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방문자 : 
    77
  • 어제방문자 : 
    1,063
  • 전체방문자 : 
    1,419,347
조회 수 3833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Extra Form
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사도행전 13:13-52

2004년 11월 7일 설교
                                                비시디아 안디옥 선교
말씀:사도행전 13:13-52
요절:사도행전 13:38,39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우리는 지난 주에 바나바와 바울이 1차 전도 여행을 떠나 구브로에서 선교 역사를 감당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오늘 말씀은 계속되는 1차 전도 여행으로 비시디아 안디옥 개척 사건입니다. 구브로에서 전도사역 역사를 마친 바울과 바나바는 이제 비시디아 안디옥까지 나아가 전도사역을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안식일에 유대인들의 회당에 들어가 담대히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바울의 설교를 통해 많은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고, 복음이 온 지역에 전파되는 놀라운 역사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 특히 바울의 설교를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구속역사의 섭리와 복음의 비밀을 깨닫고 그 은혜에 동참하는 복된 자들이 되길 바랍니다.

     구브로 선교여행을 성공적으로 마친 바울과 바나바 일행은 구브로 섬에서 출항하여 밤빌리아의 버가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어떤 일이 발생했습니까? 마가라고 하는 요한이 선교 여행을 중도에 포기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버리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마가는 초대 교회를 이끌었던 믿음의 여인들 중에 한 사람이었던 마리아의 아들이었습니다(행 12:12). 이 마리아는 초대 교인들이 합심하여 기도할 수 있도록 자신의 집 다락방을 내어 놓았던 바로 그 여인이었습니다. 또한 마가는 바나바의 생질이었습니다(골 4:10). 그래서 그는 바나바와 바울이 안디옥 교회의 파송을 받아 이방 선교를 위해 1차 전도여행을 떠날 때, 그들을 돕기 위해 수행자로 따라 나섰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그는 선교 여행을 중도에 포기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그가 왜 선교 여행을 중도에서 포기하고 돌아가 버렸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 우리는 잘 알 수 없습니다. 하여튼 이 사건은 바울과 선교여행 팀에 큰 아픔과 상처를 가져다 주었을 것입니다. 2차 전도 여행 때 바나바와 바울이 마가를 데리고 가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로 크게 다투고 각기 따로 선교 여행을 떠나게 된 것을 볼 때 마가가 중도에 선교 여행을 포기하고 돌아가 버린 것은 바울에게 큰 상처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마가는 나중에 믿음을 다시 회복하여 바울의 선교 여행에 좋은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바울이 로마 감옥에 마지막으로 투옥되었을 때 마가에 대해서 디모데에게 이렇게 썼습니다.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딤후 4:11). 마가는 실패를 딛고 일어나 훌륭한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바울의 좋은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믿음의 삶을 살다가 보면 마가와 같이 실패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실패하는 자들을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실패한 본인도 불의에 빠져서는 안됩니다. 그 실패를 통해 연단을 받고 일어나 확실한 믿음의 사람으로 세워져 가야 합니다. 마가는 실패하기를 잘하는 우리들에게 큰 위로와 소망을 줍니다.

     비시디아 안디옥에 도착한 바울은 안식일에 그곳 회당에 들어가 복음을 담대히 증거했습니다. 비시디아 안디옥은 마그네시아에서 온 이주민이 세운 헬라적인 도시였습니다. 이 도시는 헬라적인 사상과 히브리적인 사상, 그리고 로마라는 세 가지 세력이 공존하는 도시였습니다. 바울은 이런 도시에서 안식일에 유대 회당에서 설교를 하였습니다. 바울의 이 설교는 기록된 바울의 설교 중에 첫 번째 설교입니다. 바울의 설교의 특징을 보면 초대 교회 일곱 집사 중 한 사람이었던 스데반의 설교와 비슷합니다. 바울은 그의 설교에서 두 가지를 선포하였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통치이며, 둘째는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바울은 그의 설교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유일한 통치자이시며, 이러한 통치는 지속적이고도 압도적인 은혜의 통치라는 사실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바울은 먼저 이스라엘의 역사를 출애굽의 사건으로부터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이 어떻게 애굽에서 구원을 받아 광야로 들어갔는지를 설명하였습니다. 또한 그는 이스라엘 민족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거한 사실을 언급하며 그들의 역사를 다윗왕 때까지 언급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솔로몬으로부터 느헤미야와 말라기에 이르는 역사를 전부 생략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다윗의 씨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고 선포하였습니다(23).

