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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마 11:25-30
성경본문내용 (25)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26)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27)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28)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29)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30)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강설날짜 2006-12-03

2006년 12월 3일 설교


왕의 은혜로운 초청!


말씀:마태복음 11:25-30
요절:마태복음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오늘 말씀은 11장 말씀의 마지막 부분으로 은혜로운 왕의 초청의 음성입니다. 예수님께서 온 갈릴리에 다니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지만 반응은 거절이었습니다. 특히 예수님께서 가장 많은 권능을 행한 도시인 고라신과 벳새다와 가버나움의 사람들까지 거절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의 거절로 인해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영접하고 도리어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은혜로운 초청을 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이 시간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의 심령을 겸손케 하시고 우리로 주님의 은혜로운 초청의 음성을 듣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주님께로 나아가 주님이 주시는 참된 쉼을 누리는 복된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은 온 힘을 다해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가는 곳마다 많은 권능을 행하셨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의 반응은 사늘하였습니다. 백성들은 예수님을 거절하고 천국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특히 가장 많이 권능을 행한 도시들로부터도 예수님은 배척을 당하셨습니다. 우리가 복음의 전도자로 열심히 복음을 전할 때 배척을 받으면 낙심이 되고 절망이 됩니다. 힘을 다해 수고했는데도 결과가 변변찮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힘이 빠집니다. 열심히 기도했는데 응답이 없을 때 불신에 빠집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예수님의 복음 사역은 철저한 실패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런 상황 가운데서도 도리어 쉼을 누리시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셨습니다. 25절에 보면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 하나이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거절당하고 복음역사가 방해에 부딪친 상황 가운데서도 쉼을 누리셨습니다. 도리어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복음을 전파하다가 거절을 당하고 실패할 때, 난관에 봉착할 때 낙심하고 절망해서는 안 됩니다. 도리어 하나님께 감사의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과 같이 하나님 안에서 쉼을 누리며, 감사하는 자리에 서지 못할 때 우리는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을 결코 감당해 내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감사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예수께서 드러내신 것들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 같은 자들에게는 나타내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방식이 하나님의 방식이심을 깨닫고 감사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절대적인 주권과 의지 속에서 쉬셨습니다.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예수님은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시는 이 방법이 최상의 방법이자 유일의 방법이라는 것을 아셨기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천국 복음은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십니다. 여기서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이란 스스로 똑똑하게 여기며 복음을 거절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장터의 아이들처럼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반면 ‘어린 아이들’은 단순하게 주님을 받아들인 사람들입니다. 헬라어에 보면 여기서 사용된 ‘어린 아이들’이라는 말은 ‘말을 할 줄 모르는 아이’를 말합니다. 이 말은 자라지 못한 상태를 가리키며, 무엇이든지 수용할 자세가 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단순한 마음, 단순한 정신을 가진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풍성한 비밀을 나타내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 방법입니다.

