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757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Extra Form
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빌 3:12-16
강설날짜 2017-09-17

2017년 빌립보서 공부

푯대를 향하여

말씀:빌립보서 3:12-16

 

우리는 지난 시간에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고자 하는 바울 사도의 간절한 소망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바울 사도가 평소 유익하게 여기던 모든 것을 해로 여기며, 배설물로 여겼던 것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 함이었습니다. 이를 위하여 바울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고자 하였습니다. 바울의 이 소망이 우리의 소망이 되길 원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지난 시간에 계속되는 말씀으로 바울 사도가 푯대를 향하여 곧 하나님께서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쫓아가노라고 고백하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이 말씀을 통해서 오늘날 우리교회에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12절을 보면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고 합니다. 이 말씀에 보면 바울 사도는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고 합니다. 여기서 ‘이미 얻었다’(h[dh ἔlabοvn)는 것은 과거에 이미 ‘성취하였다’, ‘성취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온전히 이루었다’(h[dh teteleίvwμαι)는 것은 완료시제로서 과거 어느 시점에 이미 ‘완전하게 되어서 지금 완전한 상태에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바울 사도가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고 하는 것은 과거에 자기가 이룬 업적으로 인해 자만하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겠다는 그의 마음의 자세를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고 하면서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고 합니다. 여기서 ‘쫓아간다’(diwvkw, 디오코)는 말은 ‘어떤 사람이나 사물을 잡으려고 재빨리 달려나가다’, ‘~의 뒤를 쫓다’라는 뜻으로서 목적지를 향해 빨리 달려가는 경주자의 모습을 묘사합니다. 이와 같은 표현은 바울의 믿음의 특성을 잘 나타내 줍니다. 바울은 믿음을 달리기에 많이 비유했습니다. 고린도전서 9:24-25절에 보면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고 했습니다(참조. 딤후 4:7; 행 20:24; 갈 2:2). 당시 헬라 세계에서는 육상 경기가 빈번하게 개최되었습니다. 따라서 육상 경기자들이 골인 지점을 향해서 전력질주 하는 모습이 그들에게는 매우 익숙한 장면이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바로 이러한 육상에서 달리기 선수들이 골인지점을 향해서 전력질주 하는 그 모습을 연상시키는 단어를 사용해서 자신의 사명을 인식하면서 전진해 나가는 자신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이 단어의 시제가 현재형이고 직설법 능동태로 되어 있어서 적극적이며 끊임없이 앞을 향해서 달려 나가는 모습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미 하늘의 영광을 보고 왔지만 자신이 이미 얻었다고 하지 않습니다. 또한 온전히 이루었다고도 하지 않습니다. 오직 자신이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간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여기서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쫓아간다”라고 했는데 그러면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우리가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을’(ἐφ ᾧ, 엡 호)이 지칭 하는 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기서 ‘그것을’이 의미 하는 바는 두 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첫째는, 이것을 ‘잡으려고’의 목적어로 이해하여 ‘…라는 것을’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개역한글판에서 번역하고 있는 대로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쫓아간다”는 뜻이 됩니다. 또 다른 하나의 가능성은 이것을 인과적으로 보아서 ‘…라는 근거 위에, …하기 때문에’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은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혔기 때문에 나도 잡으려고 쫓아간다”는 의미가 됩니다. 곧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 붙잡힌 바 되었기 때문에 바울 자신도 무언가 잡으려고 쫓아간다는 의미가 됩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견해 중에서 어느 견해가 오른가 하는 문제는 참으로 쉽게 결론을 내리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둘 다 뜻이 통하고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견해에는 큰 차이가 별로 없습니다. 첫 번째 견해를 따르면 주께서 바울을 붙잡은 바의 목표가 강조 되고, 두 번째 견해를 따르면 주께서 바울을 붙잡았다는 사실이 강조됩니다. 우리에게 분명한 것은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잡힌 바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울을 붙잡으신 데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바울을 사로잡으셨습니다. 이것은 그를 구원하실 뿐만 아니라 그를 이방의 사도로 삼으시고자 하심이었습니다. 사도행전 9:15절을 보면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현재 자신이 과거 이룬 업적으로 인해서 자만하거나 교만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붙잡으시고 그 붙잡으신 목적을 따라 끝까지 달려가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자만할 때 그 신앙을 유지하기가 어렵습니다. 아니 그때부터 퇴보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 사로잡힌 바 된 그 은혜 위에 굳게 서서 우리를 사로잡은 그 목적을 향해서 끝까지 달려가야 합니다. 곧 육상 선수들이 골인 지점을 향해서 달려가듯이 달려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로잡으신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부활의 영광에 참예하게 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고 하였습니다(빌 3:10-11). 바울은 이 소망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끊임없이 달려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3-14절을 보면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고 합니다. 바울은 아직 자신이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간다고 합니다. 여기서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한다’는 것은 12절에서 말한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는 말씀과 같은 말입니다. 바울은 자만하지 않고 계속해서 앞으로 달려가는 것입니다. 바울의 목표는 단 한 가지였습니다. 곧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쫓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뒤에 있는 것 곧 지나간 일을 잊어버려야 합니다. 물론 이 말은 모든 과거를 다 잊어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생각해 봐야 소용이 없는 것, 곧 믿음의 경주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과거는 잊어버려야 한다는 뜻입니다.