     바울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다루면서 하나님의 통치가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줄곧 진행되었음을 주장하였습니다. 17절에 보면 출애굽에 관해 언급하면서도 그는 “하나님이 우리 조상들을 택하시고・・・그 백성을 높여・・・인도하여 내사”라는 표현을 사용하였습니다. 광야 40년 동안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저희 소행을 참으시고”(18)라고 묘사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에 들어온 후 일에 관해서는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 일곱 족속을 멸하사 그 땅을 기업으로 주시고”(19)라고 묘사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왕없이 지내면서 위급한 경우을 만났을 때에는 “선지자 사무엘 때까지 사사를 주셨더니”(20)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왕을 구했을 때는 “하나님이 사울을 주셨다가”(21)라고 말했으며, 사울의 죽음을 가리켜서는 “하나님께서 그를 폐하셨다”고 묘사했습니다. 그리고 다윗을 세운 것을 언급하면서는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22)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서는 “동일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다윗의 씨에서 구주 곧 예수를 세우셨다”(23)고 증거했습니다. 바울의 설교의 주어가 하나님입니다. 이처럼 바울이 비시디아 안디옥 회당에서 전한 메시지의 중요한 주제들 중에 하나가 바로 하나님의 통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민족을 택하시고 높이시고 인도하셨습니다. 광야에서 그들의 소행을 참으셨습니다. 양육하는 아버지처럼 그들의 소행을 참으셨습니다. 그들 앞에서 가나안 일곱 족속을 멸하시고 그 땅을 주셨습니다. 그들에게 어려움이 닥쳤을 때 사사들을 세워 주셨습니다. 그들이 극성스럽게 왕을 구했을 때에 그들에게 사울을 왕으로 주셨습니다. 그 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사울을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워 주셨습니다. 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주구 예수를 보내어 주셨습니다. 바울이 언급한 이스라엘의 역사를 볼 때,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온갖 실패에도 불구하고 ‘인간 구원’이라는 그의 궁극적인 목표를 향해 늘 전진하신 분이심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바울의 설교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가 놀라웁게 계시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기독교가 이스라엘과 이방인에게 전하는 메시지의 중심입니다. 바울의 설교 속에서는 인간의 실패가 뚜렷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의 타락과 실패는 단지 이야기의 배경에 지나지 않습니다. 바울은 회당에 모인 이스라엘 사람들과 유대교에 입교한 이방인들에게 인간의 실패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를 역설하고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은혜는 인간의 실패보다 위대한 것으로, 인간의 실패를 뚫고 전진하여 하나님의 목적의 성취를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본래 하나님의 은혜가 먼저 있었습니다. 이 사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셨다는데서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인내하는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오래 참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징계하시면서 훈련하시는 은혜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은혜는 약속을 성취하시는 은혜입니다. 솔로몬, 아합, 아하스, 앗수르, 애굽, 그리고 모든 세력과 재난과 패배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약속하신 대로 구주 예수를 세워 주셨습니다. 이것은 복음의 아름다운 주제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범죄와 실패에도 불구하고 구주를 세워 주셨습니다. 이보다 더 큰 은혜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주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열심히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읽었지만 구주가 오셨을 때 그들은 눈이 멀어서 구주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구주 예수를 핍박하고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것조차도 기록된 말씀을 다 응하게 하려고 이루어진 일이라고 말합니다(29). 끝으로 하나님의 은혜는 완성하는 은혜입니다. 33-35절에서 바울은 구약의 세 구절들을 내세우면서(시 2:7; 사 55:3; 시 16:10), 예수께서 구약에서 가장 높은 기대와 열망과 예언을 이룬 분이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시편 2편은 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바로 이 시편의 왕이십니다. 시편 2편을 인용한 후 바울은 다시 이사야의 한 구절을 시편 16편의 한 구절과 연결시켰습니다. 