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방문자 : 
    159
  • 어제방문자 : 
    1,188
  • 전체방문자 : 
    1,304,876
조회 수 4330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Extra Form
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마 12:1-21
성경본문내용 (1)그 때에 예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가실새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 먹으니(2)바리새인들이 보고 예수께 고하되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3)예수께서 가라사대 다윗이 자기와 그 함께 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4)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자기나 그 함께 한 자들이 먹지 못하는 진설병을 먹지 아니하였느냐(5)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6)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이가 여기 있느니라(7)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면 무죄한 자를 죄로 정치 아니하였으리라(8)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9)거기를 떠나 저희 회당에 들어가시니(10)한편 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를 송사하려 하여 물어 가로되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11)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붙잡아 내지 않겠느냐(12)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하시고(13)이에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손을 내밀라 하시니 저가 내밀매 다른 손과 같이 회복되어 성하더라(14)바리새인들이 나가서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꼬 의논하거늘(15)예수께서 아시고 거기를 떠나가시니 사람이 많이 좇는지라 예수께서 저희 병을 다 고치시고(16)자기를 나타내지 말라 경계하셨으니(17)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말씀하신 바(18)보라 나의 택한 종 곧 내 마음에 기뻐하는바 나의 사랑하는 자로다 내가 내 성령을 줄 터이니 그가 심판을 이방에 알게 하리라(19)그가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20)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21)또한 이방들이 그 이름을 바라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강설날짜 2006-12-10

2006년 12월 10일 설교


안식일 논쟁!


