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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마 5:43-48
성경본문내용 (43)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44)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45)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46)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47)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48)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강설날짜 2006-05-21

2006년 5월 21일 설교


예수와 율법(II)-원수를 사랑하라!


말씀:마태복음 5:43-48
요절:마태복음 5: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오늘은 여섯 가지 대조법 중에서 마지막 말씀인 “원수를 사랑하라”를 통해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요구하시는 ‘더 나은 의’에 대해서 배우고자 합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볼 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요구하시는 의가 얼마나 수준이 높고 넓은 가를 알 수 있습니다. 이웃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사랑의 대상은 원수까지 확장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요구하시는 사랑이 어떠한가를 잘 배워서 우리가 주님께서 원하시는 더 나은 의를 덧입어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섯 번째 대조법인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은 다섯 번째 대조법인 ‘보복하지 말라’(38-42)는 말씀과 연관이 있습니다. 보복에 대한 구약의 가르침은 ‘눈은 눈으로, 이로 이로’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보복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보복하기는커녕 도리어 오른 뺨을 치면 왼편도 돌려 대며, 속옷을 갖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 주며, 억지로 오리를 가고자 하는 자에게 기쁨으로 십리를 동행하며, 구하는 자에게 주고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여섯 번째 대조법 곧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을 통해서 이에서 한 걸음 더 나가십니다. 43,44절에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합니다. 여기서 43절의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은 레위기 19:18절을 인용한 말씀입니다. 레위기 19:18절에 보면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고 했습니다. 구약의 율법은 이웃을 사랑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네 원수를 미워하라’라는 말은 첨언으로서 구약에서 따온 인용구가 아닙니다. 또한 구약의 가르침을 요약한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구약 어디에도 원수를 미워하라고 가르치고 있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변질시키고 악용하여서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이에 반해서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44절을 다시 보면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율법을 성취하신 예수님은 그 사랑의 대상을 원수에게까지 확대시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미워하라’고 가르쳤지만 예수님은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원수’는 핍박 자를 의미합니다. 나를 미워하고, 대적하고, 훼방하는 원수에 대해서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저주하고 하나님께서 당장 멸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며 도리어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이러한 요구 자체만으로도 예수님의 가르침은 구약 율법의 기준을 훨씬 뛰어 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는 말은 단순히 외적 관계를 통한 친절함 그 이상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요구하시는 원수에 대한 사랑은 자신을 해치고자 하는 자에 대해서까지도 최선을 다해서 진정으로, 그리고 간절히 열망하는 자세로 하나님께 간구하는 행동입니다. 다시 말하면 원수에 대한 단순한 용서나 친절함이 아니라 마음을 다해서 사랑하고 그러한 열망으로 하나님께 간구하는 그런 사랑을 말하는 것입니다. 율법의 정신은 사랑입니다. 신명기 6:5절에 보면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든 율법을 다 말한 후에 결론적으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율법의 근본정신이 사랑에 있음을 말해 줍니다. 또한 마가복음 12:29-31절에 보면 서기관 중 한 사람이 나와서 모든 계명 중에 크고 첫째 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예수님은 그에게 이렇게 대답해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에서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율법이 본래 목적했던 의도는 사랑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율법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율법의 원래 정신을 성취하시며, 그 율법이 목표했던 본래의 수준까지 확장시키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서 자신을 못 박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신 모습에서 원수사랑에 대한 모본을 볼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23:34절에 보면 아무 죄가 없으신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은 조롱하며 멸시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이런 그들을 위해 하나님 아버지께 용서의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이러한 원수사랑은 인간의 인격과 성품에 관한한 가장 심오한 신비들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사랑의 원자탄이라고 불리우는 손양원 목사님도 원수사랑에 대한 모본을 우리에게 잘 보여 주셨습니다. 목사님은 자신의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양자로 삼아 친자식처럼 사랑으로 섬기셨습니다. 이처럼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요구하시는 사랑은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이 어떻게 원수까지 사랑할 수 있습니까? 자기를 핍박하고 제자의 공동체까지 파괴하는 자를 위해서 어떻게 기도할 수 있습니까? 이것은 인간의 힘과 의지와 노력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원수에 대한 진정한 사랑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을 때만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인 제자들은 그렇게 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야 한다고 선언하십니다. 45절에 보면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일반은총은 신분에 따라 차별이 없습니다. 자기를 미워하는 백성에게도 해를 비춰주시고 자기를 거역하는 자에게도 비를 내려 주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사람의 행동에 따라 더 주시거나 덜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사람의 노력이나 행동에 따라 달라지지 않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자녀 된 사람은 사랑을 베풀 때에 다른 사람의 행동에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축복하며 기도하는 것은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고,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또한 하나님을 경외한다면 모든 면에서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분의 태도와 마음가짐이 우리의 것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성을 회복하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을 때 나를 핍박하는 원수를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그를 위해 진심으로 기도하게 될 것입니다.

제자는 다른 사람들의 행위에 따라 반응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나를 화나게 하면 화내고, 나를 멸시하면 함께 멸시하고, 나에게 잘해주면 좋아하는 것은 믿지 않는 자들이나 악인들도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랑은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 사는 사람들의 태도입니다. 예수님을 알기 전 우리 옛 사람의 삶은 대체로 다른 사람의 행동에 따라 반응하는 형태가 결정되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바른 관계성을 회복하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우리들은 새로운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오직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좇아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야만 합니다. 이를 통해서 ‘더 나은 의’를 들어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46-47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하나님과 바른 관계성을 회복하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제자들은 원수도 사랑해야 합니다. 자기를 핍박하고 괴롭게 하는 자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들을 한번 돌아봅시다. 우리의 삶속에 이런 사랑이 실천이 되고 있습니까? 우리는 주님께서 요구하시는 의 앞에 심히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내 생각과 다르기만 해도 상대방을 미워하고 상종하기 싫어합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사랑을 안 해주고, 대접을 안 해줘도 우리는 미워하고 대적합니다. 나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고 조금만 손해를 끼쳐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하시는 주님의 의와는 너무나 거리가 먼 모습입니다. 이것은 내가 살아 있어서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는 증거입니다.

원수에 대한 진정한 사랑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모든 제자들의 특성인 내적 의입니다. 이러한 의는 자기 스스로 하는 수련이나 노력에 의한 자기 의가 아니며, 하나님의 통치의 산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삶속에서 원수에 대한 사랑이 실천되기 위해서는 내가 하나님의 통치를 받기에 힘써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통치를 받을 때 원수까지 사랑하며 주님께서 요구하시는 더 나은 의를 덧입을 수 있고 천국에 들어 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성을 맺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기에 힘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이제 48절에서 결론적으로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예수님은 결론적으로 제자들에게 하나님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온전하라고 하십니다. 마태복음 5장은 하나의 윤리 규범집이 아닙니다. 아버지의 성품을 반영하는 완전함에 대한 요구로 하나님 나라의 의 곧 제자의 의입니다. 제자의 의는 완전한 의입니다.

예수님께서 여섯 가지 대조법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제자의 의는 우리의 힘과 의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의입니다. 곧 내가 예수님과 함께 죽음으로 이루어지는 의입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죽고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짐으로 이루어지는 의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그리스도를 본받아 자기를 죽이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음으로 이 하나님의 온전한 의를 이루어가야 합니다. 우리는 일생 동안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야 합니다. 히브리서 5:7-10절에 보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도 순종을 배우셨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순종을 통해 하나님의 의를 이루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과 같이 날마다 자기를 죽이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과 같이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하나님께 올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를 통해 우리도 하나님의 온전하심 같이 우리도 온전한 의를 덧입어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복된 자들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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