시편 16편은 “거룩한 자”가 결코 썩음을 당하지 않을 것임을 예언한 시입니다. 바울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여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왕으로 증명 되었음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소망이자 세상의 구주로 증명되었다고 선언합니다. 그리고 바울은 결론적으로 선포합니다. 38,39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바울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곧 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하심을 얻는 다고 선언합니다. 그리고 40절에서 바울은 하박국 선지자의 예언, 즉 신앙이야 말로 인간이 살기 위해서 의지해야할 유일한 원리라는 것을 계시한 예언을 인용하여 “삼가라”고 경고의 말을 합니다. 바울은 인간이 의롭다함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예수를 믿는 길 밖에 없다는 것을 회당에 모인 모든 사람들에게 결론적으로 담대히 선포하였습니다. 바울이 선포한 복음은 ‘믿음을 통한 칭의’ 즉 ‘이신칭의’라는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바울의 선포는 히브리인과 이방인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얻게되는 복음의 놀라운 진리를 선포하였습니다.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합니다.

     그러면 바울의 이 설교를 들은 비시디아 안디옥 사람들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42-52절에 보면, 그들의 반응이 다양하게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반응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용납과 거부였습니다. 먼저 즉각적으로 나타난 반응은 아주 호의적이었습니다. 바울의 설교를 듣고 호의적인 반응을 보인 사람들 가운데는 이방인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바울의 설교를 더 듣기를 원했습니다(42). 그들 중에 일부는 실제로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이들에게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고 권면하였습니다(43). 44절에 보면, 다음 안식일이 왔을 때 온 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모여 들었습니다. 48절에 보면, 그 결과 영생을 얻기로 작정된 많은 이방인들이 구원함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참으로 바울의 설교가 얼마나 놀라운 은혜의 역사를 이루었는가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과는 달리 마음이 완악해진 자들도 있었습니다. 어떤 유대인들은 곧 바로 회당을 빠져 나갔습니다. 그들은 마음에 시기와 분으로 가득차서 선교사들을 반대하고 비방하였습니다(45). 그들은 바울과 바나바의 복음 전파로 복음에 대한 놀라운 반응이 일어나자 즉시로 선교사들을 비방하며 방해하고 나선 것입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이런 자들을 향한 선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버리고 영생을 얻기에 합당치 않는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주께서 이같이 우리에게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너를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46-47). 이런 바울과 바나바의 변론에 유대인들은 비방하였지만, 이방인들은 환영하고 복음을 영접하였습니다. 이제 그 어느 것도, 어느 누구도 주의 말씀이 두루 퍼지는 것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49절에 보면, 주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졌다고 했습니다. 온 비시디아 안디옥에 하나님의 말씀이 전파되었습니다. 예수를 구주로 믿고 구원받는 역사가 충만하게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말씀의 흥왕한 역사와 함께 핍박도 점차 노골적이 되어갔습니다. 유대인들은 성내의 권력자들을 선동하여 선교사들을 핍박하고 쫓아 내고자 하였습니다(50). 그러자 바울과 바나바는 예수님의 가르침대로(눅 9:5; 10:11) 그들의 발의 먼지를 털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고니온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세상의 어떤 박해와 핍박에도 불구하고 영적인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였습니다(52). 그들의 이 기쁨을 누구도 빼앗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두 가지 중요한 영적인 교훈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고난에 대한 섭리적인 이해와 하나님의 예정과 택하심에 대한 진리입니다. 먼저 본문에 보면 유대인들은 바울과 바나바의 구원의 복된 소식을 전하자 이를 시기하고 질투하여 선교사들을 비방하고 팝박했습니다. 이 때 바울과 바나바는 교회사적으로나 구원사적으로 볼 때 아주 중요한 선언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버리고 영생 얻음에 합당치 않는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46). 우리는 이 말씀과 관련해서 마태복음 22:1-14절에 있는 왕의 잔치의 비유가 생각납니다. 