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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벧후 2:17-22
성경본문내용 (17)이 사람들은 물 없는 샘이요 광풍에 밀려 가는 안개니 저희를 위하여 캄캄한 어두움이 예비되어 있나니(18)저희가 허탄한 자랑의 말을 토하여 미혹한데 행하는 사람들에게서 겨우 피한 자들을 음란으로써 육체의 정욕 중에서 유혹하여(19)저희에게 자유를 준다 하여도 자기는 멸망의 종들이니 누구든지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됨이니라(20)만일 저희가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21)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저희에게 나으니라(22)참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저희에게 응하였도다
강설날짜 2012-04-29
동영상 http://flvs.daum.net/flvPlayer.swf?vid=4O1XRTjkfus$
모바일동영상 http://m.tvpot.daum.net/clip/ClipView.tv?clipid=41398334

2012년 베드로후서 공부

 

거짓 선생들에 대한 경고

 

말씀:베드로후서 2:17-22 


베드로후서 2장에서는 거짓 선지자들과 거짓 선생들을 경계하라는 말씀을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두 주간 2장 말씀을 공부했습니다. 2:1-8절 말씀을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라는 제목으로 거짓 선지자들과 거짓 선생들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신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그리고 2:9-16절 말씀을 ‘거짓 선지자 발람의 길’이라는 제목으로 거짓 선지자들과 거짓 선생들의 예로 발람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오늘도 계속해서 베드로후서 2장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거짓 선생들의 유혹과 그들의 유혹에 따라가는 자들에 대한 경고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 살펴봤습니다만 베드로 사도는 거짓 선생들의 대표적인 사람으로 발람을 예로 들었습니다. 민수기 21-22장에 보면 이스라엘이 출애굽한 후에 아모리 족속의 땅을 지나 가나안으로 가기 위해 아모리 왕 시혼에게 길을 좀 열어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러나 시혼이 길을 내어 주지 않고 도리어 백성들을 모아 이스라엘을 치고자 하였습니다. 이에 이스라엘은 아모리 족속을 치고 그들의 모든 성읍을 점령하였습니다. 그 후 이스라엘은 진행하여 모압 평지에 이르러 진을 쳤습니다. 이에 모압 왕 발락은 위기의식을 느끼고 발람 선지자에게 많은 뇌물을 주어 이스라엘을 저주하게 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신으로 역사하사 발람으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저주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발람이 이스라엘을 저주하기 위해 입을 벌리면 도리어 그는 하나님의 신에 사로잡혀 축복의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발람이 하나님의 신에 사로잡혀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내용 중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민수기 23:18-21절을 보면 “발람이 노래를 지어 가로되 발락이여! 일어나 들을찌어다. 십볼의 아들이여! 나를 자세히 들으라.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 내가 축복의 명을 받았으니 그가 하신 축복을 내가 돌이킬 수 없도다. 여호와는 야곱의 허물을 보지 아니하시며, 이스라엘의 패역을 보지 아니하시는도다. 여호와 그의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시니 왕을 부르는 소리가 그 중에 있도다”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에 저주가 통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이 식언치 아니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시는 결과로 지금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하는 것인데 이스라엘의 허물을 보지 아니하시고 이스라엘의 패역을 보지 아니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허물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들의 허물을 보지 아니하신다는 것입니다. 출애굽 때에 열 가지 재앙 중에 마지막 장자 재앙 가운데서 이스라엘이 구원함을 받은 것은 어린 양의 피아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출애굽기 1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장자 재앙을 내릴 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일년 된 흠 없는 양을 잡아 그 피를 집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라고 하셨습니다(출 12:7). 그러면 장자 재앙으로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를 보고 넘어 가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출 12:13). 이 하나님의 약속대로 장자 재앙이 내리는 그 날 밤 죽음의 사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문설주에 발린 어린 양의 피를 보고 넘어간 것입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약속 안에 있었기 때문에 허물과 패역을 보지 아니하시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 당시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의 교회에는 거짓 선생들이 일어나 성도들을 유혹하여 발람의 길을 가게 하였습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 살펴본 2:15-16절을 보면 “저희가 바른 길을 떠나 미혹하여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좇는도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자기의 불법을 인하여 책망을 받되 말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소리로 말하여 이 선지자가의 미친 것을 금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발람의 길은 유다서 11절에도 보면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을 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화 있을찐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 갔으며, 고라의 패역을 좇아 멸망을 받았도다”(유:11). 그리고 요한계시록 2:14절에 보면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들에서 볼 때 발람의 길은 불의의 삯과 우상의 제물과 음행하게 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유혹은 인간의 종교적인 정성이나 사술을 통하여 자기들 마음대로 복과 저주를 조절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 말씀을 통해서 이러한 거짓 선생들의 유혹의 모습과 그 결과를 보고자 합니다.

