아 버렸던 사건과 지금 사마리아의 상황이 꼭 같은 상황인 것입니다. 요셉이 형들에 의해 물 없는 웅덩이에 빠졌습니다. 그곳에서 굶어 죽으라는 것입니다. 요셉은 자신을 살려 달라고 구덩이에서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나 형들은 그 부르짖음을 외면한 채 음식을 먹고 있었습니다(창37:25). 그러다가 상인들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 종으로 팔아버린 것입니다. 이 때 요셉이 당한 억울함을 나중에 기근으로 애굽에 곡식을 사려 왔다가 요셉의 의도적인 모함으로 억울함을 당할 때 깨닫게 됩니다. 창세기 42:21절에 보면 “그들이 서로 말하되 우리가 아우의 일로 인하여 범죄 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 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라고 했습니다. 지금 사마리아의 현실이 이러한 것입니다. 기득권자들은 호의호식하는데 가난한 자들은 신음 중에 지내는 것입니다. 지금 그들의 형제들이 굶주리고 있는데 그들에게는 관심이 없고 오직 자신들의 호화롭고 사치하고 연락한 삶을 추구하고 있었기에 이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아주 소수의 특정 계층만이 아니었습니다. 일반 백성들 사이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므로 11절에 보면 “큰 집이 침을 받아 갈라지며 작은 집이 침을 받아 터지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큰 집을 가진 자는 더 큰 집을 목표로 하였을 것이며, 작은 집을 가졌으면 역시 더 큰 집을 위하여 애를 쓰고 있었으니 요셉의 환난에는 근심하지 아니하였던 것입니다. 요셉의 환난에 근심이 없는 것만이 아니라 장차 임할 심판에 대하여서도 그들은 안일하게 대처한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무언가 든든한 것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거짓된 확신과 잘못된 종교적인 관습에 의하여 자기들은 심판을 당하지 아니하라고 스스로 여긴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의 이야기가 과연 우리의 이야기는 아닙니까? 오늘날 우리는 무엇을 걱정하고 염려하면서 살고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생활의 걱정 없이 마음 든든하게 안일하게 살아보나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7:10절에 보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가 고린도교회에 책망하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 책망으로 인하여 회개하여 구원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근심하는 자들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지만 세상의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아모스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책망의 음성을 듣고 회개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무엇을 염려하고 근심하고 있는 것입니까? 남편의 직장이 든든하지 못하고, 하는 사업이 든든하지 못하여 불안합니까? 자식들의 장래가 불안합니까? 이런 염려와 걱정에 사로잡혀 있으면 요셉의 환난이 마음에 들어오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형제의 고난이 마음에 들어올 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들은 호의호식 하면서 요셉의 환난에는 근심도 없고 관심도 없는 자들에게 결국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뿐입니다.

 

7-11절까지 말씀을 보면 혹독한 하나님의 심판이 선포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희가 이제는 사로잡히는 자 중에 앞서 사로잡히리니 기지개 켜는 자의 떠드는 소리가 그치리라.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주 여호와가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였노라. 내가 야곱의 영광을 싫어하며 그 궁궐들을 미워하므로 이 성읍과 거기 가득한 것을 대적에게 붙이리라 하셨느니라. 한 집에 열 사람이 남는다 하여도 다 죽을 것이라. 죽은 사람의 친척 곧 그 시체를 불사를 자가 그 뼈를 집 밖으로 가져갈 때에 그 집 내실에 있는 자에게 묻기를 아직 너와 함께한 자가 있느냐 하여 대답하기를 아주 없다하면 저가 또 말하기를 잠잠하라. 우리가 여호와의 이름을 일컫지 못할 것이라 하리라. 보라. 여호와께서 명하시므로 큰 집이 침을 받아 갈라지며 작은 집이 침을 받아 터지리라”(암 6:7-11). 이 말씀에 보면 하나님의 심판이 어떠합니까? 그들이 사로잡혀 갈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안일과 권태로 기지개켜는 자의 떠드는 소리가 그치게 될 것입니다. 야곱의 영광을 싫어하며 그 궁궐들을 미워하므로 모두 대적에게 붙여 질 것입니다. 죽은 사람의 시체를 연이어 내다 버리게 될 것입니다. 큰 집과 작은 집이 결딴나는 것입니다.

