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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막 4:26-29
강설날짜 2015-12-27

2015년 마가복음 공부


스스로 자라나는 씨 비유


말씀:마가복음 4:26-29

 

오늘도 우리는 지난 시간에 이어서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에 대해서 공부하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은 세 번째 비유의 말씀으로 ‘스스로 자라나는 씨’ 비유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 비유의 말씀은 4복음서 중에서 오직 마가복음에서만 나오는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하나님의 나라는 농부가 그의 밭에 뿌려 놓은 씨와 같다고 했습니다. 밭에 뿌려진 그 씨는 농부가 자고 깨고 하는 동안에 스스로 싹이 돋고 자라서 열매를 맺습니다. 마침내 추수 때가 되면 농부는 낫을 가지고 나가서 풍성하게 잘 익은 곡식을 거두어들입니다. 우리가 오늘 이 비유의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이 비유의 말씀을 통해서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계시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26절을 보면 “또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는 농부가 씨를 땅에 뿌림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첫 번째 비유였던 ‘씨 뿌린 자의 비유’(막 4:3-20)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알기를 허락된 자들은 반드시 풍성한 결실을 한다는데 그 초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가복음 4:8절에 보면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삼십 배와 육십 배와 백 배가 되었느니라”고 했습니다. 반면에 오늘 이 ‘스스로 자라나는 씨의 비유’는 그 씨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결실을 하게 되는지에 그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곧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자라고 열매 맺는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27-29절을 보면 “저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그 어떻게 된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니라”고 했습니다. 농부가 자기 밭에 뿌린 씨는 농부가 자고 깨고 하는 동안에 스스로 싹이 나고 자라서 열매를 맺습니다. 곧 농부는 그 씨가 어떻게 싹이 나고 자라서 열매를 맺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밭에 심기운 그 씨는 농부가 자고 깨고 하는 사이에 싹이 나고 자라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농사를 지어 본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밭에 심겨진 그 씨는 처음에는 싹이 납니다. 그 다음에는 그 싹이 자랍니다. 그리고 이삭을 냅니다. 그 이삭에 많은 열매가 맺힙니다. 그리고 열매가 익어서 마침내 추수 때가 되면 농부는 낫을 대어서 추수를 합니다. 그런데 농부는 그 씨가 어떻게 싹이 나고 자라서 열매를 맺는지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알지 못하는 사이에 그 씨가 싹이 나고 자라서 이삭을 내고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싹이 나고 자라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군사적인 메시아를 통해서 이스라엘이 회복되리라는 유대인들의 기대대로 새 출애굽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메시아 되신 예수님께서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심을 통하여 이스라엘이 회복되고 새 출애굽이 발생한 것입니다. 이것은 당시 유대인들이 전혀 기대하지 않은 방식이었습니다. 그들이 모르는 사이에 예수님을 통해서 새 출애굽이 왔습니다.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는다”라는 표현은 희년을 연상시킵니다. 희년은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는 해입니다. 레위기 25:11절을 보면 “그 오십년은 너희의 희년이니. 너희는 파종하지 말며 스스로 난 것을 거두지 말며 다스리지 아니한 포도를 거두지 말라”고 했습니다. 또한 희년은 노예가 해방되는 해입니다. 레위기 25:54절을 보면 “그가 이같이 속하지 못하면 희년에 이르러 그와 그 자녀가 자유 하리니”라고 했습니다. 오늘 자라나는 씨의 비유는 이와 같은 희년을 연상시키는 표현으로써 예수님을 통해서 오는 하나님의 나라가 마치 희년과 같음을 암시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마치 노예들이 해방되는 해인 희년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면 사단의 노예들이 해방되어 하나님의 백성이 됩니다.

