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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벧후 3:1-7
성경본문내용 (1)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둘로 너희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하게 하여(2)곧 거룩한 선지자의 예언한 말씀과 주 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하노라(3)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4)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5)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6)이로 말미암아 그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7)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강설날짜 2012-05-06
동영상 http://flvs.daum.net/flvPlayer.swf?vid=lhCxRqxyKqM$
모바일동영상 http://m.tvpot.daum.net/clip/ClipView.tv?clipid=41584909

2012년 베드로후서 공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말씀:베드로후서 3:1-7 

 

   오늘부터 베드로후서 3장을 공부하겠습니다. 베드로후서 3장에서는 베드로 사도가 이 서신을 기술하는 이유(1-7)와 흩어진 나그네들에게 주님에 대한 재림 신앙을 심는 내용(8-14)과 그리고 마지막 권면의 말씀으로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15-18)는 권면의 말씀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 말씀을 통해서 베드로 사도가 베드로후서를 기록하는 이유를 배우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 1-2절을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둘로 너희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하게 하여 곧 거룩한 선지자의 예언한 말씀과 주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하노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베드로 사도가 두 번째 편지 곧 베드로후서를 쓰는 이유 성도들의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거룩한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과 주되신 구주께서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함이었습니다. 우리가 이 말씀에 기초해서 볼 때 당시 이 서신을 받고 있던 소아시아의 여러 교회에 흩어져 있던 성도들 가운데 진실한 마음을 상실하고 사도들이 명한 것을 잊고 있던 자들이 많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2장에서 집중적으로 살펴봤듯이 당시 교회에는 거짓 선지자들과 거짓 선생들이 나타났습니다. 이들의 유혹에 넘어가 스스로 멸망의 길로 가고 있던 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이런 그들의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사도들이 전한 복음을 바르게 생각하게 하려함이었습니다. 그래서 멸망 길로 가지 않고 생명의 길로 가게 하려 함이었습니다.

 

   사도들이 활동하던 초대교회 때는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한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런데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은 죽어가고 오신다는 예수님은 아직 오시지 않자 여러 가지 혼동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런 때를 틈타서 주의 강림이 없다고 말하는 자들이 교회에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 사도는 그들의 거짓 교훈을 경계하고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주님의 강림을 기다리도록 하기 위하여 이 서신을 기록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편지를 읽으면서 우리가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 하면 거룩한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과 주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약을 보면 많은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그리스도가 오신다는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사야서를 비롯해 선지서들을 보면 그리스도가 오실 것을 많은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예언한 대로 메시아가 오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신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사도들을 통하여서 그 오신 메시아를 증거 할 뿐만 아니라 다시 오실 메시아를 증거 하는 것입니다. 


   먼저 구약의 선지자들이 그리스도에 대해 어떻게 예언하고 있는지를 보겠습니다. 우리가 구약의 예언을 시간 관계상 다 살펴볼 수는 없고 이사야서에서만 보겠습니다. 이사야 7:14절에 보면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고 했습니다. 9:6-7절에 보면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고 했습니다. 또 11:1절에서는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라고 했고, 10절에서는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호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고 했습니다. 32:1-4절에 보면 “보라! 장차 한 왕이 의로 통치할 것이요, 방백들이 공평으로 정사할 것이며, 또 그 사람은 광풍을 피하는 곳, 폭우를 가리우는 곳 같을 것이며, 마른 땅에 냇물 같을 것이며,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 같으리니. 보는 자의 눈이 감기지 아니할 것이요, 듣는 자의 귀가 기울어질 것이며, 조급한 자의 마음이 지식을 깨닫고 어눌한 자의 혀가 민첩하여 말을 분명히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53:1-6절에서는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이사야서만 봐도 그리스도가 오신다는 것을 여러 곳에서 예언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1:10-12절을 보면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을 미리 증거 하여 어느 시,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고한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거룩한 선지자들이 그리스도의 영으로 인하여 부지런히 연구하고 살펴서 그 받으실 고난과 얻으실 영광을 미리 증거 하였습니다. 그 예언대로 메시아가 오셨습니다. 

