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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마 10:1-23
성경본문내용 (1)예수께서 그 열 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2)열 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형제 안드레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3)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4)가나안인 시몬과 및 가룟 유다 곧 예수를 판 자라(5)예수께서 이 열 둘을 내어보내시며 명하여 가라사대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6)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7)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왔다 하고(8)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9)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이나 가지지 말고(10)여행을 위하여 주머니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군이 저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니라(11)아무 성이나 촌에 들어가든지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12)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13)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치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14)누구든지 너희를 영접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15)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16)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17)사람들을 삼가라 저희가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저희 회당에서 채찍질 하리라(18)또 너희가 나를 인하여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 가리니 이는 저희와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19)너희를 넘겨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말라 그 때에 무슨 말할 것을 주시리니(20)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21)장차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식을 죽는데 내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22)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23)이 동네에서 너희를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
강설날짜 2006-10-15

2006년 10월 15일 설교


열두 사도의 파송


말씀:마태복음 10:1-23
요절:마태복음 10:5-6  “예수께서 열 두를 보내시며 명하여 가라사대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오늘 말씀은 왕께서 열두 사도를 파송하는 사건입니다. 9:35-38절에서 “추수할 일꾼을 보내어 주시도록 기도하라”고 하신 왕께서는 오늘 본문에서는 열두 사도를 택하여 세우시고 “가서 천국이 가까웠다 전파하라”고 파송하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은 앞 장의 마지막 부분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습니다. 왕께서 “너희는 기도하라”고 명하신 것이 첫째 명령이었다면 “너희는 가라”고 하신 말씀은 두 번째 명령이었습니다. 열두 사도들은 예수님의 심정과 시각을 배우게 된 자들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들에게 “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왕이신 예수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셨던 사역이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열두 사도를 파송하시는 예수님을 배우고, 우리도 그 명령에 순종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많은 제자들 중에서 특별히 열두 제자를 부르시고 그들에게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셨습니다. 당시 예수님 주위에는 많은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예수님은 특별히 열둘을 택하여 권능을 덧입혀 주셨습니다. 이들은 단순한 제자들이 아니었습니다. 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열두 사도”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에서 ‘사도’라는 단어는 이곳에서 유일하게 나타납니다. 이것은 예수님과 그들의 관계가 특별하며, 이들이 앞으로 감당해야 할 사명의 성격이 어떠한 것인가를 암시하고 있습니다. 사도란 ‘보내심을 받은 자’라 뜻으로 대리자 혹은 전권대사를 의미합니다. 그들은 첫 메신저로서 왕이신 예수를 대리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유일한 임무는 왕을 대리하며, 왕의 말씀을 말하며, 그것을 권세 있게 전달하는 것입니다. 이들 사도는 예수님께 특별히 선택을 받은 사람으로서 그 가르침과 행동이 예수님께서 직접 가르치시고 행하신 것과 똑같은 권위가 부여된 사람입니다.