이 비유에서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은 택함받은 유대인들이 거부했다고 해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구원 잔치를 포기하거나 중단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복음을 거부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이방인들에게 주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쪽 문이 닫힐 때 한쪽 문을 여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보게 됩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이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을 봤습니다. 예수 믿는 자들은 고난과 환란 가운데서도 이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을 봐야 합니다. 이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을 보고 믿을 때 우리는 어떤 상황과 형편 가운데서도 낙심하지 않게 됩니다. 늘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믿음 안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다음으로 우리는 본문에서 하나님의 예정하심과 택하심의 놀라운 섭리를 보게 됩니다. 48절에 보면, 누가는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는 의미 심장한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는 유대인들이 복음을 거절했을 때 이방인에게로 향하시고,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로 작정된 자들을 다 믿게 하셨고, 지금 하고 계시며,  앞으로도 하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이 놀라운 진리를 로마서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로마서 11장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예정하신 이방인의 수가 충만한데까지 이르게 하시고, 그 후에는 결국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것이라고 합니다(롬11:25). 바울은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구원의 섭리요, 계획임을 고백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배척한 것도 결국에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루어진 일이요, 그 일로 인하여 이방인들에게도 구원의 복된 소식이 전해진 것도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계획에 의해서 이루어진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롬 11:33-34). 우리도 이 하나님의 구속역사의 놀라운 비밀과 섭리를 깨달아 알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바울과 같이 놀라운 감격과 감사와 기쁨 가운데 주님께서 맡겨주신 복음 역사를 섬겨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TAG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성경본문 설교자 강설날짜 조회 수
304 [사도행전 16장] 빌립보 개척 사도행전 16:11-24 손재호 3015
303 [사도행전 16장] 감옥과 찬양, 그리고 사도행전 16:25-40 손재호 3160
302 [사도행전 15장] 예루살렘 공의회 사도행전 15;1-35 손재호 3643
301 [사도행전 15장] 마게도냐 인 환상 사도행전 15:36-16:10 손재호 3010
300 [사도행전 14장] 이고니온과 루스드라 선교 사도행전 14:1-18 손재호 4242
299 [사도행전 14장] 안디옥으로의 귀환 사도행전 14:19-28 손재호 2558
» [사도행전 13장] 비시디아 안디옥 선교 사도행전 13:13-52 손재호 3833
297 [사도행전 13장]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사도행전 13:1-3 손재호 3148
296 [사도행전 13장] 구브로 선교 사도행전 13:4-12 손재호 2722
295 [사도행전 12장] 빈 감옥 사도행전 12:1-25 손재호 3422
294 [사도행전 11장] 장벽을 넘어서 사도행전 11:1-30 손재호 3163
293 [사도행전 10장] 한지붕 세가족 사도행전 10:1-23 손재호 2926
292 [사도행전 10장] 장벽은 무너지고 사도행전 10:24-48 손재호 3002
291 [빌립보서 4장]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file 빌 4:14-23 손재호 2017-11-05 451
290 [빌립보서 4장]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file 빌 4:4-7 손재호 2017-10-15 984
289 [빌립보서 4장]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file 빌 4:2-3 손재호 2017-10-08 495
288 [빌립보서 4장]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file 빌 4:1 손재호 2017-10-01 476
287 [빌립보서 4장] 너희는 내게 배운 바를 행하라 file 빌 4:8-9 손재호 2017-10-22 582
286 [빌립보서 4장]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file 빌 4:10-13 손재호 2017-10-29 668
285 [빌립보서 3장] 푯대를 향하여 file 빌 3:12-16 손재호 2017-09-17 759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32 33 34 35 ... 41 Next
/ 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