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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사도행전 14:1-18

2004년 11월 14일 설교
                                             이고니온과 루스드라 선교
말씀:사도행전 14:1-18
요절:사도행전 14:3    “두 사도가 오래 있어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 주께서 저희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거하시니.”

지난 주에 우리는 비시디아 안디옥 선교 역사를 배웠습니다. 오늘 말씀은 계속되는 1차 전도 여행에 관한 말씀으로 이고니온과 루스드라 선교 역사에 관한 말씀입니다. 바울과 바나바 일행들은 가는 곳마다 주의 은혜의 말씀을 담대히 증거함으로 놀라운 승리의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이 승리의 역사와 함께 이 역사를 방해하고 핍박하는 사단의 역사도 함께 하였습니다. 이 핍박과 방해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주의 손이 선교사들과 함께 하사 승리의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오늘 이고니온과 루스드라 선교 역사를 통해 핍박 가운데서도 땅 끝을 향해 복음이 쉬지 않고 움직이며 전파되는 복음역사의 놀라운 비밀을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그 놀라운         복음 역사에 동참하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유대인들에 의해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쫓겨난 바울과 바나바 일행은 이고니온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선교사들은 그곳에서도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1절에 보면, 이고니온에서도 두 사도들을 유대인의 회당에 함께 들어가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이에 유대와 헬라의 허다한 무리가 듣고 믿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도 순종치 아니하는 유대인들의 핍박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이방인들의 마음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에게 악감을 품게 하였습니다(2). 그런 가운데서도 두 사도는 주를 힘입어 담대하게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이 때 주께서 저희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셨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를 통해 나타난 표적과 기사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었는지는 잘 알 수 없습니다. 사도행전 전체 역사를 통해서 볼 때 질병이 떠나가고, 앉은뱅이와 같은 자가 나음을 받으며, 방언과 같은 성령의 능력의 역사가 일어났던 것 같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런 표적과 기사를 통해 자기의 은혜의 말씀을 증거하게 하셨습니다(3). 두 사도들은 성령의 능력의 역사를 힘입어 은혜의 말씀, 곧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우리의 주와 그리스도가 되신 복음을 담대히 증거하였습니다. 그 결과 그 성내 무리들은 두 패로 나눠져 한 무리는 두 사도를 좇고, 한 부류는 유대인을 좇았습니다(4). 아마 많은 사람들이 두 사도들을 좇았던 것 같습니다. 5절에 보면, 이방인과 유대인과 관원들이 두 사도들을 능욕하며 돌로 치고자 했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볼 때 많은 무리들이 복음을 듣고 믿으며 두 사도들을 좇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복음을 듣고 믿으며 사도들을 쫓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자 사단이 유대인과 관원들을 선동하여 선교사들을 능욕하고 돌로 치고자 하였습니다. 두 사도는 이런 사실을 알고 그곳을 떠나 루스드라와 더베 근방으로 갔습니다. 그들은 그곳에서도 주님의 은혜의 말씀, 곧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의 복음을 전하였습니다(6).

우리는 본문의 사건에서 두 가지 중요한 진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먼저 우리는 바울과 바나바의 모습 속에서 복음의 계속적인 움직임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지난 주부터 보아 알듯이 복음 전파와 함께 핍박이 항상 함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핍박 가운데도 불구하지 복음이 중단되지 않고 계속해서 이웃 도시로 이웃 도시로 전파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도들은 한 도시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핍박을 받으면 그곳을 떠나 다른 도시로 가서 그곳에서 계속해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복음 역사가 핍박 가운데서도 중단되지 않고 계속해서 살아 움직이며 전파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핍박을 받아 이고니온으로 왔습니다. 이들은 이고니온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핍박을 받아 또 다시 루스드라로 이동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거기서도 핍박을 받고 어려움을 당하게 됩니다. 우리는 여기서 두 선교사들은 이 동네에서 박해를 받으면 저 동네로 피하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에 따라 계속해서 움직일 때 복음이 함께 이동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즉, 인간적으로 보면 고난과 핍박을 당해 이리저리 쫓겨다니는 것 같지만, 영적인 면에서 보면 이런 그들의 움직을 통해 복음이 계속해서 운동을 하며 전파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주님은 핍박과 고난을 통해 도리어 복음이 땅 끝을 향해 전파되어 나가게 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복음은 핍박이라는 도구를 통해 도리어 쉬지 않고 운동하며 전파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하신 말씀을 성취해 가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또 한 가지는 복음이 가는 곳에는 항상 두 가지 반응이 나타난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이 복음을 전했을 때, 거기에는 항상 기쁨으로 응답하는 반응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복음이 전파 되었을 때 대적하는 반응도 있었습니다(4). 