2-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세우신 열두 사도들의 이름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베드로라 하는 시몬, 그의 형제 안드레,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 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가나안인 시몬과 가롯 유다였습니다. 이 열둘은 예수님의 많은 제자들 중에서 특별히 사도로서의 권위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5-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전도자로 보내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보내시면서 그들이 전도해야할 대상을 한정해 주셨습니다.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이 말씀을 오늘날 우리의 관념으로 생각하면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승천하시면서 열한 제자들에게 주신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19-20)는 말씀과 배치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도들이 해야 할 일과 제자들이 해야 할 일을 구별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도들에게 주어진 사명은 그들에게 한정되어 있는 경우가 있고, 그 사명이 오늘날 우리 제자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 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은 ‘일차적으로 당시의 상황에서 파송되는 사도들에게 주신 말씀’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는 이 말씀은 예수께서 부활 승천하시기 전에 “너희는 온천 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심으로써 취소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는 말씀은 오늘날 우리에게 적용이 안 됩니다. 그러나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는 말씀은 우리에게 영원히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속에는 처음부터 모든 족속을 제자 삼으시려는 계획이 있으셨습니다. 다만 이 큰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열두 사도가 우선적으로 맡아야 할 부분은 이스라엘 전도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이후에는 상황이 바뀌어 그들도 예루살렘에만 모여 있지 않고 모든 족속으로 흩어져야 하기 때문에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제자들은 온 천하에 다니며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러면 열두 사도들이 가서 해야 할 사역은 무엇입니까? 7-8절에 보면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웠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고 하셨습니다. 사도들의 임무는 전혀 새롭고 독창적인 어떤 일을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잘 본받아 행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권능을 행하며 천국이 가까웠다고 전파하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사도들은 다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런 평범한 그들이 어떻게 병든 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할 수 있습니까? 1절에 언급된 것처럼 예수님께서 “권능”을 부여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사도들로 행하게 하신 그 일들은 메시아의 시대가 도래 하면 발생할 것으로 구약에 예언된 일들이었습니다(11:5; 사 29:18, 35:5). 예수님은 사도들의 권능 행함을 통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때가 되었고, 그 약속이 성취되고 있음을 나타내 보이게 하셨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사도들의 권능 행함은 고린도 교회에서 많이 나타났던 병 고침의 은사와는 달랐습니다(고전 12:9, 28). 사도들의 권능 행함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계시가 완성되기 전에 하나님 나라가 강하게 임하고 있음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를 위해 제자들 중에서 특별히 열두 사도들을 세우시고 이들로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당시 예수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셨던 사역은 온 세상에 하나님 나라가 전파되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역을 위해 자신을 대신할 사도들을 세우시고 이들에게 이 사명을 명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온 세상에 하나님 나라가 전파될 것을 내다보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추수할 주인이신 하나님께 추수할 일꾼을 보내어 주시도록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사도들을 세우시고 가서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게 하심으로 온 세상에 하나님 나라를 전파할 일꾼들을 모우셨습니다. 사도들을 통해 이루어질 이 사명이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전달되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제자들로 택하셔서 온 세상에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길 원하십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 나라가 증시되길 원하십니다. 이것이 주님의 뜻이요, 교회의 사명입니다. 우리가 열두 사도를 택하시고 이들을 파송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나라가 온 세상에 전파되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뜻이 나의 뜻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온 세상에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신 주님의 명령을 순종하며, 온 세상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역사에 귀하게 쓰임 받는 복된 인생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이들이 어떤 자세로 전도인의 직무를 행하도록 하십니까? 8b-15절은 전도인의 자세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8절에 보면 먼저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쉽게 말하면 우리가 공짜로 받았으니 공짜로 주라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권능을 거저 받았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공짜로 받았습니다. 이것은 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였습니다. 그러므로 권능을 행한 대가로 무엇을 요구해도 안 되고, 전도의 대가로 무엇을 요구해서도 안 됩니다. 전도인은 오직 은혜로 감당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전도인은 하나님의 은혜가 잘 드러나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이 아무것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예수님은 10b절에서 “일꾼이 저 먹는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라 하셨습니다. 수고비를 요구하는 것과, 은혜를 체험한 사람이 자발적으로 전도자의 필요를 공급해주는 감사의 표현을 받아들이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9-10a절을 보면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이나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주머니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전도자는 돈을 의지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말씀입니다. 전도는 근본적으로 돈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돈이 없으면 전도할 수 없는 시대가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빌립 전도니, 새생명 축제니, 하는 많은 전도를 위한 행사들이 많은 돈을 받고 이루어집니다. 전도를 위한 많은 세미나와 집회들, 그리고 많은 프로그램들이 너무나 인위적이고 세상적인 경영원리를 따릅니다. 돈과 인력과 좋은 프로그램이 없으면 전도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상황이 아무리 바뀌어도 전도는 돈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직 하나님을 믿음으로 전도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11-13절에 보면 전도인은 아무 성이나 촌에 들어가면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떠나기 까지 거기서 머물도록 하셨습니다. 또한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을 빌라고 하셨습니다. 만약 그 집이 사도들이 빈 평안을 받아들이면 그 집에 평안이 임할 것이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사도들이 빈 평안이 자신들에게로 돌아올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전적인 하나님 신뢰가 사람의 도움은 모두 거부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한 지역의 전도에 있어서 먼저 복음을 받아들이고 제자들을 영접하는 합당한 자를 찾아내고 그 가정을 중심으로 사역하게 하셨습니다. 빌립보를 개척할 때 사도 바울은 자주장사 루디아를 찾아내었고 그 가정을 중심으로 교회를 세웠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영접하지 않는 자들을 향해서는 어떻게 하라고 하십니까? 14-15절을 보면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고 하셨습니다. 전도자는 하나님 나라를 구걸하는 자세로 전파해서는 안 됩니다.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지만, 그 보다 더 귀한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그의 욕구와 필요를 적절히 채워주려는 자세는 꼭 필요하지만, 무슨 방법으로든 전도만 하면 된다는 생각은 잘못입니다. 전도를 위해서라 해도 복음의 영광이 손상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파하고 나머지는 하나님의 주권에 맡겨야 합니다.

