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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빌 2:5-11
강설날짜 2017-08-13

2017년 빌립보서 공부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말씀:빌립보서 2:5-11

 

오늘도 우리는 지난 시간에 이어서 빌립보서 2장 말씀을 공부하고자 합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본문 말씀은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말씀입니다. 대부분 암송을 하거나 마음에 간직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비워서 종의 형체를 입으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자기를 낮추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셨습니다. 따라서 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지극히 높여서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시고 모든 무릎을 그 앞에 꿇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고백하게 하셨습니다. 이를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이 말씀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낮아지심과 높아지심을 노래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교회에 말씀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는 빌립보서의 문맥 속에서 이 부분이 어떤 역할을 하는가를 먼저 살펴보고, 그 다음에 이 구절들이 말하는 의미들을 하나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리가 오늘 본문을 앞뒤의 문맥과 비교하면서 찬찬히 읽어보면 어떤 배경 속에서 주어지고 있는지 발견할 수 있습니다. 5-11절을 보면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앞부분 곧 2-3절 말씀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라는 말씀과 뒷부분 곧 12절 말씀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 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말씀과 직접적으로 연결됨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5-11절 말씀이 빌립보교회 안에 있는 분열을 치유하려고 가르치는 말씀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 살펴 본 1-4절 말씀을 보면 당시 빌립보교회 가운데 분열과 다툼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빌 2:1-4). 이 말씀에 보면 빌립보교회 가운데 마음을 같이 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다툼과 허영이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한 마음을 품지 못하고 분열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바로 이와 같은 빌립보교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리스도의 모범만을 따로 떼어서 생각하면 개인주의적이 됩니다.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의 모범이 빌립보교회 교인들의 생활 속에서 교회적으로 나타나기를 원하였습니다.

 

먼저 오늘 본문 5절 말씀을 살펴본 다음에 이 문제를 다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5절을 다시 보면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짧은 구절은 번역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이 구절을 문자적으로 옮기면 이렇습니다. ‘너희들 안에서 생각하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입니다. 후반부에는 동사가 없기 때문에 무엇을 보충하여서 읽느냐가 해석에서 미묘한 차이를 가져옵니다. ‘있는 것’을 보충할 수도 있고, ‘생각할 것’을 보충할 수도 있습니다. 또 다른 문제는 ‘너희 안에’를 ‘개인의 마음 안에’로 이해할 것인가, 아니면 ‘교회로서 그들의 관계 가운데’로 이해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전통적으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마음을 내가 품는다’라는 의미로 이해했습니다. 물론 이것도 좋은 해석 중에 하나입니다. 개인적인 겸손이 없으면 공동체적인 겸손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렇게만 이해하면 전체적인 문맥에 맞지 않습니다. 신자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생각해야 할 것’을 교회 공동체에서 마땅히 생각하고 나아오라고 이해하는 것이 전체 문맥에 더 잘 어울립니다. 그렇지만 다시 강조하는 것은 이러한 해석이 전통적인 해석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교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리스도와 연합하여서 살지 않으면 온 교회 회중이 전체적으로 그리스도의 모범을 구현할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빌립보서 전후문맥을 살펴보면 바울 사도는 빌립보교회 안에서 생긴 분열과 다툼을 해결해 주려고 그리스도의 모범을 들어서 가르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모범은 개인적인 차원으로만 국한되어서는 안 되고 빌립보교회의 삶에서 온전히 드러나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너희들 가운데’라고 복수로 말하면서 그리스도의 겸손과 낮아지심이 그들 가운데서 교회적으로 나타나게 하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문제를 실제적인 측면에서도 접근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간직하고 따릅니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이겠습니까? 신자가 개인적으로 겸손한 태도를 품는 것이 매우 중요하고 기초가 되지만, 이것을 전부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개인주의적으로 접근하면 겸손이라는 덕목을 결코 이룰 수 없습니다. 개인주의적으로 노력하면 자기가 다른 사람보다 더 겸손하다는 데로 귀결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영적 자부심’은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비우신 겸손과는 멀리 떨어진 것입니다. 겸손은 개인적으로 노력할 덕목이지만 개인주의적으로는 얻을 수 없는 것이고, 그리스도의 몸에 속한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교회로서 그들의 서로의 관계 속에서 겸손한 모습이 온전히 드러나게 하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모범은 교회적으로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본문을 이런 교회적인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오늘 본문의 의미를 하나 하나 살펴보겠습니다. 우리가 한 마음을 품고, 남을 낫게 여기며, 자기 일을 돌아볼 뿐만 아니라 남을 돌아보려면 우리의 본성으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오늘 본문 5절에서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고 합니다. 그리스도가 가졌던 마음은 오늘날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의 모범이요, 표준이 됩니다.

