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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마 8:18-22
성경본문내용 (18)예수께서 무리가 자기를 에워쌈을 보시고 저 편으로 건너가기를 명하시니라(19)한 서기관이 나아와 예수께 말씀하되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으리이다(20)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21)제자 중에 또 하나가 가로되 주여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22)예수께서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 하시니라
강설날짜 2006-08-27

2006년 8월 27일 설교


왕을 따르려는 자의 각오!


말씀:마태복음 8:18-22
요절:마태복음 8:22    “예수께서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 하시니라.”

오늘 말씀은 첫 번째 이야기 단락의 마무리로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두 사람의 반응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 서기관과 한 제자의 반응입니다. 한 서기관이 예수님께 나아와 고백했습니다.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으리이다”(19). 또 한 제자가 예수님께 나아와 말했습니다. “주여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21). 이 두 사람들은 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기적 사건을 통해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능력을 보고 그들은 예수님을 좇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이들에게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 없다”고 하셨습니다(20). 또한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고 하셨습니다(22). 오늘 말씀을 통해서 주님을 따르는 자의 각오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진정 주님을 따르는 제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문둥병자와 백부장의 하인과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몰려오는 각종 귀신들린 자들과 많은 병든 자들을 고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놀라운 능력에 대한 소식이 온 가버나움에 퍼져나갔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수많은 무리들이 예수님께로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만약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교회로 마구 몰려든다면 참 신나는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때 예수님의 반응은 어떠하셨습니까? 1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무리가 자기를 에워쌈을 보시고 제자들에게 호수 건너편으로 건너가기를 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무리가 몰려오는 것을 보고 기뻐하고 환영하기보다 도리어 그들을 떠나 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예수님은 무리들이 자기를 찾는 목적이 바르지 않음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무리들은 단지 병을 고치고, 신기한 능력을 행하는 것을 보려고 몰려들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시는 본래의 목적을 왜곡시키기 쉬웠습니다. 사탄의 통치를 몰아내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기 위해 오신 예수님을 용한 종합병원 의사처럼 인식하기 쉬웠습니다. 예수님은 몰려오는 무리들을 보시고 위기를 느끼셨습니다. 더 이상 그들과 함께 있음이 예수님에게나 무리들에게나 결코 유익하지 않음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을 떠나가신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많은 사람들을 교회로 끌어 모으고자 합니다. 그러나 교회에 사람이 많아진다는 것이 항상 좋은 일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위기가 될 수 있습니다. 만약 지교회 구성원들의 다수가 바르지 못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면,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신 교회의 원래의 목적이 왜곡되고 사명의 본질이 흐려진다면, 교회는 교회다움을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교회가 사회복지 기관이나 자기만족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집단으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그렇게 될 때 어떻게 되겠습니까? 교회는 교회로서의 빛을 잃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예수님께서도 그 곳을 미련 없이 떠나실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사를 통해서 특히 중세교회를 통해서 이 사실을 잘 알 수 있습니다. 교회뿐만 아니라 교회의 지체인 한 개인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목적과 사명이 왜곡되지 않도록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항상 주의하며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예수께서 무리를 떠나가실 때 한 서기관이 나아와서 말했습니다. 19절에 보면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으리이다.” 겉으로 볼 때 이 서기관은 참으로 좋은 제자 감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서기관이 예수님을 ‘선생님’이라고 부른 것을 볼 때 그는 아마도 예수를 많은 랍비들 중의 하나 정도로 이해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산상수훈 말씀과 능력을 행하시는 것을 보고 랍비 중에서도 뛰어난 랍비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께 나아와 공개적으로 예수님께서 어디로 가시든지 따르겠다고 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선생님’이라고 한 것을 볼 때 예수를 따르려고 한 것은 온전한 제자로서 라기 보다는 율법에 대한 자신의 학문적 관심을 채우고자 한 것 같습니다. ‘어디로 가시든지 선생님을 따르겠다’고 한 제안도 자신의 전 생애에 걸쳐서 예수를 따르는 제자가 되겠다는 의미보다 지금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는 여정에 동참하겠다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아무튼 우리가 볼 때는 참으로 제자감로서는 훌륭해 보입니다.

