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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마 10:24-42
성경본문내용 (24)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25)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 집 주인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 집 사람들이랴(26)그런즉 저희를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27)내가 너희에게 어두운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데서 말하며 너희가 귓속으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28)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29)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30)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31)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32)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33)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34)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35)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36)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37)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38)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39)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40)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41)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42)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강설날짜 2006-10-29

2006년 10월 29일 설교


제자와 선생은 하나!


말씀:마태복음 10:24-42
요절:마태복음 10:24-25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 집 주인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 집 사람들이랴.”

마태복음 10장은 예수께서 열두 사도를 파송하는 사건(1-15)과 이들이 핍박을 받을 것을 말씀하시는 내용(16-23)과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역자들이 예수와 하나가 되어야 한다(24-42)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지난번에 우리는 열두 사도 파송 사건과 이들이 받게 될 핍박에 대한 자세에 대해서 공부했습니다. 오늘은 마지막 부분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리가 살펴볼 24-42절은 사역자들이 예수와 하나가 된다는 참으로 은혜로운 말씀입니다. 본문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 말하고 있는데, 첫째 부분은 24-28절로 사역자들이 예수와 하나가 되면 그들의 개인적인 위치가 장차 어떻게 될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고, 두 번째 부분은 29-33절로 사역자들이 예수와 하나가 된 결과로 사역자들이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갖게 될지를 알려 주고 있으며, 마지막 부분은 34-42절로 사역자들이 주님과 하나가 된 결과로 파송의 대상이 되는 사람과의 문제가 어떻게 될 것인지를 알려 주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복음의 사역자들이 예수와 어떤 관계를 맺으며, 그것이 사역자들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가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복음의 사역자로서 예수와 하나 됨의 은혜를 누리며, 죄인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볼 때까지 복음을 전파하는 사명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열두 사도를 택하여 복음의 사역자로 파송하셨습니다. 사도들이 나가서 천국 복음을 전파할 때 그들은 많은 핍박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런 고난 가운데서 성공적으로 복음의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제자들이 예수와 하나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24-25절에 보면 주님께서는 복음의 사역자들이 자신과 하나가 되는 사실을 처음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제자는 선생보다 높을 수 없고, 노예가 그 상전보다 결코 높지 못합니다(24). 우리는 이 말에 다 동의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와 스승 곧 복음의 사역자들과 자신이 하나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25절에 보면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예수와 복음의 사역자들이 하나가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사역자가 주님과 하나가 된다는 사실은 너무나 놀라운 진술이며 은혜로운 말씀입니다. 제자가 어떻게 스승과 같고, 노예가 어떻게 그 주인과 같을 수 있습니까? 그러므로 주님과 하나가 된다는 이 말씀은 사역자들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되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종은 주인의 재산인 노예를 의미합니다. 이 단어는 신약에서 봉사할 때 제자들에게 늘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죄의 종에서 주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 예속된 종이기 때문에 반드시 그에게 복종해야 하는 존재들입니다. 또한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배우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코 주님보다 높지 못합니다. 지금까지 어떤 주인도 종을 보고 자신과 하나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스승도 제자에게 자신과 하나라고 말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왕이신 예수님께서는 종이요, 배우는 자들인 제자들에게 ‘제자가 선생 같고, 종이 상전과 같으면 족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이 말씀을 통해서 왕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교훈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제자가 선생 같고, 종이 상전과 같으면 족하다’라는 말씀은 우리가 주께 봉사할 때 주님께서는 자신을 우리와 하나 된 것으로 여겨 주신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와 하나된 것으로 여겨주심으로 그 결과 어떻게 됩니까? 40절에 보면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의 제자이며, 그는 우리의 선생이십니다. 그 분은 우리 위에 계십니다. 그런데 주께서 교훈하시는 바는 우리를 자기와 같이 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봉사할 때 그 분의 모든 것을 우리의 것으로 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는 우리를 자신과 완전히 하나 된 신분으로 보십니다. 우리가 비록 종이긴 하지만 왕을 위하여 말하도록 뽑혔기 때문에 왕을 대신하며, 왕의 이름과 성격과 능력에서도 왕과 하나입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 됨’이라는 주제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우리가 주님보다 더 나은 대접받는 것을 결코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25절 보면 “집 주인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 집 사람이랴”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주인 되신 예수께서 사람들로부터 오해를 받아오셨으며, 그들에게 잘못 인식되어 오셨기 때문에 종 된 우리는 주님보다 나을 것을 결코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주인 되신 주께서 가르치셨던 진리가 사람들에게 분명하게 알려 질 수 없었다면 우리도 어김없이 똑같은 어려움에 직면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이 사명을 감당하고자 할 때 당하는 핍박은 너희가 나와 하나 될 때 생기는 불가피한 문제임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의 사역자로 사역을 감당할 때 당하는 핍박은 우리가 주님과 하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핍박을 당하신 것처럼 우리도 핍박을 당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인식할 때 핍박 가운데서도 낙심하지 않고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런 관점에서 제자들에게 확신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26절을 보면 “그런즉 저희를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닥칠 핍박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주인인 자신을 바알세불이라 부르며, 하신 일을 귀신이 하는 일이라고 한 그들로부터 제자들은 더 많은 반대에 직면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진리는 결국 승리한다는 것입니다. 곧 ‘제자들이 사람들에게 보여 주려 했으나 보여 줄 수 없었던 감추인 것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너희들이 간절히 빛 가운데로 드러내려고 했던 숨겨진 것이 드디어 빛으로 나올 것이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복음의 사역자들에게 우리 사역의 승리를 확실히 보장해 주시는 위대한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27절에서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 데서 말하며 너희가 귓속으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제자들에게 두려워해야 할 것은 단 한 가지뿐이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두려워해야 할 한 가지가 무엇입니까? 