그들이 복음을 전했을 때 어떤 무리들은 악한 유대인들을 좇았고, 어떤 사람들은 복음을 영접하고 믿으며 사도들을 좇았습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은 어떤 순간에도, 어떤 상황 속에서도 절대로 정지하지 않습니다. 엄청난 고난과 핍박이 있다고 하여도 복음은 계속해서 땅 끝을 향해 전진해 나갑니다. 그래서 복음은 지난 이천년 동안 한 곳에 머무르는 일이 없었습니다. 복음은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구브로와 안디옥과 비시디아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 전파되었습니다. 로마와 유럽을 거쳐서 영국에까지 전파되었습니다. 청교도들에 의해 미국으로 전파되었으며, 미국을 거쳐서 한국 땅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제 한국을 통해 중국과 인도와 중동에까지 전파되어 나가고 있습니다. 복음 역사는 어떤 상황과 형편 가운데서도 중단없이 전전합니다. 지금도 복음 역사는 쉬지 않습니다. 쉬지 않고 전진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모습을 볼 때, 우리의 교회의 형편을 볼 때, 복음 역사가 중단된 것 같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복음역사는 결코 중단하지 않습니다. 머물러 있지도 않습니다. 우리의 형편과 상관없이 오늘도 복음은 세상 끝을 향해 전지해 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복음역사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역사에 동참하며 그 역사를 섬겨야 합니다. 우리가 이 중단없는 복음역사를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역사에 동참하는 자들이 되길 바랍니다. 우리 교회가 어떤 상황과 형편 가운데서도 이 복음 역사에 동참하는 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이고니온에서 박해를 피해 루스드라에 갔습니다. 그들은 거기서도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놀라운 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8-10절에 보면, 나면서부터 앉은 뱅이 된 자를 바울이 고쳐주는 기적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루스드라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을 때 나면서부터 앉은 뱅이 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바울의 설교를 열심히 듣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듣거늘’이라는 말은 ‘관심을 가지고 듣고, 마음을 다해서 듣고, 열심히 듣는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동사의 시제는 미완료형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그가 계속적으로 바울의 전하는 복음을 듣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듣고 있는 앉은 뱅이를 바울이 보았습니다. 바울은 그 앉은뱅이 속에 “구원을 얻을 만한 믿음”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9). 여기서 “구원을 얻을 만한 믿음”이란 문자적으로 “치료될 수 있음”이라는 뜻입니다. 바울은 그에게서 치료받을 수 있는 믿음이 있음을 보았습니다. 바울은 즉시 그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10a). 그러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 사람이 뛰어 걷는지라”(10b). 바울의 명령이 떨어지자 마자 그는 즉시 일어났습니다. 한번도 자기 발로 일어서보지도 못한 그가 일어나 걷기도하고 뛰기도 하였습니다. 나면서부터 앉은뱅이된 자가 바울의 말 한마디에 치유함을 받는 놀라운 기적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자가 치유함을 받은 사건은 말씀과 능력이 함께 역사하고 있는 모습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누가가 이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이유는 아마도 초대 교회에는 이렇게 말씀과 함께 그 능력을 나타내 보여 주는 치유의 역사가 뒤따르고 있음을 보여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말씀과 능력의 역사는 항상 함께 움직입니다. 이 앉은뱅이는 바울이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는 먼저 바울이 전하는 복음의 말씀을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해서 듣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복음은 앉은뱅이에게 놀라운 내면적 변화를 가져오기 시작했습니다. 바울이 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계속해서 듣는 순간, 그의 마음 속에는 생명을 향한 믿음이 용솟음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아마도 바울의 설교를 들으면서 모든 병자를 고치시는 예수님, 문둥이를 고치시는 예수님,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시는 예수님, 앉은뱅이를 일으키시는 예수님, 심지어 죽은 자도 살리시는 예수님에 대한 말씀을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의 역사들을 들으면서 자신도 그 분의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음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바울은 설교 중에 앉은뱅이 속에 이런 믿음이 있음을 보았습니다. 바울의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눈과 앉은뱅이의 생명을 갈망하는 눈이 마주치는 순간, 바울은 그에게서 “구원을 얻을 만한 믿음”이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구원을 얻을 만한 믿음”이 어디서 오는가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들음에서 나옵니다. 구원을 얻을 만한 믿음이 어디서 나온다고요? 말씀을 들음에서 나옵니다. 로마서 10:17절은 말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느니라.” 이처럼 말씀의 능력은 위대합니다. 말씀의 능력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 줍니다. 우리는 말씀을 듣는 가운데 우리의 영혼이 강해 지며, 우리의 생각이 하나님의 능력과 생명으로 가득차게 됩니다. 복음은 인간을 앉은뱅이와 같이 얽어매고 있는 모든 죄악의 사슬을 끊는 능력이 있습니다. 복음은 인간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능력의 말씀이 역사하시면 우리가 생명을 얻고 구원을 받게 됩니다. 병이 나음을 받는 능력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가 구원을 얻고 생명을 얻은 것도 복음을 들음으로 얻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치유의 역사를 경험한 것도 복음을 들음으로 였습니다. 