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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막 8:34-38
성경본문내용 (34)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35)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36)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37)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38)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강설날짜 2016-05-01

2016년 마가복음 공부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말씀:마가복음 8:34-38

 

지난 시간에 우리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신앙 고백을 받으신 후에 비로소 자신이 고난을 받고 종교지도자들에게 버림을 받아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을 말씀하시는 것을 살펴봤습니다(막 8:27-33). 예수님께서는 이를 통해서 자신이 어떤 메시아이신지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고난 받는 메시아이십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서 말씀하신 메시아입니다.

 

오늘 말씀은 지난 시간에 계속되는 말씀으로 예수님께서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서 자신을 따르는 자의 자세 곧 제자도를 가르쳐 주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길은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메시아의 길이 어떤 것인지 분명히 밝혀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의 길을 가신다면 그의 제자들이 어떤 길을 가야 하는지는 자명합니다. 마땅히 예수님께서 가신 그 십자가의 길을 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도가 어떠하며, 그 의미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34절을 보면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메시아로서 어떤 길을 가시는지를 말씀하신 후에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서 제자도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34). 우리가 이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이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한다고 베드로를 책망하신 후에 하신 것임을 우리는 먼저 기억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으로부터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많은 고난을 받고 종교지도자들로부터 버림을 받아 죽임을 당하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실 것이라는 말씀을 듣고서는 예수님을 책망하며 그 길을 가지 말 것을 만류했었습니다(32).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가 왜 그처럼 예수님을 만류했었는가 하는 이유가 드러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겪을 고난을 생각해서 갖는 걱정과 염려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직접적인 원인이 베드로의 속마음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라고 하신 말씀에서 분명히 말해지고 있습니다. ‘자기를 부인해야 한다’라는 말은 자기의 전존재를 포기하라는 뜻으로서 자기를 버려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가 예수님을 책망하고 그 길을 가지 말라고 했던 것은 자기를 버려야 할 것이 있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베드로는 그것을 버리기 싫어서 예수님을 책망했던 것입니다. 자기를 버려야 한다는 말속에는 자기를 위하고 있는 것이 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그것은 곧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뭔가 하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잡혀 죽임을 당하는 것을 만류한 것이 진정 예수님을 사랑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베드로의 다른 의도가 숨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지극히 인간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베드로는 그렇게 만류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말씀에 비춰 볼 때 자기 목숨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드러내시고 이것을 버려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욕망은 자기를 사랑하는데서 나와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욕망은 자신이 처한 현실 속에서 나타납니다. 베드로는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로마로부터 해방시켜 주실 것을 기대했습니다(행 1:6).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하실 때 제일 높은 자리를 기대했습니다(막 9:34). 이런 현실적인 생각을 사람들은 누구나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현실적인 문제를 생각하여 따르기 마련이고, 이는 곧 세상을 사랑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기독교인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현실적인 문제들을 해결함 받기 위해서 예수님을 믿고 따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에게서 자신들의 현실적인 문제 해결을 기대합니다. 그래서 현실 상황 속에서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이처럼 자기를 사랑하는 것을 부인하지 않고는 결코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고난 받는 메시아이십니다. 그러므로 이 메시아를 따르는 제자들의 길은 또한 고난 받는 길입니다. 예수님은 종교 지도자들로부터 버림을 받는 길을 가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의 길도 버림받는 길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향하여 가시는 메시아이십니다. 그러므로 이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의 길도 십자가의 길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길을 가심으로 그를 따르는 제자들도 당연히 십자가를 향하여 가야 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따르려면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예수님 당시 십자가형을 받는 자는 자기 십자가를 자기가 지고 가야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셨습니다. 자기 십자가란 자기가 못 박혀 처형당할 십자가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러 가는 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제자도를 제시함에 있어서 아무런 타협도 아니하셨습니다. 35절을 보면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아무리 예수님을 따르는 시늉을 해도 자신의 목숨을 아끼고 구하고자 한다면 자기 목숨은 구할지 모르지만 영원한 생명을 잃게 됩니다. 곧 구원을 얻지 못합니다. 영생은 구원을 뜻합니다. 마가복음 10:17-27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길을 가실 때 한 사람이 달려와 꿇어 앉아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선한 선생님이여!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17). 이때 예수님께서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에게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고 하시면서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속여 취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19). 그러자 그 사람은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20). 예수님께서는 이런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를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고 하셨습니다(21). 이 사람이 재물이 많은 고로 예수님의 말씀을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갔습니다(22). 그때 예수님께서는 둘러보시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23). 그러자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놀랐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제자들에게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얘들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떻게 어려운지 약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고 하셨습니다(24-25). 그러자 제자들은 심히 놀라 서로 말하기를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27). 이 이야기에 보면 ‘영생을 얻는다’는 말은 곧 ‘구원을 얻는다’는 것을 뜻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35절을 다시 보면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과 복음을 위하여 목숨을 잃으면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기서 절대로 구원을 얻지 못하는 사람과 반드시 구원을 얻는 사람을 대조시키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복음을 포기하고 자기 목숨을 택하는 자는 영생을 얻지 못합니다. 그러나 자기 목숨을 포기하고 예수님과 복음을 택한 자는 영생을 얻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생의 중요성을 가르치기 위해 비유를 주셨습니다. 36-37절을 보면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아무 유익이 없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서 온 천하를 다 얻었다 할지라도 자기가 죽어버리면 그 모든 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우리 인생을 보십시오. 죽으면 모든 것이 소용이 없습니다. 돈을 싸 짊어지고 갈 수 있습니까? 집과 자동차를 짊어지고 갈 수 있습니까?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얻고자 하고 구하고자 하던 그 모든 것을 다 놓아두고 갑니다. 그리고 우리 인생은 길어야 70이고 80입니다. 이처럼 허무하고 짧은 우리 목숨도 천하보다 귀합니다. 왜냐하면 목숨을 잃으면 온 천하가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영원한 생명은 더더욱 천하보다 소중한 것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천하를 다 얻고도 영생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합니까? 이 비유는 목숨의 소중함을 가르치기 위한 비유가 아닙니다. 목숨이 천하보다 소중하다면 영생은 더 소중함을 가르치기 위한 비유입니다.