그러면 이 서기관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은 어떠하셨습니까? 예수님은 한 눈에 서기관의 문제점을 정확히 꽤 뚫어보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20절에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여기서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는  말씀은 예수께서 여기 저기 돌아다니시며 전도여행을 하시기 때문에 자기 소유의 일정한 거처가 없음을 말씀하시는 것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 배척받는 고난의 삶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은 많은 고난과 배척을 받으시고 십자가 죽음의 길을 가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삶은 낭만적인 것이 아닙니다. 충동적으로 따를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자신의 학문과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길은 예수를 주님으로 모시고 따르는 삶입니다.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주님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하여 사는 삶입니다. 한마디로 제자의 삶은 주님께서 가시는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아픔과 희생을 각오해야 하는 삶입니다. 주님께서는 서기관이 충동적이고 고상한 자세로 따르겠다는 문제를 아시고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를 통해서 서기관에게 제자의 삶은 고상한 것이 아니라 희생과 아픔을 각오하지 않고서는 따를 수 없는 길임을 간접적으로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사실 최고의 고상함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삶입니다. 그런데 그 고상함 뒤에는 남모르는 희생과 아픔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고상함을 얻기 위해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긴다”고 했습니다(빌 3:8). 제자의 삶은 고상함과 이상으로 따를 수 없습니다. 단호한 자기결심과 자기 노력만으로도 따를 수 없습니다. 다른 모든 의지할 것들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야 하는 삶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만 따를 수 있는 삶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제자가 되기를 사모합니다. 그러나 바울과 같이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는 태도를 갖지는 않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해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기는 태도보다는 오히려 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것을 얻고자 합니다. 이런 자세로는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머리 둘 곳 없이 사신 예수님을 본받아 온전히 주님을 따르는 제자의 삶을 살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21절을 보십시오. 이번에는 제자 중에 한 사람이 예수님께 나아와 말했습니다. “주여 나로 먼저 가서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이 제자가 예수님께 요청한 것은 유대 사회에서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유대 사회에서는 죽은 자를 매장하는 일은 24시간 안에 이루어져야 했습니다. 죽은 부모를 장사하는 것은 아들에게 부여된 종교적인 의무였습니다(참 47:29-31; 50:5). 유대인들은 장례를 중히 여겼습니다. 그들의 관습에 따르면 부모가 죽었을 경우에 그의 자식은 매일 기도, 율법공부, 성전봉사, 할례준수, 유월절 양 잡는 일 같은 중요한 신앙적인 의무를 실행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요구를 일축하시며 명령하셨습니다. 22절에 보면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죽은 자들이 자신들의 죽은 자들을 매장하도록 맡겨두고 너는 나를 좇으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너무 단호하고 매정해서 당황스럽습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통해서 자신을 따르는 것은 가족에 대한 그 어떤 의무보다 우선하는 것임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게 보이는 일도 주님을 섬기고 따르는 일보다 앞설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예수님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삶입니다. 가족에 대한 의무나 세상에 그 어떤 의무보다도 우선하는 것입니다. 이런 분명한 자세가 없이는 예수님을 따를 수 없습니다.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 이 명령은 메시아 외에는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모든 가족관계와 종교적 의무까지도 그 우선순위의 재조정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10:37절에서 예수님은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라고 하셨습니다. 아비나 어미를 더 사랑하는 자도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아들이나 딸을 더 사랑하는 자도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제자의 삶에 있어서 주님을 따르는 것보다 더 중요하고 우선시 되는 것은 없습니다. 인간의 행동규범으로 볼 때 본문의 제자는 대단히 아름답고 칭찬 들을 만합니다. 유대 청년의 입장에서 볼 때 그의 결정은 참으로 고귀한 결정이었습니다. 만약 왕이신 예수님 외에 다른 사람이 부른 것이었다면 그것은 옳은 반응이었습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그를 부른 사람은 예수님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절대적인 충성을 요구하십니다.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적절하지 못한 제자의 두 모습을 봤습니다. 우리는 제자도의 두 모습을 통해 주님의 제자로서 그를 따르는 삶은 예수님을 주님으로서 절대주권을 인정하고, 어떠한 십자가의 희생이라도 치를 각오를 해야 함을 배웁니다. 또한 예수님을 따르는 행위를 가족관계나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가장 최우선적으로 삼아야 함을 배우게 됩니다. 제자도에서 이러한 특성이 결여될 때 이것은 참된 제자도가 아닙니다. 마태는 예수님을 따르려고 했던 서기관과 한 제자가 예수님의 말씀에 대하여 어떠한 반응을 보였는지 기록하지 아니함으로 예수님의 절대적인 요구에 순응하지 못했음을 암시합니다. 반면 23절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명령대로 행했음을 보여 줌으로서 독자들이 본받아야 할 모습이 어떤 모습인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주님을 따르는 우리의 모습을 돌아봐야 합니다. 나 자신이 주님의 제자로서 주님을 따르기에 합당한 자인지, 합당하지 않는 자인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오늘날 제자의 삶에서도 서기관과 같이 ‘자신의 고상한 꿈과 이상’을 가지고 따르고자 할 수도 있습니다. 한 제자와 같이 ‘자식 된 도리’, ‘부모 된 도리’, ‘친구로서의 의리’를 중요시 여기며 따르고자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주님을 좇는 것을 방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의 꿈과 이상이 무너질 때 갈등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친척이나 친구 결혼식이 주일과 겹쳐질 때 갈등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예수님의 절대주권을 인정하게 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어떠한 십자가의 희생이라도 치를 각오를 허락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는 행위를 가족과 세상의 그 어떤 관계보다도 최우선 과제로 삼게 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주님을 온전히 따르는 주님의 참 제자의 삶을 살게 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은혜를 풍성히 받아 누리는 복된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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