권은경 자매가 불치의 병에서 나음을 받은 것도 복음을 들음으로 나음을 받았습니다. 복음의 능력을 찬양합니다. 우리도 나면서부터 앉은뱅이된 자와 같이 마음을 다해, 열심을 다해, 주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앉은뱅이가 체험한 그 능력의 역사, 생명의 역사를 우리도 늘 체험하며 승리의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앉은뱅이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일으켜 세우는 모습을 본 루스드라 사람들의 반응이 어떠하였습니까? 그들은 바울과 바나바를 그들이 섬기는 신인 쓰스와 허메가 다시 강림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바울과 바나바 앞에 제물을 가져와서 그들에게 절하며 섬기고자 했습니다. 루스드라 사람들은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자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한마디로 불가능의 상징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앉은뱅이가 자기들이 보는 앞에서 벌떡 일어나 걷고 뛰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사람들이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는가? 이것은 신께서 우리 가운데 나타나신 것이다고 외치며, 바울과 바나바에게 제물을 바치고 경배하려고 했습니다(13). 그들이 이런 행동을 하게된 역사적인 배경이 있었습니다. 옛날에 쓰스와 허메라는 신이 루스드라에 강림하였는데, 마을 사람들이 그들이 신인줄 알아보지 못하고 냉대하고 배척했습니다. 이 때 그 신들이 진노하여 루스드라를 멸망시켜 버렸습니다. 이런 신화가 그 도시에 내려 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조상들과 같이 신들을 잘못 대접했다가는 멸망받을까봐 두려워서 바울과 바나바를 쓰스와 허메의 신이 강림한 것으로 생각하고 경배를 하고자 한 것입니다.  

이 때 바울과 바나바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14,15절을 보십시오. 바울과 바나바가 이를 듣고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 뛰어 들어가서 소리질러 말했습니다. “여러분!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너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너희에게 복음 전하는 것은 이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으시고 살아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15). 바울과 바나바는 옷을 찢으며 적극적으로 그들의 행위를 만류했습니다. 자신들도 그들과 똑같은 성정을 지닌 사람에 불과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우상 숭배는 헛된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자신들이 복음을 전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헛된 우상 숭배를 버리고 살아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한번만 눈감고 넘어가면 신으로 대접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신적인 존재가 되어 사람들로부터 찬양과 경배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들에게는 최대의 유혹의 순간이었습니다. 자기 우상화의 가장 위험한 순간이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이런 위험성을 직감하고 옷을 찢으며 적극적으로 우리도 너희들과 똑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에 불과하다고 외쳤습니다. 그들은 승리의 순간 파고드는 사단의 역사를 간파하고 물리쳤습니다. 도리어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증거하였습니다. 그들이 우상 숭배를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촉구하였습니다. 참으로 바울과 바나바는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신분을 하나님 앞에서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모든 승리의 역사의 주체가 하나님이심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분명한 자기 인식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위기의 순간 사단의 시험에 들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승리의 때에 교만해지지 않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릴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우상숭배를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도울 수 있었습니다. 참으로 그들은 하나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복음역사를 섬기는 종들에게는 항상 바울과 바나바와 같은 이런 위기의 순간이 옵니다. 특히 승리의 순간에 사단이 우리를 파멸의 길로 유혹합니다. 우리는 바울과 바나바와 같이 승리의 때에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늘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신분 인식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시험에 들지 않는 비결입니다. 우리가 승리의 때에, 유혹의 때에 바울과 바나바와 같이 하나님 앞에서 분명한 자기 인식을 하고 오직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늘 복음의 종으들로서 하나님께서 맡기신 복음을 세상 끝까지 전파하는 사명을 잘 감당해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도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그들은 가는 곳마다 승리의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핍박도, 어떤 방해도 그들의 길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특히 그들은 루스드라에서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자를 일으켜 세우므로 놀라운 말씀의 승리의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우상 숭배에 빠진 그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였습니다. 복음 역사는 어떤 상황과 형편 가운데서도 중단되지 않았습니다. 핍박도, 방해도, 유혹도, 복음의 진군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도 승리의 역사를 이루신 우리 주님을 찬양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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