 

노예가 해방되는 해인 희년은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방된 그 출애굽의 사건을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50년마다 반복을 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희년은 이스라엘 사회 속에서 제도화된 출애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희년의 언어로 하나님의 구원이나 새 출애굽을 묘사할 수 있습니다. 열왕기하 19:29절을 보면 이스라엘이 앗수르로부터 구원받는 것을 희년의 언어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또 네게 보일 징조가 이러하니. 너희가 금년에는 스스로 자라난 것을 먹고 명년에는 그것에서 난 것을 먹되 제 삼년에는 심고 거두며 포도원을 심고 그 열매를 먹으리라”고 했습니다. 경작을 하지 않아서 스스로 자란 것을 먹는 안식년 후에 다시 한 해를 쉬는 해가 희년입니다(레 25:5, 11). 이와 같이 마가복음은 예수님을 통해서 오는 하나님 나라, 새 출애굽의 시대를 희년에 비유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희년과 같습니다. 희년에는 노예가 해방될 뿐만 아니라 기업이 회복됩니다(레 25:28).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기업의 회복과 관련이 됩니다. 하나님은 사단의 노예들을 해방시키시어 하나님의 나라를 영원한 기업으로 상속 받을 수 있는 자녀로 삼으십니다.

 

예수님은 자라나는 씨 비유에서 씨앗의 성장 원인은 씨앗 그 자체에 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밭에 뿌려진 씨는 그 생명이 왕성한 활동을 하면서 스스로 자라납니다. 농부는 추수 때에 밭에 곡식이 충실하게 여문 것을 보고 기쁨으로 단을 거두어들입니다. 이것은 천국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도래한 후에 성장해 나가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 자신의 의지와 능력에 있기 때문에 그 천국 복음을 위해서 일하는 자는 그 결실의 때를 바라보며 다만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할 것과 열심으로 수고할 것을 가르쳐 줍니다.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심는 일을 하는 사역자들은 자신들이 그 일을 했다고 해서 그 결실을 바로 보지는 못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그가 심은 하나님 의 복음을 자라나게 하여서 때가 되면 결실을 맺게 하실 것이기 때문에 수고의 결실을 즉시 얻지 못할지라도 낙심하지 말고 마치 씨앗을 심은 농부가 추수 때의 결실을 바라보며 날마다 맡은 일을 힘써 수고하듯이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고 열심을 갖고 수고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실로 하나님의 복음을 결실 맺게 하시는 일은 하나님만이 하십니다. 우리는 다만 그 하나님의 복음을 사람들에게 심고 물주며 가꾸는 일만을 할 수 있을 뿐입니다.

 