 

12-14절 말씀에 보면 이러한 심판이 임하는 것에 대하여 한 번 더 죄악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말들이 바위 위에 달리며, 소가 어떻게 바위 위를 갈겠느냐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이 있을 수가 없는 데도 지금 이스라엘 안에서 일어나지 말아야 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공법을 쓸개로 변하며 정의의 열매를 인진(쓴 쑥)으로 변하며 허무한 것을 기뻐하며 우리의 뿔은 우리의 힘으로 취하지 아니하였느냐고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법을 자기 마음대로 바꾸고 변개하면서 자기들의 만족과 이익을 위하여 사용하며 다른 민족을 쳐서 복종시킨 것을 자기들의 힘으로 취하였다고 스스로 자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허무한 것’이라고 하는 것과 ‘우리의 뿔’이라고 하는 것은 그들이 취하여 얻은 성읍의 이름과 같은 것입니다. 자기들의 소득과 자기들의 영광과 권세들이 자기들의 힘으로 취한 것으로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를 모르는 것이며, 교만이 가득한 모습입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심판하지 아니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앗수르에 의하여 완전히 멸망당하고 마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스라엘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래도 밥 먹고 옷 입고 살고 큰 집이든 작은 집이든 집이라도 한 칸 마련하고 사는 것이, 물론 자기 집을 마련하지 못한 사람들도 많이 있지만, 과연 어떻게 해서 이루어진 것입니까? 요셉의 환난을 외면함으로 이루어지지는 않았습니까? 그렇지 않고 우리가 정당하게 벌어서 정당하게 마련하였다고 하여도 요셉의 환난에 근심하지 아니하였기에 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살라는 것입니까? 우리가 그렇게 애쓰고 힘써서 마련한 것들이 우리를 살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들이 허무하다는 것입니다. 허무한 것들을 가지고 복을 받았느니, 안 받았느니 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잠시 있다가 없어질 것들은 다 허무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실존은 어떻습니까? 우리가 이러한 말씀을 이론적으로는 알고 있는데 실제 삶에서는 허무한 것을 위하여 목숨을 걸다시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상태를 실천적 무신론자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모스 선지자의 책망이 바로 오늘날 우리를 향한 책망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허무한 것에 우리의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영원한 것에 마음을 두어야 할 것입니다. 영원한 것은 예수님에 의하여 만들어진 나라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말씀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허무한 것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위하여 조치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 가지 시험을 주시는 것입니다.

 

욥기 7:17-19절에 보면 욥이 시험을 받을 때에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크게 여기사 그에게 마음을 두시고 아침마다 권징하시며 분초마다 시험하시나이까. 주께서 내게서 눈을 돌이키지 아니하시며 나의 침 삼킬 동안도 나를 놓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리이까”라고 탄식한 것처럼 성도로 하여금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심으로 성도로 하여금 허무한 것을 피하여 썩지 아니하고 쇠하지 아니하고 더럽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3-9절을 보면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얼마나 완벽하게 조치하고 계시는 것입니까? 썩어질 것을, 허무한 것을 피하게 하시고자 여러 가지 시험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믿었던 재산이 다 날아가 버릴 수도 있고, 믿었던 사람이 배신을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가족이, 친구가, 같이 예수 믿는다는 사람이 속이고 속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여전히 살아계시고 일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완벽하게 자기 택한 백성들로 하여금 영원한 하나님나라를 기업을 받게 하실 것입니다. 이 주님을 믿습니까?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이 주님을 믿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이 믿음 가운데서 이 땅에 소망을 두지 않게 하시고 영원한 하나님나라에 소망을 두고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비록 이 땅에서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을지라도 여호와의 구원으로 인하여 기뻐하며 환난 가운데 있는 형제를 돌아보는 하나님 백성다움을 잘 나타내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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