 

목숨은 천하보다 귀합니다. 천하보다 귀한 목숨을 포기한 사람은 천하를 포기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재물이나 명예를 포기할 수 있습니다. 영생을 위해 목숨을 포기하고 예수님을 따르는 참된 제자는 재물이나 명예를 얼마든지 포기할 수 있습니다. 재물이나 명예를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은 더더구나 목숨은 포기하지 못합니다. 그러한 사람은 참된 제자가 아닙니다. 재물을 추구하고 명예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아직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의 영광을 구한다고 말하지만 사실 그들은 인간의 일을 추구하고 있는 자들입니다. 자기 유익을 구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사단의 유혹에 넘어간 자들입니다. 그들은 고난 받으러 가는 예수님을 붙잡고 반대할 것입니다. 이들은 고난을 받고 종교지도자들에게 버림을 받아 십자가에 죽고 부활할 것을 말씀하시는 예수님을 붙잡고 책망하는 베드로와 같은 자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결코 물러서지 않고 십자가를 향하여 가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오직 십자가의 길 뿐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러 가는 제자의 길이 예수님을 믿는 길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믿지 않고 다르게 믿는 길은 없습니다. 다른 길이 있다고 하는 자들은 다 거짓 선생들이요, 마귀의 자식들입니다.

 

제자도의 핵심은 모든 것을 상대화하고 예수님과 복음을 택하는 것입니다. 재물도, 명예도, 자기 목숨도 모두 상대화하는 것입니다. 온 천하도 상대화하고, 온 천하보다 귀한 목숨도 상대화하고 오직 예수님과 복음을 택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선택은 결코 어리석은 선택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과 복음을 선택하는 자들에게는 영생이 주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것을 위해 순간적인 것을 포기하는 것은 결코 어리석은 선택이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님과 복음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길이 빠진 제자도는 거짓 제자도입니다. 십자가의 길을 가지 않는 제자 훈련은 거짓 제자 훈련입니다. 제자 훈련은 예수님과 복음 앞에서 모든 것을 상대화 하는 훈련이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예수님보다 귀한 것은 아무 것도 없게 되는 상태에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하여 이루어지는 훈련이어야 합니다. 제자 훈련은 성도들을 깨워 목회자처럼 사역하게 하는 만인제사장 프로그램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진정한 제자 훈련은 세상에서 예수님처럼 고난을 받으며,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예수님과 복음을 따르는 훈련이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이 제자도가 있습니까? 우리가 우리 자신들을 돌아 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상대화하고,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도 상대화 하고 오직 예수님과 복음을 따라 가는 자들이 될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영생을 얻는 자들이 되길 원합니다.

