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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마 5:31-32
성경본문내용 (31)또 일렀으되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거든 이혼 증서를 줄 것이라 하였으나(32)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저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린 여자에게 장가 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강설날짜 2006-04-23

2006년 4월 23일 설교


예수와 율법(II)-이혼하지 말라


말씀:마태복음 5:31-32
요절:마태복음 5:3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저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린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예수님은 우리의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보다 더 낫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5:20). 그리고 주님께서는 여섯 가지 대조법을 통해서 우리에게 ‘더 나은 의’가 무엇인지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는 지난 두 주간에 걸쳐서 ‘살인하지 말라’와 ‘간음하지 말라’는 말씀을 통해서 ‘더 나은 의’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주님은 ‘살인하지 말라’는 말씀에서 실제로 사람을 죽이는 것뿐만 아니라 형제에 대하여 분노하고 욕하는 자도 살인한 자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지옥 불에 들어간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주님은 ‘간음하지 말라’는 말씀에서는 실제로 간음을 행한 것뿐만 아니라 여자와 남자를 보고 음욕을 품은 자도 이미 그 마음에 간음하였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른 눈이 범죄 하면 오른 눈을 빼버리고, 오른 손이 범죄 하면 오른 손을 잘라 버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된 제자들에게 요구하시는 ‘더 나은 의’는 구약의 율법이 요구하는 의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그 수준이 높고 넓고 깊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은 세 번째 대조법으로 ‘이혼하지 말라’는 말씀을 통해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요구하시는 ‘더 나은 의’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배우고자 합니다. 오늘날은 이혼이 보편화된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를 살아가는 제자들에게 이 말씀이 주는 교훈이 무엇인가 배우고 더 나은 의를 덧입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31절에 보면 “또 일렀으되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거든 이혼 증서를 줄 것이라 하였으나”라고 했습니다. 구약의 율법에서는 아내를 버릴 때 곧 이혼할 때 이혼 증서를 써주고 이혼하도록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신명기 24:1절 말씀을 인용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 보면 “사람이 아내를 취하여 데려온 후에 수치 되는 일이 그에게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거든 이혼 증서를 써서 그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어 보낼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아내에게 ‘수치 되는 일’이 발견되어 그를 기뻐하지 않으면 이혼 증서를 써 주고 이혼하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만 보면 이혼 증서만 써 주면 언제든지 이혼할 수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신명기 말씀을 조심스럽게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신명기에서 말하는 이혼에 대한 율법은 이혼 증서만 써 주면 언제든지 이혼할 수 있음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모세는 수치 되는 일을 발견하면 무조건 이혼해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수치 되는 일을 발견했을 때도 변함없이 그 여인을 기뻐하면 용서하고 함께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가 여기서 말하는 것은 수치 되는 일을 발견하고 그 여인을 기뻐하지 아니할 때를 말합니다. 곧 수치 되는 일로 인해 여자를 사랑할 수 없고 용서 할 수 없어서 버리기로 마음을 먹은 완고한 상황을 말합니다. 그런 상황이 되었을 때도 모세는 이혼 증서를 써 주고 이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시 모세가 이혼 증서를 써 주고 이혼하도록 한 것은 그들의 완악함 때문이었습니다. 마태복음 19:8절에 보면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을 인하여 아내 내어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라고 하셨습니다. 모세는 완악한 자들로부터 여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이혼 증서를 써 주고 이혼하도록 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남성위주의 사회였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여자나 아이는 숫자에도 넣어 주지 않았습니다. 모세의 이 율법이 주어지기까지는 단지 싫다는 이유만으로도 남편은 언제든지 아내를 쫓아 낼 수 있었습니다. 남성 위주의 세상인 이스라엘 사회에서 이혼 당한 여인은 생존 자체가 어려웠습니다. 쫓겨난 여인은 간음죄를 지은 것으로 오해를 받아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었고, 사회에서 온전히 매장 되기 쉬웠습니다. 또한 여자들은 이혼 증서 없이는 재혼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남편의 완악함으로 인해 함부로 이혼하지 못하도록 하고, 여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수치 되는 일이 발견되어 그를 기뻐하지 않으면 반드시 이혼 증서를 써 주고 이혼하도록 한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신명기 말씀에서 모세가 준 이 율법에 기초해서 이혼 증서만 써 주면 언제든지 이혼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마태복음 19:9-10절에 보면 당시 예수님의 제자들조차도 음행한 연고 없이도 이혼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외에 아내를 내어 버리고 다른데 장가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고 하시자 제자들은 “만일 사람이 아내에게 이같이 할진대 장가들지 않는 것이 좋삽나이다”고 대답했습니다. 이 대화를 통해서 볼 때 그 시대 음행한 연고 없이도 아내를 내어 버리고 다른데 장가드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이혼 증서만 써주면 언제든지 이혼할 수 있다는 생각은 재고의 여지없이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다만 그들의 관심은 합법적으로 이혼하기 위해서 이혼의 근거가 되는 ‘수치 되는 일’이 무엇인가를 규정한 일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수치 되는 일’에 대한 견해는 예수님 당시에도 두 가지 해석이 서로 대립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에는 삼마이 학파와 힐렐 학파가 있었습니다. 이 두 학파는 ‘수치 되는 일’에 대한 견해를 서로 달리 하였습니다. 삼마이 학파에서는 ‘수치 되는 일’을 증인에 의해 확인된 성적인 비행에 국한 시켰습니다. 곧 음행한 문제에 국한시켰습니다. 그런 반면 힐렐 학파는 ‘수치 되는 일’을 성적 비행뿐만 아니라 남자에게 어떤 불평의 요소를 제공하는 모든 것을 수치 되는 일로 규정하였습니다. 그래서 남자의 마음먹기에 따라 언제든지 이혼이 가능하였습니다. 구전 율법과 주석서들을 한데 모아 만든 ‘미쉬나’에 보면 밥만 태워도 이혼의 조건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볼 때 당시 이혼이 얼마나 쉽게 이루어졌으며, 보편적이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율법에 대해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32절에 보면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저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린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모세의 율법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음행한 연고 없이 이혼해서는 안 된다고 못 박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음행한 연고 없이 아내를 버리면 그 여인으로 간음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버린 여인에게 장가드는 것도 역시 간음에 해당한다고 하셨습니다. 신명기 24:1-4절에 보면 이혼한 여인의 재혼을 기정사실로 받아드렸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혼한 여인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하는 것이라고 하심으로 예수님의 가르침은 신명기 말씀보다 훨씬 더 엄격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19:4-9절 말씀은 여기서 문제가 되는 구약 율법과 예수의 가르침 사이의 관계를 훨씬 더 명확히 증거 해 주고 있습니다. 19:8절에 보면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을 인하여 아내 내어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고 하심으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있어서 구약의 이혼 규정을 무효화 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창세기 2:24절에 계시된 결혼의 첫째 원리로 돌아갈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19:4-6절에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말씀하시기를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 지워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고 하셨습니다. 창세기 2:24절에 보면 결혼의 원리를 이렇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하나님께서 창설하신 결혼은 남자가 그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는 것입니다. 부부는 한 몸입니다. 하나님께서 한 몸이 되게 하셨기 때문에 음행한 연고 없이는 이혼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신명기 24:1-4절 말씀은 깨어진 관계 속에서 주어진 말씀입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깨어진 사람은 마음이 강팍하기 때문에 결혼의 본래 이상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진 사람들은 최소한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산상 수훈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은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한 제자들은 결혼의 본래의 원리로 돌아갈 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예외 규정 곧 음행한 경우도 실질적인 예외 규정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간음이란 그 본성상 이미 결혼관계를 이미 깨뜨려 버린 것이기 때문입니다. 음행한 경우에 이혼은 이미 깨어진 결혼 관계를 인정하는 절차에 불과한 것입니다. 사실 이러한 예외 규정이 필요한 것은 결혼한 제자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배우자와의 관계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제자 자신에게 문제가 없을지라도 상대 배우자에게 문제가 있을 경우 결혼 관계는 유지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혼이 필요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간음한 자는 이미 제자가 아닙니다. 제자에게 간음은 상상할 수도 없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5:27-28).

