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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벧전 4:12-19
성경본문내용 (12)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13)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14)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15)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적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16)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즉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17)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하며(18)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얻으면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 어디 서리요(19)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 그 영혼을 미쁘신 조물주께 부탁할지어다
강설날짜 2012-02-26
동영상 http://flvs.daum.net/flvPlayer.swf?vid=mpJNQk_zrRU$

 2012년 베드로전서 공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말씀:베드로전서 4:12-19

 

지난주에 우리는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다는 말씀을 보았습니다(4:7-11). 여러분! 한 주간 동안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음을 경험하며 사셨습니까? 이 세상은 여전히 활기차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만물의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하고 살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다고 분명히 말씀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 마지막의 특징이 이미 창세기에서도 드러나고 있음을 우리는 창세기 말씀을 공부하면서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지식이나 학문으로는 만물의 마지막을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물론 자원의 고갈이라든가 환경오염으로 인한 대재앙을 말하기는 하지만 성경은 그런 것으로 마지막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성경에서 말씀하는 마지막이란 무엇입니까? 성경에서 마지막과 심판을 말씀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자기 약속을 이루시기 위한 마지막인 것입니다. 기존의 세상을 심판하시고 하나님의 아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나라를 만드시는 것입니다. 기존의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다 폐하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미 만들어 놓으신 것입니다. 그 나라를 아들의 나라라고 합니다. 골로새서 1:13-17절에 보면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아들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사람의 어떤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미리 아신 자를 아들이 찾아내서 구원하시는 방식으로만 만들어지는 나라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베드로전서 1:2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찌니라.” 또한 에베소서 1:3-6절에 보면 바울 사도는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말씀들에 기초해서 볼 때 우리가 아들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은 우리의 노력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미리 아시고 창세 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신 자들을 찾아내어 구원하심으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존의 세상의 질서를 고집하고 있는 자들에게는 눈에 가시와 같은 자들이 바로 예수 믿는 자들인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 보이지 아니하는 세상이 따로 있다고 말하는 자들이기에 싫어하는 것입니다. 물론 믿는다는 말을 하면서도 보이는 세상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자기들 편이기에 핍박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의 영이 임하여 보이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약속하고 있는 것을 믿는 자들이 있다면 이들을 가만히 두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만물의 마지막 때에 일어나는 일들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운 시대에서 복이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14절에 보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라고 합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14). 베드로 사도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는 것이 복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무슨 복입니까? 사람들은 복하면 예수 믿고 구원 받고 이 세상에서 승리하고 잘 되는 것을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말씀에 기초해서 볼 때 베드로 사도가 말하는 복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말하는 일반적인 복의 개념과는 전혀 다른 것임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복이 무엇인지를 전체적으로 보고 난 후에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고자 합니다. 그러면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복이란 무엇입니까? 창세기에서부터 심판이 거듭되고 있는 상황에서 무엇이 복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 소돔과 고모라성에서 물질의 풍요와 성적쾌락으로 살고 있는 것은 저주와 심판 아래 있는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그 성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복인 것입니다. 물론 그 성에서 나오게 되면 당장 살 곳이 없어서 산 속 굴에 살아야 하지만 말입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우리에게 무엇이 중요한가 하는 것을 알게 합니다.

 

우리가 미가서를 공부할 때도 봤습니다만 하나님 앞에 범죄한 이스라엘은 저주와 심판을 받아 마땅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라는 것은 하지 않고 하지 말라는 것만 골라서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 총체적인 범죄의 모습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미가서 3:1-12절을 보면 “내가 또 이르노니 야곱의 두령들과 이스라엘 족속의 치리 자들아! 청컨대 들으라. 공의는 너희의 알 것이 아니냐. 너희가 선을 미워하고 악을 좋아하여 내 백성의 가죽을 벗기고 그 뼈에서 살을 뜯어 그들의 살을 먹으며 그 가죽을 벗기며 그 뼈를 꺾어 다지기를 남비와 솥 가운데 담을 고기처럼 하는도다. 그 때에 그들이 여호와께 부르짖을찌라도 응답지 아니하시고 그들의 행위의 악하던대로 그들 앞에 얼굴을 가리우시리라. 내 백성을 유혹하는 선지자는 이에 물면 평강을 외치나 그 입에 무엇을 채워 주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전쟁을 준비하는도다. 이런 선지자에 대하여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러므로 너희가 밤을 만나리니 이상을 보지 못할 것이요, 흑암을 만나리니 점 치지 못하리라 하셨나니. 이 선지자 위에는 해가 져서 낮이 캄캄할 것이라. 선견자가 부끄러워하며 술객이 수치를 당하여 다 입술을 가리울 것은 하나님이 응답지 아니하심이어니와 오직 나는 여호와의 신으로 말미암아 권능과 공의와 재능으로 채움을 얻고 야곱의 허물과 이스라엘의 죄를 그들에게 보이리라. 야곱 족속의 두령과 이스라엘 족속의 치리 자 곧 공의를 미워하고 정직한 것을 굽게 하는 자들아 청컨대 이 말을 들을찌어다. 시온을 피로, 예루살렘을 죄악으로 건축하는도다. 그 두령은 뇌물을 위하여 재판하며 그 제사장은 삯을 위하여 교훈하며 그 선지자는 돈을 위하여 점 치면서 오히려 여호와를 의뢰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시지 아니하냐.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는도다. 이러므로 너희로 인하여 시온은 밭 같이 갊을 당하고 예루살렘은 무더기가 되고 성전의 산은 수풀의 높은 곳과 같게 되리라”고 했습니다. 이런 시대가 만물의 마지막의 모습입니다.