고린도전서 3:5-7절을 보면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뇨. 저희는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 뿐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사도 바울이 아볼로파, 바울파, 베드로파, 예수파로 나누어 파당을 지어 분쟁하는 고린도교회에 주신 말입니다. 당시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자기들은 인도하고 섬겨주었던 스승을 따라서 서로 파당을 지어 분쟁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런 그들을 향하여 아볼로나 바울 자신이나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께서 각각 자신들에게 주신 은사대로 너희로 믿게 한 사역자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바울 자신은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자라게 하신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누구파다 누구파다 나누어서 서로 분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그 복음을 통해서 구원의 열매를 맺게 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증거하고 그 복음을 받아 드린 자를 섬기는 자들은 심고 물을 주는 사역자에 불과합니다. 그들이 싹이 나고 자라고 열매 맺게 할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복음의 씨가 싹이 트고 자라서 열매를 맺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복음의 사역자들은 자기의 헌신을 자랑 할 수 없습니다. 오직 자라게 하시고 열매를 맺게 하시는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릴 뿐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복음의 사역자들의 그런 수고가 결코 헛되지는 않습니다. 기쁨으로 그 추수에 참예하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복음을 심는 원리입니다. 시편 126:5-6절을 보면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울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그 단을 거두게 됩니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게 됩니다. 이것이 씨를 뿌리는 농부들이 누릴 수 있는 기쁨입니다. 이와 같이 복음의 씨를 뿌리는 자들은 이 소망 가운데 믿음으로 복음의 씨를 뿌려야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9:10절에도 보면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십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심는 자들에게 심을 것을 풍성하게 하시고, 의의 열매를 더하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복음을 증거 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싹이 나게 하시고, 자라게 하시고, 풍성히 열매 맺게 하실 것을 믿고 전도인으로서의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풍성히 열매 맺을 때에 그 추수하는 기쁨에 참예 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고 열심으로 수고하는 자세는 사역자들만이 가질 자세는 아닙니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들에게 요구되는 자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함으로 자신들 안에 도래한 천국의 가치를 아는 자들은 그 나라를 영원한 본향으로 바라보며 그곳에 영원히 거주할 수 있게 되기까지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고 열심으로 맡은 일에 수고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러는 그를 하나님께서는 능력으로 함께 하시면서 천국 백성에 합당한 사람으로 자라게 하십니다. 그런데 이렇게 되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이는 일생이 걸린 일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방해와 장애도 있을 것입니다. 사단은 호시탐탐 갖은 계략을 써서 미혹과 대적하는 일을 병행하여 믿는 자들을 주에게서 떠나게 합니다. 이로 인해서 자칫하면 믿음에 열심을 갖지 않고 나태한다든지 또는 배도의 길을 가기 쉽습니다. 그러하기에 하나님의 복음을 증거 하는 우리 전도인들은 낙심하지 말고 참음으로 기다리면서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고 전도인의 생활에 열심을 가져 나가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께서 주신 천국의 결실을 보게 될 것이며, 그 추수하는 기쁨에 참예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비유들은 자연 세계나 유대인의 생활 모습을 정밀하게 묘사하려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드러내려는 목적으로 적절하게 생략도 하고 과장도 합니다. 스스로 자라는 씨 비유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실 세계에서 씨를 뿌린 후에 밤낮 자고 깨기만 하는 게으른 농부는 좀처럼 없을 것입니다. 잡초도 뽑고 물도 주고 열심히 경작 합니다. 곡식이 자라는 과정에 관해 전적으로 무지한 농부도 찾기 힘들 것입니다. 하지만 비유에서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농부의 여러 가지 노력을 생략했습니다. 씨가 나서 자라는 과정을 농부가 전혀 알지 못하는 것으로 설정했습니다. 독자가 현실과 다르게 묘사된 부분을 이상하게 여기며 주목하도록 자연스럽게 관심을 유도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현실과 다른 부분에 비유의 강조점이 있습니다. 스스로 자라는 씨 비유에서도 예수님은 적절한 생략과 과장을 통해서 사람이 씨앗을 자라게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하셨습니다. 이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성장에 있어서 인간의 노력을 철저히 제외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허락하시면서 헤아리는 자세를 가지도록 요청하셨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제자들이 보여준 모습은 하나님 나라의 비밀에 관해 무지하다는 사실 뿐입니다. 그들도 ‘저희’처럼 곧 외인처럼 비유를 알지 못했습니다(막 4:11-12). 하지만 하나님 나라의 성장이 제자들의 이해 수준이나 헤아리는 정도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비유 속의 농부는 씨앗의 성장과 관련해서 정확한 식물학적 지식을 갖고 있지 못했으나 추수하였습니다. 농부는 씨앗을 뿌린 후에 결실하기까지 자고 깨는 일만 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제자들이 그 비밀을 다 알지 못할지라도 자랍니다. 여기서 안다는 말은 ‘깨닫다’, ‘인식하다’, ‘경험해서 알다’라는 뜻입니다. 농부의 이해력 부족이 씨앗의 성장을 방해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 비유 속의 씨앗은 농부와는 무관하게 씨가 스스로 자랍니다.