말씀:마태복음 12:1-21
요절:마태복음 12:7-8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면 무죄한 자를 죄로 정치 아니하였으리라.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12장은 11장에 이어 예수님에 대한 반응에 관한 말씀입니다. 12장에서는 예수님에 대한 반응으로 11장에서 단순히 거절한 것과는 달리 적대적인 반응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12장에서는 세 가지 사건 곧 안식일에 관한 충돌(1-21)사건과 예수님의 능력에 대한 논쟁(22-37)과 표적을 구하는 이스라엘(38-50)에 대한 왕의 말씀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첫 번째 반응으로 안식일 논쟁에 관한 말씀입니다. 1-8절은 밀밭에서 생긴 안식일에 대한 논쟁이고, 9-21절은 회당에서 생긴 안식일 논쟁입니다. 예수님은 안식일 논쟁을 통해 제자들을 변호해 주시고 자신이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이에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죽이고자 했습니다. 이들이 왜 예수님을 죽이고자 한 것입니까? 본문을 통해 안식일의 주인 되신 예수님을 배우고 안식일에 대한 바른 자세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1-2절에 보면 예수님 일행들이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지나갔습니다. 그 때 제자들이 배가 고파 밀 이삭을 잘라 먹었습니다. 아마 제자들은 머리 둘 곳 없이 사신 예수님을 늘 쫓아 다니다보니 제 때 식사를 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장면을 지켜보던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문제를 제기 했습니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 출애굽기 34:21절에 보면 “너는 엿새 동안 일하고 제 칠일에는 쉴지니 밭 갈 때에나 거둘 때에도 쉴지며”라고 했습니다. 아마 바리새인들은 이 말씀에 기초해서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 이삭을 잘라 먹은 것을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 즉 추수행위로 간주했던 것 같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제자들이 안식일 법을 어겼다고 비난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두 가지 예를 들어 제자들을 변호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첫 번째 변호가 무엇입니까? 3-4절을 보면, 다윗이 율법을 어긴 사건을 예로 들어 제자들을 변호해 주셨습니다. “다윗이 자기와 그 함께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자기나 그 함께 한 자들이 먹지 못하는 진설병을 먹지 아니하였느냐.” 이 사건은 사무엘상 21:1-6절에 기록된 사건입니다. 당시 다윗과 그 일행들은 사울 왕에게 쫓겨 삼일 동안 아무 것도 먹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다윗과 그 일행은 놉에 있는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이르러 사정을 이야기 하고 제사장들만 먹을 수 있는 진설병을 먹었습니다. 다윗은 사람들이 만든 장로들의 유전을 범한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율법 자체를 범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일로 인해 율법을 어겼다고 정죄 받지 않았습니다. 그가 율법을 어겼어도 정죄를 받지 않았던 것은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구별된 인물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의 논리는 어떤 것입니까? 다윗과 그와 함께 한 자들이 율법의 요구를 뛰어넘어 행동할 수 있는 권위가 있었다면 다윗 보다 더 크신 분, 곧 다윗이 그림자로 내다본 메시아 자신인 예수와 그 분의 제자들은 더 큰 권위를 갖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이 예수와 함께 있으면서 안식일에 밀 이삭을 잘라 먹었다고 해서 비난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두 번째 변호가 무엇입니까? 5-6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안식일 날 성전 안에서 제사를 섬기는 제사장들의 예를 들어 제자들을 변호해 주셨습니다. “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구약 율법에 의하면 제사장들은 ‘성전 안에’ 있다는 이유로 안식일에 많은 일을 하고 있지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민수기 28:9-10절에 보면 안식일에 제사장들은 성전 안에서 일 년 되고 흠 없는 수양 둘과 고운 가루 에바 십 분지 일에 기름 섞은 소제와 그 전제를 드렸습니다. 이것이 매 안식일 마다 제사장들이 드릴 번제였습니다. 이처럼 제사장들은 안식일에 성전 안에서 짐승을 잡고 떡을 만들어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지만 안식일 법을 어겼다고 정죄 받지 않았습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구약의 율법에서도 성전은 안식일보다 더 큰 권위를 가졌습니다. 그래서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일을 범하여도 죄가 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율법보다 더 큰 권위를 가졌던 성전도 장차 메시아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 죄 사함을 받고 관계가 회복될 것을 나타내는 그림자에 불과했습니다. 성전은 참 성전 되신 예수님의 그림자에 불과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6절에서 자신이 성전보다 더 크다고 선언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예수님께서 이렇게 선언하신 것은 성전이 하나님의 임재의 역할 때문에 안식일보다 더 큰 권위를 갖는다면 성전의 역할을 성취하심으로 성전 자체를 대체 하시는 예수님 자신은 안식일보다 훨씬 더 큰 권위를 가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예수님에 의해 성취 되었습니다. 마태복음 1:23절에 보면 처녀의 몸을 빌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이름이 ‘임마누엘’이었습니다. ‘임마누엘’이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임마누엘 사상은 마태에게 있어서 아주 중요한 사상이었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23절(“…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과 마태복음 28:20절(“…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을 보면 마태복음 전체가 ‘임마누엘’로 감싸기 구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에게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고 말씀하심으로 성전보다 더 큰 권위를 가진 자신 안에 있는 제자들은 제사장들처럼 안식일 법을 어겼다고 해서 죄가 되지 않는 다고 변호해 주셨습니다.

안식일을 잘 지키고자 했던 바리새인들의 동기는 잘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방인과는 분명하게 구별된 삶을 살고자 했던 그들의 동기는 존중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많은 세칙들을 만들어내면서 본래의 안식일 정신을 잃어버렸다는데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구별하신 본래 목적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인간들에게 쉼을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창세기에 보면 인간이 창조된 뒤 다음날 맞이한 것이 안식일이었습니다. 이처럼 안식일은 하나님의 자비의 표현으로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을 잘 지키려는 의욕으로 오히려 더욱 무거운 짐을 사람들에게 지워놓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의 정신을 잃어버린 그들을 안타까워하시며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면 무죄한 자를 죄로 정치 아니하였으리라”고 하셨습니다(7). 이 말씀은 호세아 6:6절 말씀을 인용한 말씀입니다. 호세아가 의미한 바는 하나님께서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만일 사람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면서 마음에 자비가 없다면 그의 제사는 오히려 하나님께 대한 모독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인용한 것은 만일 너희가 성경이 말씀하는 바를 바로 알고 배고픈 사람은 안식일이든 아니든 먹어야 함을 이해했더라면 너희는 죄없는 자를 결코 비난하지 않았을 것이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변호해 주는데서 나아가 이제 자신이 안식일에 주인이심을 선언하셨습니다. 8절에 보면 예수님은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안식일에 주인이기 때문에 안식일에 밀 이삭을 잘라 먹은 제자들이 죄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변호의 초점은 제자들이 ‘안식일을 범하지 않았다’는데 있지 않고, 오히려 예수님은 자신이 안식일의 주인이기 때문에 정죄가 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과 함께 하는 제자들이 안식일에 어떤 일을 행한 것은 그들이 안식일의 주인인 자신과 교제를 가진 가운데 이루어진 일이기 때문에 그것이 정당화 될 수 있다고 변호해 주신 것입니다.