그러면 열두 사도를 파송하는 예수님의 마음이 어떠하였습니까? 16절에 보면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열두 사도를 보내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내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가 지난 시간에 살펴봤듯이 양은 방어무기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내면 치명적인 상처를 입거나 잡혀 먹히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내는 심정으로 사도들을 세상 속으로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양을 이리떼 가운데로 보내면서도 그들이 이리떼의 공격을 받아 상처투성이가 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16b절에 보면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고 하셨습니다. 뱀은 아주 영리하고 지혜로운 동물입니다. 멍청하게 공격을 허용하지 않고 재빠르게 공격하며 위험을 지혜롭게 벗어납니다. 박해를 예상하고서도 무대책으로 당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가능한 상황에 지혜롭게 대처해서 불필요한 박해를 줄여야 합니다. 그러나 약삭빠른 기회주의자처럼 행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의 양심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해야 합니다. 곧 지혜가 순결함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혜’가 없는 ‘순결’은 어리석음이 되고 ‘순결’을 잃어버린 ‘지혜’는 교활함이 됩니다. 두 가지를 조화시킨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 살아가는 모든 제자들은 이리떼 속의 양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는 ‘지혜’와 ‘순결’을 적절히 조화시키는 일이 필수적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지혜와 순결을 위해서는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일이 빠질 수 없을 것입니다. 지혜롭고 순결한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구체적으로 제시해 주신 것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17절에 보면 “사람들을 삼가라”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제자들의 언행을 호시탐탐 엿보고 있다가 여차하면 사법 당국인 공회에 넘겨서 재판을 받게 할 것입니다. 성도들은 불신자들 사이에서 언행을 삼갈 필요가 있습니다. 둘째는 19절에 보면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속수무책으로 가만히 있으라는 말은 아닙니다. 다만 성령께서 가장 합당한 지혜를 주실 것을 믿고 인간적인 꾀를 궁리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셋째는 22절에 보면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셨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능력’과 ‘은사’를 구하지만 사실 이리떼 같은 세상 속에서 성도에게 부단히 요청되는 것은 ‘인내’입니다. 인내가 없으면 악인의 교활한 꾀를 따르기 쉽고 순결을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전도자는 핍박 가운데서 인내해야 합니다. 그런데 인내한다는 것은 무식하게 한 자리에 가만히 있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2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 동네에서 너희를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인내가 단지 한 자리에 오래 버티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신앙의 순결을 유지할 수 있는 적절한 방편과 장소를 찾는 것은 지혜에 속합니다. 주님께서는 핍박할 때 지혜롭게 대처하라고 하십니다. 핍박을 피해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피하는 것은 비겁한 것이 아닙니다. 지혜로운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핍박을 말씀하신 후 제자들에게 소망을 심어 주셨습니다. 23b절에 보면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대한 해석이 분분합니다. 그러나 많은 학자들이 A.D. 70년 예루살렘의 멸망 때를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예루살렘 멸망 때 예수님이 오셨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모든 도시들의 멸망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사람들로 하여금 서둘러서 긴급하게 나가 왕과 왕국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도록 한 이유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날은 전도인을 유혹하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전도인으로 살고자 할 때 많은 핍박과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속히 오십니다. 우리가 이런 세상에서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게 전도인의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람을 삼가며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인내하며 전도인의 직무를 감당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전도인의 직무를 다하고 주님께 칭찬 듣는 복된 자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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