 

바울에게 있어서는 특히 그가 회심하기 전에 교회를 핍박하던 죄들이 그의 믿음의 경주에 발목을 잡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지나간 일은 잊어버린다고 합니다.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13). 이처럼 어쩔 수 없는 과거의 일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일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지혜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취해야 할 바람직한 신앙의 자세입니다. 사실 지나간 일은 따져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한번 엎질러진 물은 다시 주어 담을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이 과거의 잘못한 일은 다시 되돌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과거의 일은 잊어버리고 앞의 있는 일을 향해서 달려가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과거의 일을 무조건 부정할 것이 아니라 교훈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것을 교훈 삼아서 앞으로 달려가야 합니다. 어떤 점에 있어서 우리가 믿음의 경주에 도움이 되지 않는 과거의 일을 잊어버리는 것은 복입니다. 우리가 믿음의 경주에 도움이 되지 아니하는 과거의 일들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일을 위하여 일심으로 달려 나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13-14절을 다시 보면 바울 사도는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쫓아간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잡으려고’(ejpekteivnomenoς, 에페크테이노메노스)라는 단어는 원래 ‘앞으로 뻗다, 내밀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손을 내뻗는 모습을 연상시킵니다. 이것은 바울의 미래지향적인 태도, 곧 앞을 향해서 달려가는 태도를 말합니다. 바울은 지나간 일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일을 향해서 달려갔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푯대를 향하여 쫓아간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푯대’(skopov", 코스포스)라는 말은 지향 하는 바 목표 곧 목적을 말합니다. 이처럼 바울에게는 목표 곧 방향이 분명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9:23-27절을 보면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예하고자 함이라.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같이 아니하여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바울은 믿음의 경주를 함에 있어서 향방 없이 하지 아니하였습니다. 허공을 치듯이 하지 아니하였습니다.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달려 나갔습니다.

 

그러면 바울의 푯대가 무엇이었습니까? 14절을 다시 보면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바울에게 있어서 푯대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이었습니다.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이란 무엇일까요? 이것은 하나님이 부르신 부름 곧 소명을 이룰 때 하나님이 주실 상(賞)을 말합니다. 이 상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본문에서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것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여기서의 상은 어떤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 같이 단지 ‘구원’이나 ‘영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바울은 지금 의롭다함을 받거나 구원 받는 것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서 ‘쫓아간다’는 말은 열심히 노력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칭의와 구원, 영생이 우리의 노력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열심히 노력해서 의롭다함을 얻고 구원을 얻는다면 그것은 바로 행위구원입니다. 이것은 바울이 가르치는 바와 정면으로 배치됩니다. 3:9절에 보면 바울은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았습니다. 그런 바탕 위에 바울은 또다시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쫓아간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얻고자 한 부름의 상은 칭의나 영생이 아니라 그 위에 하나님이 주실 상급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상급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빌립보서 전체 흐름에 비춰 볼 때 아마도 부활의 영광에 이르는 것을 말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부활의 영광이란 자기가 눈으로 보고 귀로만 들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부활의 영광에 자기의 몸도 온전하게 합류되기를 소원하는 것입니다. 그 부활의 영광이 얼마나 엄청난지 그동안 세상에서 자기에게 유익하다고 여긴 모든 것들을 다 해로 여기고 배설물로 여긴다고 하였습니다. 주님의 재림을 통해서 이루어질 부활의 영광! 이것이 바울이 소망하는 바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바울이 잡은 것이 아닙니다. 장차 주님의 재림을 통해서 이루어질 일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쫓아간다고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향하여 달려갔습니다.

 