 

그러면 그리스도가 가졌던 마음은 어떠합니까? 6-8절을 다시 보면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그리스도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원래 ‘하나님의 형태로’ 계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원래 신분, 지위, 존재를 말합니다. 곧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 전에 그가 어떤 모습으로, 어떤 존재로 계셨는가 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원래 하나님으로 계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니 그의 원래 신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원래 하나님의 아들이셨고 하나님의 신분으로 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늘에서 모든 권세와 영광을 누리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자기 권리를 주장하지 아니하셨습니다. 6절을 다시 보면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원문으로 직역하면 ‘하나님과 동등 된 것을 탈취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가 됩니다. 여기서 ‘하나님과 동등 된 것들’이란 하나님과 동등 된 지위, 자격, 권세와 영화를 의미합니다. 곧 하늘에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좋은 것들, 권리들, 특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러한 권리를 탈취물로 여기지 아니하셨습니다. 여기서 ‘취할 것’으로 번역된 ‘aJrpagmov"’(하르파그모스)라는 단어는 ‘갑자기 낚아채다, 강제로 취하다’라는 뜻의 동사 ‘aJrpaζωJ’(하르파조)에서 온 것으로서 ‘빼앗은 것, 탈취물, 전리품’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 단어는 원래 군인들이 전쟁에서 적군을 쳐서 이겼을 때 적군에게서 취하는 노략물 곧 전리품을 뜻하는데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전리품은 절대적으로 이긴 자의 소유가 됩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달라고 말할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여기서 ‘노략물, 전리품’이라고 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자기의 소유인 것, 자기의 권리, 이미 획득해 놓은 기득권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하지 아니하셨다’는 것은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 된 지위, 신분, 영광을 자기가 마땅히 누릴 수 있는 권리, 자기 자신의 고유한 권리 곧 기득권으로 여기지 아니하셨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하늘나라에서 하나님으로서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자기의 기득권으로 여기지 아니하셨습니다. 즉 자기 권리를 주장하지 아니하셨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자기 권리를 주장하셨다면 이 땅에 내려오시지 아니하셨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내려오지 아니하셨다면 우리 모두는 다 죄에서 멸망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모든 영광과 권세를 누릴 수 있었지만 그것을 자기 권리로 주장하지 아니하셨습니다. 그 기득권을 포기하시고 인간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겸손이시고 자기 비하이시며, 우리들을 향한 사랑과 긍휼입니다. 이 주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우리가 참으로 겸손해지려면 우리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해야 합니다. 목사는 목사대로, 장로는 장로대로, 집사는 집사대로, 성도는 성도대로 자기 기득권을 포기해야 합니다. 자기의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고 주장하게 될 때 거기에 아웅다웅 다툼이 있고 분열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기득권으로 포기한다는 것은 우리의 본성으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어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하늘의 모든 영광과 권세 곧 모든 기득권을 버리시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낮아지심과 겸손을 덧입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가운데 모든 다툼과 분열을 제하여 주시고 한 마음으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겨나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예수님은 자기의 기득권을 포기하실 뿐만 아니라 도리어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과 같이 되셨습니다. 7절을 다시 보면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자기를 비웠다’라는 것은 자기의 권리, 기득권, 존귀한 지위를 포기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신 것 자체가 크나큰 권리의 포기이며, 자기 비하입니다. 여기서 ‘종의 형체를 취했다’는 것은 비천한 존재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종’(dou'lo", 둘로스)이란 비천한 존재, 다른 사람을 섬기는 존재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습니다. 마가복음 10:45절을 보면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대접을 받고 영광을 받으시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자들의 생명을 위해서 멸시를 당하시고 천대를 받으시고 고난을 당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여기서 “사람들과 같이 되었다”는 말을 직역하면 ‘사람들의 모양으로 되었다’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우리와 동일한 존재, 영혼과 육체를 가진 연약한 존재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곧 완전한 인간이 되셨다는 말입니다. 8절을 다시 보면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다’는 말을 직역하면 ‘모습에 있어서 사람으로 발견되셨다’가 됩니다. 