 

   그런데 사도들은 오신 메시아를 증거 할 뿐만 아니라 다시 오실 메시아를 증거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사도들에게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약속도 이 시간에 다 살펴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에서만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10:23절에 보면 “이 동네에서 너희를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고 했습니다. 16:27-28절에서는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23:39절에서는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26:64절에서는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사도들은 다시 오실 예수님을 힘써 증거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갈수록 주님의 재림을 확신을 하는 사람은 적어지고 오히려 조롱하는 자들이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말세의 특징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이렇게 예배에 참석합니다만 과연 이 세상이 주님이 재림하시면 다 불살라질 것을 믿고 사십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우리 마음대로 믿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계시를 따라서 믿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약속하고 있는 것을 믿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물론 이런 믿음은 우리의 이성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임하여 우리의 눈과 마음을 열어주셔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성경에서 말하는 모든 하나님의 약속들이 다 믿어지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과 2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데서 하나님의 말씀이 ‘있으라’고 하시니 있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창조의 능력이 있어서 천지 창조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어떤 과학자가 무어라고 말하여도, 온 인류가 다 믿지 못한다고 하여도 주의 영이 임한 자는 천하가 없어지더라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변함없이 일점일획도 틀림이 없이 그대로 성취되었고 또 앞으로도 말씀하신 그대로 다 성취될 것을 믿는 것입니다. 이것을 성경대로 믿는 믿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말세에 어떤 자들이 나오는 것입니까? 3-4절을 보면 “먼저 이것을 알찌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라고 합니다.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기롱이란 조롱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재림과 모든 자의 부활과 세상의 심판과 이 세상이 불살라 없어질 것을 믿는 자들을 보고 세상은 조롱하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의 재림과 심판과 같은 이런 말씀을 세상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어떻게 보겠습니까? 광신도들의 미친 소리쯤으로 여기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인 교회가 이 말씀을 그대로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과연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우리 교회가 오늘날 주의 이 약속의 말씀들을 믿고 오늘이나 내일이나 주님께서 다시 오시기를 간절히 사모하며 삽니까? 요한계시록 끝에 기록된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라는 말씀대로 주님이 속히 오신다는 말씀에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며 기다리고 있습니까? 이런 믿음이 있는 자들에게 주의 은혜가 있을 것이라고 성경은 결론을 맺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2:21절에 보면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찌어다. 아멘!” 여기서 모든 자란 주님의 재림을 믿고, 주님이 속히 오시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성도들을 가리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은혜가 있다면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릴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이 불살라 없어질 것을 믿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란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하기를 간절히 사모하며 기다리는 자입니다. 그런데 믿는다고 말하는 자들마저 세상의 종말이 없는 것처럼 살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 이유는 자기들의 정욕대로 살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정욕이란 결국 땅에 속한 것으로 눈에 보이는 것들입니다. 그것들을 좋아하고 사모하면서 사는 자들에게는 세상이 불타 없어진다는 말씀이 걸림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할 수만 있다면 종말이 없다고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으니 직접적으로 종말이 없다고 말은 못하고, 실제 사는 모습은 종말이 없는 사람들처럼 사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서로 종말에 관하여 곧 심판에 관하여 언급하기를 기피하는 것입니다. 혹 언급하는 자들이 있으면 조롱하는 것입니다. 4절을 다시 보면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에 있느냐”는 것입니다.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된 때와 같이 그냥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에 종말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 자들의 이론입니다. 세상은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이 땅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성경에서 땅이 영원하다는 말씀도 있습니다. 전도서 1:4절을 보면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지만 땅은 영원히 있도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런 구절을 가지고 여호와의 증인들은 이 땅이 영원하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말씀을 오해한 것입니다. 이 말씀은 허무한 인생에 비하여 땅이 영원한 것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 영원해 보이는 땅마저도 불살라 없어진다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벧후 3:7).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을 한 부분만 가지고 자기들의 주장을 정당화하는 일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세상의 정욕대로 살고 싶은 사람들은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을 믿지 않습니다. 세상이 멸망할 것도 믿지 않습니다. 그런 말씀을 믿고 사는 자들을 조롱합니다. 