우리 모두는 이 세상을 향하여 달려가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 예수에게 잡힌바 되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우리에게 임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썩어질 것을 향해서 달라가던 우리 인생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곧 영원한 생명을 향해서 달려가게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은 놀라운 은혜가 임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오늘날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자꾸만 썩어질 땅의 영광을 위해 달려가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우리가 주님 안에 있지만 우리 인생이 고달픈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염소가 주인이 끄는 대로 끌려가지 않으려고 버티는 모습과 같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주님께 사로잡힌바 되어서 주님이 이끄시는 대로 가는 것입니다. 복음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나 그 어떤 어려움 가운데서도 기뻐하는 것입니다. 도리어 그리스도의 부활의 영광에 참예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유익하게 여겼던 모든 것을 해로 여기고 배설물로 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얻었다고 자만하지 않았고, 온전히 이루었다고 교만하지도 않았습니다. 아직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가지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향하여 달려 가는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우리는 우리 자신들의 모습을 돌아보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바울의 이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이 부활의 영광에 이르는 길입니다. 그리고 이 길은 우리가 선택한 길이 아닙니다. 우리는 본질상 썩을 영광만 구하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런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잡아채어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의 대열에 합류시켜 주셨습니다. 그 길이 세상이 볼 때는 죽음의 길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그 길이 부활의 영광에 이르는 길입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땅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있습니다. 땅에 속한 자들은 땅의 영광을 구하지만 그 결국은 멸망입니다. 이런 모습이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길입니다. 그러나 하늘에 시민권이 있는 사람은 거기로서 구원하실 분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립니다.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시킬 수 있는 그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실 것입니다. 이 영광을 바울 사도는 보았기에 어떻게 하든지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본받아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잡은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고 이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행하여 달려가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의 이 소원이 우리의 소원이 되길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도 바울과 같이 푯대를 향하여 달려 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에 참예하는 복된 자들이 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아멘!

 

오늘 본문 15절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무슨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15). 여기서 ‘온전히 이룬 자들’은 성숙한 성도들 곧 그리스도 안에서 장성한 자들을 말합니다.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하라고 합니다. 여기서 ‘이렇게 생각할지니’라는 말을 직역하면 ‘이것을 생각하자’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이것은 무엇을 가리키는 것입니까? 여기서 이것은 어떤 특정한 것을 가리킨다기보다는 바울이 앞 절에서 말한 것들을 가리킨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12-14절에서 말한 것을 가리킨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 후에 바울 사도는 “만일 무슨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고 합니다. 여기서 ‘달리 생각한다’는 것은 교리나 중요한 진리에 있어서 차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빌립보교회 성도들 상호간에 있을 수 있는 의견의 차이나 생각의 차이를 말합니다. 이것은 온전한 이들 사이에서도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럴 경우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신다고 합니까?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고 합니다. 여기서 ‘나타내다’라는 것은 ‘가리우는 천 베일을 벗기다’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곧 숨겨진 것, 알려지지 않은 것을 드러내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것도 우리에게 알려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숙한 성도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확신해야 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 사실을 말한 후에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16절을 보면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라는 말은 ‘우리가 이미 도달한 곳을 향하여’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과거에서부터 현재에까지 도달한 지점 곧 상태와 상황을 말합니다. 바울 사도는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하라고 권면합니다. 여기서 ‘그대로 행하는 것’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같은 방향을 향해 나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행동에서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과 믿음을 포함하는 말입니다. 바울 사도는 여기서도 우리가 교회 생활을 해 나갈 때에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마음을 가지고 나아가는 것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교회 성도들이 현재 어디에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한 마음 한 뜻으로 푯대를 향하여 달라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TAG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성경본문 설교자 강설날짜 조회 수
303 [사도행전 16장] 감옥과 찬양, 그리고 사도행전 16:25-40 손재호 3157
302 [사도행전 15장] 예루살렘 공의회 사도행전 15;1-35 손재호 3643
301 [사도행전 15장] 마게도냐 인 환상 사도행전 15:36-16:10 손재호 3010
300 [사도행전 14장] 이고니온과 루스드라 선교 사도행전 14:1-18 손재호 4241
299 [사도행전 14장] 안디옥으로의 귀환 사도행전 14:19-28 손재호 2557
298 [사도행전 13장] 비시디아 안디옥 선교 사도행전 13:13-52 손재호 3832
297 [사도행전 13장]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사도행전 13:1-3 손재호 3148
296 [사도행전 13장] 구브로 선교 사도행전 13:4-12 손재호 2720
295 [사도행전 12장] 빈 감옥 사도행전 12:1-25 손재호 3419
294 [사도행전 11장] 장벽을 넘어서 사도행전 11:1-30 손재호 3163
293 [사도행전 10장] 한지붕 세가족 사도행전 10:1-23 손재호 2925
292 [사도행전 10장] 장벽은 무너지고 사도행전 10:24-48 손재호 3001
291 [빌립보서 4장]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file 빌 4:14-23 손재호 2017-11-05 449
290 [빌립보서 4장]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file 빌 4:4-7 손재호 2017-10-15 977
289 [빌립보서 4장]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file 빌 4:2-3 손재호 2017-10-08 494
288 [빌립보서 4장]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file 빌 4:1 손재호 2017-10-01 474
287 [빌립보서 4장] 너희는 내게 배운 바를 행하라 file 빌 4:8-9 손재호 2017-10-22 580
286 [빌립보서 4장]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file 빌 4:10-13 손재호 2017-10-29 667
» [빌립보서 3장] 푯대를 향하여 file 빌 3:12-16 손재호 2017-09-17 757
284 [빌립보서 3장]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고 file 빌 3:10-11 손재호 2017-09-10 417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32 33 34 35 ... 41 Next
/ 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