28절에 보면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분은 몸과 영혼을 지옥에 멸하시는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우리의 왕이신 예수께서 일찍이 이보다 더한 위엄을 갖고 감동적으로 말씀하신 적이 있었습니까? 이처럼 승리의 확신에 찬 말씀은 이전에 하신 적이 없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누구를 죽인다면 그것은 그가 가할 수 있는 최대의 형벌을 가한 것입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주님께서는 영혼을 죽이는 것과 비교할 때에 몸을 죽이는 것은 전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몸을 죽이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승리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십자가로 나아가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분은 오직 한 분, 영혼과 몸을 다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사역자들은 몸은 죽일 수 있지만 우리의 영혼을 죽일 수 없는 핍박하는 사람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우리의 영혼과 몸을 지옥에 멸하시는 하나님 한분만 두려워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만이 끝가지 믿음의 순결을 지키며 지혜롭게 인내하게 됩니다. 승리의 삶을 살게 됩니다. 교회사에 보면 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하나님 한분만을 두려워함으로 믿음의 순결을 지키고 승리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사람이 우리가 잘 아는 사도 요한의 제자였던 폴리캅입니다. 핍박 자들은 그에게 예수를 한번만 부인하면 살려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때 폴리캅은 ‘그 분은 일생 동안 나를 부인한 적이 없는데, 내가 어찌 그분을 부인할 수 있겠느냐’는 유명한 말을 남기고 화형을 당하였습니다. 그는 몸을 죽이는 사람보다 몸과 영혼을 지옥에 멸하시는 하나님을 더 두려워하였기 때문에 믿음의 순결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폴리캅과 같은 많은 믿음의 선진들을 본받아 우리의 몸과 영혼을 멸하시는 하나님 한 분만을 두려워하며 어떤 역경과 핍박과 가운데서도 믿음의 순결을 지키며 복음 전파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9-33절까지 말씀에서는 급격하게 말씀의 방향을 바꾸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사역자들이 자신과 하나 된 결과로 인한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두려워해야 할 하나님에 관한 진리를 두 가지 간단한 예를 들어 말씀해 주셨습니다. 29-30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심지어 참새가 죽는 것까지도 관심을 기울이시는 분이시며, 우리의 머리털까지 세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 한다”는 말은 참새들 중에 어느 하나라도 하나님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땅에 떨어지는 법이 없다는 그런 듯이 아니라 하나님은 죽어가는 참새와 함께 한다는 그런 뜻입니다. 또한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바 되었다”는 말씀은 우리의 머리카락을 계산한다(counting)는 것이 아니라 세신다(numbering)는 말씀입니다. 세는 것은 계산하는 것 그 이상입니다. 세는 것은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이는 것(labeling)으로서 계산하는 것보다 훨씬 더 놀라운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두 가지 예를 들어서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는 바는 하나님께서는 무한히 위대하실 뿐만 아니라 무한히 섬세하신 분이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핍박하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두려워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두려워 할 때 올무에 빠집니다. 주님을 사람들 앞에서 시인하지 못하고 부인하게 됩니다. 주님은 32-33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하실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주 자상하고 세밀하게 지키시기 때문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핍박 자를 두려워하지 말고 그들 앞에서 그리스도를 시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 앞에서 그리스도를 시인하면 그리스도께서도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시인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그리스도를 시인함으로써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께서 하늘에서 시인함으로써 우리와 하나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언제든지 나아가서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를 시인하면 우리는 그 분 안에 거하며 안전하게 보호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시인하는 동안 주께서는 하나님 보좌 앞에서 우리를 시인하며 우리 안에 서 계십니다. 따라서 사람들이 우리 안에 계신 주님을 보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를 보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하나 된다는 것은 위대한 특권일 뿐 아니라 동시에 위대한 책임입니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그 분을 부인하면 우리는 그 분과 분리가 됩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우리와 분리가 되시면 주께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 앞에서 우리를 부인합니다. 우리가 하찮은 미물인 참새와도 함께 하시며 우리의 머리칼을 세시는 무한히 위대하시며, 섬세하신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하나님을 바라보며 어떤 상황과 형편 가운데서도 늘 그리스도를 시인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34-38절은 그리스도와 하나 된 사람들이 세상 사람들에 대해서 갖는 관계를 설명하는 말씀입니다. 세상에는 우리를 거절하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가는 곳에는 불화와 적과 칼이 따라옵니다. 34-36절을 보면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고 했습니다.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주님의 통치를 받으며 천국의 시민으로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자기만족과 이 땅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과는 필연적으로 충돌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고자 할 때 당하는 모든 핍박과 어려움, 특히 사랑하는 가족들로부터 미움을 당하고 원수가 될 때 우리는 이러한 극한 상황 속에서도 그리스도를 붙잡아야 합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고자 하는 분명한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자 하는 분명한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37-38절은 말합니다. “아비나 어미를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아니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성경은 가족의 중요성과 한 생명의 중요성을 매우 강조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아비나 어미를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않다고 하십니다. 아들과 딸을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않다고 하십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주님보다 더 우선일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주님을 위해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게 될 것입니다(39).

복음의 사역자들인 제자들은 예수님과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을 영접하는 자는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요,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40).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입니다.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상을 잃지 않게 될 것입니다. 복음의 사역자들은 예수와 하나이기 때문에 사역자들을 영접하는 것은 곧 예수를 영접하는 것입니다. 이런 자에게 생명이 주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 복음의 사역자들은 예수와 하나라는 분명한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어떤 핍박과 고난과 역경 가운데서도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 한 분만을 두려워하며 늘 그리스도를 시인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런 삶을 살므로 진리 안에서 늘 승리하며,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시인하는 복된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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