26-2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 감사를 마치신 후 자신에 관하여 선언하셨습니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모든 것을 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진리에 관한 일들, 곧 예수님께서 오셔서 나타내신 일들, 어리석은 세대가 비웃었던 일들, 회개치 않는 성읍들이 받아들이지 않았던 일들, 진리와 의와 사랑에 관한 모든 일들을 자신에게 주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은 자 외에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서는 누구도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분명한 하나님의 뜻을 확신했기 때문에 낙심하지 않고 도리어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감사는 자기 뜻대로 된 것에 대한 기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노력과 땀의 결실로 인한 감사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뜻대로 된 것에 대한 감사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천국 복음을 숨기시고 단순한 마음을 가진 어린 아이들에게는 천국 복음을 나타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진리를 예수님께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통해서만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될 때 실패와 난관에 부딪쳐서도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님의 감사를 허락하셔서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복음의 사역자로서 하나님 안에서 쉼을 누리며, 주님께서 맡겨주신 복음 전파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해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28절을 보면 예수님은 이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인생들을 자신에게로 초청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참으로 이 말씀은 은혜로운 초청의 음성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말씀을 27절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은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는 말씀과 연관시켜서 이해하지 못하면 그 참된 의미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게로 오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것은 단순히 감상적인 동정이 아니었습니다. 이 말씀의 실제적인 의미는 “내게로 오라. 그리하면 너희들에게 아버지를 계시하리라. 나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하나님을 발견하리라. 나를 받아들임으로써 내가 정한 삶의 법칙을 받아들이라. 그리하면 쉼을 발견하리라. 왜냐하면 내가 멘 멍에는 쉽고, 내가 진 짐은 가볍기 때문이다. 내게로 오라. 나와 일체가 되라. 나로 하여금 빛을 비추는 창문이 되게 하고, 너희들이 하나님께로 갈 수 있는 문이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할 때 불안하게 되고 고뇌에 빠지게 됩니다. 죄와 인생의 무거운 짐으로 인해 쉼이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런 인생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게로 오라. 나는 아버지를 안다. 내가 아버지께로 데려가겠다. 너희들이 아버지를 발견하게 될 때 너희는 쉼을 얻을 것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주님의 이 은혜로운 초청은 어린 아이들에게 뿐만 아니라 모든 무리들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이 초청은 요한이 예수님의 사역하시는 방법을 이해하지 못해 혼란에 빠져 있을 때 부르신 부르심이었습니다. 피리를 불고 춤을 추어도 아무 반응이 없던 자들을 부르신 부르심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많은 권능을 보고도 배척하던 성읍들을 부르신 부르심이었습니다. 곧 이 주님의 은혜로운 초청의 음성은 모든 사람들에 대한 초청의 음성이었습니다. 요한은 이 주님의 부르심으로 말미암아 쉼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는 지하 감옥에서 하나님을 새로이 발견하였습니다. 요한이 주님의 초청에 순종하여 하나님을 발견하고 쉼을 누렸다는 것은 그가 자신의 제자들을 예수님에게로 보낸 데서 분명히 나타납니다. 어린 아이들 곧 그 마음이 단순한 자들도 주님의 초청의 음성에 순종하여 주님께 나아와 하나님을 발견하고 쉼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주님의 초청의 음성이 순종하여 주님께로 와서 하나님을 발견하고 쉼을 누린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많은 권능을 행하신 고라신, 벳새다. 가버나움 성읍들은 예수께로 오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쉼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멸망을 당하였습니다. 그 성읍들은 역사상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은혜로운 초청의 음성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주님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어린 아이와 같이 주님께로 나아갈 때 하나님을 발견하고 참 쉼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주시는 쉼을 얻기 위한 전제 조건이 무엇입니까? 28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이 말씀을 볼 때 우리가 쉼을 얻기 위한 첫 번째 전제 조건은 주님께로 가는 것입니다. 또 29-30절에 보면 주님께서는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우리가 쉼을 얻기 위한 두 번째 전제 조건은 예수님의 멍에를 메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쉼을 얻기 위한 세 번째 전제 조건은 예수님을 배우는 것입니다.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예수님을 배운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까? 우리가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짐을 이해해야 합니다. 예수님 자신이 지신 짐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지신 짐은 단 하나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짐이었습니다. 곧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하는 짐이었습니다. 요한복음 4:34절에 보면 주님께서는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행하는 것,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는 것 이것이 예수님의 삶에서 제일의 열정이었습니다. 이런 예수님에게는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그의 뜻을 온전히 이루는 삶을 우리는 제일 무거워 합니다. 그것이 너무 무겁고 힘들기 때문에 우리는 부담을 느끼고 쉼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의 생각이 잘못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믿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제일 어려운 일이라고 말합니다. 사실 산상수훈만 생각해봐도 하나님의 백성답게 사는 삶이 만만하지 않습니다. 율법주의 멍에 아래 살아가던 사람들보다 훨씬 고차원적이고 훨씬 내면화 된 순종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구약 백성은 겉으로 살인하지 않고 간음하지 않으면 되었습니다. 그러나 신약의 백성들은 형제를 보고 욕하거나 마음으로 간음하는 것마저도 정죄를 받습니다. 그러나 이 멍에가 쉽고 이 짐이 가벼운 이유가 무엇입니까? 나의 힘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로 말미암기 때문입니다. 주님께로 와서 주님을 영접하고 주님의 통치를 받는 자들은 주님과의 관계성 회복에서 오는 기쁨과 즐거움에서 그런 삶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전능하시지만 온유하고 겸손합니다. 그래서 그 분과 함께 멍에를 메면 실상은 주님의 능력으로 쟁기를 다 끌어주시고 우리는 그냥 멍에만 걸치고 갈 뿐입니다. 은혜로 동행하는 것입니다. 주님과 바른 관계성 속에서 주님께서 가시는 대로 동행하면 저절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삶은 무거운 멍에가 아닙니다. 참 쉼이 있는 삶입니다.

저는 늘 자신의 부족함과 허물로 인해 자책하는 무거운 짐이 있었습니다. 인간관계의 무거운 짐으로 인해 목회의 삶에 쉼이 없었습니다. 주님은 이런 자를 향해 말씀 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이 주님의 초청의 음성이 얼마나 은혜로운 초청인가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가 주님 앞에 나아가 주님을 배우고자 했을 때 주님께서는 이 종에게 쉼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이 종이 날마다 주님의 은혜로운 초청의 음성을 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수고와 무거운 짐을 지고 쉼이 없는 우리 인생들을 초청하십니다. 여러분들에게는 어떤 수고와 짐이 있습니까? 우리가 주님의 은혜로운 초청의 음성을 듣고 어린 아이와 같이 주님께 가서 주님의 멍에를 메고 주님을 배우는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참 쉼을 누리는 복된 인생들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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