 

 17절을 보면 “이 사람들은 물 없는 샘이요, 광풍에 밀려가는 안개니. 저희를 위하여 캄캄한 어두움이 예비 되어 있나니”라고 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거짓 선지자들과 거짓 선생들은 물 없는 샘이며, 광풍에 밀려가는 안개라고 합니다. 이 말은 외형은 무언가 있는 것 같은데 실상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속이는 것입니다. 샘에 물이 없으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광풍에 밀려가는 안개라고 하는데 무언가 있는 것 같지만 잠시 후에 보면 아무 것도 없는 것입니다. 여기 광풍에 밀려가는 안개를 비 없는 구름으로 보아도 됩니다. 하여튼 거짓 선생들은 무언가 주는 것 같지만 실상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들의 결국이 어떠하다고 합니까? 저희를 위하여 캄캄한 어두움이 예비 되어 있다고 합니다. 곧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이 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유다서 11-13절을 보면 “화 있을찐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갔으며, 고라의 패역을 좇아 멸망을 받았도다. 저희는 기탄없이 너희와 함께 먹으니 너의 애찬의 암초요,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요, 바람에 불려가는 물 없는 구름이요,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요, 자기의 수치의 거품을 뿜는 바다의 거친 물결이요, 영원히 예비 된 캄캄한 흑암에 돌아갈 유리하는 별들이라”고 했습니다. 유다서의 이 경고의 말씀이 베드로후서의 경고의 말씀과 비슷합니다. 유다서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베드로 사도가 말하는 거짓 선생들에게 임할 하나님의 심판이 어떠한 것인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유다서에서는 베드로후서와는 달리 발람 외에 가인과 고라가 함께 언급되고 있습니다. 이들은 바람에 불려가는 물 없는 구름이며,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나무며, 결국 캄캄한 흑암에 돌아갈 자들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왜 이들의 유혹에 끌려가는 것입니까? 가인과 발람과 고라의 공통점은 하나님의 언약보다 사람들의 요구를 먼저 내세우는 것입니다. 곧 사람이 하나님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위하여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사람의 탐욕을 교묘히 채워주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들이 거짓 선생들의 유혹에 넘어가는 것은 자기를 기쁘게 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곧 자기 욕망 때문입니다. 창세기 4장에 보면 가인과 아벨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가인의 제사는 받아 주시지 않고 아벨의 제사는 받아 주셨습니다. 이 때 가인은 자신의 제사를 돌아보며 하나님께 회개했어야 마땅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동생에 대한 시기심에 사로잡혀 동생 아벨을 돌로 쳐 죽였습니다. 왜 내 제사는 받아 주지 않고 동생의 제사는 받아 주는가 하는 것이 바로 가인의 길인 것입니다.
 