 

38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고 하십니다. 불신앙적이고 죄 많은 세상에서 볼 때 십자가에 못 박히러 가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초라하게 보일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이 예수님을 부끄러워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도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18절을 보면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오실 것입니다. 마가복음 13:24-27절을 보면 “그 때에 그 환난 후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에 있는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그 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 또 그 때에 저가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 택하신 자들을 땅 끝으로부터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고 했습니다. 또 요한계시록 14:6-7절을 보면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때가 되면 고난을 받고 종교지도자들에게 버림을 받아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사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 예수님께서는 천사들과 함께 심판의 주로 곧 영광의 주로 재림하실 것입니다. 그때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부끄러워하는 자들을 주님께서도 부끄러워하십니다.

 

38절을 다시 보면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라고 했을 때 ‘올 때’라는 말은 다니엘서 7:13절에서 말하는 인자 같은 이가 ‘구름을 타고 와서’를 암시합니다. 다니엘서 7:13절을 보면 “내가 또 밤 이상 중에 보았는데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나아와 그 앞에 인도되매”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인자가 천사들과 함께 올 때라는 말은 인자가 그 왕권을 받을 때를 가리킵니다. 그때에 예수님을 자랑하지 못하고 부끄러워 한 사람들을 예수님께서도 그를 부끄럽게 여기실 것입니다. 38절에서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이라고 했을 때 ‘내 말’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τούς έμούς λόϒουϚ’(뚜스 에무스 로고스) 대신에 ‘τούς έμούς’(뚜스 에무스)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뚜스 에무스’는 남성형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람들’ 즉 ‘나의 제자들’이라는 뜻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을 따르는 제자들을 가리킵니다. 십자가를 지러 가시는 예수님과 예수님을 따라 고난의 길을 가는 제자들을 부끄러워하고, 세상에서 영광과 승리를 추구 하는 자들을 예수님께서는 부끄러워하실 것입니다. 이것은 그러한 자들이 예수님의 이름을 가지고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는 것을 예수님께서는 부끄러워하심을 암시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자랑하지 못하고 오히려 경제력이나 권력이나 학력 등을 자랑하려는 자들을 예수님께서는 부끄러워하십니다. 그들은 예수님보다 경제력과 권력과 학력을 더 귀하게 여기는 자들입니다. 곧 그들은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지만 실상은 세상의 일을 구하는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이렇게 어리석은 자들이 기독교인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으니 어찌 부끄러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워하실 때에 곧 심판의 주요, 영광의 주로 재림하실 때에 그들이 과연 경제력과 권력과 학력을 자랑할 수 있겠습니까?

 

38절에서 ‘인자’로 지시된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라는 표현으로 지시합니다.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고 했을 때 여기서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이라는 말은 인자를 하나님의 아들과 일치시키는 표현입니다. 따라서 ‘인자’ 곧 사람의 아들로서의 예수님은 또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다니엘서 7:13절에 나오는 신적인 존재인 ‘인자 같은 이’로서의 하나님의 아들 즉 메시아이십니다. 그 인자 같은 이는 다니엘서 7:21절과 25절에서 암시하듯이 고난당할 것이므로 예수님께서도 고난을 당하실 것입니다(참조. 사 53:3-6).

 

예수님께서 받으시는 고난은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권세를 받으신 분으로서의 고난입니다. 따라서 이 고난은 결코 끝이 아닙니다. 그 고난 뒤에 반드시 승리하시고 영광을 받으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곧 심판의 주로서 아버지의 영광중에 천사들과 함께 다시 오셔서 이 세상을 심판하십니다. 고난당하신 예수님은 영광중에 다시 오십니다. 그러므로 인자의 고난에 참여하는 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아버지의 영광에도 참여할 것입니다. 이것이 인자의 고난에 참여하는 자들의 참된 소망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예수님이 어떤 메시아인줄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이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도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세상의 모든 것을 상대화하고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 십자가의 길을 가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주님께서 이루시는 새 출애굽의 은혜에, 곧 우리 주님과 함께 하나님 아버지의 그 영광에 참예하는 복된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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