즉 예수님은 본질상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외적 모습으로 볼 때에는 우리 인간과 똑같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단지 그는 죄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죽기까지 복종하셨다”는 말은 ‘자기를 낮추셨다’는 것을 부연 설명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 말을 직역하면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는 자가 되셨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이 세상에서의 삶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는 삶이었습니다. 요한복음 4:34절에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26:39절에 보면 마지막 죽음을 앞두고서도 예수님께서는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셔서 십자가의 길을 가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심은 그의 순종의 극치였습니다. 예수님의 순종은 중도에 그만둔 것이 아닙니다. 끝까지 곧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죄인들을 위해서 자기 목숨을 버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는데 예수님께서는 이 뜻을 받아들이시고 끝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온전하신 순종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함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신 예수님을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9-11절을 다시 보면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9절의 ‘이러므로’라는 말은 예수님 편에서 하신 일이 끝난 후의 하나님의 반응을 나타냅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실 때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다 보고 계셨습니다. 그러다가 때가 되매 하나님이 일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예수님을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다”는 것은 예수님을 모든 존재 위에 뛰어나게 하셨다는 의미입니다. ‘이름’은 성경에서 인격을 뜻합니다. 곧 어떤 사람 또는 존재의 신분이나 지위, 권세 또는 명예를 뜻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신 예수님을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10-11절 말씀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높이신 목적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그러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신 목적이 무엇이라고 합니까? 10-11절을 다시 보면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하늘에 있는 자들’은 하늘의 천사들과 주 안에서 죽은 성도들을 말합니다. 그리고 ‘땅에 있는 자들’이란 땅 위의 모든 사람들과 존재들을 말합니다. 그리고 ‘땅 아래 있는 자들’이란 지하세계 곧 음부의 악령들과 믿지 않고 죽은 자들을 말합니다. 이 세 표현들은 전체로서 온 세상, 온 우주의 모든 존재들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강조하는 것은 ‘모든 무릎이 예수의 이름 앞에 꿇게 되는 것’입니다.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경배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여기서는 일반적인 의미에서 굴복한다는 의미입니다. 곧 어쩔 수 없이 예수님의 주 되심을 인정하고 고백한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그들이 참으로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구원 받는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구원은 아니지만 이제 모든 피조물이 예수 그리스도의 주 되심을 인정하고 고백하고 복종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를 통해서 모든 입이 예수 그리스도는 주라고 고백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높이신 목적입니다.

 

11절을 다시 보면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주’(kuvrio", 퀴리오스)란 칭호는 특별히 의미가 있습니다. 이것은 사망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모든 천지만물을 다스리시고 주관하시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곧 천지의 주재이시요, 만물의 주관자이시며, 특히 그를 믿는 자들의 주님이 되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시인하다’라는 말은 공개적으로 고백하는 것을 말합니다. 곧 속으로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시인하고 고백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고 고백하는 것이 또한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하나님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 함께 영광을 받으시고 함께 기뻐하십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가운데 시기와 경쟁과 다툼이 없이 한 마음을 이루어 주님의 역사를 섬겨나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시고,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더 나아가 우리에게 주님이 주시는 기쁨으로 충만케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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