민수기 16장에 보면 고라의 반역사건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레위의 증손 고핫의 손자 이스할의 아들 고라와 르우벤 자손 엘리압의 아들 디단과 아비람과 벨렛의 아들 온이 당을 지어 이스라엘 자손 총회에서 택함을 받은 족장 이백 오십인과 함께 일어나 모세와 아론을 거스렸습니다. 고라의 반역은 하나님이 왜 사람을 차별대우 하는가 하는 항의입니다. 곧 왜 모세의 말만 들어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어떻게 사용하시든 하나님의 뜻인데도 그것에 대하여 불만을 가진 것입니다. 곧 하나님의 선택에 대한 불만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도전하는 행위입니다. 자기가 주인이 되고자 하는 악한 행위입니다.
 

오늘 본문 18-19절을 보면 “저희가 허탄한 자랑의 말을 토하여 미혹한데 행하는 사람들에게서 겨우 피한 자들을 음란으로써 육체의 정욕 중에서 유혹하여 저희에게 자유를 준다 하여도 자기는 멸망의 종들이니 누구든지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됨이니라”고 했습니다. 허탄한 자랑을 하며 그릇되게 행하는 사람들에게서 겨우 피하여 나온 자들에게 또다시 음란으로써 육체의 정욕으로 유혹하는 것입니다. 곧 겨우 세상의 정욕의 유혹에서 피하여 나온 자들에게 자유를 준다는 말로 미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나왔더니 오히려 고생하는 것이 무슨 구원이며, 무슨 자유냐며 그런 것에서 자유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재미와 영광을 마음껏 취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유라고 하면서 세상에서 겨우 피하여 나온 자들을 다시 유혹하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출애굽과 관련해서 생각해 봅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빠져나와 광야에서 어떻게 모세를 대적하였습니까? 출애굽기 15:22-24절에 보면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길을 행하였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백성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 가로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라고 했습니다. 또 출애굽기 16:1-3절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엘림에서 떠나 엘림과 시내산 사이 신 광야에 이르니 애굽에서 나온 후 제 이월 십오일이라. 이스라엘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았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하여 내어 이 온 회중으로 주려 죽게 하는도다”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원하여 준다고 해 놓고 왜 이렇게 고생시키는가 하면서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애굽에서 나왔다면 양식도 풍부하고 물도 마음껏 마실 수 있는 곳으로 인도해야지 어떻게 광야로 인도하여 다 죽게 만드는가 하면서 항의를 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한 것입니다. 그들은 이것을 자유로 여기는 것입니다. 이처럼 거짓 선생들이 자유를 준다고 유혹하지만 그들은 멸망의 종들이기에 자유를 줄 수가 없습니다. 사람이 저지른 최초의 범죄가 하나님으로부터 자유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선악과를 따먹고 자신이 하나님이 되어 하나님으로부터 자유 하고자 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우리 인생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자유 하였습니까? 아닙니다. 도리어 죄의 종이 되고 말았습니다. 마귀의 종이 되고 말았습니다. 자유가 아니라 영원한 캄캄함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자유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이 되는 것입니다. 죄의 종에서, 마귀의 종에서, 영원한 멸망과 캄캄함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자유입니다. 그런데도 마귀는 계속하여 여호와와 그 기름부음 받은 자에게서 우리를 끊어내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유혹을 자유라는 고상한 이름으로 미혹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베드로 당시 교회 성도들에게만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오늘날 우리에게도 있는 이야기입니다. 오늘날도 거짓 선생들은 우리들을 유혹하여 자기가 주인이 되어 자유 하는 인생을 살도록 유혹합니다. 주님이 주신 자유로 이제 세상에서도 성공하고 자기가 주인이 되어 살도록 유혹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들으면서 율법과 종교성에서 자유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자유 한다고 하면서 복음을 듣기 전보다 더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을 사랑하고 있다면 그것이 과연 자유입니까? 전에는 자신의 행함의 결과로 인하여 복과 저주가 결정된다는 생각에 무언가 두려움이라도 있었지만 이제는 노골적으로 세상을 사랑하는 것을 복음이라는 이름으로, 자유라는 이름으로 행하고 있다면 이것은 자유가 아닌 것입니다. 이런 자유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놓이는 자유를 말하는 것입니다. 곧 자기가 주인이 되어 사는 삶입니다. 이것은 다시 마귀의 종으로 돌아가는 어리석은 삶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결코 우리의 율법적인 행함이나 도덕적인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주님의 미리 아심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입게 하려고 성령이 임하신 것입니다. 그런 자는 세상의 썩어질 것들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게 된 자들입니다. 이렇게 된 자들은 하나님께서 죄인들에게 베풀어주신 그 놀라운 사랑과 은혜를 더욱 알아가면서 주께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 자신이 자유라고 하는 그 자유가 누구의 자유인가를 봐야 하는 것입니다. 19절을 다시 보면 “누구든지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리스도의 종인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사단을 이기심으로 우리를 그리스도의 종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다시 옛날 마귀의 종노릇을 하고 있다면 그것이 과연 누구의 종인가 하는 것입니다. 마귀의 종인 것입니다.
 