 

씨앗이 나고 자라서 마침내 결실하기까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땅입니다. 28절을 다시 보면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고 했습니다. 헬라어 본문은 ‘스스로’(aujtovmato" 아우토마토스:자동으로)라는 단어를 문장 맨머리에 두어서 강조했습니다. 씨앗이 열매를 맺기까지는 씨앗 자체의 생명력과 비와 햇볕과 땅속에 있는 양분이 조화되어야 합니다. 궁극적으로 씨앗이 열매 맺게 되는 것은 그 모든 요소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때문입니다. 우리가 앞에서 본 고린도전서 3:6절을 다시 보면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씨가 스스로 자라는 이 비유에서 ‘스스로’라는 표현을 통해서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능력보다 농부가 그 모든 요소에 대해서 아무런 힘이 없음을 더욱 강조하고 있습니다. 농부는 때가 되면 싹이 트고 자라고, 때가 되면 이삭이 생기고, 때가 되면 충실한 곡식이 되는 현상을 확인할 뿐입니다. 그리고 그 추수하는 기쁨에 참여할 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이해력이 부족한데도 답답해하거나 조급해하지 않으셨습니다. 제자들에게는 아직 천국 비밀을 깨달았다는 변화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때가 되면 싹이 트고 자라며, 때가 되면 이삭이 생기고, 때가 되면 충실한 곡식이 결실해서 추수할 것을 아셨습니다. 오늘 본문 29절을 다시 보면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눈에 띄는 변화가 나타나지 않는 순간에도, 그 나라의 비밀에 대해 깨닫는 반응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지속해서 자라고 있습니다. 다만 그 나라는 영적인 나라여서 구약의 이스라엘처럼 영토를 확장해가는 모습을 눈으로 인식할 수 없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이 땅에서 계속해서 자라고 있으며, 미래의 어느 날 하나님의 때에 반드시 극치에 이른 모습으로 드러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참된 소망인 것입니다.

 

우리가 인간적으로 보면 때로는 하나님의 나라가 쪼그라들고 망할 것 같이 보일 때도 있습니다. 중세시대가 그러하였고, 오늘날 이 시대가 그러합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를 보십시오. 지금까지 없었던 영적인 암흑의 시대와 같이 보입니다. 암담합니다. 교회는 점점 세속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불신자들의 입에서까지 이제 공연히 기업이 되었다는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교회는 영적인 힘을 잃고 맛잃은 소금같이 사람들에게 밟히고 있습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써 전혀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통계수치로 볼 때도 점점 교인의 수가 감소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눈으로 볼 때는 하나님 나라가 망해 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 어두운 시대에도 하나님 나라는 자라고 있습니다. 복음의 씨가 심기워진 개인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눈으로 볼 때는 그 심기워진 씨가 싹이 나고 자라는지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답답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심기워진 그 복음의 씨가 싹이 나고 자라서 열매 맺을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택하신 아들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복음을 증거하고 계십니다. 그 증거된 복음은 택하신 자들의 마음에 떨어져 자라게 하십니다. 우리가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가운데서 싹이 나고 자라고 열매를 맺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이 패역한 시대에, 진리의 말씀에 관심이 없는 이 시대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복음의 씨를 뿌려야 합니다. 장차 주님께서 풍성히 추수할 그날을 소망하며, 그 추수에 기쁨으로 참예할 소망 가운데 전도인의 사명을 다해야 합니다.

 

농부는 씨를 뿌린 후에 마음이 조급해서 파보고, 이삭을 뽑아보지 않습니다. 농부는 추수 때가 이를 것을 알고 기다립니다. 그 때를 기다리며 농부는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충성스럽게 감당해 나갑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뿌리는 자는 이러한 농부의 태도를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뿌렸는데 표시가 나지 않는다고 낙심하고, 변화가 없어서 답답해 하고, 때를 기다리지 못해 조급해 한다면 본인만 힘들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 나라의 비밀에 귀를 기울이고 성실하게 헤아리는 태도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동시에 그 비밀을 다 헤아려 이해해야만 하나님 나라가 성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에 감사하며, 하나님의 때를 믿고 기다릴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이 자라나는 씨 비유를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실 것을 믿고 믿음으로 복음의 씨를 뿌리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주님께서 추수하실 때에 그 천국 추수의 기쁨에 참예하는 복된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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