 

그러면 이런 만물의 마지막 때 과연 무엇이 복입니까? 미가서 7:18-20절을 보면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을 사유하시며 그 기업의 남은 자의 허물을 넘기시며 인애를 기뻐하심으로 노를 항상 품지 아니하시나이다. 다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 주께서 옛적에 우리 열조에게 맹세하신대로 야곱에게 성실을 베푸시며 아브라함에게 인애를 더하시리이다”라고 했습니다. 주의 긍휼히 여기심이 복인 것입니다. 야곱에게 성실을 베푸시며 아브라함에게 인애를 더하신 것이 복인 것입니다. 여기서 ‘성실’이란 ‘tm’(에메트)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말하고, ‘인애’란 ‘dsej’(헤쎄드)로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을 말합니다. 곧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언약적 사랑을 더하시는 복인 것입니다.

 

그런데 구약이나 신약이나 이런 복이 참 복이라고 믿고 말하는 자를 세상은 핍박하였습니다. 이 복을 말하는 선지자들의 뺨을 치고 감옥에 가두고 죽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런 선지자의 완성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다 이루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모든 긍휼과 자비가 주어지지만 그렇지 못한 자들에게는 심판과 저주가 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소식을 전하는 사도들 역시 세상에서 핍박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사도행전에서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워졌다고 하는 것은 바로 이런 맥락인 것입니다. 에베소서 2:20-22절에 보면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교회를 보면 안타깝게도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증거 한 것을 믿고 말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세상의 것들로 바꿔치기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수많은 목사들이 예수님을 잘 믿으면 세상에서도 성공하고 세상에서도 복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사도인 베드로 사도는 전혀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물론 다른 사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바르게 믿고 잘 믿을수록 핍박과 시련과 고난이 더 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2절을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처럼 이상히 여기지 말라”고 합니다. 그냥 시련이나 시험이 아니라 불같은 시험이 닥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 때 이런 시험이 오면 어떻게 생각하기 쉽니까? 내가 무엇을 잘못 믿어서 이런 시련이 오는가 하면서 이상하게 생각하게 됩니다. 특히 우리나라의 풍토가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를 잘 믿으면 만사가 형통하고 복을 받는다고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정 반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까? 수많은 목사의 말과 수많은 간증 자들의 말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성경 말씀을 믿어야 합니까? 목사들이 신학교에서 배울 때에는 성경의 기록만이 계시라고 배웁니다. 다른 신학교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장로교라고 이름 하는 신학교에서는 대부분 그렇게 가르치고 배웁니다. 그런데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회를 하면서 계시가 바뀌는 것입니다. 목회 현장의 경험들이 계시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도 성공적인 목회가 된다면 누가 뭐라고 해도 진리인양, 하나님의 계시인양 먹혀들고 있는 것이 오늘날 한국교회의 현실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이 시대가 바로 만물의 마지막 때인 것입니다.

 

13절을 보면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성도라는 것 때문에, 그리스도인 이라는 것 때문에 오는 시련과 고난이라면 기뻐하고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왜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하는 것입니까? 이런 고난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5:19절을 보면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5:16절에서는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택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택하여 세우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고 핍박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택하심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바로 이 세상이 우리를 미워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지금 베드로 사도가 그대로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성도가 고난을 당할 때에 즐거워해야 합니까? 그런 고난은 잠시 받는 고난이며, 장차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8:18-25절에 보면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찌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도가 고난 가운데서도 즐거워 할 수 있는 것은 현재의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 13절에서도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베드로 사도는 우리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이 있다고 합니다. 14절을 보면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니라”고 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라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15절 말씀입니다. 15절에 보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적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라고 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살인이나 도적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것으로 인해 고난을 받지 말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자기가 잘못해서 당하는 고생을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으로 오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택하여 세우셨기에 세상의 미움을 받는 일이 일어나면 그것이 복 있는 자라는 것입니다. 그런 자 위에 하나님의 영 곧 영광의 영이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영이 세상의 영광을 받는 자리에 함께 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고난을 받는 자리에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처럼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을 받을 때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스데반 집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증거 하다가 돌에 맞아 죽을 때에 보좌 우편에 주님께서 서신 것을 보았습니다. 영광의 주님이 스데반과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7:54-60절에 보면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저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 대. 저희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심으로 그에게 달려들어 성 밖에 내치고 돌로 칠쌔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습니다. 곧 스데반이 고난을 당할 때 하나님의 영광이 그와 함께 한 것입니다.

 

16절을 보면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즉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합니다. 초대교회 때에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경멸의 의미로 불렀던 이름입니다. 그러나 그런 고난이라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고난이 오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거나 부끄럽게 여기지 말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세상이 심판 아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17-18절을 보면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하며,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얻으면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 어디 서리요”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먼저 심판이 시작됩니다. 의인이 겨우 구원을 얻는다면 하나님의 복음을 복종치 아니하고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의 그 마지막이 어떻겠는가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복음을 믿는 자들이 세상에서 고난을 받는다면 복음을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은 어떻게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19절을 보면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 그 영혼을 미쁘신 조물주께 부탁할찌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 그 영혼을 미쁘신 조물주에게 곧 신실하신 창조주 하나님께 부탁해야 합니다. 스데반 집사가 돌에 맞아 죽으면서 그 영혼을 주님께 부탁하였습니다. 사도행전 7:59-60절에 보면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고 했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고난 받는 것이 복인 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스데반 가운데 임한 은혜가 우리들 가운데도 있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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