20-22절을 보겠습니다. “만일 저희가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저희에게 나으니라. 참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저희에게 응하였도다”라고 했습니다. 만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가운데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 버리는 것보다 아에 알지 못하는 것이 차라리 났다고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어떤 모습입니까? 예수님을 알고 복음을 알았습니까? 그런데 실제 우리의 삶의 모습은 어떤 모습입니까? 자유를 말하면서도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라 마귀의 종노릇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흔히 하는 말로 머리만 커지지 않았습니까? 입만 살아있지 않습니까? 과연 복음을 아는 자의 모습이 나의 삶 속에 나타납니까? 우리는 우리 자신들의 모습을 돌아봐야 합니다. 주님께 충성하지도 못하고 제대로 순종하지도 못하면서 입으로 떼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부담 되는 말씀은 애써 외면하고 교묘한 말로 피하여 가는 것은 아닌지, 우리는 우리 자신들을 돌아봐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안다고 하고, 자유 한다고 하면서 우리의 모습이 22절의 모습과 같다면 그것은 거짓 된 자유에 속고 있는 것입니다. 개가 토하였던 것에 다시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는 말이 저희에게 응하였다고 했습니다. 저희는 세상의 더러움을 피하여 그리스도를 안 후에 그렇게 된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여기에서 피할 수 없는 자들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라는 것입니까? 히브리서 3장을 보고 마치겠습니다.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저가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충성하시기를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한 것과 같으니. 저는 모세보다 더욱 영광을 받을만한 것이 마치 집 지은 자가 그 집보다 더욱 존귀함 같으니라.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 또한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사환으로 충성하였고 그리스도는 그의 집 맡은 아들로 충성하였으니 우리가 소망의 담대함과 자랑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의 집이라. 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노하심을 격동하여 광야에서 시험하던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 거기서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여 증험하고 사십년 동안에 나의 행사를 보았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이 세대를 노하여 가로되 저희가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내 길을 알지 못하는도다 하였고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저희는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니. 형제들아! 너희가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한 자가 되리라. 성경에 일렀으되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노하심을 격동할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 하였으니. 듣고 격노케 하던 자가 누구뇨. 모세를 좇아 애굽에서 나온 모든 이가 아니냐. 또 하나님이 사십년 동안에 누구에게 노하셨느뇨. 범죄 하여 그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진 자에게가 아니냐.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뇨. 곧 순종치 아니하던 자에게가 아니냐. 이로 보건대 저희가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라고 합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집에 사환으로 충성하였지만 예수님은 그의 집을 맡은 아들로 충성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곧 거짓 자유에 속지 말라는 것입니다. 거짓 자유란 그리스도와 하나님에게서 떨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고 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거짓 선생들의 유혹에 빠지지 않게 붙잡아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로 주님이 주신 그 자유를 굳게 붙잡고 주님이 다시 오실 그날을 소망하며 믿음으로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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