 

   오늘날 교회의 대세가 종말과 심판에 대한 말씀이 거의 사라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라는 말은 너무 원색적이라서 싫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를 해도 심판이니, 지옥이니, 멸망이니 하는 이런 말은 혐오감을 주기 때문에 되도록 피하고 사랑, 행복, 성공, 번영, 복을 이야기 하자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하는 것입니까? 5절을 보면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라고 했습니다. 하늘과 땅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된 것을 의도적으로 잊어버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이 신이 수면 위에 운행하시고 땅이 조성되는 것이 물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물과 뭍을 분리하여서 바다와 땅으로 구별하십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씀으로 천지가 창조된 것을 잊어버리려고 하는 사람들이 바로 주님의 강림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이 세상은 죄악으로 말미암아 물로 한번 멸망을 받은 세상입니다. 6절을 보면 “이로 말미암아 그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라고 합니다. 노아 홍수 때에 사람들이 물로 심판을 받은 것은 노아를 통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노아를 외면한 것입니다. 그들은 노아를 조롱하였습니다. 세상을 물로 심판한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은 믿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홍수가 나서 저희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고 사고 팔고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만이 오직 그들의 삶의 목표였던 것입니다. 그때에 물의 넘침으로 모든 사람이 멸망을 당하였습니다(창 6-8장). 

 

   이 성경의 말씀이 믿어지십니까? 믿기는 해야 되겠는데 믿으려고 하니 내가 정욕대로 살고 싶은 것에 걸림이 됩니까? 우리가 이러하든 저러하든 간에 주님의 약속은 변함없이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천지가 말씀대로 창조되고 말씀대로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은 만물이 다 주에게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가게 하시는 조치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란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한 하나님의 말씀대로 된다는 것을 믿고 사는 자들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모든 성경의 말씀을 일부러 잊어버리기 위하여 ‘주의 강림도 없다, 세상의 심판도 없다, 이 세상은 처음 지어질 때부터 원래 그대로 있다’고 자기들끼리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들의 마음의 정욕을 따라 살고 싶어서 애써 피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들이 세상의 끝이 없다고 하고, 주의 강림이 없다고 한들 주의 약속이 취소되거나 파기되는 일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노아 홍수심판 때에 노아 가족 외에는 다 멸망당하였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집니다. 마태복음 5:17-18절에 보면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지금 눈에 보이는 이 하늘과 땅은 어떻게 됩니까? 7절을 보면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바 되었다고 합니다. 그 동일한 말씀이란 노아 홍수 때에 세상을 멸망시킨 그 말씀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십니다. 히브리서 13:8절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라고 했습니다. 그 동일하신 분이 말씀하신 것도 다 동일한 말씀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것도 동일한 말씀이요, 노아 홍수심판을 이루신 것도 동일한 말씀이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것도 동일한 말씀이요, 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다시 살아나신 것도 동일한 말씀이요, 부활승천하시고 성령을 보내신 것도 동일한 말씀이요, 예수님이 영광중에 다시 오셔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고 이 세상을 불로 심판하실 것도 동일한 말씀으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란 하나님이 약속하시고 그 약속하신 바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신실하게 이루어내시는가를 계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어디에 기초하여야 하는 것입니까? 영원토록 동일한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지식이나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내 뜻이 아니라 주님의 뜻에 세워져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에 기초하지 않은 신앙은 다 헛 것입니다(마 7:24-27). 

 

   그러면 이 세상이 아직 보관되어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7절을 다시 보면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자신의 정욕대로 세상의 욕심을 따라 사는 경건치 아니하는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관하여 두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재림하시면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 세상은 추수마당이 되는 것입니다. 곧 알곡은 모아서 창고에 들이고, 가라지는 꺼지지 아니하는 불에 집어넣으실 것입니다(눅 3:17).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재림과 옛 하늘과 옛 땅이 불살라지기 위하여 보존되고 있다는 사실을 믿고 사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는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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