안식일에 대한 논쟁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을 변호해 주시고 자신이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선언하자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죽이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죽일 꼬투리를 잡기 위해 예수님을 시험했습니다. 9-1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거기를 떠나 회당에 들어 가셨을 때 바리새인들이 한손 마른 자를 앞에 두고 예수님을 송사하기 위해 질문했습니다.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예수님은 이런 그들에게 어떻게 대답하셨습니까? 예수님은 그들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지심으로 그들의 질문에 대답하셨습니다. 11-12절에 보면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다면 붙잡아 내지 않겠느냐?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이 말씀은 ‘너희가 양을 소유하고 있을 때조차도 그들을 돌보고 또 구해 내거든, 하물며 사람이 양보다 더 귀하지 아니하냐?’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병든 자를 고치는 것이 옳다고 하셨습니다. 13절에 보면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신 후 한 손 마른 자에게 손을 내밀라 하시고 저가 내밀매 다른 손과 같이 온전히 고쳐 주셨습니다. 안식일에 주인 되신 예수님은 안식일에 병든 자를 고쳐 주심으로 안식일에 주인이 해야 할 일을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안식일의 진정한 의미를 성취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결코 죄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자 바리새인들은 더욱 마음이 악해져서 예수님을 어떻게 죽일꼬 의논하였습니다(14).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죽이고자 한 것은 예수님 자신이 안식일에 주인이라고 주장하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신의 마음에 기뻐하는 바는 무엇이든지 시행할 수 있는 왕권을 가지셨다고 주장하셨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이처럼 안식일에 집착한 것은 안식일에 대한 그들의 특별한 자부심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유대교 하면 율법이나 번제나 성전이나 할례를 떠올릴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근동의 이방민족들에게서도 할례가 있었고 신전이 있었으며 번제와 계율이 있었습니다. 이런 것들은 유대인들만의 특징이 아니었습니다. 반면에 안식일은 오직 유대교에만 있는 아주 독특한 특징이었습니다. 따라서 안식일은 그들로 모든 민족들과 구별되게 하며 선민의식을 고취시켜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자연스럽게 그들은 안식일을 철저히 지키고자 하는 의식이 강렬해졌습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 아무 일도 하지 말라”(출 20:10)는 안식일에 대한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 장로들의 유전이라 불리는 39조 234항의 부가 세칙들을 만들었습니다. 그 세칙들에 의하면 안식일에 6스타디아(약 1,200 미터) 이상의 여행과 무화과 두개 무게 이상의 짐을 드는 것은 금물입니다. 음식을 장만하는 것이나 부부관계도 금지되었습니다. 추수도 금지했습니다. 이런 일들은 모두 일에 해당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근거가 희박한 세칙들은 너무 많아서 마치 머리카락 한 올에 많은 산들이 매달려 있는 것 같은 꼴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안식일을 소중히 여겼던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하며 안식일을 파기하는 예수님을 그냥 둘 수 없었습니다.