구약의 율법은 깨어진 관계 속에서 주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깨어진 자들은 최소한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규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깨어진 관계 속에서는 이혼이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된 제자들에게는 이혼은 있을 수 없습니다. 회복된 관계 속에 있는 제자들은 창세기 2:24절에서 명하는 결혼의 본래의 원리대로 돌아가야 합니다. 회복된 관계 속에서는 이혼 할 수 없습니다. 결혼의 원래적 목적을 회복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혼하지 말라’는 율법을 통해서 ‘더 나은 의’가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볼 때 예수님의 ‘더 나은 의’는 구약 율법에서 말하는 것보다 훨씬 더 엄격하고 수준이 높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은 이혼이 보편화된 시대입니다. 지난 한해 우리나라 이혼 건수는 14만 건에 달한다고 합니다. 결혼한 사람의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이혼을 한다는 것입니다. 신고 된 이혼만 이정도이니 실제로는 아마 그 이상일 것입니다. 이혼하는 이유도 대부분 성격 차이라고 합니다. 성격 차이라는 것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 지는 잘 알 수 없지만 사람들은 쉽게 이혼하고 재혼합니다. 이런 시대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된 제자들조차도 이혼을 당연히 생각하기 쉽습니다. 더 나은 삶을 위해서 이혼할 수도 있지 않는가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된 제자들은 이혼해서는 안 된다고 하십니다. 이혼하는 것은 그 여자로 간음하게 함이요, 이혼한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하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된 제자들은 이혼해서는 안 됩니다. 결혼의 본래의 의미를 회복해야 합니다. 하나 됨의 원리를 회복해야 합니다. 이혼이 보편화된 이 시대 우리가 결혼의 본래의 의미를 회복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더 나은 의를 덧입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축복을 누리는 복된 자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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