15절에 보면 예수님은 그들이 자신을 죽이고자 하는 것을 아시고 그곳을 떠나셨습니다. 그러자 많은 무리들이 예수를 따랐습니다. 예수님은 많은 병자들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드러내지 말라고 엄중히 경고하셨습니다. 이것은 이사야 42:1-4절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었습니다. “보라. 나의 종 곧 내 마음에 기뻐하는 바 나의 사랑하는 자로다. 내가 내 성령을 줄터이니 그가 심판을 이방에 알게 하리라. 그가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또한 이방들이 그 이름을 바라리라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18-21). 마태가 여기서 이 말씀을 인용하고 있는 것은 예수님의 권위가 하나님에 의해 인증된 것이며, 다윗과 성전과 안식일의 권위를 능가한다는 것이 사실임을 확증하기 위해서 입니다.

우리는 오늘 안식일 논쟁에서 안식일의 주인되시며, 모든 사람의 주인되신 왕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안식일을 지키는 진정한 의미를 배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변호의 초점은 제자들이 안식일을 범하지 않았다는데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안식일의 주인이시며, 안식일을 성취하셨기 때문에 그 자신 뿐 아니라 자신의 제자들까지도 안식일 율법 자체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고 변호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이 되십니다. 이 예수님은 안식일을 성취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안식일을 가장 잘 지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주님과 함께 교제하며 주님의 뜻을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일날 예배에 참석하고 헌상을 하고 그 날을 구별하여 드렸다 할지라도 주님을 심령에 영접하지 않고 그 분과 교제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드린 예배는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의 종교 행사를 행한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곧 이것은 우리가 열심히 제사를 드린 것뿐입니다. 우리가 안식일의 주인 되신 주님 안에서 주님과 교제하며 주님의 뜻을 행함으로 진정한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TAG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성경본문 설교자 강설날짜 조회 수
147 [마태복음 13장] 씨 뿌리는 자의 비유 마 13:1-23 손재호 2007-01-28 6448
146 [마태복음 13장] 누룩 비유 마 13:33 손재호 2007-02-18 4803
145 [마태복음 13장] 그물 비유 마 13:47-50 손재호 2007-03-11 4221
144 [마태복음 13장] 고향에서 배척당한 그리스도 마 13:53-58 손재호 2007-03-25 3223
143 [마태복음 13장] 겨자씨 비유 마 13:31-32 손재호 2007-02-11 4229
142 [마태복음 13장] 값진 진주 비유 마 13:45-46 손재호 2007-03-04 3738
141 [마태복음 13장] 감추인 보화 비유 마 13:44 손재호 2007-02-25 3797
140 [마태복음 13장] 가라지 비유 마 13:24-30, 36-43 손재호 2007-02-04 4949
139 [마태복음 12장] 왕의 표적 논쟁! 마 12:38-45 손재호 2007-01-14 3228
138 [마태복음 12장] 왕의 진정한 가족! 마 12:46-50 손재호 2007-01-21 3386
137 [마태복음 12장] 왕의 기적 논쟁! 마 12:22-37 손재호 2007-01-07 3658
» [마태복음 12장] 안식일 논쟁! 마 12:1-21 손재호 2006-12-10 4330
135 [마태복음 11장] 회개치 않는 도성에 대한 책망! 마 11:20-24 손재호 2006-11-12 3545
134 [마태복음 11장] 왕의 은혜로운 초청! 마 11:25-30 손재호 2006-12-03 3158
133 [마태복음 11장] 세례 요한의 질문과 왕의 대답! 마 11:1-19 손재호 2006-11-05 4256
132 [마태복음 10장] 제자와 선생은 하나! 마 10:24-42 손재호 2006-10-29 3418
131 [마태복음 10장] 열두 사도의 파송! 마 10:1-23 손재호 2006-10-15 3459
130 [마가복음 9장] 잘못된 제자도를 교정하신 예수님 file 막 9:33-50 손재호 2016-05-22 1518
129 [마가복음 9장]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형되신 예수님 file 막 9:1-13 손재호 2016-05-08 1610
128 [마가복음 9장] 귀신들린 아이를 고치신 예수님 file 막 9:14-32 손재호 2016-05-15 1265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32 33 34 35 36 37 38 39 40 Next
/ 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